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 (3)화 (3/154)

#3

“갑자기 쓰러져서 좀 놀랐어요. 아직 가이딩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 원래 좀 허약한 체질인가 봐요?”

사색에 빠질 겨를조차 없이 커다란 손이 거침없이 사타구니를 비집고 들어왔다.

서의우는 당연하다는 듯 재진의 사각 드로즈 안쪽을 더듬어 만져 댔다. 1회차 권재진이었다면 정색하고 치를 떨며 발길질했을 타이밍이었다.

그때는 낯선 장소에 끌려와 강제로 덮쳐진다고 생각했다.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그러나 2회차 권재진에게 서의우의 집은 터무니 없이 익숙한 장소고 이런 식의 급작스러운 가이딩 요구도 한두 번 겪어 본 게 아니었다.

이미 이런 상황은 권재진에겐 일상이나 다름없다.

이제 와 호들갑 떨 리가.

“……이봐요, 서의우 씨.”

재진이 속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가슴께가 조금 뜨거웠다.

“왜요?”

“혹시나 해서 질문해 두는 겁니다만, 나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전에 만난 적이 있던가요. 그랬다면 내가 그쪽을 놓쳤을 리 없을 텐데…….”

“아니군요. 뭐, 됐습니다 그럼.”

역시나 서의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말갛게 이쪽을 바라보는 회색 눈동자는 아무런 이질감 없이 투명하기만 했다.

그 눈을 조용히 살펴보고 있자니 가슴께가 살짝 더 뜨거워지고 뭔가 막힌 것처럼 묵직해졌다.

‘회귀는 나만 한 건가. 쯧.’

차라리 다행일지 모른다. 서의우까지 회귀하지 않았다는 건, 즉…….

‘그때 게이트에 휘말려 죽은 게 나뿐이란 뜻이겠지.’

회귀한 사람도 권재진 한 명.

4년 뒤에 죽는 사람도 권재진 한 명.

‘확신은 할 수 없겠다만, 아마도 게이트가 발생하는 순간 일시적으로 시공간이 뒤틀린 거겠지. 나는 그 속에 빨려 들어간 바람에 시간을 거스르게 된 것일 테고…….’

최초의 게이트 임팩트가 벌어지고 그 속에서 각종 마물의 형상을 한 크리처가 쏟아져 나온 지도 벌써 1세기가 지났다. 이에 맞서는 에스퍼와 가이드의 존재를 통해 인류 사회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현재까지도 게이트는 미지의 영역에 놓여 있었다.

관련하여 연구가 왕성하게 진행 중이고 여러 가설과 이론이 나왔으나 그중 무엇이 정론인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인류가 게이트에 관해 알아낸 사실보다 알아내지 못한 사실이 훨씬 더 많을 정도다.

대다수 정보가 불명이고 하물며 일반인 출신이었던 권재진이 아는 건 더욱 적다. 각성자들도 모르는 걸 비각성자 출신 돌연변이가 알 수 있을 리 없다.

‘뭐, 당장 내가 회귀한 이유에 매달릴 필요는 없겠지. 이런 건 생각해 봐도 답을 내지 못할 테니. 그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4년 뒤 일이다.’

4년 후. 이곳, 서의우의 저택 마당에 게이트가 터지는 건 확정된 미래였다.

권재진이 그 게이트에 휘말려 사지가 찢겨 죽는 것도 확정된 미래다.

그때까지 이 집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권재진은 죽는다.

1회차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용케 시공간의 균열에 잘 빠져서 과거로 회귀할 수 있었다지만, 이번 2회차에서도 그렇게 되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니 재진은 4년 뒤 발생할 게이트를 무조건 피해야만 했다.

‘이렇게 창창한 나이에 한 번 죽은 것도 억울한데, 두 번씩이나 죽을 수는 없지.’

권재진 혼자서 이 집 밖으로 도망치든, 아니면 서의우를 설득해 둘이 함께 거처를 옮기든, 뭐든 하지 않으면 끝이다.

죽음을 피할 길이 있다면 피하고 싶다.

그런 뜻에서 이 회귀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이딴 망한 인생은 그만 사절이다……!’

무슨 짓을 해서든 아득바득 기필코 살아남아서, 이번엔 제발, 제발 좀! 제대로 된 인생을 쟁취해야겠다.

세상 재미란 재미는 다 즐겨 보고, 값지고 좋다는 건 다 경험해 보고, 억 소리 나는 돈을 물 쓰듯 쓰며 온갖 맛 좋은 진미를 섭렵해 주리라. 그렇게 백세까지 천수를 누리고, 조용한 산속 오두막에서 잠자듯이 평안하게 눈을 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서의우의 협력이 필요해.’

권재진은 알고 있다. 서의우는 S급 에스퍼다.

S급 에스퍼. 이 짧고 단순한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1회차 삶에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몸서리쳐질 만큼 잘 알고 있다.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유례없이 강력한 다중 이능 사용자이다. 순간 좌표 이동을 할 수 있고, 자신의 분신체를 만들 수 있으며, 하물며 무의식중에도 이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에게선 그냥…… 도망칠 방법이 없다는 소리다.

