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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 (7)화 (7/154)
  • #7

    “얼마 줄 건데 그러십니까.”

    “네?”

    “그러니까 그 건에 관해 할 말이 있다는 겁니다. 보아하니 서의우 씨는 가이딩이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저를 제6 일반 거주지구로 돌려보내 줄 생각도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그게 여러모로 짜증 날 따름이라…….”

    재진은 서의우가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시한 소고기를 대신 자기 입에 쏙 넣고 씹었다. 맛있다. 자연산 송이의 향이 훌륭했고, 알맞게 익어 육즙 가득한 부드러운 식감도 감탄스러웠다.

    “애초에 각성자들 가이딩이라는 게 일반인들 기준에선 애정 표현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할 행위를 억지로 한다고 될 리가 없잖습니까.”

    “애정 표현?”

    “그런 게 있습니다. 딱히 지금 설명하고 싶진 않군요. 어쨌든, 일반인들 기준에서는 대뜸 납치하고 강간하고 이런 행동은 범죄입니다. 아무리 인식에 차이가 있고 이유가 있다고 해도 용서하기 힘든 중범죄란 말입니다.”

    “그래요?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죠. 재진 씨는 이제 가이드니까.”

    기이한 바람이 불었다.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듯한 무형의 흐름이 재진을 밀어 올렸다.

    권재진이 앉아 있는 철제 의자가 중력을 거스르고 서서히 떠올랐다. 서의우가 염동력을 쓰고 있었다. 그것도 나직하게 미소 지으면서.

    “일반인의 삶을 고집하고 싶단 건 알겠지만 되돌아갈 수 없어요. 애초에 돌아가려 했다가는 무참히 살해당해 버릴 테고…….”

    의자가 허공에 떠오를수록 재진의 앉은키도 높아졌다.

    솟아오르는 재진의 궤적을 서의우가 뒤쫓았다.

    조금 전까지는 고개를 깊게 숙여서 재진의 정수리에 입 맞추고 있었지만 이젠 고개를 바로 들고 같은 눈높이까지 올라온 재진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재진 씨는 돌연변이예요.”

    서의우가 살살 눈을 휘며 아랫입술을 느른하게 핥았다.

    끝을 모르고 깊어진 회색 눈동자 너머에 그의 심연이 느껴졌다.

    본능을 집어삼킨 희열이 하얗게 들끓는다.

    서의우는 권재진과 접촉하는 매 순간이 턱없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돌연변이가 뭔지는 알고 있나요? 출생 직후 각성하지 못하고 권재진 씨처럼 뒤늦게 각성한 에스퍼나 가이드를 그렇게 불러요. 통제 불가능한 위험 인자라고.”

    “…….”

    “정규 교육을 제때 수료하지 못한 각성자들도 전부 폐기 처분되는 마당에, 돌연변이를 국가에서 살려 둘 리 없죠. 통제할 수 없는 각성자는 인류 사회에 위험요소일 뿐이니까요. 즉시 살처분이에요. 죄다.”

    뒷덜미에 솜털이 오싹하게 섰다. 낮게 내리깔린 서의우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냉정했고, 섬뜩하도록 위협적이었다. 눈앞의 권재진에게 달리 도망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의우는 막다른 길에 몰린 사냥감을 몰아세우는 포식자처럼 벌어진 권재진의 입술을 느긋하게 빨았다. 음미하듯 즐기고 가볍게 떨어져선 속살거렸다.

    “어때요. 내보내 줄 테니 나가서 사살당할래요? 아니면 숨겨 줄 테니 제 품에서 서의우 전용 가이드로 살래요?”

    이럴 때면 참 서의우가 권재진과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인간이란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재진이 여태 일반 거주지구에 살아오며 안전을 보장받고 평범하게 대학 나오고 회사 다니고 지낼 수 있었던 건, 서의우 같은 각성자들이 사선을 넘나드는 위험을 대신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실상은 일반인들에겐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알려지면, 자신의 아이가 각성자로 격리당해 자라도록 보내 줄 부모가 하나도 없을 테니까.

    일반인들에게 각성자는 그저 특수 거주지구에서 수십, 수백억대 연봉을 받으며 호화로운 생활하는 전문직 집단, 연예인보다도 더 인기 많고 화제성 있는 유명인들, 운명으로 타고난 선택받은 인류의 영웅……. 대강 이런 이미지였다. 미디어에도 정보를 차단하듯 화려하게 이능을 사용하여 크리처를 제압하는 모습만 반복해 보여 준다.

    “둘 중에 선택하란 겁니까. 일반인인지 가이드인지?”

    잔혹한 선택지가 놓였다.

    얼핏 보기에 두 갈래 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갈래 길이다.

    “물론 난 권재진 씨 일반인으로 죽게 놔둘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재진 씨 어디도 못 보내거든요.”

    일순 주위 공기가 물을 잔뜩 삼킨 것처럼 무거워졌다.

    재진의 어깨를 무형의 압력이 짓누른다.

    테이블 위에 놓인 식기가 진동하며 서로 부딪히고 물잔의 물이 흘러넘쳤다.

    “나가겠다고 하면 그냥 묶어 여기 가둬 둘 거예요. 수갑…… 수갑 같은 거 괜찮아요?”

    서의우가 의도하지 않아도 그에게서 분출하는 힘이 사방을 압도했다.

    쿵!

    찰나에 세상이 뒤집혔다.

    “아윽……!”

