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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 (104)화 (104/154)
  • #104

    “으응,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이걸, 하아…… 이게 대체 무슨 짓…….”

    “아니, 나, 난 이러려던 게 아닌데, 재진 씨가 너무 좋았어요.”

    “시끄럽습니다! 어쩔 겁니까, 이거 다 씻지도 못하는데!”

    “그래서 난 딱 두 번만 쌌잖아요. 나 되게 조금 한 거 아닌가…….”

    “뭐요? 지금, 그걸 말이 되는 소리라고, 윽…….”

    “아, 아냐, 미안해요……. 잘못했어. 헤어지자고 하지 말아요.”

    “…….”

    “재진 씨가 이런 거 질색하는 줄 알면서, 내가 나빴어요. 또, 또 내가 역겨운 정신병자처럼 굴었어. 화내는 거 당연해요.”

    “……씨.”

    권재진이 골이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가이딩 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끝나고 나니 뒤처리를 어째야 하나 난감했다. 평소처럼 말끔하게 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벌 옷이 준비된 상황도 아니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저택에 되돌아가자고 해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서의우가 난데없이 재진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잡아 벌렸다. 다물렸던 붉은 구멍이 빠끔 벌어졌고, 속에 그득하게 찬 하얀 정액이 밀려 나와 흙바닥으로 똑똑 떨어졌다.

    “읏! 윽! 서의우!”

    눈이 두 배로 커진 재진이 서의우의 팔뚝을 잡아 뜯었다. 서의우가 차근하게 웃으며 놀란 재진을 달랬다.

    “괜찮아요. 가만, 쉬이…… 속에 든 거 빼 줄 테니까 움직이지 말아요.”

    “하, 하지 마, 더는 진짜 하지 마십시오…….”

    “알아요. 안 해요. 이대로 옷 입을 수 없잖아요. 정액만 빼 주려는 거예요.”

    서의우가 손가락을 하나 조심스레 찔러 넣고 속을 한 차례 돌려 후볐다. 그러자 속에서 거품처럼 뭉친 액이 줄줄 흘렀다.

    “흑, 아, 으윽. 씨발, 으으윽.”

    “아이 착하다. 예쁘다……. 금방 끝나요. 다 했어요, 거의…….”

    이 또한 개소리 같다.

    좆을 결장까지 박아서 싸질렀는데, 그렇게 깊게 싸 낸 정액이 금방 나오겠는가…….

    서의우가 손가락을 빙글거릴 때마다 질퍽한 액이 몇 방울씩 끊임없이 샜다. 권재진은 이제 멀쩡한 이성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다. 재진이 고개를 내저으며 그만해 달라고 빌었다.

    “그…… 그냥 저택으로, 갑시다, 거기서, 빨리 씻, 씻고만 나오면.”

    “안 돼요. 위험해.”

    “그럼, 어디, 씻을 데……. 어디든.”

    “뭐, 빈집이라도 찾아 들어가요? 그럴래요?”

    “흑, 아으……. 몰라, 더럽습니다. 기분 나쁘고, 서의우, 너 정말 싫어…….”

    “난 재진 씨 너무 좋은데……. 기분 좋고. 또 설 것 같은데.”

    “너 씨발……!”

    “아냐, 안 해요……. 더 안 한다니까.”

    서의우가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희뿌연 탁액이 벌어진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홀린 듯이 쳐다보면서 발갛게 부은 구멍이 오므라들고 벌어지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다.

    재진이 진저리치며 할딱대는 걸 알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서의우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미친 소리를 했다.

    “음…… 그러지 말고, 차라리 내가 핥아서 깨끗하게 해 줄까요? 재진 씨 허벅다리 사이가 다 찐득하니까. 구멍에서 정액만 뺀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아.”

    “……뭐?”

    “말끔해질 때까지 의우야가 하체 발끝부터 싹 다 빨아 줄게요. 그럼 되잖아.”

    서의우가 이런 걸로 농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아 알고 있는 권재진이 격렬하게 거부했다. 그냥 남의 집이든 뭐든 상관없으니 어디든 찾아 들어가자고 외쳐 댔다. 군부를 전복할 계획인데, 까짓 주거 침입은 우습지 않나. 점점 권재진도 상식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다른 건 모르겠고, 맹세코, 이 짓거리를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장성들 정신 조작이든, 크리처 웨이브든, 빨리 다 끝내 버리고 편해지고 싶었다. 돌연변이의 운명을 뒤집고 어쩌고 물론 다 중요한 일이지만, 역시 권재진이 제대로 된 인생을 살기 위해선 서의우를 감당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자 난관이었다.

    ***

    골절에도 종류가 있다.

    골절면의 방향에 의한 분류로 횡골절, 사골절, 나선골절, 중골절이 있고, 골절편의 수에 의한 분류로 분쇄골절, 분절골절이 있다.

    서의우의 원혐이 담긴 이능을 받아 낸 마태오 소령은 비록 사력을 다해 보호막을 일으켰을지언정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는 결과를 피할 순 없었다. 골절의 분류 중에서는 분쇄골절 및 분절골절에 해당한다. 뼛조각이 여러 파편으로 조각나서 비스킷처럼 부서졌다.

    “……이건 심하군.”

