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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148화 (148/154)

#148

“서 대위! 무슨 일이지?”

β크리처들 확인 사살까지 마치고 전투를 끝낸 장태산 중령이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서의우가 그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권재진에게 속삭였다.

“재진, 재진 씨도 봤죠.”

서의우답지 않게 힘겨운 목소리라 괴로웠다.

“……뭘.”

“저놈들, 날 노리고 공격했어요.”

“……그래.”

“당장은, 하아……. 아무도 믿을 수 없어요. 저들이 누구에게 무슨 명령을 받았는지, 머리 헤집어서 기억 읽어 볼 거예요. 애초에 그러려고 숨 붙여 놓은 거기도 하고.”

“…….”

“봐요. 정신계 이능 사용할 수 있을 정도만 회복되면 곧바로 저 다섯 명에게…….”

다섯 명.

서의우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최후의 최후까지 후방에 숨어 있던 경호원 한 명이 튀어나왔다. 오 준장에게 극비 임무를 하달받은 여섯 중 가장 신중하고 치밀한 자였다.

그자가 서의우와 권재진 둘을 향해 이능을 일시에 폭발시켜 뿜어내며 소총으로 위협사격을 갈겼다.

탕! 탕! 탕!

시간 차 없이 날아든 총알과 함께 강한 염동력이 쏟아졌다. 애꿎게도 서의우와 같은 염동력을 사용하는 A급 에스퍼였다.

서의우가 보호막을 끌어올려 막아 내려 했으나, 이능의 회복이 아직이었다. 지금 상황에 또 이능을 사용했다가는 이번에야말로 폭주할 위기였다.

서의우의 눈과 코에서 피가 주르륵 터졌다. 고장 난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목을 타고 다시금 검은 얼룩이 번졌다.

쓰러질 것처럼 둔탁한 숨을 뱉으며, 서의우가 불가능한 힘을 짜내 염동력을 막았다.

아니, 막으려 했다.

서의우는 한발 늦었다.

그보다 먼저 권재진이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벼려진 본능이 고했다. 끝없는 사건과 전투를 지나온 결과. 극한에 이른 권재진의 육감이 다가올 참사를 명명백백히 읽어 냈다.

서의우는 폭주할 것이다.

폭주한다.

지금이 마지막이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 순간 권재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단순한 지레짐작이 아니었다. 뚜렷한 깨달음이고 계시고 실재였다. 어쩌면 이것이 서의우가 말하던 공명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컥……!”

권재진이 서의우의 앞을 막아서고 날아온 공격을 몸으로 맞았다.

염동력이 가슴을 난도질했고, 뒤이어 총알까지 들이박혔다.

서의우가 폭주한다면 그것은 곧 대재앙으로 이어진다.

A급 각성자의 폭주만으로도 소도시가 날아가는데, S급 각성자의 폭주는 얼마나 끔찍할까. 이는 역사에도 기록이 없는 전무후무한 참사가 될 터였다.

그렇지만 권재진은 폭주할 위험 없는 가이드였다.

권재진이 입은 피해는 그의 몫에서 끝난다.

설령 다친다 해도 힐링 팩터가 있고,

그리고,

죽는다고 해도…….

“……재진 씨?”

서의우가 권재진의 등을 보았다.

검은 전투복이 찢어지고 사이로 흐르는 축축한 액체가 눈에 띄었다.

벌건 핏물이 권재진의 상반신에서부터 허리까지 흘러내렸다. 염동력에 흉부가 뚫리고 총알까지 박혀 상처가 여간한 수준이 아니었다.

서의우의 잿빛 눈알이 회까닥 돌았다.

“재진 씨!”

허리춤에 찬 권총을 뽑아 그 경호원의 머리통을 터트려 버리고 물불 가릴 것 없이 힐링 팩터를 꺼내 주사했다.

권재진이 뒤로 쓰러져 서의우의 품 안에 힘없이 안겼다.

부상이 심각했다.

몸의 앞판이 거의 갈려서 전투복이 죄다 뜯겨 있었고, 그저 붉은 속살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이사이 하얗게 보이는 건 갈비뼈였다.

“뭐, 뭐야, 재진, 재진 씨, 미, 미, 미쳤어요?”

서의우가 힐링 팩터를 하나 더 뜯어서 권재진에게 처박아 넣었다. 손이 마구잡이로 떨려서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서의우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고, 눈은 혼란스럽게 떨리고 있었다. 눈가에 고인 눈물이 피와 함께 뒤섞여 피눈물이 되어 흘렀다.

“아, 아프, 아프죠? 윽, 자, 잠깐만. 곧, 회복, 회복이…….”

“흐, 괜찮…….”

“안 괜찮아요! 이게 괜찮은 걸로 보여요?!”

서의우가 벌컥 화를 냈다.

그는 치솟는 격분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장 중령이나 전투에 함께했던 주변 특임부대원들이 주위로 모여들었지만, 서의우의 눈에는 권재진의 상처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말아요. 제발. 진짜 제발…….”

“…….”

“씨발, 회복이, 왜 이렇게, 느려어……. 으윽.”

서의우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권재진은 온몸에 힘이 빠져 늘어졌다. 팔다리를 가눌 수가 없어 자꾸만 바닥으로 처박혔다. 서의우는 권재진을 추슬러 안다가, 안긴 자세는 상처가 아플 것 같아서 조심히 눕혔다.

