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아, 안 해! 미, 미쳤습니까…….”
“어, 그리고 나, 그땐, 진짜로 재진 씨, 가둬 놓을 거예요. 수갑 채워 묶어 두고, 머리통도 파고들어서 기억 싸그리 지워 버리고, 나, 으윽! 재진 씨 용서 안 할 거라고요!”
“안, 헉, 안 한다니까! 그럴, 일, 으윽! 없습니다.”
“몰라. 그건 모르는 거야. 재진 씨는 매번 이랬다저랬다 말 바꾸잖아요.”
“아냐…… 아니야…….”
“나,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내빼면, 나, 진짜…… 으욱.”
서의우가 치미는 분기를 억눌러 삼키며 권재진의 몸통 깊이 좆덩어리를 박아 넣고 버르집었다. 좁게 다물린 속 벽을 봐주지도 않고 퍽퍽 찧으며 젖은 살 소리가 철퍽철퍽 울리게 했다.
극도로 흥분한 서의우는 이미 파정해서 안쪽 깊이 정액을 뿌린 상태였는데도 여전히 좆기둥이 말뚝처럼 빳빳했다. 이글거리는 격정과 가이딩 결핍 탓에 서의우는 완전히 미쳐 돌아 있었다. 그가 권재진의 목을 잡아 조르면서 발정 난 짐승처럼 허리를 꽂아 찍어 댔다.
“재진 씨, 사라, 사랑해요.”
“끅, 응아아……!”
“소꿉장난? 그거 때려치우고, 크흣, 진짜 연애하는 거예요. 나랑 사랑해.”
“하, 히익, 좀…… 제발.”
“재진, 재진 씨는요? 나 사랑해요?”
“아, 악! 으응…….”
“의우야 사랑해?”
권재진이 한껏 미간을 찌푸렸다. 표정을 감추려 노력한 보람도 없이 귀가 붉어졌다. 뺨까지 시뻘게질 것 같아서 서의우의 어깻죽지에 고개를 파묻었다.
서의우의 입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나오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 말을 권재진이 이런 식으로 듣고 있을 줄도 몰랐고…….
권재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서의우가 사랑 타령을 해 재낄 때마다 내벽 안쪽이 멋대로 왈칵거리며 세게 조였다. 몸이 이상했다. 이렇게 무식하게 처박히고 있는데도 받아 물고 있다니. 발끝이 서고 아랫배 안쪽이 잇따라 울렸다. 진동이 징징거려서 머릿속까지 아찔했다.
쾌감이 파도가 되어 밀려오고 또 밀려왔다.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게끔, 끝도 없이 몸을 섞었다. 격렬히 부딪치던 두 영혼이 하나로 진득하게 엉겨 붙을 때까지.
***
그날의 대규모 전투는 군부를 뒤흔들어 놓았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건, 당연히도 서의우와 권재진 두 사람이었다.
서의우는 본래도 최초의 S등급 에스퍼이자 제1 특임부대 소속 최정예로 위명이 드높았다만, 이번 전투에서 내보인 힘은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전투에 출격한 인원은 대단위 본대였다.
권재진 생포 임무로 임시 결성된 수색 부대 따위 소규모 인원이 아닌, 센터의 정식 본대, 특임부대 사단이었다. 그 많던 각성자들이 서의우가 심연 속에 감추어 두었던 본연의 이능력을 엿본 것이다.
서의우는 명실상부한 공포의 대상이 되어 주목받았고, 그 여파는 서의우의 곁에 있던 권재진에게로 이어졌다.
설마하니 돌연변이가 최전선에 나타나 크리처를 사살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폭풍우와 천둥 번개로 어지럽던 전장에 전투복과 고글을 갖추고 소총 사격에 임하는 권재진은 훈련받은 정예 특임부대원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S등급 돌연변이로 알려진 권재진이 S등급 서의우의 곁에서 전투에 임했다.
두 S등급 가이드와 에스퍼가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을 본 각성자들은 자연스레 저 둘이 센터의 허가로 매칭되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날의 전투 현장에서 목격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돌연변이가 어떻게 정식 각성자와……?’
뚜렷한 의문의 씨앗이 각성자들의 머릿속에 뿌리를 내렸고, 이는 군부에 크나큰 파란을 불러일으킬 바람이 되었다.
센터 곳곳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S등급 가이딩이 그만큼 대단하기 때문이라던데요…….”
“예, 저도 우연히 상관들이 하는 말을 들었지 말입니다. 서의우 대위가 그 가이딩을 받고 이능이 파격적으로 향상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마태오 대위님도 마찬가지랍니다. 폭주한 박 중위를 마 대위님이 제압했잖습니까. 아무리 A급 방어계라도 폭주한 에스퍼를, 대단한 것 아닙니까?”
“그래, 연관은 있군……. 마 대위가 권재진 생포 임무를 하달받은 수색 부대 지휘관이었잖나. 접점이 있지.”
“예? 아니, 그럼 서 대위님뿐 아니라 마 대위님께서도 권재진과 가이딩을 했다는 겁니까? 그…… 그럴 수가 있는 겁니까?”