    장태산 중령이 혀를 차며 마 소령에게 힐링 팩터를 꽂아 주었다. 장 중령도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별반 멀쩡한 모습은 아니었다.

    눈과 귀에서 흐르는 피를 장 중령이 대수롭지 않은 손짓으로 닦아 냈다.

    목표였던 S급 돌연변이 가이드 권재진을 추적한 끝에, 서의우 대위를 맞닥트리고 특임부대원 전원이 의식을 잃었다. 그 후로 반나절이 지났고, 그나마 운 좋게 피해가 적었던 각성자 몇 명이 먼저 눈을 뜨고 일어났다.

    그대로 기절해 있었다면, 겨울 기온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저체온증으로 위험했을 참이었다. 대원들 각자 소지하고 있는 힐링 팩터를 사용하여 회복했고, 장 중령의 지시 아래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어 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몸 성한 자가 없었다.

    서의우가 뿜어낸 막대한 이능에 짓눌려 각성자들의 피부가 짓무르고 심한 피멍이 들었다. 거대한 쇳덩이에 깔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랬다. 약한 갈비뼈나 빗장뼈쯤은 우습게 부러진 수준이고, 오장육부 내장이 다 상했다. 내출혈이 심각했다.

    권재진이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이 정도로 피해가 심한 줄 몰랐을 터다. 빳빳한 전투복에 가려져서 속이 어떻게 문드러졌는진 직접적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의우는 무자비했다. 권재진이 짐작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그래도 목숨은 다 붙여 놨다.

    핵까지 부수지는 않았다.

    각성자들 입장에서는 구사일생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적 같은 일이다.

    “큭…….”

    핏줄로 들어간 힐링 팩터의 효과가 돌기 시작하자, 가장 피해가 큰 마태오 소령도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 당장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마 소령. 전 대원들의 고글이 망가졌다. 센터에 보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장 중령이 마태오가 착용한 고글을 조작했다. 당연히 그의 것도 먹통이었다.

    “이 일대 좌표 이동 호환을 막아 놓은 것이 자충수가 됐군.”

    포위망을 구축할 때, 해당 지역의 좌표 이동 호환을 끊는 건 당연한 절차였다. 그러지 않으면 도주자가 좌표 이동으로 도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좌표 이동은 안전한 무균이동실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에, 그 무균이동실의 호환을 막아 두는 것이다. 차단을 해제하려면 센터와 통신해야 하건만, 모든 대원의 고글이 망가져서 이조차 요원한 일이 됐다.

    물론, 서의우는 보호막과 좌표 이동 두 가지 이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기에 꼭 무균이동실을 거치지 않더라도 순간 이동할 수 있지만, 센터 측에선 그런 사실까진 알지 못했다. 주도면밀한 서의우가 항상 다른 각성자들처럼 좌표이동실만을 이용해 출퇴근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과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

    패잔병이 된 수색부대원들은 통신할 방법도 없고, 이동할 방법도 없고, 상황을 보고하지도 못하고, 지원 요청하지도 못한다. 부상자들과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힐링 팩터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그건 서의우 대위였습니까?”

    “그래……. 그 옆은, 권재진이었나?”

    “예, 그렇습니다.”

    “음.”

    마 소령과 장 중령이 같은 생각을 품고 침묵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단순히 돌연변이 하나 생포하는 임무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기원을 알 수 없는 선명한 예감이 든다. 앞으로 벌어질 장대한 사건의 초입에 서 있는 듯한 그런 예감이다.

    경천동지. 시대를 뒤흔들 주요한 시점에 도달한 듯한 기분이 든다.

    싸늘한 적막이 지나던 순간. 후미에서 외침이 들렸다.

    “지원입니다! 센터에서 지원이 도착했습니다!”

    오 준장이 후속 부대를 보낸 것이다. 마 소령은 물론이거니와 돌연변이 생포 임무에 나선 모든 대원의 연락이 두절된 지 반나절째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원 나온 특임부대원이 센터 측에 통신을 연결했다.

    -뭣들 하자는 거야! 단체로 항명하는 건가? S급 가이딩에 정신이 빠졌어?

    스피커 모드로 돌리자 육군 작전사령관인 오 준장이 쩌렁쩌렁 고함쳤다.

    -마 소령, 내가 경고했을 터인데. 자네 오염됐다고. 처분한다고.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어?

    하긴, 딴마음을 품었노라 오인당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마 소령이 참담하게 대꾸했다.

    “……준장님. 전 대원이 당했습니다.”

    -뭐?

    “오 준장님께서 직접 보십시오. 중위, 화상 모드로 전환하도록.”

    화상 모드로 돌리자 고글 화면에 비치는 영상이 오 준장에게로 전송되었다. 폭발한 저택과 쑥대밭이 된 해변, 그리고 힐링 팩터를 사용했으나 아직 덜 회복된 특임부대원들이 널려 있는 전황이 고스란히 보였다.

    마 소령이 눈가에 말라붙은 핏물을 닦아 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짓무른 내장과 덜 붙은 뼈 때문에 신음이 흘렀다.

    “보시는 대로입니다.”

    -……어찌 된 건가. 게이트라도 터졌나?

    “아닙니다. 서의우 대위 소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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