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나. 재진 씨 기억. 돌려놓을 마음 없어요.”
어금니를 부서트릴 것처럼 세게 짓씹고 으르렁댄다.
그 음산한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그래도 상관없어? 그런데도 가이딩 좋다는 거야?”
“아냐, 그러지 마…….”
“그만 포기해요. 그 구멍 뚫린 머리통, 도저히 무서워서 못 건드려. 차라리 거기 대고 총질하고 말지.”
“어째서. 서의우, 그쪽은, S급 에스퍼잖습니까. 못 하는 거 없잖습니까. 왜, 해 보려는 시늉조차 안 하고, 겉핥기식이라도 노력 정도만, 성의만 보여 줘도 괜찮잖아…….”
“그러게. 다음에는 권재진 목숨 말고 다른 거 걸고 해요. 그럼 그땐 내가 져 줄 테니까.”
서의우가 필사의 인내로 권재진을 겨우 놓고 물러섰다.
당장이라도 무자비하게 가이딩 해 댈 것 같은 눈을 하고서, 이성 잃고 정신 나간 듯 굴면서, 원하고 갈망하는 주제에, 서의우는 턱없이 확고했다.
그는 집요하고, 강력했고, 자비가 없었다. 포기할 줄 모르고, 타협할 줄도 모르고, 대단…… 대단했다.
“……하.”
재진의 입에서 여러 감정이 혼재된 한숨이 흘러나왔다.
가이딩은, 권재진이 서의우에게 내걸 수 있는 유일한 패였는데 그조차 무용해지다니.
“하하…… 알겠습니다. 가이딩…… 하지 맙시다.”
정녕 서의우를 거스를 수 없는 것일까.
권재진은 남은 평생 이렇게, 그냥 그의 뜻대로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가족을 잃고 기억을 송두리째 빼앗겼는데도 이번마저 어쩔 수 없었다며 서의우에게 넘어가 줘야 하는 걸까.
그가 바라는 대로 다 들어주고, 해 주고, 포기하고…….
그렇게…….
“재진 씨, 화내서 미안해요. 나 근데, 후, 지금은 너무 흥분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다치진 않았어요? 팔, 좀 부러트릴 뻔했는데…… 머리는, 부딪힌 곳 괜찮아요? 힐링 팩터 가져올게요.”
서의우가 침대를 떠났다. 이능을 사용해 가져올 수 있음에도 일부러 자리를 비키는 걸 보니 그 말처럼 흥분이 넘치는 모양이었다.
권재진은 돌아서는 서의우의 등을 암담한 눈으로 바라보고는, 홀린 듯 멍하니 손을 움직였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재진이 입고 있던 바지 버클을 젖혀 열었다. 브리프와 함께 방해되는 옷을 죄다 벗어 던지고 맨몸이 되어 다릴 벌렸다. 자괴감을 느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재진이 스스로 자신의 것을 쥐어 잡았다.
손목을 흔들며 억지로 발기하도록 부추기는데, 경악한 서의우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권재진이 웃지도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혼잣말했다.
“……가이딩 하자는 거 아닙니다. 자위하는 겁니다.”
“뭐……?”
“왜요. 저는 이러면 안 됩니까. 서의우 씨도 못 참겠다며 매일 하잖습니까. 저도 자위할 겁니다.”
성긴 눈을 내리 깐 재진이 두 손으로 중심을 감싸 빠르게 마찰했다. 서의우의 말대로였다. 하나도, 정말 하나도 좋지 않았다. 억지로 꾸역꾸역 좆을 세워 놓긴 했는데 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재진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의우야. 의우야. 아, 흐윽, 서의우. 씨발, 새끼……. 아, 아.”
기분 더럽고, 좆같고, 빨리 끝내고 싶었다.
이딴 등신 같은 짓 말고, 서의우와 엉겨 붙고 싶었다.