“원칙상으론 불가하지. 어쩌면 소령에서 대위로 강등당한 연유가 S등급 돌연변이와 허가받지 않은 가이딩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마 대위님께서 그런…….”
“……어찌 됐건, 미증유의 사태인 건 확실합니다.”
“애초에 크리처들이 그런 머릿수로 떼를 지어 몰려온 것부터가 초유의 사태였다. 전대미문이야.”
“맞습니다……. 마물들의 동향이 왜 갑자기 달라진 것일까 모르겠습니다.”
“음……. 당장은 상부에서 지침이 떨어지길 기다려 볼 밖에…….”
“예…….”
“알겠습니다…….”
불안을 더한 술렁임이 걷잡을 수 없도록 퍼져 나갔다. 전투에 참전했던 특임부대원라면 누구나 같은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무언가 달라지고 있고, 또 무언가 시작되고 있노라고.
쿵, 쿵, 시대를 바짝 뒤쫓아 다가오는 격변의 발소리가 거인의 추격처럼 들렸다.
귀를 틀어막더라도 무시할 수 없었다. 숨죽이고 휩쓸리길 기다릴 뿐이었다.
***
며칠간 뒷수습으로 진을 뺐다.
안타깝게도, 정들었던 해변 저택은 완전한 폐허가 되어 버렸다.
서의우가 발산해 댄 난폭한 이능을 견디지 못해 골조가 뒤틀렸으며 천장도 내려앉았다. 지하 벙커까지 무너져 매몰되기 전에 당장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완공을 앞두고 있던 신축 주택이 있었다.
토대부터 권재진의 취향에 맞춰 짓겠다고 했던 그 저택이다. 4년 후 터질 게이트를 피하고자 마련했었고, 모든 일이 끝나면 이곳에서 둘이 함께 살아가자고 약속했던 바로 그 저택.
권재진은 지금, 바라왔던 새 저택의 침실에 누워 있었다.
주홍빛 간접등이 킹사이즈 베드를 은은하게 밝혀 주었다.
좌우로는 커다란 방탄 통유리창이 높다랗게 서 있었고, 창 바깥에는 새하얀 백사장이 거대한 날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짙푸른 밤바다가 너울 치며 백사장에 파도를 드리웠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보면 까마득히 높은 천장이 보였다. 천장 중앙에도 방탄 유리창이 박혀 있고, 그 너머로 검은 밤하늘에 박힌 별들과 자그만 하현달이 빛났다.
마지막으로, 서의우가 권재진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있었다.
반짝이는 윤슬과 쏟아지는 별빛에 둘러싸인 서의우는 야속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언제 어느 때 보아도 인간답지 않은 비현실적인 조형이다.
서의우는 권재진의 겨드랑이에 팔뚝을 끼고 허리를 졸라서 빈틈없이 밀착한 자세였고, 당연하게도 갈비뼈가 억눌려, 무겁고 숨이 막힌 상태였다.
겨울의 끝자락인데도 조금 후덥지근할 정도다.
‘이건 뭐 거대한 짐승 난로도 아니고…….’
말을 할 줄 알고, 분리불안이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좆을 세워 대는 난로…….
권재진이 물끄러미 서의우를 흘겨보았다.
시선을 느낀 서의우가 즉각 반응해 고개를 쳐들고 재진의 턱에 주둥이를 찍었다. 쪽 소리가 나며 입술이 짙게 부딪혔다.
“읏.”
한 번만 입 맞추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서의우는 권재진의 귀 뒤쪽과 두피까지 차례로 입술을 찍어 눌렀다. 재진의 검은 직모에 높다란 콧대를 파묻고 뺨을 비비기까지 했다.
재진이 한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서의우 씨, 안 잘 겁니까?”
헤아려 보면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서의우가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강행군을 이어 갔던 게.
수색 부대에 급습당한 날부터 서의우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새워 경계를 섰다. 당시에는 위치가 발각된 상태였고, 저택 보안 시스템도 망가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거처를 옮겼다. 쾌적한 침대도 되찾았고, 보안 시스템도 멀쩡히 가동되고 있다.
이제는 안심하고 눈을 붙여도 될 때였다. 아니, 슬슬 잠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서의우가 아무리 불면과 불식에 익숙했다고 해도 그건 정상적인 생태가 아니었다.
“그만 빨아 대고 눈 감읍시다……. 지치지도 않습니까.”
“으응, 잘 거예요.”
“그럼 얼른 잠이나 잡시다. 자고 일어나면 식사도 좀 하고.”
아무래도 애가 점점 미쳐 가는 게, 아무래도 요즘 재우고 먹이는 데 소홀해서 그런 것 같다.
“알았어요. 재진 씨 일어나서 뭐 먹고 싶은데요?”
“따뜻한…….”
“따뜻한?”
“국물…….”
그 말에 서의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가벼운 숨결이 귓불 아래를 간지럽혔다. 귀를 긁고 싶었지만 몸뚱어리를 꼼짝도 할 수 없도록 붙들려 있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