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여줘, 내가 세상을 멸망시키기 전에 (17)화 (17/80)

17. 너는 알고 있었잖아?

“아…!”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 하스칼의 손가락이 구멍을 덧그렸다.

이미 흠뻑 젖어 축축해진 터라 녀석이 느릿하게 비비는 것만으로도 손가락 끄트머리가 살짝살짝 들어갔다 나왔다.

그 침입을 반기기라도 하듯, 구멍과 입구 근처 내벽이 옴찔대는 게 느껴졌다.

내 의지에 반하는 그 움직임에 배신감이 들면서도 못 견디게 야릇해서 나는 허리를 들썩이며 버둥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버둥거려도 하스칼에게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그저 주름의 개수라도 세듯, 한가하게 손톱을 세워 구멍 주변을 지분거릴 뿐이었다.

“흐, 아.”

급히 숨을 들이마시고 안타깝게 내쉬기를 몇 번 반복하니 녀석의 프리컴으로 겨우 적셨던 입 안이 다시 마르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들썩거릴 때마다 시트 위에 추삽질을 하듯 성기가 비벼지면서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흉터가 없는 곳이 없어. 대체 몸을 어떻게 쓰고 다닌 거야.”

방금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새 흉터를 만든 건 정작 본인이면서 하스칼은 칠칠치 못하게 뭘 이런 걸 묻히고 다니냐는 듯 타박했다.

내 몸의 흉터 대부분은 놈의 부하들과 싸우다 생긴 건데, 탓을 하자면 오히려 자신을 탓해야 옳지 않나?

하지만 그런 속내를 밝히자니 조금 쪽팔렸다.

마왕을 무찌르겠다고 그렇게 오래도록 돌고 돌아 놓고 정작 하스칼에겐 닿지도 못한 채 졸개 놈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꼴이었으니 말이다.

“몸이 걸레짝이 되도록 굴리다 보면 죽는 게 쉬워지나 보지?”

얼핏 듣자면 질문에 가까웠지만, 새로운 정보를 정리하듯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녀석에게 뭔지 모를 것을 학습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전투는 정보전이기 때문에, 녀석이 나에 대해 알아 가는 것이 많을수록 내게는 불리한 일이 되는 까닭이다.

그때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에게도 공평하게 새로운 정보를 주겠다는 듯 시스템 창이 타이밍 좋게 떠올랐다.

※마왕 하스칼의 체액 효과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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