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43)화 (43/60)

그러면서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으로 교원의 어깨를 밀어냈다. 쪼그려 앉아 있다가, 뒤로 밀려나 엉덩방아를 찧은 교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크게 떴다.

“아, 아, 아무리…… 우리가 지금, 마음이 통했다지만, 그래도 손부터 잡고 시작하면 안 될까?”

두 손에 얼굴을 묻은, 덩치 큰 남자가 손가락 사이로 힐끔거리며 교원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손을 내민다.

교원은 제게 내밀어진 듬직한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저도 팔을 들어 올렸다.

권 대표가 두근두근, 설레 하며 마른 입술을 축이던 때였다.

철썩.

“무슨 오해를 하시는 거 같은데.”

용기를 내 내민 손이 차갑게 내쳐졌다. 권 대표는 허망하게 제 손을 쳐다보았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저는 치료를 하려 했을 뿐입니다.”

교원이 옆에 내려놓은 가방에서 작은 구급상자를 꺼내 들었다. 권 대표는 어라, 하며 상자와 교원, 그리고 제 손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교원이 손을 들어 권 대표의 무릎을 툭, 치자 짜릿한 고통이 찌르르 올라왔다.

“아! 아파……!”

“예, 그 아픈 곳을 소독하고 약을 바를 생각이었습니다.”

교원의 눈빛이 무척 싸늘했다. 애써 풀었던 분위기가 다른 의미로 굳었다. 권 대표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입을 벙긋거리다가, 살짝 울먹이며 물었다.

“이, 이 비서 나…… 안 좋아해?”

“지금 그런 소리를 할 때입니까.”

그렇게 고백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아직 고백할 생각이 아니었다. 좀 더…… 그니까, 평소처럼 상대가 제게 마음이 있음을 표현할 때까지 꼬시다가 멋지게 고백하려고 했다.

일명 ‘고백 공격’처럼 갑작스럽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얼떨결에 해 버렸고, 묘한 분위기가 되지 않았던가!

고백을 듣고 웃으며 “무슨, 고백을 그렇게 해요.”라고 답하지 않았던가!

“하,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나 좋아하……지?”

“상사로서 나쁘지 않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아니, 사람으로서…….”

“사람으로서도 좋은 분이시죠.”

한 번 더 막힌 권 대표가 낭패에 빠졌다. 이미 거절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권 대표는 교원이 이런 쪽에 눈치가 없어서 말을 잘못 알아들었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금까지 제 고백을 거절한 사람은 단연코, 한 명도 없었다.

“그, 그게 아니라 여, 여, 연애 상대……로서……?”

“절대. 그런 생각. 없습니다.”

“절…… 절대.”

“예.”

교원은 구급상자를 아까 내쳤던 권 대표의 손에 힘 있게 내려놓았다. 턱, 무게가 있는 것도 아닌데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아무래도 치료는 혼자 하시는 게 나으신 것 같습니다. 식염수, 과산화수소 순으로 바르시고 빨간약까지 바른 뒤 밴드를 붙이시면 됩니다.”

교원이 몸을 일으키며 가방의 손잡이를 쥐었다. 권 대표는 냉정하게 몸을 돌리는 교원의 소매를 급하게 붙잡았다.

“교, 교원아.”

그러나 조금 전과 달리 교원은 받아 주지 않았다. 잡은 손을 벌레 털 듯 털어 낸 교원은 성큼성큼 걸어 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원아, 내가 진짜 잘해 줄게! 나, 나 진짜 너 좋아해!”

권 대표는 상상했던 근사한 고백과는 영 떨어진, 게다가 촌스럽고 유치하기까지 한 고백을 뱉었다. 급해서 나온 말이었다. 뱉자마자 후회했다.

좀 더 멋있게 말했어야 했는데.

권 대표는 제 손에 들린 구급상자와 교원이 벗기다 만 제 바지를 내려다보며 흐린 눈을 했다.

“……이건…… 꿈이야.”

쾅!

세게 문을 닫고 들어온 교원은 문에 몸을 기대고 고개를 푹 숙였다.

미친, 저 미친 상사 놈이 했던 말이 귀에 맴맴 돌았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니 의심하고 있던 것이었으나 확인 사살을 당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손에 힘이 빠져 가방이 툭, 떨어졌다. 교원은 침대로 가 앉아서 평소와 같이 무심한 얼굴로 심호흡을 했다.

그럼에도 권 대표가 지껄인 말들이 잊히질 않았다. 그냥 툭 내던진 한마디면 또 모를까, 이후에 질질 매달리며 절 좋아하지 않냐고, 연애 상대로 어떠냐고 묻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솔직히, 무릎을 다쳐서 꼼짝도 못 하고 제 소매만 붙잡고 간절하게 쳐다보는 모습이…… 귀여웠다. 덩치는 산만 해서는, 제 말 한마디에 벌벌 떨고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게 너무 귀여워서 순간, 좋다고 할 뻔했다.

그래, 좋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이 아닌 진실이니까.

“하아…….”

이래서 사랑이 어렵다는 거구나. 좋아하지만 밀어내야 한다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구나.

사랑은 가볍다. 그리고 권 대표는 더더욱 가볍다. 옆에서 지켜봐 온 결과, 권 대표는 사랑이 식으면 칼같이 헤어지는 사람이었다.

상대의 사정은 조금도 봐주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자.’라고 통보하는 남자. 몇 번 그의 애인을 처리하다 들었었다.

그녀는 알파임에도 권 대표를 사랑해, 모든 걸 자신이 양보했다고 했다. 권 대표도 그에 고마워했고 둘은 꼭 평생 갈 것처럼 뜨겁게 사랑했다고 했다.

그러나 3개월 즈음이 됐을 때, 갑작스레 권 대표가 식사를 하다 결별을 통보했다.