서로 입 맞추면서, 여기저기 만지고, 기분 좋게, 배 속이 그 새끼의 것으로 가득 차서 버겁도록, 콱콱 쑤셔박혀 싸고 싶었다.
권재진이 한 손을 허벅다리 안쪽으로 미끄러트렸다. 다리를 더 넓게 벌리고 좁게 다물린 구멍에 손끝을 비볐다.
정신이 나가서 수치스러운 줄도 몰랐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아 오그라든 주름을 스스로 문질러 보며 자지를 계속 흔들었다.
“하아, 으으, 싫어…….”
“…….”
서의우는 믿기지 않는 것을 보듯 권재진을 보고 있었다. 선 긋고 물러서고 거절하기 바빴던 권재진이 스스로 엉덩이에 손가락을 넣고 있다니. 가뜩이나 흥분이 과했던 서의우는 거의 미쳐 팔짝 뛸 지경이었다.
목부터 얼굴까지 피부색이 벌겋게 익고, 회색 눈알에 핏발이 섰다. 온몸의 혈관이 곤두서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아랫도리는 박살 날 것 같았다.
아까부터 바지 안쪽에 갇혀 발기해 있던 좆이 아플 정도로 심하게 부풀었다. 무슨, 천을 뚫고 나갈 것 같았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참지 못한 서의우가 이를 으드득 갈고 매섭게 뇌까리며 권재진이 누운 침대에 올라섰다.
재진은 스스로 안쪽에 검지를 밀어 넣고 있었다. 구멍이 벌어지도록 손마디를 굽혀 여린 속살 점막을 만졌다. 권재진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다물어진 선홍빛 주름이 움찔거렸다.
“보면, 윽, 모릅니까. 자위, 자위하잖습니까.”
“그러니까 왜! 나한테 대체 왜 이러냐고!”
서의우가 권재진의 팔뚝을 잡아 들쳐 올렸다. 안에 박혀 있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구멍이 도로 다물렸다. 자지 만지던 쪽 팔뚝까지 붙잡고는 권재진의 양팔을 교차해 내리눌렀다.
“내가 가이딩을, 이 끔찍스러운 걸, 그냥 오기로 참는 거 같아? 확실히 증명하려고 이러는 거잖아!”
“뭘, 무슨 증명.”
“내 목적! 내 뜻! 내 결정! 아직도 내가 당신한테 가이딩 바라고 이러는 것 같아? 내가 부득불 권재진 살려 놓는 목적이 가이딩 착취 같냐고!”
“…….”
“가이딩만 필요한 거 아니야. 내 뜻은 그게 아니라고요…….”
서의우가 무너지듯 권재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재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 끔찍하게 갈망했던 몸뚱이, 살갗, 피부를 더듬고 탐했다. 거칠게 헤집는데도 모자라서 마른침을 계속 삼켰다.
“나, 난, 권재진이 필요한 건데. 재진 씨가, 그것도 몰라 주니까.”
“아니, 알아, 아는데…….”
“하, 씨발, 권재진 씨 그 입 좀 진짜 닥쳐 봐요! 그걸 아는 사람이, 아는데 이래? 입 벌리지 마. 가뜩이나 당신 입 빨고 싶어 돌아 버릴 것 같으니까 가만 처닫고 있으라고요!”
서의우는 총상 입은 사람처럼 헐떡거리며 재진을 만졌다. 손바닥으로 온몸을 쓸고, 훑고, 부위를 가리지 않고 모자람을 채웠다. 그래도 서의우는 괴로워 보였다.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끙끙 앓으며 허덕였다.
“내가, 이렇게 기를 쓰고 참아 내지 않으면, 권재진 씨 당신, 나 평생 원망할 거잖아. 내가 당신 기억 지운 것도 아닌데, 내가 한 것처럼 치부할 거잖아!”
“…….”
“겉으론, 내색하지 않더라도, 재진 씨, 속으론 곪아 가겠지. 나랑, 그 권재진 기억 지운 서의우를 동일시하면서……!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요? 내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애새끼인 줄 알아?”
