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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 (44)화 (44/154)

#44

서의우가 입 안을 잘근거렸다. 그래도 상념이 끊이지 않았다. 선홍빛 입술을 씹는 걸로도 모자라 길고 모양새 예쁜 손가락을 죄다 물어뜯으면서도 서의우는 계속해서 권재진의 생각을 했다. 그의 하얀 허벅다리를 한계까지 벌리고 짐승처럼 처박아 대는 생각. 퉁퉁 붓고 새빨개진 내벽에 자지 모양대로 멍 자국이 남도록 때려 넣는 생각.

미친 충동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서 그만 정신이 회까닥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이런 천박한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낯설고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충동을 자제하기도 어려웠다.

‘그 좁고 귀여운 점막에, 생자지 깊게 파묻고 좆물을 잔뜩, 가이딩을……. 나랑 가이딩을…….’

으으, 역겨워…….

본능밖에 남지 않은 짐승 새끼 같다.

서의우가 힘주어 손가락을 세게 물어뜯었다. 그의 매끈한 턱 아래쪽에 핏대가 섰다. 콧잔등에 생긴 주름으로 보아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그의 신체 반응은 정직했다.

여전히 아랫배에 피가 몰리고 단전까지 뜨겁게 달았다. 옷으로 감추지 못할 정도로 크고 두꺼운 좆이 단단하게 부풀어서 서의우가 굵은 눈썹을 난폭하게 일그러트렸다.

‘안 되겠다.’

등을 노리고 날아오는 박쥐 크리처의 발톱을, 서의우는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등껍질을 베이고 피를 흘리며 고통으로 상념을 떨쳐 냈다. 아직 게이트의 코어에 도달하려면 먼 길이 남아 있었다.

***

안타깝게도, 권재진은 힐링 팩터 사용법을 몰랐다.

아니, 힐링 팩터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서의우는 분명 재진이 깨어난 뒤 힐링 팩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침대 머리맡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놓아두고 임무에 나갔는데, 다녀와 보니 권재진은 스스로를 치료하기는커녕 상처투성이 반병신이 된 모습 그대로 소총을 손에 쥐고 주저앉아 있었다.

“재진…… 재진 씨, 거기서 뭐 해요?”

귀가 직후 마주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서의우가 말간 눈을 두어 차례 깜빡였다. 권재진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해되지 않는 일투성이였다.

“……서의우?”

권재진은 상처 입은 동물처럼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거실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의 목 주변에 손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서의우에게 몇 번이고 거듭해 목을 졸린 흔적이 처참했다. 게다가 다리를 절고 움직임도 어색한 걸 보니 엉덩이 쪽 찢어진 환부도 그대로 방치해 놔둔 모양이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건 권재진의 차림새였다. 서의우가 벗겼던 정장을 도로 주워 입고 목 끝까지 단추를 채워서 단정해 보였다. 자세히 보면 정장과 셔츠 전부 구깃구깃하긴 하지만 말이다.

권재진은 몹시 경계하는 눈빛으로 서의우를 바라보았다. 소총을 쥔 팔에 잠시 힘을 주다가 차마 사람을 향해 발포하는 비인간적인 짓은 할 수 없어 그대로 멈추었다.

“서의우 씨. 저는 가이드가 아닙니다. 가이딩 될 리도 없고, 된다 해도 뭔가 착오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제6 거주지구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서의우가 없는 집 안에서 홀로 깨어난 권재진은 당연히도 가장 먼저 이곳에서 도망치고자 했다. 저택 곳곳을 돌아다니며 출구를 찾았고, 온 곳의 문이 죄다 생체 인증을 거쳐야만 개폐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탄식했다.

갇혔다. 권재진은 갇힌 것이다.

울분에 찬 재진은 탈출 방법을 바꾸어 서의우의 드레스룸에 진열된 총을 장전하고 통유리창에 대판 총알을 갈겨 댔다. 물론, 그런들 방탄 유리창은 깨지지 않았다.

저 유리를 깨부수려면 크리처가 나타나거나, 게이트가 터지거나, 서의우가 이능을 쓰거나 셋 중 하나는 해야 될 터였다. 바닥에 떨어진 탄피가 번잡스럽게 굴러다녔다.

“잠깐만요. 그거, 창문 깨려고 한 거예요? 아니 대체 왜 그러고 있어……. 일단 치료부터 해요.”

서의우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올린 뒤, 당장에 힐링 팩터를 꺼내 재진의 핏줄에 박아 넣어 주려 했다.

“이리 와요.”

“아니, 오지 마! 멈추십시오. 거기서 얘기합시다. 다가오지 말라니까……!”

권재진이 불안한 시선으로 네모난 케이스에 담긴 파란 약물을 노려보았다. 힐링 팩터의 존재를 모르는 권재진은 당연히 서의우가 자신에게 이상한 것을 주사한다고 생각했고, 격렬히 저항했다.

재진이 총신으로 서의우의 팔을 후려치고 거실 구석 안쪽으로 다급히 물러섰다. 서의우는 느긋한 걸음으로 그를 뒤쫓아서는 품 안에 꽉 끌어안았다. 버둥거리는 몸을 진정시키듯 다정하게 등을 쓸어 주고 위로하며 달랬다.

“으, 어떡해. 내가 신경 썼어야 했는데…… 너무 급했나 봐요. 하아, 속상하게…….”

“필요 없……! 됐습니다. 이거 놓으십시오.”

“재진 씨, 내가 잘할게요. 재진 씨는 이제 내 가이드니까.”

