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31)화 (31/60)

오로지 권 대표만이 보였다. 미소를 띠고 있지만 장난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허리를 쥔 손이 단단하고, 뜨거웠다.

“……대, 표님.”

노골적일 정도로 권 대표의 페로몬이 쏟아졌다.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응.”

본래의 교원이라면, 베타였다면 몰랐을 알파 페로몬이 마치 교원을 소유하고 싶다는 듯 온몸을 감싸 왔다.

교원은 헛숨을 들이켰다가 재빨리 두 손으로 권 대표를 밀어냈다. 꺾인 허리를 바로 하고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권 대표의 페로몬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두 분, 아니, 다들 기다리십니다. 내려가시죠.”

몸을 완전히 비틀어 꺾었다. 교원은 권 대표에게 등을 보이고 급히 테라스를 빠져나갔다.

권 대표가 사 준 검은 슈트에 그의 페로몬이 진득하게 묻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애써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오메가가 되었을 때부터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권 대표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었다. 그 자신도 무의식인 듯한 습관인지 취미인지 모를 그것은, 교원의 몸에 자신의 페로몬을 묻히는 것이었다.

교원은 뛰다시피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권 대표가 쫓아오기 전에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고, 미친 듯이 걷기만 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교원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굳어 버렸다. 자신답지 않은 실수를 한 것이다.

권 대표를 혼자 두고 이탈하는 것.

물론 그의 주변에 경호원들이 존재하겠지만, 문제는 지금 자신이 조 팀장과 임도영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금 전 권 대표가 핸드폰을 빼앗아 들지 않았던가. 교원은 직원들에게 조 팀장과 임도영의 인상착의를 설명했으나 직원들은 그와 비슷한 이들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

교원은 멍하니 서 있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게티 센터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한 바람에 지금 당장 권 대표를 찾지 않으면 예약한 식당에 늦을지도 모른다.

다행인 건 오늘은 업무가 없는 날이라는 거지만, 이렇게 되면 권 대표를 찾는 게 업무가 될지도 모른다.

우선 조 팀장과 임도영을 찾아야 했다. 교원은 떠나기 직전 사진을 찍던 곳도 가 보고, 게티 센터 내에 존재하는 카페에도 들렀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둘은 보이지 않았다. 그 많은 경호원도 한 명도 보이지 않아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교원은 결국 다시 권 대표와 헤어진 곳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권 대표는 그곳에 없었다.

“…….”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데. 출장을 나와서 이런 실수를 한 자신이 어이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교원은 하도 짓씹어 발갛게 달아오른 입술을 물어뜯으며 몸을 휙,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정확히 권 대표와 자신이 있던 곳에서, 그의 페로몬 냄새가 났다. 마치 제 주인을 찾는 강아지처럼 교원은 그의 향을 맡았다.

그걸 깨닫자마자 제 몸 이곳저곳에 마킹하듯 달라붙은 권 대표의 페로몬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다리가 후들거렸다.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일전에 임도영에게 오메가를 들켰던 때. 그때처럼 몸 안쪽에 뭉쳐 있던 페로몬이 팍, 하고 터져 나왔다.

“……하으……!”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져 나간 향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눈앞이 흐릿해졌다가 또렷해지기를 반복했다.

교원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테라스에 몸을 기댔다. 주변 소리가 웅웅, 울리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이 교원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 괜찮으세요?」

「힛싸인가 봐.」

「동양인?」

다급하게 품 안을 뒤적였다. 작은 비닐봉지가 손에 잡혔다. 교원은 겨우 약을 손에 쥐고, 다가오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쳐 센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게티 센터에서 알립니다. 검은 머리의 동양인 남성 베타, ‘이교원’ 어린이를 찾습니다. ‘이교원’ 어린이는 안내 데스크로…….」

심각한 와중에 웃기지도 않는 안내음이 들렸다. 권 대표 짓이다. 교원은 입술을 짓이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아, 흐, 하아…….”

약 봉투를 쥔 손이 벌벌 떨렸다. 향이 진해 알파와 오메가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교원은 비틀거리다 화장실 푯말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이교원’ 어린이는 안내 데스크로 와 주시길 바랍니다.」

미친 권 대표.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빈칸에 몸을 던져 넣었다. 문을 잠그고 바닥에 주저앉자 눈가에 눈물이 잔뜩 고였다.

아랫배부터 목덜미까지 뜨거운 열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교원은 약 봉투를 찢으려다 양손으로 팍, 소리 나도록 뜯어 약을 꺼냈다. 마른 입술 안쪽으로 약을 털어 넣자 혀가 씁쓸한 맛에 살짝 오므라들었다.

“허억, 헉, 흐윽…… 아, 흐윽, 흑.”

몸을 축 늘어트리고 고개를 숙였다. 교원은 멍하니 바닥 타일을 노려보다 제 정장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권 대표가 비싼 돈 들여 사 준 정장이었다. 비상금으로 드라이클리닝까지 했던 옷이었는데, 화장실 바닥에 앉아 버렸다. 교원은 넥타이를 풀고, 단추도 세 개쯤 풀어 냈다. 다행히 이번에도 ‘히트 싸이클 이전 비슷한 증상’에 불과했는지, 약을 먹은 후로 조금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몸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교원은 변기 뚜껑 위에 이마를 박고 반쯤 눈을 뜨고서 멍하니 화장실 칸 벽을 쳐다보았다.

「씹, 이게 무슨 냄새야?」

「누가 히트라도 왔나 본데.」

화장실로 들어선 사람들이 무어라 떠드는 소리가 윙윙, 들렸다. 교원은 작게 숨을 고르며 침을 삼켰다. 버석하게 마른 입술을 계속 혀로 훑어도 갈라져 피가 날 듯이 말라 갔다.

