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 (63)화 (63/154)

#63

서의우가, 성마르게 팔을 뻗어 하늘로 떠올린 권재진을 끌어안았다.

제 품 속으로 권재진이 안전하게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더는 참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막대한 이능을 한 번에 폭발시켜 버리듯 마음껏 발산했다.

밝고 강렬하여 태양 같던 힘이 만물을 하얗게 물들이고 잠식했다.

더는 숲의 어떤 것도 다리를 땅에 딛고 서 있을 수 없었다.

빼곡하게 차 있던 나무가 모조리 쓰러졌다. 고목마저 뿌리가 뽑혔고, 수풀은 벌초한 것처럼 말끔히 사라졌다.

바위는 으스러졌고, 휘말린 부대원들은 낙엽처럼 멀리 날아가 실신했다.

광풍이 잦아든 끝에 고요가 찾아왔을 즈음에는, 허공마저 깨끗하게 비워진 후였다.

***

별장으로 좌표 이동을 마친 서의우는 권재진을 안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회색 눈이 완전히 풀려 있었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불안하고 거칠게 헐떡거렸다.

“아, 아…….”

한계 이상으로 심각하고 초조한 나머지 권재진을 품에 끌어안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 겨우 고개를 든 서의우가 손끝을 움칠대며 가까스로 재진을 만졌다. 뺨을 그러쥐어 차근차근 형태를 살피고 온기를 확인했다.

권재진은 참 형편없는 모습이었다.

다치고 상처 입은 몸은 흙투성이고, 옷은 찢겨 너덜대는 통에 가슴이 훤히 다 드러나 보였다. 심지어 신발조차 없는 맨발이었다.

겨울 날씨에 실내복만 걸치고 있었으니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건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재진, 재진 씨, 괘, 괜찮아요?”

서의우가 허둥대며 물었다. 조금도 여유 없이, 절박함에 가슴이 미어져 썩어 문드러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서의우.”

권재진이 지친 입술을 달싹였다. 부르튼 입으로 무어라 말하려 하다가 내뱉지 않고 멈추었다.

온갖 위기를 넘나든 권재진보다도 서의우가 훨씬 놀라고, 경황없고, 곧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보였다.

뭐라고 한 소리 해 대면 경기라도 일으키며 크게 잘못될 것 같았다.

“히, 힐링 팩터, 지금 놔 줄게요. 잠깐만요. 그, 으아, 씻겨 줄게요. 기다려요.”

서의우가 더듬거리며 권재진을 하염없이 매만졌다.

머리통이 하얗게 비어 버렸는지 가슴 포켓에서 힐링 팩터를 꺼내면서 몇 번이고 헛손질했다. 그가 아무리 이성을 잃더라도 이렇게까지 무너져 보인 적은 없었는데 참,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어렵사리 힐링 팩터 뚜껑을 뜯은 서의우가 재진의 목에 주사해 주었다. 늑대형 크리처에게 물어뜯겼던 배 쪽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며 새살이 돋아났다.

“집에 왔는데, 거실에 크리처 사체가 있고, 재진 씨는, 아예 사라져서……. 나, 내가 너무, 놀랐어요.”

서의우가 권재진을 욕실로 데려가려 했다. 그렇지만 뜻대로 몸이 따라 주질 않는 모양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기라도 했는지 서의우는 재진을 끌어안고 몇 번이나 주춤댔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듯했다.

“……그랬습니까. 놀랐겠군요.”

그런 서의우를 보고서 권재진이 씁쓸한 한숨을 뱉었다.

이건 미워 죽겠는데,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는 새끼다.

“재진 씨가, 이미 주, 죽었을까 봐. 못 찾을까 봐, 얼마나…… 아아, 어떡해. 많이 아팠죠. 재진 씨는, 재, 재진 씨는 아픈 거 싫어하는데. 윽…….”

서의우가 횡설수설하며 권재진의 허리를 으스러지게 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깊게 파묻었다. 기어이 욕실로 데려가는 건 포기해 버린 모양이었다. 그 전에 권재진의 무사 안위를 확인해야 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예, 뭐, 아팠습니다. 꽤…….”

권재진이 어렵사리 팔을 들어 서의우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다. 그의 팔목엔 아직 마태오 소령이 묶어 둔 허리띠가 감겨 있어서 양손을 동시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죠? 그랬겠죠. 내 재진 씨, 얼마나 약한데……. 연약한, 아긴데, 진짜, 어떡해. 하, 너무 무서웠어요.”

“아기는 아닙니다. 무서운 건 알겠지만.”

“이런 거, 진짜 싫어요. 어떻게 이래요? 후우…… 눈물 날 것 같아요.”

서의우가 흙 묻은 목덜미에 뺨을 비볐다. 더럽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지 아주 절실하게 엉겨 붙었다.

권재진은 연신 그의 머리칼을 만져 주면서 다독였다. 그를 위로하고 있으려니, 신기하게도 권재진 자신의 마음도 차츰 안정되며 평온해졌다.

서의우는 크고, 무겁고, 따뜻했다.

살아 있는 애착인형 같았다.

“……서의우 씨가 늦지 않게 와서 다행입니다. 기다렸습니다.”

“그래요? 그랬어요? 안 늦은 거 맞아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가 어떻게 되려는지.”

