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지금 제 사격 실력으로는 어느 정도까지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재진 씨 실력으로, 크리처를요.”
“그간 서의우 씨가 알려 준 커리큘럼대로 지하 사격장에서 꾸준히 연습했습니다. 하루도 게으름 피우지 않았고, 노력했습니다.”
대뜸 서의우를 붙잡고 왜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제6 거주지구로 도망치기로 해 놓고, 각성자고 돌연변이고 에스퍼고 가이드고 다 버리고 떠나기로 했으면서, 일반인들과 일반 사회에 섞여 평범하게 연애할 거면서, 이제 와서 무엇에 맞서 싸우려고……?
대체 왜……?
“보자…… 재진 씨 혼자서 대적한다면, β크리처 한 마리요.”
서의우가 담백하게 답해 주었다. 권재진은 충격받아 멍해졌다.
“한 마리……? 그게 답니까?”
그 정도면 나아진 게 없는 수준 아닌가. 지난번이랑 똑같은데.
재진이 허탈하게 눈을 끔뻑였다. 서의우는 당연하다는 듯 단호하게 턱을 끄덕였다. 날카롭게 벼려진 눈빛에 위압이 느껴졌다. 이는 서의우의 전문 분야였다.
“재진 씨는 움직이는 과녁 하나에 명중하는 연습까지만 했으니까요. 과녁이 둘로 늘어나면 두 곳에 전부 명중할 자신 있나요? 멈춰 있는 과녁이 아니에요. 움직이는 과녁 둘이라고요.”
“아니, 그건 아무래도…….”
“네, 그러니까요. 두 마리 이상부터는 승산 없어요. 운에 맡겨야 하고, 위험해져요.”
“…….”
“낙담하지 말아요. 재진 씨는 굉장히 재능 있는 편이에요. 보통은 교육훈련생들은 움직이는 과녁 하나 맞히는 데도 반년 가까이 걸리는데. 재진 씨는 2주 만에 해냈잖아요.”
“교육훈련생들은 어리잖습니까. 저는 성인이고.”
“아뇨, 정말로 타고났어요. 보는 눈이 남달라요. 동체시력이라고 하죠.”
서의우가 두 팔을 뻗어 재진의 뺨을 그러쥐었다. 얼굴을 손안 가득 쥐고 당겨 눈을 맞추었다. 권재진의 검고 단단한 눈동자를 정면에서 응시하며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를 평가해 주었다.
권재진의 까다로운 눈동자는 올곧은 만큼 뛰어났다.
“들어 봐요, 움직이는 과녁에 명중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요? 재진 씨는 이제 달려드는 크리처를 한 방에 쏴 죽일 수 있다는 뜻이에요.”
“…….”
“한 마리뿐이라면, 필승이라고요.”
아…… 그런가.
지난번에는 소총 수십 발을 쏴도 죽이지 못했던 크리처를 이젠 바로 명중시킬 수 있는 건가. 그런 거라면 발전한 게 맞다. 권재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손바닥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가슴도 점차 활기차게 뛰었다.
“그럼, 움직이는 과녁 두 개를 맞히려면 뭘 해야 합니까?”
물어볼 생각도 없었는데, 절로 입이 벌어져서 저런 질문을 내뱉고 있었다. 이제 도망칠 건데. 권재진의 앞날은 서의우와 도망인데. 그런 미래를 앞두고서 재진은 싸우는 법을 묻고 있었다.
5부작 대나무 다큐멘터리보다도, 사실은, 이게 더 궁금했다.
“그야, 약간의 요령과 꾸준한 연습이죠.”
서의우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선선하게 웃었다.
“알고 싶어요?”
“예.”
권재진이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자연스레 대꾸했다. 목소리가 앞다투어 튀어 나갔다.
“예. 알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럼. 내가 알려 줄게요.”
두 사람은 서재 문턱을 넘지 않고 곧장 지하 사격장으로 내려갔다. 재진은 잘 손질된 총을 쥐고 숙달된 모습으로 탄창을 장전하면서 저 깊은 배 속에서부터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의문이 겉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힘껏 내리눌렀다. 왜 이러고 있지, 뭘 하려는 거지, 같은 의문들이 짓눌려 수그러들었다.
서의우가 간략히 요령을 전수해 주었다. 잡스러운 것 빼고, 우선 기본과 핵심만 전달했다.
“자, 이제부터는 표적을 보고 쏘면 안 돼요. 재진 씨는 눈이 좋지만, 보는 게 아니라 감으로 맞히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감으로 맞힌다고요?”
“네, 대충 어디쯤 쏘면 맞을지 예측하는 거죠. 크리처의 동작을 읽어 내고 발포하거나, 아니면 더 나아가 동작을 유도해서 발포하거나.”
서의우가 재진에게 귀마개를 씌워 주었다. 그런 뒤 사격장 시스템을 조작하자 벽면에 떠오른 푸른 홀로그램 과녁이 한 개에서 두 개로 늘어났다.
재진이 습관적으로 사방으로 움직이는 과녁을 눈으로 좇았다. 서의우가 ‘그거 아니라니까.’ 하고 입술을 벙긋거렸다.
“보고 쏘면 항상 늦어요. 보지 말고 쏴.”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재진이 소총을 어깨에 견착하고 연사했다. 표적을 둘 다 놓쳤다. 반동으로 밀려 나지 않게끔 몸에 힘을 주고 다시 연사했다. 역시나 스치지도 않았다.
