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배부르면 얌전해지겠지
백작이라 불린 악마의 말에 하스칼의 얼굴 위로 마뜩잖은 표정이 떠올랐지만 끝내 놈더러 꺼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게 악마들 사이에선 허락으로 통하는 모양인지 백작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테이블 위로 손바닥을 대자, 놈의 소매에서 무언가가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나는 늘 기습을 대비해 긴장하는 것이 습관이었던 터라, 몸이 절로 움찔거렸다.
하지만 백작의 소매에서 떨어진 건 몇 마리의 실뱀이었다.
손가락 굵기의 작은 뱀들이 주둥이에 무언가를 문 채 식탁까지 스르르 기어 내려왔다.
구슬보단 크고 야구공보단 작은, 정체를 알아보기 힘든 하얗고 작은 무언가들이 테이블 위를 도르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착-
기이한 물건의 정체에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백작은 뱀이 물어다 준 하얀 장갑을 군더더기 없는 자세로 착용하며 빙글빙글 웃었다.
“우선 두 분이 고민하셨던 것부터 해결해 볼까요.”
백작은 테이블 위에 떨어진 구슬 하나를 집고는 그 속을 들여다보듯 들어 올렸다.
무심결에 나도 그것을 들여다보니, 반투명한 액체 안에 작고 둥근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
‘움직였어…!?’
곁에서 삐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오닉스의 눈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기생 슬라임의 알?”
오닉스의 반응에 백작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입술을 핥았다.
끄트머리가 갈라진 두 갈래의 혀가 스르륵 삐져나왔다가 들어가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맞습니다. 제법 귀한 녀석들이죠. 제가 직접 뱀과 교배한 신 개량종입니다.”
‘슬라임?’
어느 던전을 가도 꼭 나오는 하급 마수가 바로 슬라임이었다.
랭크가 낮은 헌터에겐 좋은 경험치가 되어줄 정도로 살상력도, 위험도도 낮은 게 특징이었다.
다만, 녀석들의 체액이 약한 산성을 띠고 있는 까닭에 큰 군집을 이룬 경우 반드시 몰살시켰다.
C급 스킬 한 번이면 쉽게 터져 나갔기 때문에 녀석들을 청소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익숙하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슬라임이 변태의 손에 들려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졌다.
‘설마 저걸 먹이려는 건 아니겠지.’
괜한 생각으로 플래그를 세우면 안 되는 건 알지만, 흘러가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수상했다.
나는 다급하게 눈을 굴렸다.
성검 나르카스는 마왕의 근처에 떨어져 있었고, 암살왕의 단검은 오닉스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손끝이 움찔하며 떨리긴 했지만, 무기를 집으려고만 생각하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저주받은 목걸이의 제약이 아무래도 뇌파를 읽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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