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34)화 (34/60)

“에, 대표님 왜 무릎 꿇고 계세요?”

“어? 아! 교원 씨가 벌서라고 해서.”

테이블 위에 저녁 식사를 올려놓던 조 팀장이 황당한 얼굴로 교원을 쳐다보았다. 교원은 멍하니 서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벌서라고 안 했어요!”

“그치, 벌이라곤 말 안 했지만…….”

“그니까, 그냥, 앉으신 겁니다.”

“체벌 시간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돼, 조 팀장?”

조 팀장이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잠시 제 뺨을 쓸어내리다가, 여전히 무릎을 꿇은 권 대표와 난감한 얼굴로 다가오는 교원을 번갈아 보았다.

“대표님…… 그, 취향이 많이 바뀌신 건 좋은데.”

교원은 입술을 살짝 벌리고 조 팀장을 쳐다보았다. 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아주, 많이 바뀌신 건 좋은데…… 사내 연애는 좀, 제가 감당하기가.”

“아닙니다, 그런 거.”

“혹시나 두 분이서 갑자기, 스케줄 빼고 사랑의 도피라도 하시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조 팀장.”

교원은 미간을 팍 찌푸리고 조 팀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조 팀장은 교원이 보지 못한 것도 다 보았다. 교원을 발견했을 때, CCTV를 피해 사각지대에서 양아치들을 두들겨 패던 권 대표의 얼굴이라든가…… 여러 알파 페로몬에 전 교원에게 자신의 페로몬을 쏟아붓던 모습까지.

그건 조 팀장이 근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권 대표의 모습이었다. 다급하고, 분노에 차 있으며, 안절부절못하는 게 자신이 알던 권 대표가 아닌 것 같았다.

미친 듯이 연애를 하던 권 대표를 자주 봤음에도 그러했다.

지금까지의 연애와 이 비서와의 관계는 다를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뭐, 그래요…… 스케줄만 잘 지켜 주세요.”

“…….”

결국 교원이 조 팀장을 외면하고 나서야 체벌 소동은 잠잠해졌다.

* * *

곧이어 직원이 가져다준 와인과 화려한 안주들은 권 대표를 몹시 설레게 했다.

하지만 교원이 딱 잘라서, 저는 제 방에서 따로 먹겠다 하고 엄포를 놨다.

〈대체 왜?〉

〈지금은 대표님이랑…… 겸상하기 싫어요.〉

〈뭐어?〉

〈도영 씨, 저랑 마셔요.〉

〈예? 에, 예에!〉

그렇게 해서, 현재 ‘대표님 숙소’에서 두 그룹이 나누어 와인을 마시는 중이었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대체 어떤 회사 대표가 비서와 비서팀 막내, 그리고 경호팀이 이 시간에 와인을 마신단 말인가.

본래 다른 회사의 대표라면 지금쯤 1인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김 이사와 다음 날 있을 업무에 대해 상의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달라졌다, 달라졌다 말을 해도 권 대표는 권 대표였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와인 잔을 들지도 못하고, 안주를 건드리지 못하는 커다란 비서팀 막내, 임도영이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머리만 옅은 노란색이었다면 골든 리트리버 그 자체였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괜찮습니다. 후천적으로 발현된 케이스다 보니…… 히트 싸이클이 오기 전에 비슷한 증상이 몇 번 나타날 거라 했어요. 그게 저번, 그리고 오늘 일이고요.”

“아…….”

결국 교원이 먼저 와인 잔을 들었다. 그제야 엉거주춤, 임도영도 와인 잔을 들어 교원이 내민 잔에 제 잔을 부드럽게 부딪쳤다.

챙, 하고 잔이 마주치며 맑은 소리가 났다.

“고민 중에 있어요. 그만둘지, 말을 하고 전근이나 강등되는 걸 기다릴지. 혹은 이대로 버틸지요.”

임도영이 시무룩해 보였다. 교원은 살짝 웃으며 네모난 치즈를 꼬치로 찍어 먹었다.

“아직 크게 생각은 없어요. 다만, 오늘같이 자꾸 일이 터지면…… 업무에 영향도 오고, 항시 불안할 테니까요.”

“그건…… 그렇죠.”