일반적인 에스퍼들이 으레 무력해지는 때에도 그는 빈틈이 생기지 않는다. 잠들었을 때나 기절했을 때도 염동력을 사용할 수 있고 재진의 행적을 간단히 추적할 수 있다. 정말 터무니없는 능력자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이 저택은 완전한 그의 영역이었다.

이곳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권재진은 서의우의 손바닥 위에 올라선 것과 다름없다. 탈출하려 어떤 수를 써도 무용지물이고, 암만 발버둥 쳐 봐야 서의우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의 권역에서 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한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새삼스레 좌절하진 않지만.’

어떻게든 서의우를 배척할 수 없다면 단순히 그의 협력을 얻어 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건 딱히 어렵지도 않다.

‘서의우 저놈, 무슨 생각인진 몰라도 날 좋아한다고 꽤 매달렸으니.’

1회차에서는 그와 연인 관계가 될 때까지 4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2회차에선 과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사귀자는 말 자체는 3년 차에 듣긴 했지.’

그땐 사귀자는 제안을 듣자마자 권재진이 정색하고 거절했지만, 이번엔 곱게 받아 준다면 3년 만에도 연인 관계가 될 수 있을 터다.

‘아니, 내가 가이딩을 거부하면서 서의우와 격렬한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굳이 3년씩이나 질질 끌 필요도 없을 테지.’

권재진이 가이딩에 순순히 응하기만 하면 3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서의우에게 이쪽 입장을 가르치고 설득하는 데 적당히 1년…… 혹은 그 전에도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터.

이건 전적으로 재진이 서의우를 얼마나 잘 구슬리고 길들이느냐에 달린 승부였다.

실패할 리 없는 도전이자 승자가 정해진 게임.

‘어차피 서의우는 날 필요로 하니.’

에스퍼에게 있어 가이드는 절대적인 존재다.

강력한 에스퍼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큰 힘을 사용하는 만큼 여파도 크기에. 불균형을 잠재워 줄 가이딩을 절실히 갈구할 수밖에 없으므로.

서의우에게는 권재진이 필요하다.

권재진에게도 서의우가 필요하다.

1회차의 권재진에겐 딱히 서의우가 필요하지 않았다지만 2회차의 권재진에겐 서의우가 필요하다. 살아남기 위해.

‘……그럼 얘긴 벌써 다 끝난 것 아닌가?’

재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손끝을 미세하게 움찔거렸다가 무언가 붙잡아 억누르듯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아무 문제 없다.

이미 앞으로의 미래가 보인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참하게 당하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손쉽게 서의우를 쥐고 흔들어 댈 수 있다.

서의우의 사고방식도 잘 알고, 무슨 행동과 말을 해야 그를 움직일 수 있을지도 잘 안다. 가이딩만 미끼로 내걸면 서의우는…….

서의우는 그냥 단순한…….

“……읏!”

불쾌한 침입에 생각이 끊겼다. 엉덩이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어느새 재진의 드로즈마저 벗긴 서의우가 뒷구멍을 벌리고 점막에 검지를 밀어 넣고 있었다. 속까지 깊게 파고들어 말캉한 내벽을 멋대로 헤집기 시작했다. 재진의 무릎이 확 튀어 올랐다.

‘뭐…… 뭐야.’

재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손가락 하나만 들어왔는데도 온몸이 거부하듯 딱딱하게 굳었다. 눈이 부릅떠지고 다리를 웅크리게 되고 아래쪽도 힘이 잔뜩 들어가선 주름이 빠듯이 다물린다.

‘아프잖아……?’

몸이 제멋대로 긴장해 대고 있었다.

1회차에서 수없이 겪었던 가이딩이라 해도 2회차에선 이러한 경험이 처음이니까. 이론으로 수영을 익혔다 해도 막상 실전에서 물속에 들어가면 가라앉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가 됐고, 가이딩을 받아들일 각오를 끝마쳤다 해도 권재진의 몸까지 그 생각을 따라 주는 건 아니었다.

“이거…… 일부러 이러는 건가요? 심한데.”

서의우가 손마디를 굽혀 굳은 속살을 비집었다. 잘 들어가지 않는데도 억지로 밀어 넣어서 둔통이 더 심해졌다. 재진이 다급히 그를 말렸다.

“잠깐, 서의우 씨. 좀 기다려 보십시오.”

당연히도 서의우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 손으로 엉덩이를 양옆으로 무리하게 벌리곤 중지까지 더 쑤셔 박으려고 했다.

“아윽!”

하, 이씨.

그래, 그랬지.

서의우 이 개새끼는 이런 놈이었다.

이쪽 사정은 생각도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가이딩 해 달라며 달라붙고, 더듬어 대고, 혀 빨고, 제 좆부터 들이밀어 대는 녀석이다. 가이딩은 가이드의 의무니까, 저딴 강압적인 짓을 하면서도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험난한 사태를 마주하고서 당혹감으로 귓바퀴가 조금 붉어졌다. 그렇다 해도 이대로 쉽게 물러설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재진이 안쪽을 들쑤시는 서의우의 손목을 눌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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