19.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었다
오닉스는 생각했다.
용사의 기세가 달라진 건, 백작이 녀석에게 먹이를 먹인 순간부터였다고.
처음엔 착각인가 싶었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슬라임의 알을 엉덩이 구멍으로 먹은 게 용사의 무언가를 결정적으로 건드린 게 틀림없었다.
정원에서 열린 만찬에 오닉스는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 게 많았다.
용사의 근육이 어떻게 꿈틀대고,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무엇에 기겁하고 절망하며 괴로워하고 느끼는지.
그의 분위기 하나까지도 모두 읽어 내며 긴밀하게 살피고 있을 때, 돌연 참고 견디고 버티던 끈이 뚝 끊어져 버린 사람처럼 용사는 무너져 버렸다.
사람의 눈동자에서 빛이 꺼지면 커튼이 드리운 것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어둑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후 쾌락에 뇌가 절여진 듯 용사는 무의미한 신음을 뱉어 내며 쾌감에 버둥댔다.
그러면서 당도가 절정에 오른 과일처럼 달콤한 향기를 마구 뿜어냈다.
그게 퍽 가여우면서도 연민보단 복중에 숨어 있는 심술이 불쑥불쑥 솟아 나와 곤란할 지경이었다.
만약 용사의 엉덩이를 쑤시는 게 백작이 아니라 저였다면.
마왕의 심기를 거스르더라도 용사의 엉덩이에 얼굴을 파묻고 그 향기를 모두 핥아먹었을 터였다.
그는 음란한 인큐버스답게 정기라면 다 좋아서 절제 같은 건 진작에 내다 버렸다.
게다가 취향은 폭넓고 깊어서 천박하게 밝히는 요부도 좋고 꺾는 맛이 있는 동정도 좋았다.
제게 정기를 베풀기만 한다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다 집어삼키는 대식가였다.
하지만 가리지 않는다고 취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닉스는 여러 타입의 사람 중에서도 어여쁘게 무너지는 사람이 가장 좋았다.
바닥없는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지면서도 꾸역꾸역 서럽게 버티는 자를 괴롭히는 게 가장 취향이었다.
그중의 으뜸은 단연 용사였다.
그래서 더 오래 버둥대며 귀엽게 갸르랑거렸으면 좋았을 것을 이유도 알 수 없게 맥없는 표정으로 흐트러지니 참 뭐랄까….
‘더 꼴리잖아.’
오닉스는 저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혀로 핥으며 제 옆에 흐트러져 있는 용사의 얼굴을 살폈다.
온몸이 울긋불긋 저가 남긴 치흔으로 어여쁘게 물들어 있었고, 제게 꿰뚫리느라 앙앙대며 울던 눈가가 발갛게 달아올라 너무 사랑스러웠다.
용사는 팔팔하게 살아서 날뛰는 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용사라면 요부여도 좋고 순결한 성자여도 좋고 끈 떨어진 인형이어도 좋을 것 같았다.
워낙 잡식인 탓에 사람의 미추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용사는 꽤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제 다른 얼굴의 용사는 떠오르지 않을 만큼 확실한 각인이었다.
단정한 얼굴에 악에 받친 표정이 떠오르면 그 간극이 좋았고.
하얗고 매끈한 몸을 가진 주제에 상처투성이여서 자꾸만 시선이 갔다.
더욱이 반항적인 태도에 반해, 감도도 제법 좋고 만졌을 때 말랑하고 탱글한 촉감이 일품이었다.
‘이런 원석이 어디 있다가….’
오닉스는 용사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정액으로 범벅이라 제대로 뜨지 못하는 속눈썹을 슬쩍 쓸어 보았다.
간지러웠는지 파르르 떨리는 젖은 털의 감촉이 제법 간질간질했다.
속눈썹으로 인해 길게 생긴 그림자 아래로 보이는 짙어진 눈가가 조금 위태위태해 보였다.
잔뜩 지쳐 흐트러진 얼굴과 장막이 드리워져 새카매진 눈.
그리고 제가 한껏 싸지른 정액으로 더러워진 머리칼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성기가 뻐근하게 부푸는 게 느껴졌다.
“하아. 곤란한데.”