“그래서 도영 씨가 좀 부럽네요. 알파인 거요.”

임도영은 그 말에 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이고, 두 팔을 무릎 위에 얹고서 눈을 수시로 깜빡거렸다.

교원은 테이블을 톡톡, 두들겼다.

“그냥 부럽다는 거예요. 나도 쭉 베타로 살아서,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으니까. 알파 입장에서는 베타가 더 편하게 보이겠죠.”

신형질.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것은 마치 성 지식처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 탓에 사회에 잘못된 인식이 만연하게 퍼져 있었다.

알파는 잘난 놈, 오메가는 임신을 하기 위한 몸. 그 정도.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죠. 지금은 바빠서 영 신경을 못 썼는데…… 어릴 때 자연스럽게 깨닫는 것들도 저는 베타로 살아오느라 몰랐으니까.”

화이트 와인은 달달하니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꽃향기가 나면서 달콤한 과일 향으로 마무리되었다. 교원은 먼저 잔을 비우고, 제 잔을 채웠다.

“회사 괜찮아요. 대표님 자체가 워낙 자유분방하시기도 하고, 뭔 줄이니, 뭐니 하는 것들 대표님이 싫어하셔서…… 다 잘라 냈다고 들었거든요.”

“아…… 그죠. 네.”

“도영 씨는 어쩌다가 여기 입사했어요?”

잔을 살살 돌리며 턱을 괴었다.

둘은 뒤쪽 베란다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바람은 선선하게 들어오고, 노을은 거의 가라앉아 거뭇한 하늘이 서서히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 모르겠어요. 그냥, 대기업은 다 지원하고…… 붙는 곳 중에서 골라서 와서.”

“아, 음…… 그걸 묻는 게 아니라, 왜 비서 일을 했냐는 거예요. 미안해요. 질문이 잘못됐네.”

고작 세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스물넷과 스물일곱. 교원은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러하듯 임도영도 저를 불편해할 거라 생각했고, 이 자리가 그리 반갑지 않은 것도 알고 있었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요. 그냥…….”

할 말 없어서 꺼낸 주제니까.

그 말을 끝내기 전에 임도영이 고개를 들었다.

“그, 정말 생각…… 없었어요. 인턴으로 들어왔다가,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서…….”

“아, 인턴으로 들어왔었어요?”

“네에. 그때는 비서팀은 아니고, 영업팀 쪽으로…….”

와인을 반도 비우지 않았으면서 임도영의 양 볼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술이 꽤 약한가 보다. 와인의 도수도 그리 높지 않은 편이라, 교원은 치즈 하나를 집어 임도영의 입에 쏙, 넣어 주었다.

“천천히 마셔요. 억지로 취할 필요 없는데.”

“아우, 음, 그게 아니라.”

“응?”

꾸덕한 치즈를 몇 번 더 씹어 삼킨 임도영이 주먹을 쥔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큼큼, 목기침을 했다.

“인턴 하다가, 비서팀으로 지원한 거…… 이 비서님 때문이에요.”

“……네?”

“그때, 팀장님이 그러셨…… 아, 말씀하지 말라곤 했는데, 그…….”

“누군지도 모르는데 뭐, 말해 봐요.”

치즈 하나를 더 입에 물려 주자 잘도 받아먹었다. 보통은 손으로 받아 들 텐데, 임도영은 입으로 받아먹었다. 그게 진짜 강아지 같아서 웃겼다.

“엄청, 엄청 독한 사람이라고. 되게 열심히 산다고…… 못 하는 게 없다고 그랬어요. 근데 그렇게 무서운 분이라고 하시다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치즈를 삼킨 임도영이 와인도 한 모금 마셨다. 푸른빛이 식탁을 감돌자 저녁 빛이 두 사람을 감쌌다.

“저렇게 바쁜데, 급한 일 있으면 바로 뛰어와서 도와주신다고…… 그, 영업팀 일은 가끔 이리저리 날뛰잖아요. 몇 번 해결해 주셨다고 들었어요. ……다른 팀들이 그걸 악용한다고, 걱정된다고도 하셨는데…… 하여튼, 어, 대단하시단 생각도 들고, 멋있어 보여서. 저랑 세…… 살 차이, 나시잖아요.”

