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재진은 상황을 파악하기 앞서 최속으로 몸부터 움직였다.
얼어붙어 굳어 있을 겨를이 없었다.
당장 드레스 룸으로 뛰어가 선반에 늘어선 서의우의 총을 집었고, 노련하게 총알을 장전했다. 헛손질하지 않도록 집중하며 신속, 정확하게 소총을 준비했다. 서의우의 곁에서 그가 총 손질하는 모습을 한두 번 지켜본 게 아니었다.
혹시 몰라, 문가를 주시하며 하네스를 매고 권총과 여분의 총알도 챙겼다.
‘문제없어. 서의우에게 보안 시스템 알림이 갔겠지. 곧 돌아올 거다.’
재진이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하고 드레스룸 문밖의 기척을 살폈다. 크르르르 하고 섬뜩하게 우는 소리가 복도에서부터 점차 가까워졌다.
늑대 β크리처는 입에서 검은 피를 뚝뚝 흘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만 재진이 있는 드레스룸을 천만다행으로 지나쳐 침실 방향으로 걸어갔다. 늑대가 지나간 자리에 떨어진 새까만 핏방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재진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도록 유의하며 서의우가 어서 나타나길 기다렸다.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날카롭게 감지했다.
‘가만, 이상해.’
비상 알람이 어째서 울리지 않지?
보안 시스템이 멀쩡하다면, 안내음이 들리거나 대피로가 열리거나 무슨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집은 해변 저택이 아니라 시스템 대처가 다른 건가……?
재진이 긴장한 눈으로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드레스룸 구석, 눈에 띄지 않는 기둥 윗부분에 갈라진 흔적이 보였다. 창틀 부근도 마찬가지였다.
깊게 팬 균열이 담쟁이넝쿨처럼 천장까지 타고 올라가 이어져 있었다.
거실과 욕실에도 균열이 있더니만 이곳도다.
내부가 무참히 파괴됐다.
‘설마, 저택이…… 저택 시스템이 망가졌나?’
몇 주간 서의우가 이능을 분출해 대서, 그 방대한 힘 때문에 어딘가 회선이 끊어진 모양이다. 큰일이었다.
물론 권재진도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 곧 있으면 서의우가 올 거고, 저 크리처를 단숨에 처리해 주리라 기대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만약 정말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서의우에게 아무 알림도 가지 않았다면?
권재진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다면?
‘씨발…….’
당장은 서의우에게 연락할 방도도 없다.
특수지구 내 송수신 체계는 일반 거주지구와 달리, 각성자 코드가 등록된 개인 회선이 있어야 했다. 일반적인 통신, 통화나 문자 등은 게이트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모조리 끊겨 버리기 때문이다.
서의우가 고글을 쓰고 다니며 그것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돌연변이 도피자인 권재진에게 개인 회선이 있을 리 없고, 그밖에 서의우를 부를 방법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권재진이 지금 바로 보안 시스템을 뚝딱 고쳐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어쩔 수 없군. 내가 처리할 수밖에.’
재진이 소총 손잡이를 굳세게 잡아 쥐었다.
다행히 무기가 있다.
잘 쏴서 명중해 버리면 그만이다.
‘머리에 두 방. 가슴에 한 방.’
깊게 심호흡한 재진이 자세를 낮추었다. 최대한 숨어 있다가 크리처가 나타나면 바로 총알을 갈길 심산이었다.
민간인이 괜히 어쭙잖게 사냥하겠답시고 놈을 찾아 나서는 건 위험하고, 그렇다고 섣불리 도망치면 움직이는 표적이 된다. 일단은 숨죽이고 숨어 있는 게 가장 나을 터다.
터벅터벅, 복도에서 늑대가 돌아다니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침실까지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재진은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콰드드드득!
탕! 탕!
드레스룸 벽면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늑대에게 물어뜯겨 콘크리트가 바스러졌고, 시멘트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권재진은 희뿌연 먼지 속에 보이는 시커먼 그림자를 향해 총질하며 문으로 이동했다.
총은 원거리 무기다. 무조건 멀어져야 유리하다.
드레스룸 밖으로 빠르게 벗어나면서 재진이 계속 크리처에 위협 사격을 갈겼다.
그중 한 방이라도 머리통에 명중했길 바랐는데, 행운이 따르지 않은 모양이다.
뒷발을 웅크린 늑대가 크게 도약하며 단숨에 거리를 좁혀 덮쳐 왔다. 샛노란 눈동자가 도깨비불처럼 흉하게 번뜩이는 모습이었다.
“큭!”
이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닌가?
족히 다섯 방은 맞힌 것 같은데 쓰러뜨릴 수가 없다. 시커먼 녀석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고통을 모르는 것처럼 재진에게로 달려들었다.
확실히, 생물이 아니었다. 이건 마물이었다.
서의우는 항상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런 것과 전투하러 나간단 말인가? 방금 아까도, 태연하게 떠났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거실까지 도망친 재진이 자세를 바로잡고 총구를 똑바로 올려 정조준했다. 가늠자를 가늠쇠에 맞추고 연이어 방아쇠를 당겼다. 늑대가 지척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놈의 아가리가 쩍 벌어지고 괴물처럼 돋은 수백 개의 이빨 가운데서 촉수 같던 혀가 길게 늘어났다.
