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삼켜 버렸네?
퍼벙, 펑!
하늘에 화려한 불꽃이 수놓였다.
수십, 수만의 인파가 광화문 광장에 몰려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자, 내가 화려한 꽃으로 치장된 거대 마차를 타고 도로를 행진하고 있었다.
“태준아! 이, 멋진 새끼야!”
“헌터님! 헌터님 정말 최고예요!”
“헌터님, 정말 감사해요!”
내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본 순간, 이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구한들 누구도 내게 저토록 환호하지 않으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보여? 다들 세계를 구한 영웅을 축하해주겠다고 온 거야!”
멀뚱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자니, 누군가가 내 어깨 위로 힘차게 달려들었다.
“정말 수고 많았다. 이런 말 진부하지만, 태준아. 네가 세상을 구했어.”
“이, 깜찍한 새끼! 덕분에 우리 아빠가 살았어! 감히 나한테 빚을 뒤집어씌우다니, 죽을 때까지 갚을 줄 알아!”
애써 정리한 머리가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당신이라면 비장의 한 수쯤은 가지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느껴지시나요? 주신 라엘께서 당신을 축복하고 계십니다.”
처음으로 신의 축복과 찬사가 내려졌지만.
그래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역시 꿈이겠지.’
헌터들은.
내 동료들은 결코 저런 말을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기묘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백여 번쯤 회귀했을 때, 꿈꿨던 장면이 이랬던 것도 같았다.
‘그때는 그래도 절망보다는 희망이 더 크게 남아 있었는데.’
헛된 희망이 계속해서 무너지고, 회귀한 횟수를 세는 게 무의미해지고부터는 이런 꿈조차 꾸지 않게 되었는데.
새삼스러운 기억까지 떠오르자 괜스레 멋쩍어졌다.
‘누가 장난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료 조사가 불성실하잖아.’
사실 광화문은 지난해에 반파되고 여태 복구되지 않았다.
그러니 인적이 드물어야 옳은데도 이토록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이라니.
의심이 확고해지자, 어깨며 머리 따위를 두드려 대는 헌터들의 얼굴이 뭉그러졌다.
방금까지 귓가를 울리던 환호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처럼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으음-, 이상하네요. 저주가 이 정도로 발현했으면 이성적인 판단은 어려워야 할 텐데 말이에요.’
‘말했잖아. 쉽지 않을 거라고.’
‘멘탈이 무너져서 간단할 줄 알았죠.’
‘그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내가 새로 저주를 내리지도 않았겠지.’
잠결에 틀어 놓은 TV처럼 어물어물 대던 말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예? 새로운 저주를 또 심으셨단 말입니까?”
“네놈이 알려준 것만으론 뇌가 곤죽이 되지 않더라고.”
그 소리를 듣자마자 당장 날 어쩌지는 않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려 두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럴 건데, 문제 있어?”
“…….”
두런두런 나누던 대화가 맥없이 끊겼다.
묘한 침묵 끝에서 어이없음이 묻어났다.
‘한쪽은 하스칼인 것 같은데…. 다른 쪽은 누구지?’
나는 기절한 척, 마왕의 대화 상대를 유추하기 시작했다.
나긋나긋한 말투가 어쩐지 익숙했기 때문이다.
‘내 검에 맞아 본 놈은 분명한데.’
회귀를 하도 많이 해서인가, 아니면 악마 놈들을 수없이 잡아 족친 탓인가.
떠오를락 말락, 영 가물가물했다.
‘그래도 유명한 놈은 제법 기억해 뒀는데….’
말투는 악마답지 않게 부드럽지만, 끝이 살짝 갈라지며 허스키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특징이 두드러지긴 하나, 목소리만으로 유추하기에는 내 기억이 너무 낡고 닳아 있었다.
“저래 보여도 일검에 발칸 목을 따 버린 놈이야. 고작 저주 하나 더 걸었다고 죽겠어?”
“그거랑 그거는 다르….”
“뭐?”
“예. 튼실한 놈이라 쉬이 죽지 않겠군요.”
잠시 끊겼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실없는 소리 말고 잘 살펴봐. 자꾸 죽는다고 하니까 그쪽 특히 신경 쓰고.”
