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자깐, 아…….”
재진은 차오른 숨을 삼키고 서의우를 받아 냈다.
“또 내가.”
“그만.”
“아냐, 한 번만 더…….”
이러니 무서워서 서의우한텐 무슨 말도 못 꺼내겠다.
“너는 늘 적당히를 몰라.”
“응. 나 그런 것 같아요.”
“참 당당하다…….”
“그치만 재진 씨가 만족하는 기준이 나랑 너무 다른걸요.”
서의우가 권재진의 허리를 한 팔로 감싸고 뺨에 입술을 찍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빛이 번쩍거렸다. 뭐지 싶어 재진이 눈을 감았다 떠 보니, 흩어지는 빛무리와 함께 장소가 바뀌어 있었다.
침대 위에 풀썩 엎어진 재진이 당황한 눈을 떴고. 서의우는 시원스럽고 청량한 웃음을 터트리며 입고 있던 웃옷을 보란 듯이 벗어 던졌다. 검은 목폴라 티가 눈앞에서 홱 날아갔고, 잘 깎인 근육 조각이 유려하게 움직였다.
손목을 빙 돌려 관절 꺾는 소리를 낸 서의우가 재진의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차근히 하나씩 풀었다.
“아, 내일은 뭐 먹고 싶은지 말해 줘요.”
이런 상황에 맞지 않게 서의우가 내일 식사 메뉴를 물어 왔다. 권재진도 손을 뻗어 그의 바지 버클을 풀어 주며 생각나는 음식 아무것이나 답했다.
“내일…… 차돌순두부.”
“반찬은?”
“글쎄, 아무거나…….”
“적당히 몇 개 할까요? 장조림, 숙주나물 이런 거.”
“어. 아, 칠리 새우 먹고 싶다.”
“그래요, 그럼 칠리 새우도.”
차돌순두부에 칠리 새우는 영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서의우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보였다. 권재진이 먹고 싶다는 게 중요하다.
“내일은 나랑 집에만 있어요. 요즘 너무 돌아다녔어.”
“조금 바쁘긴 했지.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그러니까 내일은 종일 둘이 뒹굴고 싶어요. 음악 같은 거 들으면서. 낮잠 자고. 그런 거.”
“그래……. 좋네.”
허락이 떨어지자 서의우가 걸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내일 푹 쉴 거니까, 오늘 좀 무리해도 괜찮겠죠?”
유인 설계에 그냥 걸려 버렸다.
서의우가 기다렸다는 듯 냉큼 단정한 입을 벌리고 드러난 가슴을 물었다. 습관처럼 왼가슴에 키스하니, 완전한 형태를 갖춘 재진의 핵이 강렬하게 감응했다.
“아, 아.”
“하아…… 느낌 어때요.”
“윽…….”
“찌릿찌릿하죠? 내가 말했잖아요. 그렇다니까.”
그가 재진의 왼쪽 젖꼭지부터 입에 물었다. 혀로 몽우리 끝을 적시듯이 핥아 가며 놀다가 내키는 대로 빨기 시작했다. 아래로 곱게 내리깔린 그의 속눈썹만 보면 남자 가슴을 빠는 짓을 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미려했다.
“이걸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내가.”
서의우가 소리 낮춰 읊조리며 손으로 가슴살을 쥐어 주물렀다. 밑가슴이 들리면서 살덩이가 우묵하게 눌렸다.
“나는 재진 씨 아니면 안 되는데. 그걸 왜 아직도 몰라. 나더러 다른 사람 만나란 소리나 하고……. 그게 되겠어요?”
권재진이 헛숨을 삼키며 발끝을 움찔거렸다. 그만하란 뜻으로 어깨를 허리를 조금 비틀었지만, 서의우는 아직 멀었다는 듯 네 손가락을 겨드랑이 밑까지 쓸어 올렸다.
우묵하게 들어간 겨드랑이 아치 부분을 훑으면서 권재진의 흉부 두께는 어느 정도인지, 곡률은 얼마쯤인지 집착적으로 파악했다. 이제쯤 오싹하게 소름이 돋았다. 슬슬 긴장이 됐다.