밧줄처럼 뻗어 온 혀가 재진이 든 소총을 붙잡아 당겼다. 버티고 있으면 권재진까지 입 안으로 딸려 들어갈 터였다.
재진은 빠른 판단으로 소총을 손에서 놔 버리고 하네스에 찬 권총을 집어 들었다. 늑대 크리처가 소총을 아작아작 씹어 삼키는 동안 권총을 장전하고 눈을 노려 쐈다.
피슉!
제대로 들이박혔다.
코앞까지 와 있던 늑대가 다리를 꿇고 풀썩 주저앉았다. 이제 잡았나 싶었지만, 권재진은 끝까지 안심하진 않았다.
확인 사살을 하고자 남은 총알을 머리통과 가슴에 계속 박아 넣으며 뒤로 물러섰다. 검은 피를 토해 낸 놈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재진이 헐떡이며 거실 끄트머리에 섰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발이 피투성이였다. 깨진 유리창 조각을 죄다 밟아서 발바닥이 온통 베였다.
“하아.”
아픈 줄도 모르겠다. 재진이 깊게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자세히 상처를 살펴보려 허리를 숙였고,
창밖에서 튀어나온 또 다른 늑대형 β크리처의 앞발에 후려 맞아 날아갔다.
“끄윽……!”
붕 떠오른 육신이 깨진 유리창 밑으로 낙하했다. 가파른 산등성이 아래로 무참하게 굴러떨어졌다. 덤불 가시와 돌부리에 찧고 긁혀 온몸에 잔상처가 났다.
구르고, 구르고, 또 구르고.
끝내 큼지막한 바윗덩이에 부딪혀 몸뚱이가 멈추었다. 가까스로 골짜기 너머까지 떨어지는 건 면했지만, 꺾인 나뭇가지에 옆구리가 뚫렸다. 게다가 다리뼈도 부러졌는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도 손에 쥔 권총만큼은 놓치지 않고 꽉 붙들고 있었다.
“으큭, 아아! 씨발, 아흐윽…….”
시야가 캄캄해진다.
한계를 넘어선 고통에 부들부들 떨며 재진이 눈을 위로 치떴다. 이대로 크리처가 나타나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저 뒤쪽, 푸릇한 수풀 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사사삭.
무언가 빠르게 움직인다.
가까스로 혼절하지 않고 참아 낸 재진이 권총을 들어 올렸다. 팔뚝이 뜻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사시나무 떨듯 부들대는 손으로 하네스에 챙긴 총알을 재장전하고 가까스로 수풀 방향에 맞추어 조준했다.
소총을 수십 방 쏴 대도 죽지 않던 크리처를, 고작 권총만으로 잡을 수 있을까.
수풀의 흔들림이 커졌다.
기척이 다가온다. 다가온다. 아주, 많이.
***
검은 형체가 일사불란하게 나타났다.
흐려진 눈으로 상대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권재진이 방아쇠에 건 손끝을 당기기 직전, 어느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서의우의 목소리였다면 눈물이 나도록 반가웠겠다만 불행히도 아니었다.
“부상자다. 힐링 팩터를 가져오도록.”
“예, 소령님.”
“비번일에 운 나쁘게 크리처와 조우했나 보군. 이런 산속을 혼자 나돌아다니다니.”
검은 군화를 신은 발이 신속히 움직였다. 새까만 전투복을 갖춰 입고 장전된 총을 든 한 무리의 사람들.
권재진은 크리처를 마주했을 때보다도 더한 좌절을 느꼈다.
누구인지 모를 각성자가 권재진의 목덜미에 힐링 팩터를 주사해 주었다. 전문적인 손길로 옆구리에 박힌 나뭇조각을 빼 주고 부러진 뼈를 맞춰 준다.
“의식이 있나? 소속과 부대, 코드를 말해라.”
“…….”
“어느 형이었지? 수는? 위치는?”
“…….”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재진이 까만 눈알을 허탈하게 내리깔았다.
누군가의 손길이 다시금 목덜미에 닿았다. 무언가 찾아보듯 목 부근을 헤집었다.
“소령님. 인식표를 소지하지 않았습니다.”
“징계 사항이군. 스캔하고 센터에 통신해라. 나머지는 게이트 입구 포인트까지 수색을 계속한다.”
“알겠습니다.”
명령에 따라 특임부대 대원들이 떠나갔다. 남은 각성자 한 명이 권재진을 챙겼다.
정체 모를 기기를 꺼내 재진을 향해 비추더니만, 고글에 부착된 송수신기 전원을 켜고 센터로 연락하려 했다.
그때,
“……잠깐.”
소령이라 불렸던 지휘관이 대원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되돌아왔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권재진의 왼 가슴을 크게 움켜쥐었다.
심장 안쪽. 인식표를 대신할 증명이 자리해 있었다.
작고, 불완전한 핵.
“이건 돌연변이다.”
여기다 연장하면 이 뒤는 손 안댈거에용^^ 택갈도 그만해^^ 다 알아볼 수 있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