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배고팠어요? 왜 그렇게 급히 먹어요.”
서의우가 불룩하게 나온 재진의 볼을 손끝으로 슬쩍 건드렸다. 권재진은 눈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곤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었다.
노릇하게 익은 계란말이가 참 맛있다. 층층이 말린 포근한 계란 안에 짭조름한 명란이 톡톡 터지는 식감이 예술이다. 권재진이 계란말이를 하나 더 집어 먹었다.
서의우가 권재진의 옆자리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턱을 괴고 재진의 옆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시선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모를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봐준다. 쯧.’
속으로 한숨을 내쉰 재진이 왼손을 슥 내밀어 줬다. 오른손으로는 수저질 중이라 바쁘니 내 줄 수 있는 건 왼손뿐이었다. 서의우는 깜짝 선물로 뼈다귀 간식을 받은 강아지처럼 눈이 동그래졌다.
“어.”
“이게 필요해서 찾아온 거 아닙니까? 한 손 정도는 내드릴 수 있습니다.”
몇 초간 머뭇대던 서의우가 내밀어 준 재진의 손을 천천히 붙잡았다. 손바닥끼리 밀착하도록 꼭 붙들고서는 손가락 사이사이에 깍지를 끼어 단단히 잡아 쥐었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손등에도 얼굴을 묻었다.
마치 권재진의 왼손이 상자에 갇힌 것 같았다.
아래는 서의우의 손바닥에 가로막혔고, 옆은 손깍지로 막혔고, 위쪽 손등은 얼굴로 막혔다.
“재진 씨는…… 잘 먹네요, 정말…….”
서의우가 권재진의 손등에 입을 맞추다가 혀를 내어 길게 핥았다.
“요리가 아니라 식사를 좋아하는 거였나……?”
찌개 국물로 입가심한 재진이 전복 버터구이도 집어 먹었다. 쫄깃하고 고소하고 그냥 맛이 미쳤다. 청주로 잡내를 잡아서 비린내도 전혀 나지 않았다. 권재진은 지난 습관을 못 버리고 전복을 한 조각 집어서 서의우에게로 내밀어 주었다.
그렇대도 서의우는 회색 눈동자를 흘긋 치켜올려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통통한 전복보다 권재진의 손등을 핥는 쪽이 수천 배는 좋아 보였다.
“안 먹습니까?”
“안 먹어요.”
아직도 식욕이 전혀 드러나 보이지 않는 말간 눈망울을 확인하고서 재진이 젓가락을 치웠다.
서의우의 불균형은 크게 잡아 3가지.
첫 번째 불균형은 불면.
두 번째 불균형은 불식. 즉, 식욕 부진이다.
보다시피, 현재의 서의우는 식사하지 않는다. 어떤 음식을 봐도 시큰둥하고, 수시로 끼니를 거르고, 그런 주제에 술만 처마시고, 힐링 팩터 맞아 가며 전투 식량 같은 간이식과 건조식으로 배를 채우지만, 조만간 그런 생활은 까마득한 옛일이 될 터였다.
자고로 사람은 배부르게 먹고 등 따습게 자야 하는 법이랬다. 잘 먹이고 잘 재우면 짐승 새끼도 사람 새끼 된다. 애가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니 더 비틀리는 거지, 멕이고 재우면 쉽게 길든다.
요즘에는 그래도 밤마다 권재진을 옆구리에 낀 덕인지 잠은 제법 자는 것 같은데 식사는 대체 언제쯤 먹기 시작하려나 모르겠다.
“서의우 씨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그간 대체 어떻게 살아온 겁니까.”
“괜찮은 척하면서요.”
작게 중얼거린 서의우가 권재진의 손등에 깊게 입술을 맞췄다. 푸른 핏줄을 따라 툭 불거진 손등뼈를 더듬고 손마디 하나하나 맛을 보듯 차례로 키스했다.
“다행히 그런 쪽으로 빨랐어요. 센터 생활 할 때부터 멀쩡한 척했죠. 남들처럼 먹고 자고 다 하는 척…… 안 그랬으면 진작 폐기 처분 당했을걸요?”
“최초로 S급 판정 받은 에스퍼인데도 말입니까?”
“최초로 S급 판정 받은 에스퍼니까. 더욱.”
위험하잖아요.
살갗에 입술을 파묻은 서의우가 뭉개진 발음으로 답했다.
그는 너무나도 대단한 이능을 지닌 에스퍼이기에, 그와 같은 등급의 S급 가이드가 나타나지 않는 한 폭주 위험도가 현저히 높았다.
터무니없이 위험하고 강력한 존재.
“철없던 시절에는 내게 맞는 가이드가 어서 태어나 주길 기다리기도 했어요. 어느 시점부터는 포기했지만요.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나서서 증명해야 했거든요.”
“……증명?”
“서의우는 제대로 된 가이딩 없이도 전투할 수 있고, 부족한 분은 약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고. 서의우는 쓸 만하다고. 주변인 죄다 속여넘기고 윗분들마저 설득하지 못했으면 나 진짜 죽었어요.”
“그건 좀, 잘못된 거 아닙니까……?”
“뭐가요?”
얼마간 권재진의 왼손에 전념하여 몰두해 있던 서의우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이 번들거렸고 숨결도 사뭇 거칠어져 있었다.
“서의우 씨를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잖습니까.”
“설령 누군가 있었다 해도 소용없어요. 에스퍼를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건 그에 맞는 가이드뿐이니.”
“…….”