서의우가 힐링 팩터 뚜껑을 비틀어 따고 멍 자국이 남은 권재진의 목덜미에 주삿바늘을 정확히 꽂아 넣었다. 권재진은 사색이 되었고, 일순 절망스러운 눈빛마저 보였다.

“이거…… 뭡니까. 지금 저한테 뭘 주사한 겁니까.”

재진이 바늘 박힌 목을 문지르며 냉정하고 싸늘한 목소리로 서의우를 추궁했다. 서의우는 어린아이를 상대로 설명해 주듯 차분하게 답했다.

“재진 씨, 힐링 팩터 모르나요?”

“힐링 팩터가 뭡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 자가치유력을 높이는 약물이요. 권재진 씨 쓰라고 침대맡에 놓고 갔는데…….”

권재진의 눈빛이 생생해졌다. 돌이켜 보니 침대맡에 파랗고 네모난 물건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서의우는 재진을 어르고 달래듯 등을 도닥이고 쓸어내리며 나직하게 속살거렸다.

“다음부턴 꼭 써요. 나랑 가이딩 할 때마다 몸 다치니까요.”

“다음?”

“저기, 그나저나 저 좋았어요, 정말…….”

서의우는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중얼거리며 권재진의 얼굴을 손안에 가득 감싸 쥐었다. 재진의 뺨을 어루만지며 그에게로 바짝 몸을 붙였다.

가뜩이나 거실 구석으로 물러서 있던 권재진은 독에 갇힌 쥐 신세가 되어야 했다. 도망칠 틈이 없어진 재진은 저를 뒤덮은 서의우의 새까만 그림자를 올려다보며 눈살을 일그러트렸다.

“내 가이드…… 드디어…… 너무 좋았어요, 이런 건 처음이에요. 가, 가슴이 막 벅차요. 기뻐서. 어떡하죠?”

서의우가 쌍꺼풀 없는 기다란 눈을 휘어 웃으며 권재진의 뺨을 쓸어내렸다. 눈웃음은 천진하고 손길은 애틋했다. 누가 보면 고백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나요, 정말로요, 오늘 하루 내내 권재진 씨 생각만 했어요.”

“윽!”

권재진이 대놓고 기피하며 손을 떨치려 고개를 저었지만 서의우는 끈질겼다. 성가시게 볼을 주무르고 귀를 조물조물 건드리더니만 급기야 입술 안까지 손가락을 밀어 넣으려 했다.

“가이딩 해요, 우리.”

“아니, 정말, 적당히 좀 하십시오!”

재진이 그의 손가락을 씹어 뱉었다. 그리고는 소총 방아쇠에 검지를 걸고서 서의우를 겨냥해 들어 올렸다.

“싫습니다, 그딴 짓 두 번 다시는 안 합니다.”

위협하듯 총구를 들이대면서 권재진은 서의우를 죽일 것처럼 으르렁댔다.

“돌려보내라고…… 그렇게 말했을 텐데. 서의우 씨, 다치기 싫으면 당장 절 여기서 내보내 주십시오.”

“안 돼요. 못 내보내요.”

서의우는 총이 겨눠지는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띠었다. 그의 눈에는 평생토록 단 한 번도 살아 있는 생명을 향해 발포해 본 적 없는 권재진의 얕은 배짱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랬다가는 재진 씨 죽거든요.”

서의우가 살살 눈웃음 지으며 제게 겨눠진 기다란 총구 끝에 느른하게 입을 맞췄다. 혀를 내어 슬쩍 핥는 시늉까지도 해 본다.

곧이어 보이지 않는 힘이 권재진의 손목을 잡아 붙들었고, 총을 쥔 손가락이 저절로 하나씩 펼쳐졌다. 새끼손가락부터 차례로 들리고 소총이 툭 떨어졌다.

서의우는 권재진이 떨어트린 총을 한 손으로 받아 뒤쪽으로 멀찍이 던져 버린 후, 재진의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살거렸다. 격정 어린 회색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들거렸다.

“일반인의 삶을 고집하고 싶단 건 알겠지만 되돌아갈 수 없어요. 재진 씨는 이제 가이드니까.”

“방금 무슨, 왜……. 손이, 멋대로. 서의우 씨가 이런 겁니까?”

“재진 씨. 상황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전혀 모르겠나요? 아예 짐작조차 못 하겠어요……?”

서의우는 재진의 손을 잡아 붙들었던 염동력을 풀어 주고 느긋한 손길로 그의 넥타이에 검지를 걸쳤다. 천천히 잡아 내려 타이를 풀어 헤치고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끌렀다.

“재진 씨는 돌연변이에요.”

끝을 모르고 깊어진 회색 눈동자 너머에 그의 심연이 느껴졌다.

본능을 집어삼킨 희열이 하얗게 들끓는다.

“돌연변이가 뭔지 모르죠? 출생 직후 각성하지 못하고 권재진 씨처럼 뒤늦게 각성한 에스퍼나 가이드를 그렇게 불러요. 통제 불가능한 위험 인자라고.”

권재진은 그제야 비로소 서의우의 전능함을 체감했다.

총을 들어도 염동력에 가로막혀 버린다면, 구태여 반항하는 의미가 없을 터. S급 에스퍼의 강대한 이능을 상대로 부질없는 발버둥을 치는 건 체력적인 낭비일 뿐이었다.

권재진은 차라리 서의우의 이야기를 좀 더 캐묻기로 했다. 무력한 상황에 부닥쳐 느끼는 자괴감과 서의우를 향한 혐오로 굳은 얼굴을 들고 딱딱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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