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서의우가 허리를 짓쳐 올렸다. 권재진의 겨드랑이 사이에 무릎을 대고 상체를 낮추어 재진의 입가에 좆 끄트머리가 가까워지도록 쳐올렸다.
재진의 메마른 입술에 흉흉하게 부푼 짐승 같은 성기가 바로 맞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붙었다.
서의우가 조금만 더 몸을 숙이면 바로 권재진의 입 속에 저 좆덩어리가 파묻힐 것 같았다.
그런데도 서의우는 마지막 선을 넘지 않고 끝내 참아 냈다. 닿지 않게, 버티고 견뎌 내서, 애타게 갈구했다.
“아, 으, 큭…….”
서의우의 말마따나 그의 자지는 힘겨워 보일 정도로 퉁퉁 부어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수음했던 것인지 뿌리부터 선단까지 빳빳해져서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 한 번 손으로 훔칠 때마다 투명한 프리컴이 흘렀다.
권재진의 입술 옆으로 그 액이 한 방울 떨어졌고, 그 사실에 권재진보다도 서의우가 더 크게 반응하며 놀랐다.
“하.”
가뜩이나 정상이 아니던 눈빛이 더욱 깊고 어둡게 번뜩이며 사나워졌다.
권재진은 속으로, 이제 끝이겠구나 싶었다.
서의우의 하체 근육이 팽팽해졌다. 목에 선 핏대가 울컥거리고 한껏 찌푸린 굵은 눈썹이 괴롭도록 일그러졌다.
당장 권재진의 입에 쑤셔 박을 것처럼, 깎아 놓은 듯 정교한 하반신 전체가 위태롭게 떨린다.
그렇지만 서의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격랑을 이겨 내는 조각배처럼, 두 눈을 꾹 닫고서 솟구치는 정념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조바심 가득하게 성내고 채근할 뿐.
“그게, 그렇게 싫어요……? 고작 나 한번 불러 주는 게. 그것마저 그렇게 못 할 짓이냐고!”
“…….”
“하, 진짜 재진 씨 모질다……. 가혹해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그러지? 난……. 됐어, 하지 마. 다 필요 없어.”
“…….”
“내가…… 내가 부르면 돼. 권재진 이름, 내가 부를 거니까.”
“…….”
“재진 씨. 재진…… 크흑, 재진 씨. 아, 후큿! 권재진, 권재진……!”
턱없이 모자란 갈증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서의우가 백탁액을 뿌렸다. 권재진의 뺨과 눈가에 그가 흘린 흔적이 지저분하게 남았다.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정액이 불쾌했다.
그렇지만, 어찌 된 일인지 권재진보다도 서의우가 더욱 불쾌한 눈빛을 내보이고 있었다.
사정은 했다지만 서의우는 아무런 감흥도 없어 보였다. 도리어 끔찍하고 추잡스러운 경험을 했다는 듯 수려한 미간을 형편없이 일그러뜨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의 회색 눈동자가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이리저리 이지러졌다. 환상 같은 불꽃이 튀어 오르고 넘실거리고, 그러다 훅 꺼졌다. 눈꺼풀을 감아 버린 서의우가 끓어오르는 신음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조금도 채워 넣지 못한 욕망의 빈자리가, 정액 얹힌 권재진의 얼굴을 보고서 또 불이 붙을까 봐.
서의우는 미끄러지듯 침대에 쓰러져 재진을 끌어안고 누웠고, 권재진은 얼굴의 끈적한 것을 이불보에 대충 문질러 닦아 낸 뒤 모른 척 그를 무시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뱃가죽이 반대로 뒤집히는 것 같았다. 몸속 내장이 밖으로 끄집어져 나오고 피부가 속으로 딸려 들어가고, 창자가 꼬이고, 아랫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서의우의 표정과, 눈빛과, 목소리. 권재진을 갈급히 탐하던 부름. 모든 것이 한데 뒤죽박죽 섞여 엉망진창이었다.
다리 사이가 불편했지만, 권재진은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애써 시선을 돌렸다. 벽을 멀뚱히 쳐다보면 서의우가 이능을 조절하지 못하고 분출했을 때 크게 갈라져 흠집 난 구석이 보였다.
돌이킬 수 없어 보일 정도로 커다란 균열에 시선을 두고서 재진은 시간이 흐르기만을 숨죽이고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 해가 떠오르고 날이 밝아 올 것이다.
그러면, 서의우와 한데 얽혀 있을 필요도 없고,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할 필요도 없고, 아래 사정도 수그러들 테고, 그리고…… 그리고…….
씨발…….
***
서의우와 권재진, 두 사람이 냉전 상태에 돌입한 지 어언 몇 주가 지났다.
기존의 일상은 완전히 붕괴했고 위태로운 긴장만 남은 고된 하루가 계속되었다.
권재진은 먹거나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침실에 붙박이처럼 틀어박혀 있었고, 끼니를 때울 때조차도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닌 서의우의 간이 식량이나 대충 뜯어 먹어 배를 채웠다.
서의우는 이것저것 요리한 음식을 권재진에게 먹이려 들었지만 권재진은 무엇이든 일체 거부했다.
어째 서의우와 권재진의 역할이 반전된 모양새였다.