“예전의 나한텐 그 가이드가 없었고, 지금은 재진 씨가 있어요. 그거면 충분해요.”
“…….”
“그래서…… 나 요즘은 가이딩 생각만 해요. 재진 씨가 눈에 안 보이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매분 매초 뭐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고, 보고 싶고, 닿고 싶고, 핥고 싶고, 쑤시고 싶고…….”
다소 격정 어린 투로 서의우가 속삭였다.
어느새 테이블 위에 그릇들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정갈하게 놓아둔 배치가 조금 어그러지고, 구석에 놓인 반찬 그릇 하나가 위태롭게 테이블 끄트머리에 걸쳤다. 아래로 미끄러지려기에 재진이 담담하게 팔을 뻗어 그릇을 텁 붙잡았다.
“재진 씨의 혀를…… 빨고 싶어서…… 자꾸 입에 침이 고여요. 시도 때도 없이 발기해서 좀, 가라앉히느라 늘 괴롭고…… 난 당장이라도, 재진 씨 허벅다리 벌려서, 안쪽에 깊게 내 거 박고 싶어요. 정말 어쩌지…….”
권재진은 반찬 그릇을 안전한 위치에 올려놓고 지진 난 것처럼 떨고 있는 테이블에서 태연히 식사를 재개했다.
포슬포슬하게 잘 익은 햇감자를 반으로 잘라 먹고, 밥그릇에 남은 밥도 깔끔하게 떠서 입에 넣었다.
“아니 그냥, 아예 온종일 24시간 재진 씨 안에 넣어 두고 싶어요. 그러면 안 되려나? 그날, 역시 무리하게라도 수갑 채워 둘 걸 그랬나 좀 후회되기도 하고……. 반대로 잘 참았다 싶기도 하고……. 하아, 몰라요. 난 좀 이상해졌어요.”
그냥 내버려 뒀더니 그릇끼리 부딪치고 난리가 났다.
물컵에서 물이 넘치고 반찬이 흐트러진다. 이젠 도저히 식사할 상황이 아니었다.
재진이 수저를 내려 두고 그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왼쪽 손은 아직도 서의우에게 잡혀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서의우 씨. 제발 좀. 진정 좀 하십시오.”
가이딩, 가이딩, 그놈의 가이딩 타령!
권재진이 진저리치며 외쳤다.
“까짓, 예, 가이딩 해요. 합시다. 해 드린다고요.”
재진이 눈으로 욕을 했다. 서의우는 뾰족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갛게 웃었다.
“정말요? 지금?”
“지금은 아니고. 제 식사부터 끝마쳐야 하니 1시간쯤 기다리십시오.”
“1시간……”
“그 표정 뭡니까. 왜, 못 기다리겠습니까?”
“1시간은 너무 길잖아요. 먹는 데 시간이 그렇게 걸리나……?”
“먹기만 한다고 끝이 아니니 그러죠. 밥상 치우고 설거지하고 양치하면 그쯤 지날 겁니다.”
“그럼 내가 상 치워 주고, 내가 설거지해 주고, 내가 재진 씨 양치질도 해 준다고 하면 1시간까진 안 걸리겠네요. 맞죠?”
“뭐…… 아니, 예?”
재진이 황당하다는 투로 반문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양치질을 서의우 씨가 왜 해 줍니까.”
물론 서의우는 막무가내였다.
어느새 욕실에서 날아온 칫솔 하나가 서의우의 손아귀로 쏙 들어갔다. 뒤이어 따라온 치약도 저절로 뚜껑이 돌아가더니만 칫솔모에 딱 알맞게 내용물이 짜내졌다. 은은한 박하 향이 났다.
“내가 해 줄래요.”
“…….”
“네? 재진 씨. 내가요. 해 줄게요.”
“하…….”
거절하면 또 밥상 뒤엎으려나. 아니, 도저히 못 기다리겠다며 갑작스레 덮쳐들지도 모르겠다. 자제 잃은 놈에게 당하느니 차라리…….
권재진이 한숨을 삼키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까만 눈알에 체념이 은은하게 어려 있었다.
“……그래도 뭐. 밥 먹다가 입에 좆 박히는 것과 밥 먹다가 양치질당하는 걸 비교해 보면, 후자가 낫긴 하군요.”
이걸 발전했다고 해야 하나.
나아졌다고, 지난번보다 나아진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어차피 갈비찜은 먹을 만치 먹었다. 과식했다간 속이 불편할 수 있으니 이쯤 식사 마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서의우 씬 정말 개새끼입니다. 이거 하나만은 좀 알고 계세요.”
“그래요, 알겠어요. 개새끼 하죠, 뭐.”
“개새끼 하는 게 아니라 개새끼입니다.”
“그렇지만 좋아하잖아요.”
“뭐요?”
다급하게 튀어 나간 물음에 서의우가 다정하게 눈을 휘며 대꾸했다. 그의 단정한 뺨이 오늘도 복숭아처럼 발그레했다.
“이제 내가 좋아졌으니 가이딩도 해 주는 거잖아요. 억지로는 안 된다면서.”
“…….”
“정곡이죠?”
“……착각 마세요. 서의우 씨 좋아지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서의우의 가르마는 오늘도 왼쪽으로 타져 있었다.
재진은 붙잡힌 손을 뿌리치고 팔을 뻗어 서의우의 머리칼을 반대로 넘겼다. 가르마를 오른쪽으로 바꾸고 다시 돌아오지 않게끔 모근 쪽을 꾹꾹 눌러 반복적으로 빗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