서의우가 가슴을 보란 듯이 물어뜯어 놓고는 고개를 들었다. 흩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또 입술을 찾아 키스했다.
“아, 알았. 잠깐만…….”
웅웅대는 파동에 정신을 못 차리던 재진이 그만하라는 듯이 고갤 끄덕였다. 핵의 공명은 권재진에게 아직 낯설고 새로워서 느낄 때마다 가슴 속이 이상했다.
마치 성감을 처음 깨달은 사춘기 소년처럼. 각성자만이 느끼는 미지의 감각을 깨우친 여파가 컸다. 아직 적응도 덜 됐고.
“미안하다고 말해요.”
“어……?”
“나더러 다른 가이드, 다른 애인 만나라고 말했잖아. 그거 사과해요.”
“아니, 그건, 그때는. 상황이 그랬고.”
“상황이건 뭐건, 어떻게 유언이 그따위일 수가 있어.”
“……하지만 너는 아직 어리고, 또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모르긴 뭘 몰라요. 와, 대체 내가 몇 번을 확인시켜 줘야 돼?”
서의우가 권재진의 턱 끝에 입 맞추면서 손을 아래로 뻗쳤다. 살갗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손바닥 전체를 밀착해서 몸뚱이를 쓸었다. 힘 빠져 늘어진 재진의 다리를 열고 허벅지 사이를 더듬었다.
“우린 둘뿐이라니까.”
“그건, 아. 그렇…….”
“재진 씨는, 내가 먼저 죽으면 다른 에스퍼, 다른 애인 만들 거예요? 그럴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근데 난 왜. 빨리 사과해요.”
서의우가 음산하게 추궁하며 엉덩이 골을 벌렸다. 손가락을 푹 찔러 넣자 내벽이 확 조여 물었다. 어제도 해 댔는데 늘 속이 좁다. 서의우가 재진의 한쪽 발목을 잡아 붙들곤 위로 들어 올렸다. 엉덩이가 들리게 하고는 자연스럽게 밑구멍을 빨았다.
“알았어! 내가…… 내가 미안해.”
“으음…….”
“그때는, 내가 없어도, 윽, 넌 잘 지냈으면 해서…… 그렇게 말한 겁니다.”
서의우가 혀로 적신 구멍을 굵은 손가락으로 깊게 쑤셨다. 곧바로 쾌감점을 자극해 버리는 손짓에 권재진이 덜컥 퍼드득댔다.
“아, 흐아……!”
“그래요. 재진 씨가 잘못했죠.”
“……어어.”
“아…… 재진 씨가 나처럼 질투 한 번만 해 줬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랑 살란 소리 다시는 못 하게. 그게 내 소원이에요.”
서의우가 투덜대고 웃으며 아랫도리를 문질렀다. 불툭 튀어나온 좆대가리가 회음 밑을 노골적으로 치덕거렸다. 손가락으로 안쪽을 넓히면서 그러니까 좆으로 박히는지 뭘로 박히는지 헷갈렸다.
“알았으니까, 그만…… 내가 잘못했다고 했잖아.”
“어쩌겠어요. 난 적당히를 모르는데. 뭐든 지나치죠.”
서의우가 기다란 눈을 말갛게 휘어 웃었다.
“지나치게 사랑해서 그래요.”
“……하아.”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오늘도 그냥 넘어가진 않을 모양이다.
권재진이 눈썹을 처뜨리며 체념하고 말했다.
“의우야…….”
“응?”
“……당부하건대, 낭만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
“추잡하게만 하지 말아 줘라…….”
“음, 시도는 해 볼게요. 고상한 좆질.”
서의우가 밑구멍에 대고 두꺼운 좆머리를 후볐다. 손가락이 이미 안에 들어차 있는데 그러니 오므라든 입구 주름이 눌리면서 발긋한 속살을 드러냈다. 안쪽이 벌써 뜨거웠다.
배 속까지 꽉 들이차는 것 같아 아랫배가 조이고 발등이 휘었다. 서의우는 권재진이 조금씩 반응하는 모습을 즐기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재진 씨…….”
눈앞에 있는데도, 이렇게 같이 있는데도. 존재를 덧그리고 확인하듯 계속 상대를 끌어냈다.
