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 (46)화 (46/154)

#46

서의우가 피식 미소 지으며 이능을 사용해 몸을 띄웠다. 권재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천장까지 느긋하게 올라서서는 눈높이를 맞추고 물끄러미 보았다.

권재진은 힘겹게 창틀을 타고 오르느라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짙은 흑발이 촉촉하고, 숨도 헐떡이고 있고, 얼굴도 상기되어 있다. 당장에 서의우가 손을 뻗어 만지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생김새였다.

“부족한 것 없이 다 설명했잖아요. 재진 씨는 돌연변이고, 내 가이드라고. 여기서 나랑 가이딩 해야 하는 거라고요.”

“그걸 지금 저더러 아, 예. 하고 받아들이란 겁니까? 좆 박히면서? 씨팔 진짜 염병……. 나갈 겁니다. 가이딩, 그 개좆 같은 가이딩 더는 못 합니다.”

“개좆……? 대체 뭐가 그렇게 재진 씨 마음에 안 들었을까……. 나, 난 너무 좋았는데요. 정말 좋은데. 지금도 그렇고…….”

서의우가 팔을 뻗어 권재진의 이마에 손을 댔다. 맺힌 땀방울을 손끝으로 닦아 주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쥐었다. 권재진은 서의우와의 접촉이 혐오스럽다는 듯 질색했지만, 천장에 매달린 지금은 그를 떨쳐 낼 수 없었다. 손에서 힘이 빠지면 곧장 아래로 추락할 터다.

“재진 씨는 가이드잖아요. 가이딩은 가이드의 의무고. 그 정도는 아무리 재진 씨라도 알 텐데요.”

“윽, 씹…….”

권재진은 창틀을 타고 도로 땅으로 내려가고자 팔뚝을 움직였다. 팽팽하게 부푼 근육이 위태롭게 삐걱거렸다. 재진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조금씩 벽 쪽으로 이동했다. 그와 상반되게도 서의우는 너무나 편안한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 재진을 쫓았다.

“아니면, 재진 씨는 하나뿐인 목숨이 소중하지 않은 건가요. 죽어서라도 제6 거주지구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서의우가 권재진의 뺨을 쓸었다. 재진은 이를 악물고 집중하느라 성가신 손길을 떨쳐 내지도 못하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재진이 피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자 서의우는 더욱 대담하게 손을 놀렸다. 그의 등 뒤에서 껴안듯이 허리를 안고서는 셔츠를 젖혀 안쪽으로 손목을 밀어 넣었다.

다급히 오르내리는 복근을 더듬어 대면서 서의우는 빠듯하게 차오르는 만족감에 두 눈을 내리깔았다. 회색 눈동자가 제멋대로 일렁거렸다.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꼭 돌아가야만 하겠다면…… 나는요, 권재진 씨 묶어 두는 수밖에 없어요. 수갑, 수갑 같은 거 괜찮아요?”

“미, 미친 새끼.”

“임무 다녀올 동안 재진 씨 입에다 재갈 물리고 침대에 묶어 두는 거예요. 귀가 후에 식사 먹여 주고, 화장실 보내 주면 되지 않겠어요? 일단 소변줄은 달아 둘 테니까요. 아무 걱정 마요.”

그 말에 가까스로 유지하던 권재진의 집중이 깨졌다. 창틀을 쥔 손이 미끄러지고 천장에 붙어 있던 몸이 아래로 훅 떨어졌다.

“아, 저런.”

권재진의 허리를 잡아 쥔 서의우가 그와 함께 떠올랐다.

자칫 바닥에 추락해 크게 다칠 뻔한 재진이 눈을 부릅뜨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헐떡거리는 그를 서의우가 다정하게 매만졌다. 셔츠 속에 깊게 파고 들어간 손바닥으로 권재진의 옆구리를 쓸어내렸다.

“괜찮아요. 내가 잡았어. 그래도 위험하니까 다음엔 저기 올라가지 말아요. 어차피 재진 씨는 저거 창문 못 열거든요.”

“허억, 헉…….”

“그래서 대답은요? 수갑 어때요. 별론가.”

권재진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창백한 얼굴로 서의우를 보았다. 어둠을 닮은 칠흑 같은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증오와 기막힘, 억울함,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놈을 볼 때 느끼는 두려움이었다.

겨우 진정한 재진이 서의우의 멱살을 틀어쥐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는, 전…… 서의우 씨 못 믿습니다. 당신 제정신 아닙니다. 수갑이니 뭐니, 그딴 말을 내뱉는데 어떻게 믿으라고. 돌연변이 가이드인지 그것도 서의우 씨가 지어낸 거짓말일지 어떻게 압니까.”

“네……?”

“이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을 찾아 물어보든가, 아니면 센터에 직접 가서 도움을 요청할 겁니다. 서의우 씨가 하는 말은 조금도 신용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니, 재진 씨…… 정말인데요. 발각되면 사살당한다니까요……?”

“설령! 설령 그 말이 진짜라고 해도. 제가 돌연변이 가이드라 해도. 저는, 서의우 씨와 가이딩 따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딴, 짓거리를, 씨발…… 으윽, 남자끼리. 역겨워.”

“…….”

“저도 물론 에스퍼에게 가이딩 필요한 건 알고 있습니다. 가이드의 의무인 점도 압니다. 그런데, 왜 하필 제가, 왜…… 다른 정식 가이드 많잖습니까! 부탁이니 제발 그들에게 요구하십시오. 저는, 씹, 더는…… 더는 끔찍하단 말입니다…….”