힐링 팩터의 효과로 빠르게, 그러나 서의우의 기준에서는 억겁과 같이 느리게, 헤집어진 권재진의 상반신이 아물어 갔다.

새 살점이 돋고 갈라진 피부가 접합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사하게.

그런데 이상하게도 권재진의 안색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조금 전에는 시퍼랬다가 지금은 흙빛이었다.

“뭐야…….”

“…….”

“재진 씨, 왜……. 아니…….”

상처는 치료되고 있는데도 권재진은 정신을 되찾을 기미가 없었다.

허옇게 질린 얼굴이 딱딱했고, 눈동자는 초점 없이 허공만 보았다. 손끝조차 중병 걸린 사람처럼 파르르 떨렸다.

몸이 식어 가고 있었다.

단단한 조각처럼.

뻣뻣하게.

서의우가 그럴 리 없다는 듯, 장갑을 내던지고 거의 아물어 가는 권재진의 맨가슴을 손으로 짚었다.

심장 깊은 곳, 핵과 맞닿기 위해.

<핵은 각성자의 치명적인 급소다.>

<핵이 부서지면 간단히 죽어 버린다.>

<힐링 팩터로 심장은 소생할 수 있을지언정, 핵은 결코 소생할 수 없다.>

<돌연변이의 핵은 작고 불완전하다.>

<충격에 취약해 깨지기도 쉽다.>

<기능에는 이상 없지만, 다른 각성자에 비해 쉽게 죽을 우려가 있다.>

미약한 파동이 깔딱거렸다.

드문드문 끊어지고 갈라지며 점차 사그라들었다.

권재진의 핵에 금이 갔고, 곧 부서질 듯했다. 지금 순간조차 핵이 깨지는 중이었다.

서의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권재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을 본 재진은 설명 하나 없이도 모든 것을 이해했다. 제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벌어질 것인지.

또 다른 끝이 다가왔음을.

마른하늘이 멀리 보였다. 푸르른 빛이 밝아지더니 하얗게 물들어 갔다. 무거운 육신은 지하로 곤두박질치고, 가벼운 혼만 남아 하늘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주마등이라 불리는 빠르고 빽빽한 옛 시절이 스쳐 지나갔고, 그 기억에 뜻깊은 건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서의우의 모습이 줄기차게, 쉴 새 없이, 질릴 정도로 많이 생각났다.

웃고 있는 서의우. 울고 있는 서의우. 잠을 자는 서의우. 화를 내는 서의우. 지쳤을 때, 짜증이 났을 때, 어이가 없을 때, 그리고 귀여울 때…….

그 정교하고 앳된 얼굴이 얼마나 권재진에게 가까웠는지 모른다. 쏟아지는 애정은 얼마나 노골적이었는지 모른다. 부딪치고, 깨지고, 그러다 뒤섞이고. 서로를 상처 입히면서도 불타듯이 감응했다. 언제부턴가 둘이 아닌 시절을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서의우가 너무 많았다.

거실에서, 주방에서, 침실에서, 그리고 권재진의 옆에서. 허리에 팔을 걸고 부르는 목소리가 다채로웠다. 재진 씨, 재진 씨, 좋아요, 재진 씨, 너무 좋아요 하고……. 당연하게 그러리라 생각했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쉴 새 없이, 정신없이, 서의우만으로 인생이 가득해지다 끝날 줄 알았다. 많은 것을 하고 싶었고, 해 주고 싶었고, 그와 함께 이루고 싶었다.

운전도 해 보고, 술도 마시고, 캠핑도 하고, 여행 다니고, 기념일……. 100일, 200일, 1주년. 그런 거, 좀……. 유치해도. 서의우는 다 처음이니까. 못 이기는 척 해 주고 싶었다. 케이크 만들어다가 초 꽂고 불고, 폭죽 터트리고, 요란하게 그런 거…… 같잖은 이벤트 한번 해 주면 되게 좋아하겠지, 속으로 생각했었다.

“……의우야.”

권재진이 희미하게 그를 불렀다.

서의우는 그 말을 들을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아니에요. 이럴 리 없어요. 힐링 팩터를, 힐링 팩터를 더 주사해 줄게요.”

“서의우.”

“치료해요. 그러면 돼요. 내가 의무실로 데려다줄게요. 잠깐만, 좌표 이동을…….”

권재진이 서의우의 팔뚝을 콱 붙잡아 당겼다.

죽어 가는 사람의 힘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만해.”

놀랄 만큼 단호한 목소리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꺼질 것처럼 희미한 소리로 서의우를 불렀는데, 지금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또렷했다.

권재진이 고개를 들어 서의우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항상 가까웠던 둘의 거리처럼. 닿을 듯이 다가갔다.

“난, 이제 곧 죽으니까. 경험해 봐서, 아니까.”

“…….”

“내 말. 잘 들어. 시간 없잖아.”

언젠가 서의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애초에 재진 씨는, 자기 목숨을 제일 쉽게 생각하잖아요. 언제든 몇 번이고 온갖 상황에서 죽으려 들었고, 그 각오 전부 진심이었죠…….>

그때 그 말, 전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옳았다.

권재진은 늘 죽음과 가까웠다.

실제로 죽어 보기도 했고, 자살 시도나 결심 따위도 숱하게 해 보았다. 한두 번도 아니었고, 어리숙한 마음으로 저지른 충동도 아니었다.

권재진이, 그 신중하고 까탈스러운 권재진이 고뇌하고 숙고한 끝에 행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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