이유를 물으니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그게 다였다. 마음의 준비는 조금도 할 수 없었다고, 여자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바로 전날까지 사랑한다고 말했던 남자가 그렇게 식을 수 있냐고, 울분을 토하던 기억이 선명했다.

“교원아아…… 나와 봐, 얘기 좀 하자. 응?”

때마침 권 대표가 방문에 찰싹 붙어서 쩔쩔매는 소리가 들렸다. 교원은 잽싸게 몸을 일으켜 문을 잠그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

“뭐야, 이교원! 너, 너 나 왔다고 문 잠근 거야? 진짜야?”

문을 잠그는 달칵, 그 소리가 꽤 컸는지 권 대표가 헛숨을 삼키며 놀랐다. 그러더니 다시 울먹이는 목소리로 방문을 손가락으로 슥슥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교원아아…… 좀만 얘기하자, 나 이렇게 바보같이 고백한 사람 만들 거야?”

그럼 제대로 고백하겠다는 뜻일까.

교원은 아주 잠시, 그와 사귀는 것을 상상했다.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 가서 대화하고.

하지만 그것에 걸리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권 대표가 가벼운 사람이라는 문제 말고도, 제가 오메가가 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교원은 머리를 훌훌 털어 생각을 날렸다. 상상도 하지 말자.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니.

그리고 핸드폰으로 제게 온 연락에 답장을 보내고, 몇 가지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여전히 권 대표는 문 앞에서 어린 강아지처럼 문을 긁고 있었다. 샥샥, 긁는 소리가 어쩐지 처량하다.

“대표님. 6시에 컨퍼런스 있는 거 잊으신 건 아니죠? 5시까지 준비 마치세요.”

“교원아…….”

“…….”

“흑, 나 진짜 비참해서 일에 집중 못 해. 교원아, 으응?”

노트북을 켜자 몇몇 팀장들이 보내온 메일이 주르륵 올라왔다. 교원은 살짝 거울을 보며 제 머리카락을 정돈한 뒤, 아직도 ‘흑흑’대는 권 대표에게 결국 말을 꺼냈다.

“일 다 끝나고, 저녁에 숙소에 와서. 식사를 끝낸 뒤에 합시다, 그 대화.”

“……진짜?”

“예. 그니까 어서 준비하세요. 정돈만 하시고, 김 이사님이랑 대화라도 하시든가.”

그제야 권 대표가 벌떡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원체 몸이 큰 탓에, 큰 탓에 움직이는 소리까지 선명하게도 들렸다.

“알겠어! 진짜 해 주기다?”

“예.”

“그럼 이따…… 이따 얘기하자.”

어쩐지 조금, 각오에 차 있는 목소리였다. 교원은 메일에 답장을 보내며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 * *

6시에 맞춰 컨퍼런스에 도착했다. 권 대표 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업계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온 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는 권 대표가 아는 이들도 꽤 수두룩하게 있었다.

미래 기술은 전망이 좋았고, 이에 대해 투자를 하거나 관심이 있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제법 큰 컨퍼런스인지라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모여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그중엔 권 대표도 포함이었다.

“근데, 이 비서님. 컨퍼런스가 정확히…… 뭐예요? 그, 찾아보긴 했는데 감이 안 와서.”

“별거 없어요, 뭐. 그냥 요즘 업계가 이러하다, 그에 맞춰 이러한 기술이 필요해 보인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자리를 옮겨 적당히 식사를 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겁니다. 이런 자리는요.”

교원의 말에 임도영이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의 컨퍼런스는 친목보다는 업계의 동향을 살피는 데에 집중되어 있지만 오늘 같은 자리는 친목 파티나 다름없었다.

미래 기술에 대해 여럿이 키노트를 발표하는 곳도 있었고, 또 새로운 기술에 대해 함께 도모해 보자는 식으로 진행되는 곳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권 대표님. 김 이사님.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번 컨퍼런스는 ‘첨단 과학 신기술과 변화하는 IT 산업 전쟁’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교원과 임도영은 손을 살짝 흔드는 권 대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강당 형식의 장소인지라, 모든 대표가 비서까지 대동할 수는 없었던 탓이다.

더불어 권 대표와 김 이사의 경호원들도 건물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안에서는 아마 커다란 화면에 주최 측에서 준비한 컨퍼런스 영상과 자료, 현 신기술의 위치 등에 대해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1분 대기조인 비서들은 핸드폰을 쥐고 시간을 때워야 했다. 물론, 교원은 업무용 핸드폰으로 이번 출장을 통해 얻은 것, 그리고 밀린 업무에 대해 정리를 하느라 바빴다.

강당 바깥에는 그러한 이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그들을 위한 의자와 테이블도 준비돼 있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밀린 업무를 꼼꼼히 정돈하던 교원은 이 일이 끝나고, 제게 들이닥칠 일에 대해 떠올렸다.

아, 진짜…… 뭐라고 하지. 분명 거절은 다 한 것 같은데, 대체 뭘 더 하겠다고 얘기를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교원은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핸드폰이 지잉, 울리는 것에 놀라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걱정스레 교원을 힐끔거리던 임도영의 시선이 따끔따끔하게 느껴졌다.

“아, 도영 씨.”

“네, 네.”

“나 잠깐 전화 좀 하고 올 건데…… 급한 일 있으면, 문자로 줘요. 전화가 길어질지도 몰라서.”

임도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쩐지 교원의 얼굴에 어둑한 그림자가 져 있어서 임도영은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아닌 걸까.

교원은 핸드폰에 뜬 이름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어제 좀 조용하더니, 성질머리 급한 새끼.

010...

교원의 핸드폰은 제 주인이 가장 싫어하는 번호를 또렷하게 띄우고서, 재촉하듯 진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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