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01. 2회차 권재진
난폭한 손힘에 목이 콱 졸렸다.
골목길을 비추던 가로등이 차례로 터져 나가고 불빛이 요란하게 점멸했다. 권재진은 목이 졸린 채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밀쳐졌다. 막다른 길이었다.
“커헉!”
척추가 벽돌담에 세차게 부딪힌다. 아픔을 참아 내기 무섭게 재진을 덮친 사내가 그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손끝을 펼쳐 무언가 확인해 보듯 심장 위를 두어 번 눌러 댄다. 꾸욱, 꾹.
별것 아닌 동작임에도 재진은 짐승 앞발에 밟힌 것처럼 위협을 느꼈다.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맞네. 당신이잖아.”
“으, 큭……. 뭐가…….”
“내 가이드.”
가이드?
권재진이 신음하며 검은 그림자를 응시했다. 희미하게 깜빡이는 가로등 빛이 괴한의 실루엣을 비추었다.
그는 이런 흔해 빠진 골목길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전투복 상하의를 입고 있었다. 두툼한 흉통을 가로지르는 가죽 하네스에 수류탄과 탄창이 달려 있고 굵은 허리와 허벅지에는 총이 꽂힌 권총집이 매여 있다.
일반인이 아니다.
에스퍼다.
‘각성자가 왜 제6 거주지구에 와 있는 거지?’
그는 권재진을 자신의 가이드라고 말했으나 사실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재진은 일반 거주지구에 사는 일반인이다. 그것도 부유층이 거주하는 제1 거주지구에서 한참 떨어진 제6 거주지구 근로자 주민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에스퍼로도 가이드로도 각성하지 못한 비각성자들만이 일반 거주지구에 살 수 있다. 평생 각성자와 마주칠 일 없고, 말 섞을 일도 없다.
“에, 스퍼님……. 뭔가, 착, 각하신 모양이십니다. 놔주십시오.”
재진이 고통을 참아 내며 말했다. 목뼈가 부러질 것처럼 짓눌려서 한 호흡 내뱉기조차 힘들었다. 야근 마치고 돌아가는 퇴근길에 이게 무슨 봉변인지 모르겠다.
“아닌데요. 착각.”
섬뜩한 목소리가 귓가에 내리깔렸다.
동시에 열기 띤 눈동자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코앞까지 사내가 다가오자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외로 앳된 생김새다.
가만 보면 재진보다 어려 보였다. 곱슬기 있는 머리카락은 폭신할 것 같았고 짙고 굵은 눈썹과 아래로 슬쩍 쳐진 기다란 눈매는 얼핏 개를 닮아 보이기도 했다.
뭐, 리트리버…… 대형견?
뭐가 됐든 재진의 목을 한 손만으로 짓누르고 있는 이 행동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모다.
그리고 재진은 이 얼굴을 지닌 사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지금 확인해 볼까요? 당신이 나와 매칭되는 가이드가 맞는지, 아닌지.”
최초의 S급 에스퍼. 20세. 서의우.
“입 좀.”
경고라기엔 짤막한 읊조림 끝에 상대가 바짝 밀착하고 입술이 짓눌렸다.
서의우가 비집듯이 혀를 밀어 넣으려 하기에 권재진은 어금니를 세게 악물어서 막아 냈다.
각성자들끼리는 접촉을 통해 가이딩 하기에 성적 관념이 일반인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당해도 좋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재진은 일반인 남성이고 같은 남성에게 다짜고짜 키스당하는 상황 따위 유쾌할 리 없었다. 거부하는 게 당연하다. 특히 이렇게 막다른 벽에 몰려 목이 졸리는 상황에선 더욱.
“……좀이라니까?”
접촉에 실패한 서의우가 추궁하듯 물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그를 둘러싼 공기가 흉흉해진다. S급 에스퍼는 의도하지 않아도 주위를 압박할 수 있었다. 조금 전 가로등이 모조리 깨진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으, 윽.”
날 선 공기가 바늘처럼 온몸을 찌르는 것 같다. 재진은 더욱 세게 이를 악물었다.
“하…….”
서의우가 말간 회색 눈동자를 위로 치들었다. 잠시 하늘을 보다가는 아래로 훅 내려뜨렸다.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한순간에 권재진의 턱이 비틀렸다. 무슨 짓을 당하는지 그 순간엔 감도 잡히지 않았다. 턱관절을 누르고 입을 억지로 연 것 같았다.
서의우가 가죽 장갑 낀 굵은 손가락을 권재진의 목 깊숙이 쑤셔 넣었다.
“우, 크욱……!”
헛구역질하는 재진에게 서의우가 또 입을 맞춘다.