재진이 손등으로 서의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를 마주 끌어안고 싶었는데 묶인 손이 방해였다.

“저 일단 이것 좀, 풀어 주십시오.”

“……이게 뭐야.”

서의우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구속당한 권재진의 팔을 보고는 짙은 눈썹을 설핏 찌푸렸다.

재진이 묶여 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재진 씨 이거 뭐예요.”

그의 회색 눈동자가 아득하게 가라앉았다. 조금 전과 다른 방향으로 요동치며 분에 떨었다.

서의우는 권재진만을 맹목적으로 애타게 찾아다닌 나머지, 조금 전 재진이 무슨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권재진만 보였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진지하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가 분출한 이능에 수십 명의 각성자가 휩쓸렸는데도 그런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때는 설령 지구가 멸망했더라도 알아채지 못했을 터였다.

말 그대로 권재진 하나만, 단 한 사람만, 살아 있는지, 어디 있는지, 신경 쓰느라…….

“누가 이랬어요? 붙잡혔어……? 누구야.”

서의우가 살벌하게 질문했다. 여유 하나 없는 모습인 건 똑같은데, 지금은 피바람이 불어닥치기 일보 직전처럼 보였다.

제7 특임부대 소속 마태오 소령이 그랬다고 답하면 당장 그를 죽이러 돌아갈 것 같았다.

마 소령은 이미 바위틈에 빠져 생사가 어찌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만……. 힐링 팩터를 쓰면 살았으려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확실치 않았다.

“……그냥, 일단 풀어 주십시오. 차차 얘기하겠습니다. 팔이 묶이니 불편합니다.”

“재진 씨, 나한테 또 말 안 하죠.”

“아니, 이래선 서의우 씨를 안을 수가 없습니다. 끌어안고 싶으니까 좀 풀어 주세요.”

“…….”

“저도 놀랐단 말입니다. 아프고, 힘들어요. 우선 진정 좀 하고……. 그러고 난 뒤에 전부 얘기할 겁니다.”

재진이 눈썹을 처뜨리고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어딜 보나 명백한 피해자로 보이는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서의우는 치솟는 울분을 토해 내지도 못하고 가슴 속에 억지로 으깨어 담아 둔 뒤, 괴롭게 답했다.

“……손 이리 내요.”

한을 삼켜 불처럼 들끓는 목소리였다.

서의우가 느릿하게 구속을 풀어 주었다. 마 소령이 어찌나 세게 손목을 묶어 놓았는지 힐링 팩터를 사용했음에도 아직 멍 자국이 조금 벌겋게 남아 있었다.

“의우야.”

권재진이 서의우를 끌어안았다. 서의우도 재진을 안았다. 두 사람은 집 안 복도 바닥에 주저앉은 모습으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나른한 숨만 색색거리며 내쉬었다.

비로소 모든 게 다 지나간 것 같았다.

서의우도, 권재진도, 서로가 필요했다.

서로를 원했다. 지극히.

“어떡하죠? 나 이래서, 이젠…….”

“뭐가 말입니까.”

“이제 재진 씨 두고 어떻게 나가요. 걱정돼서. 어떻게.”

“……지금 서의우 씨가 갑작스레 놀라서 이런 겁니다. 괜찮아질 거예요.”

“아냐, 안 괜찮아져요. 정말 한 발짝도 못 갈 것 같은데.”

“서의우, 엄살은.”

“잠시 안일했어요. 재진 씨가 돌연변이란 사실…… 그건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다는 뜻이었는데. 알면서도 간과하고 있었어요.”

“…….”

“여긴 사방이 적이잖아요. 적진, 한가운데라고.”

서의우가 두 눈을 사납게 치떴다. 불온하게 일렁대는 회색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하고 났더니 재진은 이루 표현할 수 없도록 가슴이 막막해졌다.

서의우가 마음 편히 가졌으면 좋겠다만, 그런 상황은 오지 않을 터였다.

권재진이 돌연변이 가이드인 한 서의우는 불가피하게 죄를 지어야 하고, 남은 생을 범법자로 살아야만 했다.

서의우가 안쓰러웠다.

돌연변이 가이드인 권재진 자신의 신세는 뭐…… 여태껏 많이 한탄해 왔으니 새삼스러울 필요가 없지만, 서의우는 새삼 가엽다.

그러니까 참, 감정이란 게 오묘하다.

좀 전까지 서의우가 개새끼 같고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또 그가 불쌍하고, 다시 만나서 너무 좋고……. 너무, 너무 좋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권재진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이것저것 고르다가 그냥 힘없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음, 목욕부터 좀 할까 싶은데. 씻겨 준다면서요.”

서의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신 끄덕이면서도 권재진을 품에서 놓지는 못하고 조금 더 옭아매듯 안고 있었다.

“알았어요. 내가 해 줄게요. 뭐든 다, 재진 씨 다 해 줄게요.”

“당장은 목욕이면 됩니다.”

“다시는, 제발 사라지지 말아요. 이건, 겪어 보니까…… 할 짓이 못 돼.”

“저도 딱히, 어디도 가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서의우 씨가 잘 좀 지켜 주십시오.”

“알았어요. 내가, 하아……. 알았어요. 그럴게요. 지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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