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히트 싸이클은 꽤나 오래갔다. 권희수는 주기도문부터 시작해 알고 있는 모든 교리를 속으로 읊으며 최대한 참고, 도울 수 있는 내에서만 도왔다.
덕분에 권희수는 밤새 그의 곁에 있다가, 곧장 욕실에서 찬물을 맞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로 뛰쳐나와, 새벽바람을 맞으며 오래전 끊었던 담배를 태웠다.
환한 가로등이 제 발아래를 비췄다. 권희수는 그걸 노려보다가 미간을 문질렀다.
분명 제정신을 차리면 절 원망할 것이 뻔했다. 지금은 조금 나아진 채 자고 있지만, 일어난다면 교원은 본능대로 움직여 또 제게 달라붙을 것이다.
문제는 권희수는 히트 싸이클을 도와줘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권희수는 그동안 모든 연인의 히트 싸이클을 도왔던 적이 없었다. 임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때이기도 했고, 혹여 제 잘못으로 각인이라도 될까 싶어서였다.
연인들은 늘 그걸 불만으로 여겼는데, 교원은 다른 의미로 그의 히트 싸이클을 돕고 싶지 않았다.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 그의 손에 이끌려 한바탕 일을 저지르고, 각인을 해 버렸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교원은 오메가였으니, 임신이라도 하면 결혼까지는 일사천리가 될 터다. 그러니 교원을 좋아하는 권희수에게 지금 상황은 분명 이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트 싸이클에 휘둘려 그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물론 이미 한 번 그와 술을 마신 뒤 밤을 보낸 것 같지만―.
게다가 교원이 페로몬에 휘둘린 저를 경멸할까 두렵기도 했다.
러트 혹은 히트가 올 때 신형질자들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는 저 또한 겪어 봐서 알고 있었다.
어쩌면, 제가 일을 치러 버린다면…….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에게 각인을 하고 싶으십니까? 이러다가 임신이라도 하면 책임지실 겁니까? 뭐, 그래요. 혹시 모르니 피임약을 먹으면 되겠죠. 근데 그에 대한 부작용은요?’
듣지 않아도 이미 들은 것만 같은 교원의 잔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제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하…….”
권희수는 다 타 버린 담배꽁초를 비벼 끄고, 난간에 몸을 기댄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히트 싸이클 약이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약을 먹었음에도 교원은 밤새 괴로워했다.
“아, 진짜…….”
마른세수를 하던 권희수는 난간에 머리를 쿵쿵, 박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음…… 이교원 비서 말인데, 베타, 확실해?〉
〈예. 어제 같이 병원에 가서 형질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게 결과지입니다.〉
분명 교원을 직속 비서로 뽑을 때, 전날 받은 형질 검사의 결과지를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전 직속 비서였던 퇴사자가 함께 간 데다, 그에게 메일로 도착한 결과지이니 조작할 수는 없었다. 뭣보다 교원의 성격상 조작을 할 수도 없었고, 중학교 때의 형질 검사도 베타로 나온 걸 확인했다.
하나 지금 교원의 증상은 히트 싸이클이 맞았다.
최근 그에게서 아주 조금, 미미하게 나던 향이 향수가 아니라 페로몬이었던 것도 충격인데 제집에서 갑작스럽게 히트라니.
“하, 하나만 더…….”
권희수는 중독자처럼 손을 떨며 담배 한 대를 더 꺼내 입에 물었다.
그가 거짓말을 해서 미운 게 아니다. 당장 직속 비서에서 자를 생각으로 손이 떨리는 것도 아니었다.
〈너, 다리에…… 특이한 점이 있네.〉
그날, 베타 남성의 다리 사이에는 북두칠성과 닮은 점이 있었고 그와 같은 것을 교원의 다리에서도 보았다.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떠올리려 애를 써도 기억이 돌아오질 않았다. 떠오르는 건 그에게서 아무런 페로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다리 사이에 북두칠성을 닮은 점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술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저와 함께 한 사람이 교원이라는 건 확실하다.
게다가 그날의 베타 남성을 찾아달라는 말에 그 완벽한 워커홀릭 교원의 반응을 떠올려 보면 더욱 확실했다.
교원은 장난으로 하는 말이어도 상사의 말은 무엇이든 따랐고, 해냈다. 평소의 그라면 정말 그날의 베타 남성을 찾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교원은 찾으려는 낌새를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저에게 알아서 찾으라고 떠넘겼지.
“그니까 그 베타가, 교원이 아닌 건가? 아닌데…… 맞는데. 아니, 일단 교원이는 왜 오메가인 거야?”
중얼중얼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고민했으나 떠오르는 게 없다. 성인 이후 형질이 변화한다는 건 지라시로나 도는 얘기였다.
게다가 스무 살도 아니고, 스물일곱인데.
사실 좋아하기 전부터 교원이 알파나 오메가가 되는 걸 상상해 보기는 했다.
좋아한 후에는 히트가 오는 것까지 상상해 봤는데, 무심한 성격이나 금욕적인 얼굴 탓인지 열에 끙끙대는 것밖에 상상이 되지 않았었다.
근데,
〈희……수 형.〉
그렇게 저를 붙잡을 줄이야. 형, 형이라…….
문득 ‘도와준다’던 임도영의 얘기가 떠올라 속에서 울컥하고 짜증이 치밀었다.
“임도영, 씹새끼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뱉었다. 도와주는 게 뭔지도 모르는 애한테 그런 말을 했다?
