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126화 (126/154)

#126

몸이 굳은 와중에도 무의식중에 총구가 다음 과녁을 쫓아 돌아갔다. 서의우의 말대로였다. 눈으로 보고 맞히는 게 아니라, 감으로 맞히는 것이었다.

소총을 쏘는 족족 연이어 명중하며 크리처가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권재진의 입이 꾹 다물렸다.

이제 외경계벽 위에 살아 있는 크리처는 없었다.

외경계벽 아래, 즐비한 시체들 틈바구니에 박힌 크리처를 쏘아야 했다.

재진이 깊게 심호흡했다. 그러고는 이마 위에 얹힌 고글을 콧등 위로 눌러 썼다.

전원을 켜고 자동 모드로 조작했다.

기묘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꿈에서 보았던 그대로 푸른 홀로그램이 정신없이 떠올라 보였다.

바닥이 깊은 늪처럼 어둡고, 시체와 크리처와 각성자들이 한데 몰려 있어 구분하기 어려운 와중에, 고글을 쓰니 홀로그램이 지표 경계와 피아를 식별해 주었다. 인식표를 읽어 등록된 각성자에게는 아군 표시가, 등록되지 않은 크리처에게는 적군 표시가 박힌다.

이대로 총을 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사격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진이 아래로 총구를 겨누었다.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고글을 사용하는 권재진을 서의우가 커진 눈으로 응시했다.

“재진 씨, 그거.”

서의우마저 이렇게 놀라고 있는데, 권재진을 그저 특수 거주지구에 숨어든 돌연변이라고만 알던 각성자들은 적지 않게 충격받을 수밖에 없었다.

돌연변이는 자신들 같은 정식 각성자가 아닌, 살처분 대상일 뿐이라고 반복 주입 학습 당했던 자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권재진에게 목숨이 구해진 이들은 아예 몇 초간 멍해졌다.

돌연변이는 통제 불가능하고, 그렇기에 살처분이라는 대원칙이 흔들리는 듯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직접 눈으로 보니 권재진은 특임부대원 못지않은 정예로 보였다.

아니, 이번이 첫 출전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더 뛰어나다.

그들은 권재진의 얼굴에서 주저함을 읽을 수 없었다. 두렵더라도 멈추지 않고 목표한 바를 행하고, 매사 최적의 판단을 내리려 한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 있는 전투원이었다.

탕! 탕탕!

총포음이 끊이지 않았다.

권재진은 그저 사격에만 집중했다.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정확하게. 어둠과 빗발을 뚫고 크리처만을 맞히었다.

쏘는 족족 크리처가 무력하게 쓰러지는 모습을 보자, 새파란 날것의 전율이 혈류를 타고 휘돌았다. 뼛속까지 이글이글 뜨거워졌다.

희열이 느껴졌다.

반동이 짜릿했고,

심지어 흥분되었다…….

원초적인 감정이 넘쳐흘렀다. 꼭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마물을 향한 본능적인 공포.

크리처 웨이브에 직면한 중압감.

갑작스러운 사태에 휘말린 혼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해내겠다는 집념.

크리처 한 마리가 총알에 맞아 쓰러질 때마다 가슴에 한이 되어 맺힌 응어리가 깨지는 듯했다. 돌연변이기에 느꼈던 수모, 좌절, 무력함이 산산이 부서졌다. 집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러는 게 당연했던 지난 나날을 박차고 멀찍이 뛰어나가는 것 같았다.

과거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권재진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성장이란, 세계의 확장이다.

신생아에게는 아기 요람이 세계의 전부고, 어린아이에게는 사는 동네가 세계의 전부다. 성인이 되면 그 반경이 더욱 넓어진다. 성장함에 따라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가 한층 확장하는 것이다.

사실, 권재진에게 개척지구란 막연한 미지의 공간이었다.

평생 제6 거주지구 내에서 살아왔던 민간인에게는 특수 거주지구조차 새로웠다. 센터에 출입했을 때 느꼈던 전율도 방금 막 겪은 것처럼 여전히 생생했다. 그런데 이제는 외경계벽 철책 너머 공활한 세계와 마주하고 있었다.

권재진은 센터 위에 올라섰을 때보다 더한 공간감을 느꼈다.

비유하자면, 망망대해 위에 올라섰을 때와 흡사했다.

센터에 들어갔을 때는 잘 쌓아 올라간 체계 속에 편입하는 듯한 안정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아직 정비되지 않은 새로운 땅이었다. 대자연에 가깝다.

이 거대한 개척지구를 직접 보니 크리처와의 전쟁은 단순히 죽고 사는 문제, 생명을 빼앗는 문제가 아닌 땅을 빼앗는 투쟁이라는 사실이 체감되었다.

마물이 지배하는 저 험한 세계로, 역경을 딛고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갈 때마다 인류의 세계가 확장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권재진은 이곳에 자기 의지로 왔고, 뜻대로 저항하고 있었다.

<전 지금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꼭 그런 기분이군요.>

<응, 그럼 나도 그런 기분인가 봐요.>

자유로웠다.

한 번도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기대해 본 적 없었다.

자신이 이런 전투를 원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서의우와 여기까지 오기 전에는, 제 손으로 직접 자유를 이루겠다는 바람은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저 죽을 목숨만 연장하고, 돈이나 맘껏 써 재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포기하면서 연애하고, 체념하면서 사랑하고.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너무나…… 바라고 원해서,

두 번 다시는 이 자유를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권재진은 그대로 무아지경에 빠져서 홀린 듯이 총을 난사해 댔다.

