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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 (40)화 (40/154)
  • #40

    권재진이 흐으으, 하고 괴롭게 앓으며 울먹임을 삼켰다. 잔뜩 일그러진 눈썹은 펴질 기미 없이 구겨져 있었다. 더 끔찍한 건, 물줄기를 흘리는 동안에도 서의우가 허리 짓을 멈추질 않았다는 점이었다.

    도리어 더욱 흥분한 그가 수치심에 좁게 수축한 내벽에 대고 깊숙하게 허리 짓 했다. 배 속에 그득하게 담고 있던 욕망을 모조리 끄집어내 자유롭게 풀어 놓은 것처럼 날뛰었다.

    서의우가 안쪽을 쑤실 때마다 권재진의 좆 끝에서 터진 물 분수가 툭툭 끊어졌다. 몇 차례에 거쳐 분수를 토해 낸 재진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진득하고 음험하고 기묘한 절정에 달했다. 서의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제야 비로소 만족한 듯, 권재진의 속살에 담뿍 자신을 욱여넣고 백탁액을 뱉어 냈다. 그는 진정으로 권재진의 몸을 집어삼킨 것 같았다. 독점하고 틀어쥔다.

    “하…….”

    길고 깊은 한숨을 내뱉은 서의우가 재진의 얼굴을 다정하게 쥐어 돌렸다.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태연스레 웃으며 재진의 입술에 키스했다. 힘이 빠져 늘어진 권재진은 헐떡이면서 겨우 입맞춤을 받아 냈다.

    “……재진 씨, 이래도 안 될 것 같아요? 나는 안 돼……?”

    서의우는 기분 좋은 설렘을 견디기 힘든 듯, 분홍빛 복숭아를 닮은 강아지의 얼굴로 권재진의 아랫입술을 핥았다. 서늘하게 반짝이는 회색 눈동자가 매혹적이고 미려했다.

    전능하고 아름답다.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게끔 단단히 미쳐 돌아 있고, 권재진은 그런 서의우에게 진즉 휩쓸려 버린 피해자였다.

    1회차 서의우도 그랬지만, 2회차 서의우도…… 권재진을 도통 가만 내버려 두질 않는다.

    “아…….”

    이 새끼를 어쩌면 좋지…….

    우리 애…… 정말 어떡하면 좋지…….

    “하아, 재진 씨 눈…… 검은 자는 깊고 흰자는 투명해요. 지금 눈물로 젖어 있고……. 핥아도 그다지 안 아플 거예요.”

    “…….”

    “이상한 거 아니에요. 나랑 같이 하는 거잖아요. 다 좋은 거예요.”

    “우, 으…….”

    “자, 가이딩 해요.”

    서의우가 재진의 눈꺼풀에 입 맞췄다. 그의 입술과 눈물 젖은 속눈썹이 마주쳤고, 재진은 끅끅거리며 눈가를 부들부들 떨었다.

    씨발 새끼. 개씨발 개새끼. 서의우 씨발놈 미친 새끼.

    비슷한 욕을 머릿속으로 저주처럼 반복해 중얼대며, 재진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지켜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한 허락이었다.

    물론 서의우는 권재진을 늘 집착적으로 뜯어보고 있기에 그 고갯짓을 바로 알아차렸다.

    “눈 떠요.”

    권재진이 파르르 눈꺼풀을 치켜들었다.

    어쩌면 돌연변이 가이드의 삶은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가이드의 가이딩도 아니고, 일반인도 애정 표현도 아닌,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뭔지 모를 엉망진창인 집합체인 걸지도.

    서의우가 재진의 눈 점막에 키스했다.

    그러고는 젖어 있는 점막을 혀로 살짝, 무척이나 정중하고 부드럽게 핥았다.

    분명 눈알이 좀 시큰하고, 이물감이 느껴졌고, 권재진의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접촉이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덮어놓고 싫어할 정도로 끔찍스러운 건 아니었다.

    서의우가 얼굴을 붉히며 뛸 듯이 기뻐했고, 곧바로 재진의 입술에 연이어 키스해 줬기에 괜찮았다.

    ***

    길지도 짧지도 않은 평온한 날들이 지났다.

    겨울의 초입. 색색의 낙엽이 지고 앙상하게 남은 검은 가지가 제각각 하늘을 향해 팔을 뻗는 어느 밤.

    권재진은 새로 옮긴 숲속 별장의 번듯한 우드톤 거실에 앉아 있었다.

    이 저택에는 무려 흰색 벽돌을 쌓아 올린 훌륭한 벽난로가 있다. 장작을 사용하는 구식 벽난로가 아니라, 인테리어용으로 가스를 사용하는 신식 벽난로다.

    권재진의 왼편에서 벽난로가 불꽃을 피웠고, 앞에서는 커다란 대형 스크린 TV가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서의우가 있었다.

    재진이 베이지색 소파에 편안히 등을 기대어 뉴스를 시청하는 동안, 서의우는 오른편에서 그런 재진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가을을 떠나보내고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두 사람은 나름의 형태로 굳어진 관계에 정착했다.

    ‘이 관계는 대체 뭘까.’

    권재진은 두 사람의 관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정짓지 않았다.