임도영이 정말, 와인 한 잔에 취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의 주변에서 알파 페로몬이 알게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 상태로 치즈를 콕, 집어 교원의 입가에 내밀었다. 교원은 저와 똑같이 구는 게 웃겨서 입을 벌려 먹었다. 그러자 임도영이 헤헤, 웃으며 교원의 뺨을 귀엽다는 듯 문질렀다.

당연하다는 듯 그의 미미한 페로몬이 뺨과 목덜미에 흔적을 남겼다. 정말 아무런 흑심 없이, 귀엽게 묻힌 임도영의 페로몬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뭐, 제게 멋대로 진하디진한 페로몬을 묻혀 대는 권 대표에 비하면 오히려 깜찍하지 않은가. 다른 알파와 오메가들은 어떤지 몰라도 교원은 페로몬을 묻히고 다니는 게 아주 익숙해졌다. 어쩌면 이 정도의 접촉과 페로몬을 묻히는 일은 악수 수준인 것 아닐까.

교원은 잠깐 핸드폰을 확인하고, 메시지를 날린 뒤 대답했다.

“뭐…… 그렇구나.”

“네, 그래서, 비서 1팀에, 꼭, 들어오고 싶었어요.”

“잘됐네요. 도영 씨 일도 잘하고, 눈치도 있어서 비서 일에 잘 맞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임도영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한데 그 상태로 움직이질 않았다.

설마, 싶어 살짝 들여다보니 탁자에 뺨을 댄 채로 색색 잠이 들어 있었다.

“……허.”

교원은 와인 병을 들어 다시 한번 도수를 확인했다. 11도. 이렇게 약하면 말이라도 하지.

교원은 남은 와인을 제 잔에 따르고, 천천히 들이켰다.

고개를 뒤로 확 젖혀 끝까지 마시고 나자 살짝 술기운이 돌았다.

교원은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했다. 잔을 맞대는 사람이 너무 못 마시니 영 술 마실 기분이 나지 않았다.

때마침 쿵, 쿵! 휴게 룸에서 조 팀장과 술을 마시던 권 대표가 왁, 하고 등장했다.

“다! 먹었! 나! 이! 비서! 가!”

“……아…….”

갑자기 버럭버럭, 커다란 음성에 놀라 눈을 크게 뜨자 권 대표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 빼고! 먹으니까! 좋았! 나!”

“……소리 좀 줄이고 말씀하시죠. 도영 씨 자요.”

경멸하듯 쳐다보자 권 대표가 눈을 샐쭉하게 뜨고는 팔짱을 꼈다. 안 그래도 커다란 가슴이 팔짱 때문에 더 큼지막하게 보였다.

“나랑 겸상하기 싫다고 한 게 누군데!”

“저죠.”

“그럼 내가 소리를 키울 수밖에 없잖아!”

“그거랑 뭔 상관입니까?”

슬쩍 다가오는 걸 피하자, 권 대표가 이글이글한 눈으로 팔을 활짝 벌렸다. 그러곤 왁, 소리를 지르며 교원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이 비서는 평생 나 못 떠나, 알아?”

“무슨 그런 끔찍한…….”

“끔찍해?”

“……아, 아뇨. 깜찍하십니다.”

“조 팀장, 이 비서가 내가 끔찍하대.”

뒤에서 걸어 나오던 조 팀장이 무심한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떤 상사가 부하를 백 허그 합니까? 저라도 끔찍할 겁니다.”

“우린 그냥 상사랑 부하가 아니고등.”

“예…….”

“이제 둘은 나가 줄래? 이 비서 때문에 내가 머물게 해 준 거거든? 나가 줄래?”

권 대표는 꼭 어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꼬마 같았다. ‘단비꼬야!’라고 소리 지르던 귀엽고 깜찍한 여자아이를 떠올리던 교원은 한숨을 푹푹 쉬며 권 대표를 밀어냈다.

“임도영 씨는 지금 주무시고요, 대표님은 김 이사님이랑 로비에서 잠시 뵙는 게 좋겠습니다만.”

교원은 핸드폰을 들어 김 이사에게 온 연락을 보여 주었다.

한데 권 대표의 눈동자가 핸드폰에 꽂혔다가, 슬그머니 움직여 교원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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