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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 (13)화 (13/154)

#13

“가만 보면 재진 씨 참 이상해요.”

칼날을 모조리 튕겨 낸 서의우가 눈웃음 지으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귀공자같이 생긴 선한 강아지 눈망울이 어느새 냉랭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렇게 지켜봐도 무슨 생각 하는지 통 모르겠어요.”

서의우가 권재진을 가늠하듯 응시했다.

그의 반질반질한 회색 눈동자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고…… 가끔은 날 쳐다보는 눈빛도 이상해요.”

“대체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내가 의우야예요?”

“……예?”

“재진 씨 나 알죠.”

식칼을 쥔 재진의 손이 허공에 멈추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팔목을 강제로 잡아 세우고 있었다.

“권재진 씨…… 나 알고 있잖아요.”

원치 않아도 재진의 손가락 관절이 새끼서부터 하나씩 펼쳐지고 움켜잡고 있던 애착 식칼을 놓치게 되었다.

칼이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겠다 싶었지만, 아래로 향하긴커녕 그 또한 허공에서 딱 멈추었다. 개수대를 거쳐 날아간 식칼이 도마 위에 얌전하게 놓였다.

“처음 만났을 땐 나더러 이렇게 어렸었냐 그랬고, 그 후에는 재진 씨를 기억하냐고 물었죠. 또 전에는 자연스럽게 의우야, 물…… 하던데…….”

“…….”

“우리 어떻게 알까요.”

“…….”

“그리고 난 왜 아무 기억 없을까.”

숨겨 둔 대형 폭탄을 아무렇지 않게 파헤친 서의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껏 오른쪽으로 타 주었던 그의 가르마가 도로 왼쪽으로 넘어갔다.

서의우를 서의우와 구분 지어 봤자 소용없다는 듯.

서의우를 상대로 그런 얕은수 따윈 통하지 않는다는 듯.

눈속임이 무색하게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본래의 존재로 돌아갔다.

“뭐…… 나한테 해 줄 말 없어요?”

본능적으로 맥박이 뛴다.

가슴이 술렁이고 뒷덜미가 오싹하다.

주방 안팎으로, 고요한 파란의 낌새가 풍겼다.

“재진 씨가 생각해도 재진 씨 좀 이상하죠?”

빈손이 된 권재진이 팔을 움직였다. 볼일이 끝났는지 서의우의 이능력이 풀려 있었다.

자신의 의사 없이 강제로 움직여진 손이 불쾌했기에 재진은 주먹을 쥐었다 펼쳤다 하며 통제권을 되찾은 몸을 확인했다.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음을 확신한 재진이 주먹을 세게 말아 쥐었다.

“……지금 고작 그런 말 하려고 내 허리 잡고 안 놔주는 겁니까. 칼도 빼앗고?”

“뭔가 숨기고 있는 건 확실한데, 그게 뭔지 말해 줄 생각도 딱히 없어 보이고, 그럼 난 재진 씨를 자꾸 의심할 수밖에 없잖아요? 도망갈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님 아예 딴생각하는 건지.”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재진이 조용히 속으로 욕설을 흘렸다.

잠시 발치를 내려다보며 고민하다가, 생각을 포기하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서의우 씬 무슨 탐지견이라도 됩니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참 잘도 찾아낸다.

역시나 서의우를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저놈은 예전부터 야생 짐승보다 더 감이 발달해 있었다.

쯧, 대차게 혀를 찬 재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예. 대충 저는 그쪽 알고, 그쪽은 날 기억 못 하고. 그런 상황 맞긴 합니다.”

인생 2회차.

정답지를 손에 쥐고 문제를 푸는 격이지만, 그만큼 평범한 주변과 괴리가 생긴다. 인생의 시간을 앞서 달리는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내뿜는 이질감을 지울 수 없다. 언젠가는 들통날 터.

사실 권재진은 처음부터 자신의 수상함을 감출 마음이 없었다.

“근데. 그런 게 뭐 중요합니까?”

당당하게 나서도 문제 될 게 없으므로.

서의우가 예상보다 더 빨리 권재진의 특이점을 눈치채서 신기하긴 하다만, 그냥 그뿐이다.

“서의우 씨는 제가 내건 조건부터 맞춰 줄 생각을 하십시오. 다른 일에 한눈팔지 마시고요.”

“한눈판다고?”

“당장 그쪽에게 필요한 건 가이딩이잖습니까. 저랑 무슨 사이였는지, 제가 당신을 어떻게 아는지 관심 없을 텐데요. 궁금하지도 않을 거고.”

“뭐야? 말이 다르잖아요. 언제는 나더러 애교 떨고 아양 부려서 환심을 사라더니.”

“그러니까, 그게 그 말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분명한 조건을 제시했잖습니까. 돈, 안전, 취급. 이 세 가지. 그게 서의우 씨가 권재진 환심 사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입니다.”

서의우는 평소 돈을 아무렇게나 뿌리고 살아서 수백억대 자산이 얼마나 큰 애교가 되고 아양이 되는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다치지 않는 안전 가이딩도 마찬가지다. 서의우같이 어리고, 몸 좋고, 잘생긴 놈이 안 아프게 살살 이쪽 눈치 살펴 가며 좆질하면 그게 애교고 아양이지. 이 간단한 걸 모르다니.

