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여줘, 내가 세상을 멸망시키기 전에 (4)화 (4/80)

4. 등가교환에 예외는 없었다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회귀를 경험하기 전의 나는, 미래를 알게 되면 뭔가 대단한 업적을 이루게 될 줄 알았더랬다.

복권 번호를 미리 알아내 떼돈을 번다거나, 대형 사고를 막아 칭송받는다거나 하는….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봤을 그런 상상을 나 역시 하곤 했다.

참으로 순진했지.

시스템이라는 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무언가를 바꾸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감당해야만 한다.

실수였다 하더라도, 등가교환에 예외는 없었다.

빚을 끌어다 썼으면 무조건 값을 지불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떠올린 연유는 지난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한 내 멍청함을 탓하기 위해서였다.

‘시스템 창에 있는 설정은 건드리는 게 아니었는데….’

일반 사람이 느끼는 감각 평균은 35.

각성해서 헌터가 되면 40으로 뛰어오르고, 등급이 상승할 때마다 조금 더 예민하고 민감해져서 나는 50 정도의 평균값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근력 같은 스탯에 비하면 숫자의 변동 폭이 크지 않아서, 10 정도가 어느 정도의 수치인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끄면 되니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았고.’

헌터가 부상을 달고 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난 아픈 게 싫어서 통각 수치는 무조건 내려놓고 살았다.

가끔 아픔을 느끼지 못해 위험하기도 했지만, 그다지 문제 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몸을 운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치면 깔끔하게 죽으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부상에 무감해졌다.

회귀가 반복되면서 거추장스러운 감각들도 조금씩 줄여 갔다.

하지만 통증 역치는 반복될수록 낮아진다던가.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프지 않다며 무분별하게 다치고 다녔다.

그러면서 역치는 무섭게 낮아졌지만, 치사한 시스템은 내 앞에 빚을 달아 두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오닉스가 내 가슴 끝을 가볍게 건드렸을 때, 나는 어마어마하게 쌓인 가격표를 받아 들었음을 깨달았다.

톡.

약간의 터치만으로도 유두가 얇은 천을 밀어 내고 볼록 솟아올랐다.

촘촘하게 엉겨 있는 직물의 짜임이 한껏 도드라진 가슴 선단을 스쳤다.

“……!”

평소에는 잘 들리지도 않던 모기의 날갯짓이 자려고만 하면 그렇게 선명한 것처럼, 낯선 촉감이 무딘 신경을 활짝 열고 뇌까지 다이렉트로 내다 꽂혔다.

“우리 용사님이 생각보다 민감하네요. 살짝 건드렸는데 이렇게 꼿꼿이 선 것 좀 보세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신체의 변화까지는 막을 수는 없었다.

오닉스가 내 반응을 보더니 재밌다는 듯, 손톱으로 가슴 끝을 살짝 할퀴었다.

그에 반응하듯 시스템 창이 부르르 떨리며 새로운 정보를 토했다.

※악마대공 오닉스의 순도 높은 체액이 신체를 잠식하여 ‘성욕’이 개방되었습니다. 상태이상 탭을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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