내뱉는 숨이 점점 가빠졌고, 이마에 맺힌 땀이 고글 안쪽에 스몄다. 손끝이 걷잡을 수 없도록 떨렸다. 눈가가 시큰하고 코끝이 붉어졌다. 심장은 금세라도 죽을 것처럼 빠르게 뛰고 있었다. 긴장한 근육이 돌처럼 딱딱하게 뭉쳐서 온몸이 아플 정도였다. 몸이 터질 것 같았다. 피부 아래서 화려한 스파크가 튀었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허리춤과 하네스에 매단 탄창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총알을 쏴 댔다. 마지막 탄환까지 격발한 후에는 약실이 비어 방아쇠가 헛돌았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크리처 떼가 제2 거주지구 바깥까지 완전히 내몰려 있었다.

소총 유효 사거리를 벗어났다.

그러나 서의우의 이능은 닿고도 한참 남을 거리였다.

크르르, 크르르륵!

끼에에에엑!

크리처들이 소름 끼치는 단말마를 내질렀다.

서의우의 무자비한 이능에 짓눌린 마물들은 꼼짝없이 붙들려 납작해졌다. 종이를 접는 것처럼, 크리처들이 반으로 접혔다. 다시 또 반으로, 구깃구깃 접혀서 작아졌다. 그러다 끝내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퍽, 터져 버렸다.

거대한 이능이 끝없이 몰아쳤고, 접근하는 마물을 모조리 짓뭉갰다.

쩌적, 하늘이 갈라지는 굉음이 들리더니 하얀 벼락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강렬한 빛이 발했다가 순간에 사라지며 눈앞에 빠르게 흑백으로 깜빡였다.

전능한 학살 끝에, 쉬지 않고 몰려오던 검은 파도가 잠잠해졌다.

크리처의 부르짖음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남은 건 움직이지 않는 시체뿐이었다.

‘……끝, 인가?’

권재진이 뜨겁게 달아오른 숨을 삼키며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별달리 고글에 표시되는 적군의 움직임이 없었다. 크리처는 다 죽은 모양이다.

이제야 재진이 소총을 겨눈 자세를 풀고 두 팔을 아래로 내려뜨렸다. 어깨에서 힘이 빠졌고, 자연스레 고개도 땅을 향했다.

시선이 바닥에 박히자 발아래 쓰러진 각성자들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

고글에 아군 표시가 여럿 떠올랐다. 그러나 아래에 보이는 건 그저 뭉개진 고깃덩이뿐이었다.

시뻘겋게 다져진 고깃덩이들.

수십 명의 내장이나 뼈 등이 흩어져 있고, 군데군데 찢어진 전투복이나 날아간 팔다리, 부서진 무기 등이 눈에 띄었다.

어느 것 하나 멀쩡한 시신이 없었다.

크리처에게 반쯤 잡아먹혔거나, 아니면 물어뜯겼거나, 헤집어졌거나…….

그나마 형체가 잘 보존된 머리통 하나에 시선이 머물렀다. 방금까지는 멀쩡하게 살아 있는 인간이었을 텐데, 지금은 간신히 이목구비만 확인해 볼 수 있는 정도였다. 핏물에 푹 젖은 털 뭉치는 머리카락인 것 같았다.

빗물이 검붉은 피를 씻어 내자 돌출된 안구 한쪽이 보였고,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안구에 맺혀 흐르는 빗물이 눈물처럼 보였다.

권재진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손에 쥔 소총을 떨어뜨릴 뻔했으나 허공에 그대로 멈추어 떠올랐다. 서의우가 붙잡아 준 모양이었다.

“보지 말아요.”

서의우가 재진을 당겨 안았다. 몸이 감싸졌고, 등을 다독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눈 감고 있는 게 좋겠다. 감아요. 뜨지 마.”

“아…… 어.”

“이제 안심해도 돼. 잘했어요. 재진 씨 정말 대단했어.”

서의우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다정한 음성이지만 피로가 묻어 나왔다. 서의우도 꽤 무리해서 이능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시간 끌지 않고 빠르게 몰살하고 승리하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반듯한 얼굴에 땀이 맺혀 있었다.

“이제 됐어……. 끝이에요.”

“…….”

“다 끝났어요.”

끝났……다고.

그런가……. 그런 건가.

이렇게 다 끝난 건가……?

권재진이 느릿하게 손을 들었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손바닥이 얼얼했고, 손끝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그 팔로 서의우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가슴에 몸을 기대고서 붙어 서자, 서의우가 자연스럽게 재진의 뺨에 입술을 찍어 눌렀다.

빗물에 젖은 전투복이 미끈했다. 입맞춤도 축축했다. 젖었기 때문에 가이딩 효과도 전혀 없고, 서로 착용한 고글이 방해라 툭툭 부딪쳤지만, 서의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권재진의 볼과 입가에다 입술을 비볐다.

“그만 가요. 비도 오고. 재진 씨 다 젖었어요.”

“아…….”

“그리고 너무 떨고 있고. 몸도 굳었고……. 이러다 감기 걸리겠어요.”

그의 목소리가 물에 잠긴 것처럼 먹먹하게 들렸다.

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먼 곳에서 높은 이명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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