“아하. 그런 쪽으로 망가진 거였군요.”
“아직 안 망가졌어. 오래 데리고 있고 싶으니까 잘 주무르라고 부른 거잖아.”
“음, 의외네요. 하스칼 님이 제게 이런 즐거운 기회를 양보해 주실 줄은 몰랐는데요.”
“내가 건들면 곧장 죽어 버리니까.”
“…예. 제가 폐하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천만다행입니다.”
정체 모를 악마의 목소리에서 옅은 한숨이 느껴졌다.
물론 하스칼은 아무렇지 않게 상대의 근심을 넘겨 버렸다.
“일단 방금 한 건 실패했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나 설명해 봐.”
“너무하십니다, 실패라니요. 그냥 하나의 시도였을 뿐인걸요.”
“쓸데없는 말이 슬슬 길어지는데.”
“그러면 일단, 용사도 깨어난 것 같으니 직접 반응을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씨발.’
조용히 정보나 좀 빼먹으려고 했더니, 깨어 있는 걸 진작 들켰나 보다.
누가 이렇게 음흉한가 싶어 눈을 치뜨다가, 무심코 탄식이 새 나왔다.
하고 많은 악마 중 하필 악마대공 오닉스였다.
‘저 치사하고 교활한 놈이 왜…!’
자주 마주친 건 아니지만, 그를 만난 회차는 대개 엄청나게 까다롭고 성가셨다.
무엇보다 사람을 잡아가 이상한 연구를 하는 변태적인 취향 덕에 비위가 상하곤 했다.
‘좆된 건가?’
불길한 긴장감에 눈살을 찌푸리자, 오닉스는 은근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게 꼭 눈알로 사람을 핥아 대는 것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뭔갈 하기 전에, 우선 이 인간이 어디까지 버티는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인간들은 물러 터져서 쉽게 부서지거든요.”
“…윽.”
오닉스는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실행하겠다는 듯, 내 귓불을 느른하게 문질러 댔다.
“으읍! 읍!”
당장 더러운 손 치우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을 틀어막은 질척한 이물감에 억눌린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렸다.
“좋네요. 입부터 막아 둔 것도 실로 훌륭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말을 빼앗기면 상당히 의기소침해하지요.”
내 바르작거림이 마음에 드는지 귓불에 닿은 오닉스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은근슬쩍 손톱을 세웠다.
따끔한 감촉에 피라도 보려나 싶던 차.
“오닉스.”
허튼짓하지 말라는 듯, 하스칼의 경고가 날아들었다.
“어이쿠.”
오닉스는 과하게 놀라는 척, 느물거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귀한 샘플을 얻은 게 기뻐서 그만. 그러면 설명을 마저 이어 볼까요?”
“…….”
“신체의 강도를 알고 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파악할 겁니다. 대체로 생존 욕구가 우선이고, 정신적 만족은 그것이 충족된 이후 문제지요.”
“음. 벌써 귀찮아지기 시작했는데.”
오닉스가 어려운 말을 줄줄 늘어놓기 시작하자 하스칼의 얼굴에는 지루함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나를 살피는 눈깔이 꼭, 그냥 산 채로 박제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재 보는 것 같았다.
“그냥 알아만 두시면 됩니다. 개체마다 취향이 달라서, 선후가 뒤집히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마침 좋은 변수가 우리 앞에 있네요.”
오닉스가 히죽 웃으며 내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우리 용사님 욕구는 정신적인 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 같아요. 자존심이 무너지는 게 죽기보다 싫은 거죠.”
“그래서, 죽고 싶지 않게 하려면?”
“공포를 학습시키는 겁니다.”
“죽는 걸 두려워하진 않던데.”
“감정이라는 건 하나만 건드려도 와르르 무너지곤 하지요. 저는 용사가 가진 헛된 희망부터 빼앗을 겁니다. 죽는 걸로 도피하면 더 무서운 꼴을 겪게 된다는 걸 학습시키는 거죠.”
‘지금 시스템을 빼앗긴 것만으로 열받아 죽겠는데, 여기서 뭘 또 빼앗는다고…!’
시스템 동기화 완료. 사용자 서태준 님의 정보를 인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