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이건, 돌연변이다.”
“커윽.”
다친 가슴이 짓눌려 재진이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소령은 통증을 느끼는 권재진을 아랑곳하지 않고서 검고 빳빳한 장갑을 착용한 손으로 심장 위를 무참히 쥐어 눌렀다.
혹여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다시금 확인해 보는 신중한 모습이었다.
그는 마치 잘 훈련된 군견 같았다.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고 포마드로 넘긴 스타일이나, 불필요한 움직임 없이 절제된 몸동작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돌연변이? 정말입니까?”
스캐너를 들고 있던 대원이 흠칫 놀라 고글 송신기에서 손을 떼고 총을 쥐었다.
“그래.”
“그럼, 사살합니까? 힐링 팩터를 낭비했군요.”
“기다려라. 여긴 일반 거주지구가 아니다. 무슨 재간으로 특수 거주지구까지 숨어들어 왔는지 먼저 알아내고 처리해야 해. 일반인 혼자선 불가능할 터.”
“……조력자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각성자 중에.”
“범법자다. 표현에 유의해라.”
소령이 무뚝뚝하게 읊조렸다. 쓰러진 재진을 훑어보는 시선이 냉담했다.
“이것 하나가 끝이 아닐지 모른다. 다른 돌연변이를 더 빼돌렸을 가능성 있어.”
재진이 참담하게 눈가를 찌푸렸다.
검은 속눈썹을 타고 뜨거운 핏물이 한 줄기 흘렀다. 이마가 찢어진 모양이다. 가뜩이나 시야가 흐린데 피까지 눈앞을 가리니 한탄스럽다.
‘이대로 붙잡히면 나도 죽고 서의우도 처벌당해…….’
센터까지 끌려간다면 끝이었다. 정신계 이능으로 권재진의 기억을 파헤쳐 누가 그를 빼돌렸는지 단박에 알아낼 수 있을 터다.
도망쳐야 한다.
아니면, 도망칠 순 없더라도,
‘적어도 나 혼자 죽어야…….’
재진이 고통을 참아 내며 오른손을 잘게 떨었다. 그의 손에는 아직 빼앗기지 않은 권총이 들려 있었다.
‘쏘는 거다. 쏴야 한다. 어쩔 수 없어.’
그때, 권재진의 오른쪽 팔꿈치가 군홧발에 짓밟혔다.
“허, 잘도 손가락을 꼼질대는군.”
“윽!”
뒤축으로 담뱃불을 비벼 끄는 것과 유사한 동작으로 관절을 비틀자 재진의 손목이 원치 않게 축 늘어졌다. 군견을 닮은 남자가 부하 대원에게 턱짓했다.
“이 중위. 무장 해제시켜라.”
“앗, 옙. 마태오 소령님.”
허무하게 권총을 빼앗겼다. 하네스에 남은 총탄도 모조리 빼앗겼다.
“스캔은 다 되었나?”
“현재 98% 진행 중입니다. 이제 다 되었습니다.”
“보고해라. 합류가 늦어지겠군.”
스캐너에 완료 메시지가 떠올랐다. 뒤이어 권재진의 신원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났다.
“제6 거주지구 소속. 권재진. 26세. 남성. 올해 9월 2일 실종 사망 처리됐습니다. 넉 달 전입니다.”
“음.”
이 중위가 스캐너를 마태오 소령에게 내밀었다. 마 소령이 화면을 받아 신중히 확인했다. 그런 그때, 높게 자란 뒤쪽 수풀이 크게 흔들렸다.
검은 그림자가 단숨에 도약해 뛰어오르더니만 이 중위의 등을 한입에 베어 물었다.
크르르르륵!
늑대형 β크리처가 놓친 사냥감을 따라 내려온 모양이었다.
그것도 무리를 이끌고서.
“크아아악!”
살점이 뜯긴 이 중위가 무력하게 피를 뿜으며 땅을 굴렀다. 마 소령은 바로 사격을 개시했다. 몇 마리에게 유효한 총상을 입히곤 곧바로 이능을 전개했다.
“정신 차리고 내 옆으로 따라붙어!”
마태오 소령의 주변으로 반투명한 구체 보호막이 펼쳐졌다. 비눗방울처럼 아름다운 빛깔이었다.
방탄유리도 단숨에 깨부수는 늑대 이빨에 물어뜯겨도 보호막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이 중위가 포복 자세로 마 소령의 발치까지 기어갔다. 보호막 안으로 들어가면 힐링 팩터를 사용할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그보다 늑대가 더 빨랐다.
괴물 같은 입이 쩍 하고 벌어지더니, 길쭉한 혀가 뻗어져 나왔다. 촉수라도 된 듯 멋대로 움직이는 혀. 그것이 밧줄처럼 이 중위의 발목을 단단히 감고 홱 끌어당겼다. 입 안까지 끌려 들어가도록.
“아아악! 으헉! 끄아아악!”
으드으득, 뼈까지 씹혀 먹히는 이 중위의 최후를 지켜보며 마태오 소령은 흔들림 없이 냉정하게 대원들에게 무전을 보내야만 했다. 고글 송수신기 전원을 켜고 이곳 상황과 위치를 알렸다.
“제7 특임부대 마태오 소령이다. 지원을 요청한다. 늑대형 β크리처. 수는 다섯. 좌표는…….”
재진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임을 알았다.
시선이 크리처에 쏠려 있는 지금. 바로 지금밖에는, 도망칠 기회가 없을 터였다.
다행히 힐링 팩터가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다. 다리뼈가 덜 붙었지만, 가까스로 몸을 움직일 순 있을 것 같았다. 못 걷는다면 기어서라도 가야 했다.