한평생 같은 남자에게 육체적 끌림을 느껴 본 적 없던 권재진마저 고작 4년 만에 함락된 걸 보면 모르겠나? 그래, 2회차 서의우는 아직 모르겠군. 안됐네. 불쌍하다.

그리고 도구 취급 하지 않는 건 너무 기본이라 더 할 말도 없다. 목 조르지 않고, 수갑 채우지 않고, 재갈 물리지 않기만 해도 권재진은 우리 애가 드디어 해냈다, 장하고 대견하다고 칭찬해 줄 용의가 넘치도록 있었다.

“돈, 안전, 취급이란 말이죠…….”

서의우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재진의 얼굴을 빤히 지켜보았다. 무표정한 낯으로 눈꺼풀을 깜빡이는 순간을 숨죽이고 뜯어본다.

권재진의 까만 동공이 여닫히고, 속눈썹이 오르내리는 궤적을 집요한 시선이 끈질기게 뒤쫓았다.

“그래요, 그럼.”

한참이 지나 서의우가 환하게 웃었다.

기다란 눈매가 스르르 녹아내리며 보기 좋게 휘어지고 모양새 좋은 입술이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마치 몽환적인 보랏빛 안개구름이 걷히고 그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내리쬐어 서의우의 얼굴을 찬란히 밝혀 주는 것 같았다.

“재진 씨, 내가 핥아 줄게요.”

그런데 저토록 곱게 웃는 얼굴로 한다는 소리가 핥…… 뭐?

서의우가 촉촉한 혀를 내밀었다. 따뜻한 선홍빛 혀가 권재진을 마중하러 나온 것처럼 낼롬 튀어나왔다가 입 안으로 다시 쏙 들어갔다.

“가이딩이요. 아까 좋은 방법 떠올랐다고 했잖아요. 재진 씨 입이 침으로 젖어 있어서 안 다쳤던 것처럼, 재진 씨 엉덩이도 그렇게 핥아서 적셔 주면 되겠더라고요. 그러면 불순물 없이도 아프지 않게 가이딩 할 수 있어요.”

“…….”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

“누워서 다리 벌리고 있으면, 의우야가 핥아 줄게요.”

***

천장을 향해 치든 발끝이 채신머리없이 벌벌대고 떨렸다. 온몸 근육이 움찔거리면서 경직되고 이완하길 반복했다. 땀이 배어 나와 하반신 전체가 축축했다. 특히 다리 사이가 그랬다.

“아, 윽, 그만…… 좀!”

재진이 서의우의 머리칼에 손가락을 깊게 찔러 넣었다. 그의 머리채를 붙잡고 우악스럽게 잡아당겨서 일으키려 했으나 실패였다. 서의우는 재진의 가랑이 안쪽에서 떨어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아힉요. 더 저시께요.”

뭉그러진 발음으로 대꾸하며 서의우가 점막을 핥았다. 젖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벽 안쪽 깊은 곳까지 다 젖고 점막이 흐물흐물하게 벌어졌는데도 서의우는 막무가내였다.

‘벌써 몇 분째지?’

체감상 세 시간쯤 흐른 것 같다.

‘언제까지…… 대체 언제까지 핥아 댈 건데…….’

재진이 신음을 참으며 턱을 치들었다. 붉게 물든 목선을 타고 땀방울이 주르륵 흘렀다. 점점 버티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어도 흐느끼는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처음 뒷구멍이 핥아질 때까지만 해도 권재진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찢겨서 피가 나는 것보단 핥아지는 게 나으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람을 침대에 눕혀 두고 뒤를 적시기만 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해가 저물고 창밖이 캄캄해진 지도 한참이 지났는데 서의우는 멈출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됐, 습니다. 이제 좀, 흐으……! 됐다니까.”

“아힉이라고요…….”

“젖, 씨, 젖었어. 안에 다 젖었…… 습니다, 서의우!”

참다못해 보채는 소릴 하자 서의우가 해독하기 어려운 뭉개진 발음으로 ‘좁다니까요’라고 웅얼거리며 겨우 고갤 들어 주었다. 겨우 쉴 수 있겠다 싶어 재진이 허리를 늘어뜨렸다. 긴장을 풀기 무섭게 서의우의 길고 굵은 손가락 두 개가 안쪽을 비집고 들어왔다.

“윽!”

“아…… 이것 봐, 역시 안 되잖아요. 젖기만 했지 풀어지진 않았어요. 넣자마자 또 좁아진다고요.”

갑작스러운 침입에 놀라 오므라든 것뿐이지만 서의우는 신중했다. 손가락을 모아 내벽을 더듬어 눌러 보며 안쪽이 충분히 벌어지지 않았다고 재차 확언했다.

“이래서는 또 찢어져요. 언젠 안 다치게 해 달라면서요.”

“아니, 그건 하루 만에 될 게 아닌…… 으읏…….”

“손가락만 넣어도 이렇게 비좁고 빠듯한데, 제 거 안 돼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낫네요. 더 풀어 볼게요.”

서의우가 눈웃음치며 구멍 깊은 곳을 문질렀다. 권재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목덜미뿐 아니라 얼굴 전체가 시뻘게져 있었다. 이건 숫제 고문이었다.

권재진의 속도 모르는 서의우가 싱글싱글 웃는 낯으로 나른하게 속삭였다.

“근데, 이거 좀 재밌는 것 같아요. 나 진작 해 볼걸. 괜히 뺐네.”

길게 빼문 혀가 또다시 아래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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