교원은 두 팔로 몸을 끌어안고 최대한 웅크렸다. 조절되지 않는 페로몬을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서,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비서님! 이 비서님. 여기 계시죠?”

「뭐야?」

「죄송합니다, 제 지인이…… 네, 다른 곳으로 사용 부탁드려요.」

「아…… 뭐, 그래요.」

떨떠름한 목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임도영이다. 교원은 울음을 꾹 참고 가만히 기다렸다. 곧 문을 잠근 임도영이 교원을 찾았다.

“이 비서님, 어디 계세요?”

툭, 문을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곧바로 큼지막한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교원은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흑, 아…… 도영, 씨…….”

“히트? 아니면, 아, 네. 아, 잠시만요.”

급히 교원의 옆에 쪼그려 앉은 임도영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조 팀장인 듯싶었다. 임도영은 교원을 찾았고, 몸이 좋지 않아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 괜찮으신 거 같아요. 제가 이 비서님 괜찮아지시면 나갈게요.”

임도영의 얼굴이 붉었다. 교원은 임도영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로 할딱거렸다. 단추를 셋이나 풀었는데도 더위가 가시질 않았다. 목덜미와 쇄골이 훤히 드러났음에도 교원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 핸드폰 스피커에서 버럭, 큰 소리가 들렸다.

- 전화 내놔.

굳이 스피커폰으로 돌리지 않아도 들렸다. 굵직한 목소리가 누가 들어도 권 대표의 것이었다.

- 이 비서 바꿔. 어디야? 내가 갈 테니까 장소만 말해.

“……아닙니다, 하아, 대표님. 도영 씨가 있으니…… 괜찮아요.”

임도영이 옆에서 불안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교원은 애써 평온을 가장하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 셔츠를 잡아당기며 열기를 빼내려 굴었다. 어지럽다.

솔직히 말하면 권 대표가 와서는 안 됐다. 그가 오면 오메가라는 걸 바로 들키고 말 테니까.

- 그래도 내가 가서……!

“괜, 찮아요! 도영 씨가 도와주셔서, 괜찮습니다. 권 대표님은 안 도와주셔도 괜찮아요. ……오지, 마세요.”

잠시 핸드폰이 망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리고 뜸을 들이던 권 대표가 대답했다.

- 그래, 이 비서는 도영 씨가 편하겠지.

순식간에 무거워진 톤에 소름이 돋았다. 화난 듯도 하고, 속이 상한 듯도 한 목소리였다. 교원은 무언가 실수했나, 하고 제 말을 몇 번 복기해 봤으나 떠오르는 건 없었다.

1년 내내 붙어 다녔으니 목소리만 들어도 권 대표의 기분이, 얼굴이 상상이 되었다. 그는 지금 몹시, 크게 화가 나 있었다.

- 그럼…… 빨리 나와.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임도영은 교원을 일으켜 앉히고,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 옷에 묻은 먼지도 떨어 주고 약은 먹었냐고 묻기도 했다.

제 페로몬으로 인해 저도 괴로울 텐데, 임도영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꿋꿋하게 참고 있었다. 그게 못내 고마웠다.

* * *

약이 완전히 몸에 스며들고, 더 이상 페로몬이 터져 나오지 않자 교원과 임도영은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사실, 화장실이 아니더라도 갈 곳은 있었다. 갑작스레 러트나 히트가 터진 신형질들을 위한 휴게실이 따로 있었다. 하도 급해 그곳을 찾지 못했지만.

“좀 괜찮으세요?”

“응. 이제 괜찮아.”

저번에 이렇게 터진 게 언제였더라. 저번 주였나. 교원은 슬슬 ‘히트 싸이클’을 준비해야 했다. 연속으로 이렇게 터졌으니 당장 내일 히트가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성인이 돼서 발현한 거라…… 히트 전에 이런 일이 생긴다곤 들었는데.”

“……네.”

“생각보다 잦네. 곧 히트가 올지도 모르겠어.”

슬슬 병원에 갈 때도 됐다. 교원은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병원에 들러야겠다,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임도영이 “아.” 하고는 교원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의뭉스레 올려다보자 그가 풀어진 세 개의 단추를 잠가 주었다.

“……고마워요, 도영 씨.”

“아뇨, 아니에요.”

임도영은 어쩐지 찔리는 듯한 표정으로 교원의 어깨를 잡고 다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찍이 경호원 여럿과 권 대표, 조 팀장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교원은 권 대표를 보자마자 고개를 깊게 숙였다. 상사의 일정을 비서가 망가트린 꼴이 됐으니, 징계를 먹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는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란 말도 없었다. 교원은 그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제 등을 두드리는 임도영의 손짓에 허리를 세웠다.

권 대표가 말없이 등을 돌려 걸어 나가고 있었다. 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였다.

“대표님이 걱정 많이 하셨어요.”

“아…… 내 불찰이에요.”

“아니에요, 이 비서님이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닌데.”

교원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권 대표의 뒤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비서는 상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나중에 성격이 까탈스러운 상사를 만나 보면 알 거예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호출이라도 했다면 난리가 나거든요. 게다가 지금은…… 저 때문에 다른 경호원들도 고생하고, 대표님의 일정도 어그러졌으니 징계를 먹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앞서 나가는 권 대표의 다리가 길게 뻗어져 나갔다. 저렇게 차갑게 뒤돌아선 권 대표는 익숙지 않았다. 교원은 한숨을 내쉬며 그 뒤를 빠르게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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