“아니, 잠깐만.”
그 말을 했다는 건 교원이 오메가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건가? 히트가 오면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분명…….
지이잉.
핸드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 올 사람은 없는데, 하며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가 권희수는 급하게 담배를 바닥에 던져 발로 비벼 껐다.
“여, 여보세요?”
- 하아, 하…….
벌써 익숙해진 신음에 권희수는 다급히 주변을 살피다가 발로 꽁초를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교, 아니, 이 비서 일어났어? 많이 아파?”
- 으응…… 더워, 어디, 흐, 어디 갔, 어? 형?
일부러 이 비서라는 호칭을 썼음에도 교원이 앙탈을 부리듯 “형?” 하고 불러 왔다. 피가 아래로 쏠렸다. 이런, 시발. 밖인데.
권희수는 급하게 몸을 돌려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깐 밖에 나왔어. 더 자지, 안 자고 뭐 해.”
또 일부러 딱딱하게 말했다. 권희수는 말 그대로 미칠 것 같았다. 이러다가 정신이 나가 버리는 건 아닐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권희수는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넘어가선 안 된다, 넘어가선 안 돼…….
- 흐으, 혀엉, 빨리…….
그러나 교원의 말에 굳은 결심은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권희수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갈게. 기다려.”
흐느끼다 못해 엉엉 우는 소리를 듣자, 정말로, 미칠 것 같았다…….
* * *
권희수의 경호 1팀 팀장, 조 팀장은 지시받은 것을 정리해 파일에 모두 끼웠다.
권 대표의 이메일로 보내 놓은 상태인 데다, 태블릿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 두었으나 권 대표는 짜증 나게 종이로 확인하는 걸 좋아했다.
총 세 명이었다. 권희수가 알아보라고 한 인간이.
“차의겸…… 임도영, 양주호.”
파일을 넘겨 빠진 페이지가 있는지 체크했다. 조 팀장은 파일을 옆구리에 끼고 사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 팀장, 이것도.”
그때 경호 2팀 팀장이 손을 들어 조 팀장을 불렀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다가 다가가니, 그가 사진 뭉치를 건넸다.
“아, 땡큐.”
“그 누구냐…… 박 전무는 처리 끝났어?”
“엉. 담배 피울래?”
“그럴까?”
조 팀장의 말에 2팀 팀장, 우 팀장이 몸을 일으켰다.
현재 시각은 오전 5시,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곳은 권 대표의 집 근처 작은 사무실이었다.
팀원들은 권 대표의 집 근처에서 경호를 보고 있었고, 그들은 잠시 업무를 위해 들린 참이었다.
조 팀장과 우 팀장은 입에 흰 막대를 물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먼저 불을 붙인 임 팀장이 조 팀장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하아…….”
“존나 피곤하다. 나 바로 출근인데.”
권 대표의 낮을 책임지는 건 조 팀장이었다. 이제야 업무를 끝냈으니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고 나가야 할 판이었다.
“요즘 대표님 왜 그러시냐, 진짜…….”
“몰라, 혼자 드라마라도 찍으시나 보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조 팀장이 눈을 비비며 한숨을 푹, 쉬었다.
“우리야 뭐, 일 좀 늘어난 거지만 이 비서님은 불쌍해서 어쩌냐.”
“……이번은 오래갈 거 같던데. 너 조사한 거만 봐도…….”
“주변 놈들 다 죽게 생겼다, 진짜.”
조사를 시켰다는 건 뭔가 거슬린다는 뜻이고, 이럴 때의 권 대표는 끝까지 처리하곤 했다.
조사하라는 세 녀석 중 두 놈은 이 비서와 깊게 관련이 있었으니 앞으로의 일이 몹시 걱정되었다.
“임도영 얘는 이번에…… 거, 뭐냐, LA 따라온 놈 아니냐? 얘 뭐 했어?”
“……질투심 유발?”
조 팀장의 대답에 적막이 감돌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임도영이 한 짓이라곤 그것뿐이었다.
“아니다, 이 비서 납치됐을 때 그, 같이 있었는데 졸다가 늦게 말했잖아.”
“그거 때문?”
우 팀장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조 팀장이 한 박자 늦게 답했다.
“아닌 거 같다. 이 비서가 너무 잘해 준 것 같다.”
“…….”
두 사람은 조용히 꽁초를 바닥에 비벼 끄고, 한 대를 더 꺼내 피웠다. 짙은 연기가 텅 빈 거리를 가득 채웠다.
그때 익숙한 형태가 멀리, 편의점에서 나와 가로등 옆에 서는 것이 보였다.
“우 팀장, 저거 대표님 아니시냐?”
바로 권 대표였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엥, 진짜네. 이 시간엔 왜 일어나셨지?”
“담배 끊으신 걸로 아는데…….”
권 대표는 한 대를 한참 피우다가,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았다.
“대표님이 드디어 진정한 사랑이라도 하시나 보다, 야.”
우 팀장이 장난인지, 비꼬는 것인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권 대표는 거의 피우지 못한 담배를 끄고 또 멍하니 서 있다가, 심기 사나운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또 한 대를 꺼내 피우더니, 전화를 받았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권 대표의 행동에 두 경호 팀장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둘은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동시에 바닥에 떨어트리며 멍하니 권 대표를 쳐다보았다.
순식간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권 대표가 어기적어기적, 수상하게 걷다가 두 팀장 앞을 재빠르게 지나쳐 허겁지겁 뛰기 시작했다.
“……사귀나?”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