    의자에 앉아 있던 몸이 테이블 위에 엎어지고 배가 짓눌렸다. 서의우가 재진을 깔아 눕히고 아랫배에 손을 짚고 있었다. 그의 손이 닿은 곳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듯 거친 진동이 사방에 퍼져 갔다.

    “입에다가도 재갈 물리고 침대에 묶어 두려고요. 식사는 제가 직접 먹여 줄게요. 화장실은 하루 한 번 보내 주면 되겠죠? 일단 소변줄은 달아 둘 테니까요. 아무 걱정 마요.”

    서의우가 사납게 읊조렸다. 온몸을 관통하는 전율을 한껏 억눌러 삼키는 듯한 목소리였다.

    위에서 재진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섬찟했다. 중력을 거스르고 소리 없이 나부끼는 머리카락이며 희고 단정한 이목구비 등은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는데도 본능이 공포를 외쳤다.

    서의우가 재진의 배를 짓누른 손을 서서히 위로 밀어 올렸다. 그러자 믿기지 않게도 그의 다섯 손가락이 지나가는 곳을 따라 옷이 드드득 찢어졌다.

    짐승 발톱에 찢긴 것처럼 흰색 티셔츠가 조각났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재진 씨는 가이드 해야만 해요. 서의우 전담 가이드로서 나랑 같이 여기에서 지내는 거예요. 나 지금 되게, 되게 되게 절실하거든요.”

    허물처럼 덜렁이는 티셔츠를 서의우가 위로 젖혀 올렸다. 무슨 귤껍질이라도 벗기는 것 같다.

    휑하니 맨살이 드러난 아랫배에 서의우가 뺨을 댔다. 어린아이가 마음에 든 장난감을 뺏기기 싫어 투정 부릴 때처럼, 재진의 아랫배에 뺨을 슬슬 비비며 영역 표시했다.

    “다른 에스퍼들이 가이딩이 어떻다 해도 그다지 안 믿겼고, 겪어 보기 전엔 하나도 안 믿었는데……. 그런데 이게…… 좀, 좋아서요. 내가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서의우의 표정이 조금 찌그러졌다.

    굵은 눈썹이 삐딱하게 찌푸려지고 쭉 뻗은 매끈한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권재진이 알기로 서의우의 저건 심통 난 표정이었다.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보이는 얼굴이다.

    “서의우 씨.”

    “무슨…… 세포 단위로 중독된 것처럼…… 좋아.”

    지금껏 알고 지내 온 세상의 상식이 무너진 건 권재진뿐만이 아니었다.

    재진이 일상을 빼앗긴 것처럼, 서의우 또한 권재진에게 일상을 빼앗겼다.

    가이딩을 향한 맹목적인 추종, 본능의 외침, 절대적인 갈증을 알게 되었으니. 두 번 다시는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을 터.

    “내 머리카락 한 올까지 당신을 원해요.”

    태생부터 갈구했던 빈 조각을 이제야 겨우 찾아냈다.

    평생 굶주리고 살다가 처음 식욕을 채우고,

    평생 불면에 시달리다 처음 수면욕을 채운 사람처럼.

    손에 쥔 것을 잃지 않으려 절박하다.

    “지금 기분으론 가이딩만 받을 수 있다면 범죄든 살인이든 뭐든 저지를 수 있어요.”

    “서의우…….”

    “수갑 채워 묶어 둔다는 말도 농담 아니고……. 아, 돌연변이 각성자인 권재진 씨를 몰래 빼돌려 숨겨 주는 것부터가 일급 범죄긴 하네요.

    “…….”

    “그래도 상관없어요. 더한 짓도 주저하지 않아.”

    하얗게 이를 드러내는 서의우를 보고 재진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어째서인지 조금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서의우가 이때, 이렇게 절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나……. 내 기억 속에는 그냥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모습으로만 남아 있었는데.’

    가슴께가 시끄러워졌다. 심장이 술렁거리며 요란하게 뛰고, 갈비뼈가 닫힌 것처럼 몸 근육이 꽉 조여들었다. 명치 아래가 묵직했다.

    권재진이 애써 속내를 삼키고 웃었다. 새카만 눈동자가 복잡한 빛깔로 다채롭게 빛났다.

    “……그, 하고 싶은 말 다 끝났습니까? 그럼 저도 말 좀 합시다.”

    권재진이 입가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곤 입을 열었다.

    위압에 짓눌려 제대로 눈을 뜨기도 힘들다만 상관없었다. 찡그린 표정으로 빈정거려 준다.

    “누가 죽으러 나가겠답니까? 저 서의우 씨 가이드 할 겁니다. 대신 좀 조건이 있다 뿐이지.”

    한 호흡 뱉을 때마다 폐가 납작하게 짜부라지는 것 같다. 헐떡거리며 겨우 손끝을 뻗어 본다. 파들거리는 손끝이 서의우의 콧날에 닿았다.

    재진이 콧등을 더듬어 찡그린 곳을 꾹 눌렀다. 잔주름이 펴지도록.

    가볍게 문지르며 접촉하자 닿아서 기분 좋은지 서의우가 눈을 가로로 길게 접으며 웃었다. 고갤 들어 재진을 본다.

    “조건이요?”

    “첫째로 돈. 일한 만큼 보수는 받아야 할 거 아닙니까.”

    무미건조한 답변이 서의우의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재진이 다시 한번 명료하게 말했다.

    “각성자들은 국가에서 수십억대 연봉 받는데 나도 그거 받아야겠습니다. 서의우 씨가 제게 지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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