“흐으. 윽.”
신음을 삼키며, 권재진은 안전해 보이는 보호막 이능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갔다. 늑대들이 움직이는 재진을 바로 목표물로 삼았다.
“저 돌연변이가, 죽을 작정인가!”
권재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뚝거리며 뛰었다. 늑대들이 마태오 소령을 남겨 두고 권재진에게 모조리 따라붙었다.
재진은 나무 사이를 위태롭게 내달렸다. 늑대 중 둘이 나뭇가지를 밟고 위로 올라갔고, 나머지는 밑에서 추적했다. 등 뒤에서 마 소령이 발포하는 소리가 났다. 늑대 두 마리가 풀썩 쓰러졌다.
그런들 재진이 위급 상황에 놓였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바로 붙잡혀 먹힐 것 같았다.
하지만,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센터에 끌려간다면 권재진은 사살당하고 서의우도 처벌받겠지만, 크리처에 먹힌다면 권재진 하나만 죽고 끝난다.
불가피하게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면 그나마 후자가 낫지 않겠는가.
지척에 골짜기 끝이 보였다. 아래로 깎아 지른 듯 아찔한 협곡이 있었다.
‘하.’
재진은 도깨비불처럼 쏟아지는 늑대의 초록 눈동자들을 외면하고 협곡 아래를 헐떡이며 내려다보았다.
높이가 얼마쯤일지 도통 가늠되지 않았다.
서의우의 바닷가 저택의 절벽은 절벽도 아니었다. 이곳이야말로 기암절벽이다.
산수경석은 본 적 있어도, 이런 절경은 처음이었다. 낭떠러지 아래로 굽이치는 아홉 줄기의 계곡이 보였다. 겨울에도 얼지 않고 흐르는 계곡물 옆에 일곱 빛깔 무지개가 두 쌍으로 겹쳐 있었다.
‘……서의우가 오잘 때, 그냥 와 볼 걸 그랬나…….’
미래를 바꾼답시고 패기에 차 있던 과거의 자신이 우스웠다.
4년의 생이 짧다고 투정 부리다가 고작 4달 만에 저승길을 걷게 되었으니.
1회차도 2회차도, 후회만 남는 삶이었던 것 같다.
3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겠지.
재진이 체념하고 두 눈을 감았다. 자신이 죽고 난 후, 서의우에게 제대로 된 가이드가 생기길 진심으로 빌어 주었다. 이런 돌연변이 반푼이 말고, 태생부터 각성자인 진짜 가이드가 나타나 주기를.
키르르륵!
제대로 기도할 새조차 없이, 축축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권재진의 팔목에 휘감겼다.
끈끈한 촉수 같은, 크리처의 혓바닥이었다.
권재진을 뒤쫓아 온 늑대 크리처가 다친 팔목을 혀로 붙잡아 당겼다. 본능적으로 끌려가지 않으려 하체에 힘을 주었지만, 뼈도 덜 붙은 다리로는 버티기 역부족이었다.
“크흐윽!”
늑대 크리처가 권재진을 혀로 당겨 기어이 입에 물었다. 상어 이빨 같던 촘촘한 이빨이 등과 배를 사정없이 찔렀다.
이대로 고통스럽게 산 채로 씹혀 먹힐 것만 같았다.
그때, 커다란 발포음이 울렸다.
탕! 탕탕!
마태오 소령이 쏜 총알이 권재진을 붙든 놈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흉포했던 늑대가 옆으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남은 늑대들도 그가 사살했는지 시체가 바닥에 널려 있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미끼가 되어 준 덕에 수월하게 마무리했군.”
그가 늑대 아가리를 열어 권재진을 끄집어냈다. 손목에 감긴 혓바닥은 잘 떨어지지 않아 칼로 끊어 내야 했다.
마 소령이 허리에 찬 잭나이프로 탯줄 끊듯 크리처의 혀를 끊어 줬다.
“권재진이랬나.”
“……커헉.”
“근성 있군. 부하였다면 칭찬해 줬을 거다.”
권재진은 머리통이 뚫린 늑대형 크리처의 사체 옆에 누워 거칠게 피를 토해 냈다.
힐링 팩터 효과가 돌고는 있다만, 늑대 이빨에 씹혀서 새로운 상처가 생겼다. 재진이 고통스럽게 쿨럭거리며 마 소령을 힐긋 쳐다보았다.
“당신, 같은, 상사…… 필요 없습니다. 물려 죽게 두지 않고.”
“배짱은 인정한다만 곧 내 대원들이 올 것이다. 그만 포기해.”
마 소령이 차고 있던 허리띠를 풀어 그것으로 재진의 팔뚝을 묶었다.
가죽 허리띠를 세게 조여 혼자서는 풀 수 없도록 손목을 단단히 구속해 두고, 크리처의 검은 피로 물든 장갑을 벗었다.
“권재진. 누가 너를 넉 달간 숨겨 두었지?”
마태오 소령이 냉담하게 추궁했다. 위협할 심산으로 권재진의 목을 맨손으로 옥죄어 흙바닥에 짓눌렀다.
“대체 어떤 수법으로 특수 거주지구 경계문을 통과한 것인지 실토…….”
그러나, 살갗이 밀착하는 순간, 되레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뭐, 무…… 무슨……?”
FM 자체였던 군견 같은 남자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뜨기 같은 소리를 내며 미간을 뚜렷하게 찌푸렸다. 눈알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빛 한 점 없던 검은 눈동자가 설핏 흔들렸다.
“지금 날…… 가이딩 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