오닉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슬그머니 용사의 입술을 문질러 눌렀다.
손가락 모양대로 일그러지며 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가지런한 치아와 채 삼키지 못하고 씨물을 물고 있는 혀가 촉촉해 보였다.
슬며시 드러난 잇새로 뭉근한 단내가 솔솔 풍겼다.
홀린 듯 손가락을 밀어 넣어 입천장을 훑어보니 입 안이 그렇게 큰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좁아터진 입으로 마왕 걸 용케 삼켰다고.’
어쩐지 입가가 터져 있더라니.
지금은 아물어서 흔적도 남지 않은 입술께를 문지르며 오닉스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용사가 하스칼이 아닌, 제 눈에 먼저 들었더라면.
오닉스는 용사를 대공저에 가둬 놓고 죽을 때까지 정기를 빨아먹으며 즐기는 상상에 애가 달았다.
다른 인간처럼 연구하다 아깝게 죽이지도 않을 거고, 맛있는 것을 늘 먹여주며 사랑스러워할 자신도 있었다.
무엇보다 용사의 얼굴이 하루도 마르지 않게 적셔줄 수 있었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하루빨리 마왕이 질려서 용사를 버려줬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고 보니 마왕께선 용사를 언제 눈여겨보셨담?’
오닉스는 슬쩍슬쩍 용사의 혀를 가지고 놀면서 머리를 굴려 보았다.
그가 알기로 마왕은 지구에 현신한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쉽사리 그럴싸한 추리를 내놓을 수가 없었다.
기억하기로 가장 가까운 시기는 대략, 몇만 년 전쯤.
오만하고 멍청한 비만 용들이 시비를 걸어오던 즈음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용을 절멸시키고서야 지옥에 돌아온 마왕은 그 뒤로 지옥을 벗어나지 않았다.
폭삭 망한 지구를 정리하는 업무를 저가 맡았기 때문에 오닉스는 그때 일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설마 올라오는 서류 보고 침 발라 놓으신 건가?’
그렇다면 감이 소름 끼치도록 좋은 셈이고 그도 아니라면 저는 알지 못하는 다른 방법으로 용사를 관음했음이 분명하리라.
‘치사하게.’
오닉스는 괜히 심술이 나서 용사를 툭 밀쳤다.
그러자 제 손가락을 물고 있던 용사의 신형이 일렁이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뒤이어 제 방을 흉내 낸 대공저 배경도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어쩔까나. 이제 슬슬 이런 가짜 말고, 진짜 용사를 따먹고 싶은데.”
얼굴 위로 다닥다닥 붙은 심술 너머로, 음산한 욕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 * *
회귀를 거듭할수록 미련 두는 것이 많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오히려 미련이 차곡차곡 쌓여 포기하지 못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늘 유사시를 대비하느라 그럴 여력이 없어서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꿈을 잘 꾸지 않았다.
대신 꿈을 꾸기 시작하면 굉장히 이르게 자각하는 편이었다.
꿈속에서 한번 자각하고부터는 어느새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도 원하는 대로 가능해졌다.
하지만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내 맘대로 꿈을 끝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 바람에 이상한 상황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기운이 쪽 빠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개 잘 즐기다 끝내곤 했다.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오닉스 짓인데.’
나는 모처럼 꾼 꿈을 반기고 싶어도 살색이 적나라하게 펼쳐진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
사람을 괴롭히는 건 현실에서도 충분하건만.
오닉스는 ‘나’를 발가벗겨 놓고 혼자서 이것저것 즐겨 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꿈이라는 걸 자각한 지 얼마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나는 약간 유체 이탈한 느낌으로, 오닉스가 꿈속의 ‘나’에게 하는 파렴치한 짓을 모두 지켜봐야만 했다.
그렇게 제삼자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자니, 뭐랄까.
그간 내가 오닉스를 퍽이나 얕봤고 내 상상력이 한참 빈약했단 걸 깨닫게 되었다.
꿈속에서의 오닉스는 ‘나’에게 개 목줄을 채워 놓고 네다리로 기어 정원을 돌게 한다거나 개밥그릇에 제 정액을 뿌려 핥게 했다.
그러고는 ‘나’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몸을 접시 삼아 만찬을 즐겼다.