이름이 불리는 것뿐인데도 이상하게, 어떤 애무보다도 자극적이었다.
“의우야…….”
“응…….”
눈을 맞추고 같은 생각을 나눴다. 서의우가 끈질기게 키스해 주면서 눅진눅진 풀린 곳에서 손가락을 끄집어냈다. 급하게 처넣지도 않고 잠시 키스에만 열중하다가 숨이 차서 헐떡일 즈음이 되어서야 행위를 이어 갔다.
그는 무척이나 천천히 권재진을 파고들었다. 삽입 과정을 세세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느렸다. 두껍게 부푼 기둥이 속벽을 가득 메우고 들이차는 수순에 숨이 턱 막혔다. 재진이 배 속을 조이자 서의우가 잠시 멈추고 손깍지를 꼈다.
“아…… 아…….”
권재진이 그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난색을 표하다가도 배가 달달 떨리고, 얼굴이 벌긋해지는 것 같고, 가슴이 들떴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지도 않은데 벌써 땀이 맺혀 흘렀다.
“왜요. 이런 게 고상한 거 아니에요?”
“아니…… 이게…….”
“깊이 닿을 때까지…… 이렇게…… 느리게.”
속벽에 다다른 서의우가 막힌 배 속을 살짝 찧었다. 자지 끝이 뱃가죽을 두드려 재진의 아랫배가 볼록하게 솟았다. 배꼽 모양이 조금 다르게 눌려 보였다.
“하아…… 아!”
“아……. 이것도 좋다…… 그쵸?”
서의우가 손깍지 낀 손을 침대에 잡아 누르며 허리를 살살 쳐올렸다. 뭉근하게 움직여 주자 눈이 절로 감겼다. 재진이 미간을 구기고 인상을 쓰다가 못 버티고선 금세 허물어졌다. 막무가내로 치받아 대던 서의우가 이러니까 온몸 세포가 저릿했다.
어깨가 말리고 가슴 안쪽이 바짝 긴장되었다. 재진이 힘겹게 눈을 뜨자 그의 눈알에 투명한 막이 한 꺼풀 더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건 서의우도 마찬가지였다.
빛나는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으니 이젠 됐다 싶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바로 지금을.
이때를 위해…….
어른어른 맺힌 물기가 뺨을 타고 굴러떨어졌다. 우는 듯이 웃으며 가슴을 맞대었다. 깍지 낀 손, 약지에 걸린 은빛이 영롱했다.
***
녹음이 우거진 땅 위에 두 사람이 섰다.
계절이 지나 오래간만에 방문한 자리엔 못 보던 초목이 빼곡하게 자라나 있었다. 지형이 뒤바뀔 정도로 전지전능한 이능이 폭발했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고, 무릎 높이까지 자란 들풀과 그 속에 피어난 야생화로 다채로운 광경이었다.
“어우, 저기까지 들어가면 옷 다 버리겠는데요.”
“그러게. 벌레 물리겠다.”
서의우가 한 손을 내밀었다. 권재진이 맞잡자 두 사람이 자연스레 하늘로 떠올랐다.
언젠가는 망망대해 위에서, 또 언젠가는 전시실에서, 그리고 언젠가는 센터 건물 머리 꼭대기에서 하늘을 밟았더랬다. 오늘 두 사람의 발밑에 놓인 것은 푸른 여름이었고, 너머에 펼쳐진 것은 변함없는 모습의 협곡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불어오자 자라난 풀잎들이 한 몸처럼 춤을 추었다.
바다에 파란 파도가 넘실거리듯이 권재진과 서의우의 발밑에서도 녹색 파도가 일렁거렸다.
망망대해 위에서 보는 풍경과는 또 다른 감상이다.
“덥네요…….”
“어, 매미 소린 되게 시끄럽고.”
“선선해질 즈음에 또 올까요?”
“그래야지. 가을에 또.”
서의우가 기다렸다는 듯, 권재진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얼음이 가득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재진이 그것을 받아 한 모금 쪽 빨았다. 여름날,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에서 마시는 차가운 커피의 맛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바로 이 둘처럼.
<끝.>
##################################공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