움직이는 표적 두 개부터는 고난도였다. 이걸 쏠 수 있어야 실전에 투입된다. 재진은 그런 기준이 있는 줄도 모르고 무작위로 튀어 오르는 홀로그램 표적을 향해 총구를 겨냥하고 끈질기게 발포해 댔다.
권재진이 바쁘긴 해도, 봄까진 아직 시간이 있었다. 사격 연습 정도는 해도 괜찮을 것이다. 강직한 두 눈에 파릇한 희열이 슬쩍 끓어올랐다.
***
어김없이 우주였다.
토성과 위성의 아래에 선 권재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24살의 서의우가 가리키지 않더라도 이제는 보아야 할 목표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도록 드넓고 새카만 우주의 저편에서 마물이 진격하고 있었다.
살의로 가득한 크리처 떼를 재진이 담담히 응시했다. 그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어느 정도의 빠르기인지, 몸체의 특징은 무엇인지, 총살하려면 어느 부위를 저격해야 할지.
권재진의 곁에 홀연히 나타난 24살의 서의우가 이번에도 팔을 뻗었다. 그의 반투명한 손바닥에 기다란 물체가 생겨났다.
조금씩 길어지고 단단해지며 형태를 갖춘 그것은 검은 소총이었다. 그것도 손에 익은 모델이다. 장전하고, 발포하고, 분해하고, 기름칠하고, 재조립하고, 수도 없이 그랬더니 꿈에도 나오는가 보다.
재진이 헛웃음을 삼켰다. 애착식칼에 이어 애착소총까지 생긴 기분이다.
‘자. 도망쳐선 안 돼요.’
성숙한 서의우가 웃으며 총을 건네었다. 재진은 사양하지 않고 그것을 받았다. 제법 가까워진 크리처 떼를 향해 총구를 올리며 허탈하게 말했다.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나더러 뭘 어쩌라고.’
서의우에게 배운 요령대로, 감으로 표적을 쏘아 맞히며 재진이 서걱거리는 투로 읊조렸다. 흙탕물처럼 어지럽고 자조적인 목소리였다.
‘기억은 기억대로 다 빼앗아 놓고, 원망조차 하지 못하게 사라져 버렸으면서, 다신 만날 수도 없는 너를 내가…… 내가 왜 꿈에서 봐야 하는데.’
1회차 서의우는 이기적이다.
권재진의 유년기를 모조리 가져가 버린 주제에, 정작 그 자신은 권재진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1회차 서의우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를 아는 것은 권재진뿐이고, 그를 기억하는 것도 권재진뿐이다.
다 지워 놓고 본인만 권재진 속에 남았다니, 그렇게 이기적일 수가 없다.
‘도망쳐선 안 된다느니, 그따위 말을 내가 왜 너한테 들어야 하냔 말입니다.’
재진이 험악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2회차 서의우와 새 인생 잘 좀 살아 보겠다는 게 도망인가?
세상을 등지고 단둘이 떠나겠다는데, 그게 도망인가?
아니, 그래. 맞긴 맞다. 도망은 도망이다.
하지만 그 결심을 1회차 서의우가 지적하고 반대할 이유 없다. 설령 권재진의 무의식이 빚어낸 꿈속일지라도.
기다란 총구가 연달아 불을 뿜었다.
수없이 빗맞혀가며 점차 명중률이 상승했다. 검은 우주의 바닥에 검은 마물의 피가 흥건히 흘렀다. 그렇게 쏘아 댔는데도 마물의 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쓰러지는 사체를 밟고 넘어서 크리처가 꾸역꾸역 다가왔다.
‘재진 씨는…… 그렇게 내가 미운가요?’
뒤에서 서늘한 팔이 뻗쳐 왔다. 24살의 서의우가 차근히 소총을 든 재진의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무게 중심을 아래로 두게끔 다리를 더 벌리게 하고 팔꿈치의 각도를 올려 주었다. 한층 명중률이 올라갔다.
‘다시는 용서해 줄 수 없을 정도로?’
지금보다 더 크게 자라난 신장과 완전하게 영근 매혹적인 청년의 얼굴을 지닌 서의우가 노련하게 발포 신호를 주었다.
‘그렇다 해도 지금은 좀 참아요.’
‘뭐……?’
‘날 원망하고 싶더라도, 내가 아니라 저쪽을 바라봐야죠.’
고통스럽게 가슴을 후벼 파는 잔인한 목소리를 들으며 재진은 끊임없이 총을 쏘았다. 움직이는 표적 둘을 연이어 명중시키고도 알아채지조차 못할 정도로 무수한 크리처를 죽였다. 셋을 쏘고, 넷을 쏘고, 끈질기게 사격하며 탄창을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도망쳐선 안 돼요. 도망칠 수 없어요.’
서의우가 등 뒤에서 재진을 끌어안았다.
그의 굵고 단단한 팔뚝이 아플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머리통에 구멍이 나고, 유년기를 송두리째 빼앗긴 억하심정으로 분에 찼던 권재진은 그제야 1회차 서의우를 향한 감정이 비통하게 거꾸러졌음을 제대로 자각했다.
강압과 강제, 눈물과 애원, 애증으로 켜켜이 쌓아 올린 위태롭고도 아름다웠던 애착과 호감이 가슴을 쓰라리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