자지도 먹지도 않던 서의우의 행적을 권재진이 이어받고, 서의우를 재우고 먹이려 들었던 권재진의 행적을 서의우가 계승한 꼴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은 깊어지고 감정은 피폐해졌다. 그렇대도 다른 방도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은 있는 법이기에.
서의우는 권재진을 죽일 수 없고, 권재진은 가족을 외면할 수 없다.
이는 서의우와 권재진 모두에게 질 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렇기에 피차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한 양상으로 접어들 따름이었다. 나날이 승자 없는 헛된 싸움만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은 무참히 흘러만 갔고, 계절도 어느덧 혹독한 겨울로 접어들었다.
아침마다 창밖에 하얗게 서리가 끼고 간혹 싸라기눈이 내렸다. 쌓이지 않고 금세 녹아 버리는 눈을 보며 권재진은 덧없는 허무를 느꼈다.
쳇바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무의미한 대립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치기만 할 따름이지…….
“……대체 언제까지 고집부릴 생각입니까.”
이른 아침.
밤잠을 설치고 새벽녘부터 깨어 있던 재진이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권재진는 이불 속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고, 서의우는 그 이불 덩어리를 두 팔로 단단히 끌어안고 있었다.
필시 그도 깨어 있으리라.
가이딩이 끊기자 서의우의 뿌리 깊은 불면이 다시 도졌다. 아니, 가이딩 부족이 원흉인지 권재진과의 냉전이 원흉인지는 모르겠다만. 권재진이 밤잠을 설치는 이상으로 서의우는 잠들지 못했다.
서의우가 흠칫 놀랄 정도로 거칠고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권재진이 억지 부리는 것 멈추면.”
그는 마치 덫에 걸려 허기지고 살기 어린 짐승 같아 보였다.
그것도 심지어는 눈앞에 군침 도는 먹이를 달아 놓고서 수십 일을 굶주린 맹수였다.
그토록 갈구하는 자신의 가이드를 지척에 두고서, 손 뻗으며 닿을 수 있는 상황에 이렇게까지 참아 낸다는 게…… 권재진으로서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할 영역이었다.
지난 몇 주가 지나도록 서의우는 단 한 번도 권재진에게 가이딩을 요구하지 않았다. 물론 강요하지도 않았다.
불과 며칠도 못 버티고 본능에 무너져서 가이딩하자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예상이 처참히 빗나간 셈이다.
때로는 그가 애새끼처럼 보일 때도 있고, 개새끼처럼 보일 때도 있다만, 사실 서의우는 고도의 훈련을 거친 정예 각성자 특수부대 군인이었다.
평생토록 그의 심연 속에 괴물 같은 힘을 가라앉혀 억눌러 왔고, 그 강인한 정신력은 권재진이 기대한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경지였다.
이쯤 시간이 흐르면 실수로라도 건드릴 법한데 서의우는 요지부동이었다. 서의우는 참지 못할 때가 오면 권재진을 보고 자위했고, 그걸로도 모자라면 손가락 관절을 하나 빼내 고통으로 격정을 이겨 냈다.
그야말로 대단한, 상식을 초월한 미친 새끼가 아닐 수 없었다.
“하…… 서의우 씨에게는 가이딩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저라면 이럴 시간에 기억 복원할 연습이라도 하겠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권재진이 한발 물러설 수밖에.
서의우의 대답을 기다리겠다고 선언해 놓고서 기다리긴커녕 조바심에 말꼬를 튼다. 서의우가 냉막하게 대꾸했다.
“그러게요. 재진 씨 말도 일리가 있어. 연습하면 일말의 가망이라도 생길지 모르죠.”
“근데 왜……. 왜 이러는 겁니까.”
“왜겠어요.”
서의우가 얼어붙은 회색 눈동자를 돌려 권재진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권재진과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영혼이 죽어 버린, 시체다.
“응? 왜겠냐고.”
서의우가 이능을 사용했다. 염동력이 권재진의 이불을 걷어 냈고 재진의 목을 건드렸다.
보이지 않는 힘이 권재진의 목덜미를 스스럼없이 압박하고 짓눌렀다.
서의우는 권재진과 접촉할 수 없지만, 그의 이능으로는 재진에게 충분히 원하는 만큼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가이딩이 이뤄지지 않도록 서의우는 몇 주간 이런 방식으로만 권재진을 만졌다.
이런 건 만졌다고 표현할 수도 없지만…….
“으윽.”
목이 눌린 재진이 신음을 삼켰다. 서의우가 까딱 이능을 조절하지 못하면 이대로 목뼈가 부러진대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보이지 않는 힘이 권재진의 살갗을 타고 긁듯 목에서부터 턱, 그리고 뺨으로 기어올랐다.
“서의우, 그만…….”
서의우는 위협적이었다. 위압이 넘치고 권능이 무게를 더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이능에 권재진의 볼이 짓눌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얼굴이 베개에 파묻히고 머리카락이 그 위로 흐트러졌다.
“그만합시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고요.”
권재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하얀 이불 속에 말려 있던 팔을 밖으로 끄집어내서 서의우에게로 천천히 가져댔다.
“이렇게까지, 계속 이럴 필요 없잖습니까. 제가 가이딩 해 드릴 테니…… 서의우 씨도 하나는 포기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