“재진 씨…….”

“제발 부탁입니다. 서의우 씨. 저 좀 돌려보내 주십시오. 제가 있던 곳으로, 제6 거주지구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부디, 예?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해도 정말 안 되는 걸 어떡해요…….”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가겠다는 건데 왜 안됩니까! 저는 제6 거주지구가 고향입니다. 무단으로 결근했으니 회사도 가 봐야 하고, 집, 집에도 가 봐야 하고…….”

검은 전투복을 틀어쥔 재진의 주먹이 미세하게 부르르 떨렸다. 억누르려 하지만 억눌리지 않은 분이 전해졌다.

재진은 턱을 세게 물고 눈가를 깊게 일그러트리다가, 가장 꺼내기 싫은 밑바닥을 들추듯 괴롭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족…….”

“…….”

“가족에게도……. 제가 돌아가 봐야 합니다.”

각성자는 태생부터 선별, 격리되어 특수 거주지구에 모여 살아간다. 그들은 평생 가족이란 테두리에 소속되지 않고 단일 독립 개체로 살다 홀로 사망한다. 그렇지만 일반인은…….

일반인 출신 권재진에게는, 서의우와 달리…….

***

고요히 타오르던 벽난로 속 불꽃이 너울 치며 가라앉았다.

수그러드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대기를 타고 불온한 진동이 전해지며 심상치 않은 전조를 보였다. 그 순간, 암흑이 내리 앉았다.

정전이다.

차단기가 내려갔는지 새로이 옮긴 산속 별장 저택이 어둠에 휩싸였다. 거실 천장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붙은 전등이 차례로 꺼지고 칠흑 같은 베일이 눈을 가렸다. 온 사물이 흐릿한 윤곽만 보일 뿐, 실체는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 가운데, 서의우가 고개를 들었다.

이능에 전념하여 굳은 눈가에 야성적인 안광이 번뜩였다. 그 회색 눈동자는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짐승의 눈을 닮아 있었다.

“……하.”

짧은 호흡을 끝으로 서의우가 손을 거두었다.

권재진의 이마 중앙에 가볍게 닿아 있던 손끝이 서서히 떨어지고 그의 안을 파고들었던 힘도 모조리 거두어졌다.

서의우의 길고 얇은 속눈썹이 한차례 땅을 보더니만, 이윽고 의미 모를 찡그림과 함께 흔들렸다. 자조적인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사이, 전력이 복구되고 죽었던 전등에 하나씩 빛이 돌아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진 거실 가운데서 정신이 든 권재진이 찬찬히 눈을 뜨고 그를 응시했다.

“서의우 씨, 이제 끝났습니까? 벌써 기억을 다 읽은 겁니까.”

권재진이, 정확히는, 2회차 권재진이 의아하게 물었다.

서의우는 대꾸 없이 침묵을 지키다가 가볍게 픽 웃어 버렸다.

“아니요.”

돌아온 대답은 짧았고, 설명도 턱없이 부족했다.

권재진을 보고 살그머니 휘어 웃는 눈웃음은 여전히 다정하고 열렬해 보였다만 그전과 똑같지는 않았다.

“……?”

설명을 요구하며 지그시 저를 바라보는 재진의 모습에 서의우는 기어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하하.”

“뭡니까. 왜 그러는 겁니까?”

“아……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예? 무슨 말입니까 그게. 제 기억을 보긴 한 겁니까? 아니,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이럽니까.”

“으응, 그게요…….”

서의우가 가만히 손을 뻗어 재진의 머리를 매만졌다. 커다란 손바닥으로 짙고 까만 흑발을 침착하게 쓸어 넘겼다. 그러고도 모자라 동그란 귓바퀴를 엄지로 살살 훑으며 미소 지었다.

“재진 씨 기억은 얼마 못 읽었는데요, 그것보다 음. 조금, 재진 씨가 들으면 놀랄 일이 하나 있어서요. 집중이 안 될 것 같아 이능을 거두었어요.”

“예? 뭔…… 똑바로 설명 좀 하십시오.”

“내가 말해도 되는 걸까. 모르겠네.”

“서의우 씨.”

“네, 재진 씨.”

“서의우.”

“네…….”

권재진이 서의우를 정면에서 맞서듯 바라보았다.

단단한 검은 눈동자와 위태롭고 서늘한 회색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침묵과 함께 내리 앉은 불안감이 경종을 울렸다.

권재진은 낮게 내리깔리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고, 볼멘소리로 속삭였다.

“저기, 제 기억에서 무얼 봤는지, 제가 들으면 놀랄 일이 뭔지 모르겠고 지금 전혀 짐작도 안 됩니다만, 뭐든 그냥 말해도 될 겁니다. 애초에 제게 찝찝한 게 있었으면 서의우 씨에게 머리통 내주지도 않았을 거고요.”

“……네.”

“솔직히 서의우 씨가 이러니까 좀 웃기네요. 지금 와서 뭘 내외하고 가립니까? 이미 볼 꼴 못 볼 꼴 다 보인 사이에…….”

“…….”

“아니, 이보세요 서의우 씨. 전에 제가 말한 적 있지 않습니까? 나 좀 믿으라고. 봐주는 거 말고, 믿어 달라고. 기억 안 납니까?”

“……기억나요.”

“그런데 왜 뭘.”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