    사실은 규정지을 수도 없었다.

    ‘전형적인 에스퍼와 가이드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형적인 애인 관계도 아니고, 비즈니스 파트너 동료도 아닌 것 같고…….’

    따져 보면 어느 것도 아닌 애매한 반쪽짜리다.

    불안하고 위태로워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권재진은 현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까지 생각하면서.

    1회차 서의우와 달리, 2회차 서의우는 재진에게 후회할 과거도 없고 뉘우칠 과업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밝고 눈이 부셨다.

    때때로 보이는 서의우의 스무 살 같은 표정이 좋았고, 4년 뒤의 미래를 궁금해하며 조금 안달 내는 점도 귀여웠다. 가이딩은 그전보다 몇 배는 거칠어졌지만, 그것도 적응되니 나름대로 꽤…… 솔직하게 싫진 않았다.

    <난 권재진 씨 어디에 뭘 해 대든 다 좋아 죽겠는데. 재진 씨는 아닌가요?>

    서의우는 뭘 하든 다 좋다고 했고, 권재진도 얼추 그렇게 되어 가는 중이었다.

    여생을 서의우와 단둘이 이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그것도 썩 나쁘지 않은 삶일 것 같았다. 그러길 원했다.

    “……서의우 씨.”

    권재진이 지나가는 투로 서의우를 불렀다.

    왠지 모르게, 생각을 거치지 않은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제 기억 말입니다. 아직도 보고 싶습니까?”

    벽난로에 타오르는 흰 불꽃이 재진의 동공에 반사되어 비쳤다. 깊고 새까만 눈동자가 어슴푸레 파르라니 빛났다.

    오랜 세월, 권재진의 평생에 걸쳐 가슴에 쌓아 온 댐이 허물어진 기분이었다. 불가능하리라 믿었던 많은 것이 가능해졌고, 딱딱하게 굳은 고정 관념과 사고방식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녹아내렸다.

    이것저것 따지고 생각하고, 기준을 정해서 까다롭게 굴고, 일반인이니 각성자니, 상식이니 몰상식이니 선 긋고 밀어 내고…… 그런 짓, 그만하고 싶었다.

    혼자 고뇌하는 건 충분히 한 것 같고, 이제는 아무래도 서의우에게 한층 더 속을 터놓아야 할 때 같았다.

    서의우가 권재진에게 바라는 것 역시 그것일 테고 말이다.

    서의우가 계속 재진에게 이것저것 질문하고, 관찰하고, 시도하는 건 권재진이 아직 서의우에게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 주지 않았기 때문일 터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무리하게 권재진을 파고들려 하는 것이고, 권재진을 허물어트리려 하는 것이다.

    “그럼요. 물론이죠.”

    서의우가 즉시 대꾸하며 재진을 올려다보았다.

    “난 재진 씨 다 알고 싶어요.”

    청순한 대형견을 닮은 앳되고 수려한 얼굴에 오롯한 열망이 떠올라 있었다. 오직 권재진 한 사람에게만 쏟아지는 절대적인 갈망이었다.

    “……그전에 먼저 서의우 씨가 들어 둬야 할 사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네, 뭔데요?”

    서의우가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권재진의 옆자리에 바로 붙어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재진의 얼굴을 핥듯이 맹렬하게 바라보았다.

    재진이 한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러니까 저희는, 사실 첫 만남이 그리 바람직하지 못했습니다. 본래 저는 서의우 씨를 굉장히 증오했고, 가이딩도 극렬히 거부했었습니다.”

    이제는 다 지나 버린 과거가 되었고,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되새겨 보니 착잡하고 씁쓸했다.

    “거의 3년 동안 저희는 외줄 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싸웠고, 서로가 원치 않는 짓만 골라 했습니다. 서의우 씨는 저를 수갑으로 묶었고, 저는 뭐…… 숱하게 탈출 시도했습니다. 죽으려고도 했고.”

    4년간 응축되었던 당시의 감정이 아직도 권재진의 내면에 쌓여 있는 모양이다. 머릿속이고 가슴속이고 새까맣게 눌어 버린 자국처럼 들러붙어 잊히질 않았다.

    이런 과거는 서의우의 말마따나 기억을 통째로 들어내 삭제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언제까지고 권재진의 주위를 메아리처럼 맴돌 것이다.

    권재진이 아직도 이따금 1회차 서의우의 생각을 하고, 그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처럼…….

    “그 당시 저와 서의우 씨는 정말이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전쟁이었습니다. 그런 과거라도 보고 싶은 거면, 봐도 됩니다.”

    권재진이 각오를 다진 눈으로 담담히 서의우를 마주 보았다.

    서의우는 권재진의 이야기를 듣고 아주 미세하게 동요한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는지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난, 상관없어요. 보고 싶어요.”

    하긴, 권재진의 성격이나 상황을 미루어 봤을 때,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어땠을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는 뻔한 문제다. 서의우도 둘의 만남이 평탄하지 않았을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을 터다.

    자기 자신이 미래에서 눈물 흘리며 무릎 꿇고 빌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눈치챘을 테고, 하물며 2회차 서의우와 권재진의 만남조차 초반엔 그리 잘 굴러가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어렵지 않게 정답을 도출해 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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