대체 멀쩡한 음식이 저기 있는데 왜 젓가락으로 가슴은 꼬집어 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사타구니에 와인을 뿌린 뒤 그걸 받아 마시는 이유는 더더욱 모르겠고….
그나마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건, 이 장면은 녀석이 내게 목줄을 채웠을 때 가졌던 욕망일 것이란 거다.
그 욕망을 왜 참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대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게 되는 거야.’
나는 한숨을 쉬고 싶어도, 오닉스가 눈치챌까 봐 조용히 입 다문 채 꿈이 깨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꿈이 길어졌다.
이 안에서의 주인공은 ‘나’와 녀석뿐이라 시간이 얼마나 어떻게 흐르는지 감 잡기도 어려웠다.
‘내가 저런 이미지였다고?’
주변에 시계가 없나 살피다가 나는 어디 한 대 맞은 것처럼 탄식했다.
이제 꿈속의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오닉스의 허벅지에 얼굴을 기댄 채, 녀석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아무런 말 없이 오닉스가 하자는 대로 따르면서도 녀석이 제 성기를 들이밀면 ‘나’는 기꺼운 표정으로 그것을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마치 사탕이라도 되는 양 쪽쪽 빨다가, 녀석이 싸지르는 정액을 삼키지 않고 굳이 허락까지 받아 가며 마셨다.
그러면 오닉스는 고양이를 쓰다듬듯, 머리부터 등까지 슬렁슬렁 쓸어내렸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갑자기 장소가 바뀌었다.
거대하고 음산한 풍경의 성이었는데, 내겐 낯선 풍경인 것으로 보아 대공저 같았다.
대공저에 도착하자마자 녀석은 ‘나’를 침실로 데려갔다.
하스칼과의 방과는 다르게 제법 깔끔하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침실이었다.
인테리어 쪽으로는 제법 센스가 있어 보였다.
…라는 생각을 나는 수초 안에 뒤집어야만 했다.
녀석의 방은 약간의 구조 변경만으로도 이상한 실험실이 되었고, 그 실험실 벽면에서는 각종 끔찍한 도구들이….
‘다시 보니 하스칼이 선녀였구나.’
나는 속이 울렁거려서 평소처럼 못 죽나 하는 생각이나 했다.
‘어차피 방해하는 시스템도 없는데 꿈에서만큼은 좀 죽게 해주지.’
태평하게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벼락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문득, 이 꿈에서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야말로 시스템이 말했던 망가진 모습의 표본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이성을 잃고 하스칼에게 달려들어 좆을 빨던 내 모습은, 오닉스의 좆을 물고 행복해하는 ‘나’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물론 세밀하게 따지자면 하스칼에게 달려들던 때가 조금 더 발랑 까진 이미지였지만 전체적인 궤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조금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아주 굉장한 발견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저 모습을 흉내 낼 수만 있다면 시스템을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이미 내 편이 아니라는 게 확실시됐고, 설혹 내가 악마의 시스템과 계약해 타락하는 중이더라도 헌터로서의 프라이드는 아직 남아 있었다.
대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이 타락하는 건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게는 미련 남은 사람도 재산도 몸뚱이조차도 없었기 때문에, 설사 녀석이 나를 타락시키기 위해 협박하더라도 크게 와닿지 않을 터였다.
나는 눈을 조용히 빛내며, 오닉스와 ‘내’ 모습을 노려봤다.
‘…그러니까, 저 모습이란 말이지.’
이제 ‘나’는 오닉스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묻은 채, 자신의 구멍에 손을 넣고 자위를 하고 있었다.
‘……저, 런 표정이어야 한다고.’
오닉스가 얼굴의 뿌려주는 정액에 ‘나’는 마치 황홀한 듯 뺨을 붉혔다.
녀석이 지분거릴 때마다 한껏 신음을 토하고.
만져주면 자지러지다가도.
오닉스가 일할 때면 어딘가 나사 빠진 사람처럼 몽롱한 눈으로 오도카니 앉아 있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노닥이던 오닉스는 ‘내’ 입술이며 혀 따위를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고민하더니 이내 툭 쳐서 밀어 버렸다.
그러자 시야가 이지러지면서 한껏 뭉그러졌다.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