“…….”
“그러니까, 좀, 헛짓거리할 시간에 그 눈 들고 똑똑히 봐요, 내가, 얼마나…… 처절하게, 이 악물고 증명하려 이러는지.”
서의우가 턱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차라리 기절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이딴 잔인하고 피 마르는 충동을 견뎌 낼 필요가 없으니까.
서의우가 한껏 힘주어 주먹을 움켰다. 손을 펴고 있다가는 권재진의 몸을 계속해 만져 댈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짓뭉개고 구멍에 좆을 처박고 싶었다.
봐주지 않고 구멍 찢고, 눈에 뵈는 것 없이 허리를 흔들어 밤낮없이 가이딩에 매진하고 싶었다.
“난, 안 해요, 가이딩.”
눈이 돌아가 광분한 서의우가 권재진의 손을 잡고 침대에서 끌어냈다. 버티는 재진을 우악스럽게 잡아당겨 기어이 침대에서 벗어나도록 만들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침실 밖까지 나오도록 그의 팔을 잡아끌며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권재진은 서의우가 걷는 방향대로 질질 끌려갔다. 목줄 잡힌 개처럼.
“서의우! 뭡니까, 뭐야……!”
적지 않게 당황한 재진이 소리쳤다.
옷을 죄다 벗은 모습으로 끌려가는데 놀라지 않을 순 없었다.
서의우가 어딜 가려는지, 권재진에게 무엇을 하려는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가이딩, 그거, 하려면 할 수 있었어. 언제든,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는데, 안 하겠다고.”
“어디 가는 겁니까. 왜 갑자기 이럽니까 또!”
“재진 씨도 알잖아. 난 뭐든 할 수 있었다고요. 수갑 채우고, 기억 지워서 가이딩 노예? 하핫! 그딴 짓도 충분히 할 수 있었어. 아니면 나랑 재진 씨가 틀어진 날. 그날 기억만 정확하게 골라내 지웠어도 됐겠지. 그러면 이 빌어 처먹을 짓거리 안 해도 되고, 다 없던 일 됐을 거 아녜요? 그런데, 보다시피, 나 아무 짓도 안 했잖아!”
“서의우!”
“재진 씨는, 이제 날 믿어야 해요. 그리고 나도 재진 씨를 믿고. 우린 지금부터 그런 사이가 되는 거예요. 가이딩? 가이딩 좋지, 좋은데…… 당장은 그거 말고. 응?”
서의우가 욕실 문짝을 세차게 걷어찼다. 두껍고 무거운 문이 뜯겨 떨어져 나가다시피 요란하게 열렸다. 환하게 불 켜진 욕실 안으로 권재진을 밀어 넣은 그가 높게 매달린 샤워기를 틀었다. 천장에서 냉수가 세차게 쏟아졌고, 서의우는 망설임 없이 물 밑으로 재진을 끌고 들어갔다.
난데없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게 된 재진이 목을 움츠렸다. 반사적으로 피하려 뒷걸음질 쳤지만, 서의우는 봐주지 않고 권재진의 팔을 부러뜨릴 기세로 움켜쥐고 당겼다.
“권재진 당신이 먼저 시작한 거잖아.”
폭포처럼 쏟아진 물이 두 사람을 흠뻑 적셨다.
서의우가 권재진을 위협하듯 물줄기 아래 가두고 웃었다. 휘어지는 입술을 보면, 그저 광기 어린 미소라고밖엔 묘사할 길이 없었다.
“나더러 믿어 달라며. 그래 놓고, 이제 와서 혼자 내빼?”
서의우는 권재진의 온몸을 조금도 남겨 놓지 않고 물에 젖게 만들었다.
불순물이 섞여서, 가이딩 효과가 처참하게 하락하도록.
권재진을 만져도, 더는 가이딩 되지 않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