이번엔 혓바닥이 분명하게 맞물렸다. 재진이 펄떡이며 서의우를 발로 세차게 걷어찼지만, 상대는 바윗덩이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의우는 재진에게 벌이라도 주듯 오랫동안 말캉한 혓바닥을 핥고 비비며 타액을 빨았다. 재진이 침을 질질 흘리는데도 서의우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입술을 빨고 다시 혀로 문질러 침을 흘리게 하고 또 그것을 빨아 마셨다.
‘이 새끼.’
미친놈인 것 같다.
일반인 상대로 가이드고 나발이고 헛소리를 지껄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런 자식을 최초의 S급 에스퍼라고 각종 미디어에서 그렇게 찬양해 댔단 말인가? 역사에 없을 인류의 구세주라느니, 빛을 깎아 만든 햇살 귀공자라느니, 죄다 말도 안 되는 별명이다. 역시 유명세는 믿을 게 못 된다.
“으큭, 떨어져, 헉…… 하아!”
슬슬 턱이 벌벌 떨렸다. 숨이 막혀서 발길질도 느려졌다.
재진은 사실 매일 새벽마다 거르지 않고 러닝 뛰고 휴일에는 암벽 등반을 할 정도로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 덕에 체격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좋은 편이었다. 어깨도 제법 벌어졌고 체형도 적당히 근육질이다. 막말로 어디 가서 밑지고 살아 본 적 없었다.
그런데도 전투를 업으로 삼는 서의우의 앞에선 무력한 일반인일 따름이었다.
어느 즈음부터 섬찟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자신을 둘러싼 보통의 세계가 침범당하고, 자신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조우하는 건 생각보다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
“음…….”
한참 재진의 혀를 물고 빨던 서의우가 느릿하게 떨어졌다. 혓바닥 사이로 점성을 띤 실이 이어지다 톡 끊긴다. 서의우는 그것조차 아깝다는 듯 입 안으로 낼름 삼켜 먹었다.
“봐, 되잖아요. 가이딩…….”
서의우가 가로로 길게 뻗은 눈을 휘며 읊조렸다.
어째 좀 전과 달리 기분이 좋아 보였다. 들뜬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쌍꺼풀 없는 눈매가 사르르 휘어지니 더 어려 보인다. 그러나 권재진은 모든 게 역할 따름이었다.
목덜미가 오싹하다. 멀미가 나고 속이 시끄러웠다.
사방이 막힌 좁은 상자에 갇힌 채 이리저리 굴려지는 기분이다. 등을 타고 기분 나쁘게 진득한 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내게 맞는 가이드는 당신이에요. 여태 이런 구석에 박혀 있었다니, 그러니까 줄곧 못 찾았지.”
물론 권재진은 가이드가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거치는 의무 각성 검사 결과에서 각성자 판정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의우는 권재진이 자신의 매칭 가이드라고 말하고 있었다.
속이…… 속이 더욱 시끄럽다.
멀미 나고 어지럽다 못해 이젠 마치 겉가죽과 속가죽이 서로 뒤집히는 것 같다.
“……끄, 우윽.”
재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서의우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속이 이상했다.
심장을 중심으로 동심원이 퍼져 나가듯 몸의 세세한 곳까지 신경이 곤두섰다. 눈앞이 반시계 방향으로 돌더니 곧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시야가 캄캄해졌다.
머리에서 거대한 징을 치는 것처럼 뇌가 지잉지잉 울리고 귀에서 높은 이명이 들렸다.
“뭐야…… 왜 이래요. 어디 아파요? 부러졌어?”
상태가 좋지 못했다.
거대하고 불가사의한 무형의 힘이 권재진을 들쑤시는 것 같았다.
숨이 계속 거칠어졌다가 이윽고 완전히 멎는다.
“……컥!”
순간, 심장이 멈추었던 것 같다.
아니. 죽었다 부활했다고 해야 하나?
동시에 썰물이 밀려오듯 머릿속이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올랐다. 연이어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그건 마치, 주마등을 거꾸로 재생한 것 같은 기억이었다.
주마등은 죽을 때에야 보인다지만, 이건 죽음을 거슬렀기에 보이는 주마등 같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권재진이 이미 한 번 죽었고, 지금 여기에서 되살아났다는 소리다.
회귀.
이건 권재진의 인생 2회차였다.
서의우를 만난 것도 2번째고, 그의 가이드가 되는 것도 2번째다.
조금 전 서의우에게 강제당한 가이딩이 발화점이 되어 전생의 삶, 즉 1회차 삶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 생에 권재진이 어떻게 살았는지, 또 어떻게 죽었는지도 전부.
“……서의우.”
권재진이 눈을 크게 뜨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느릿하게 서의우를 올려다보았다.
“너 이렇게 어렸었나……?”
눈앞이 아득해진다. 곧 몸의 중심이 비틀리며 무너져 내렸다. 기절한 재진의 몸을 서의우가 어렵지 않게 받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