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27)화 (27/60)

“저, ……경호팀 분들, 출발합시다.”

“아, 아. 네.”

“네, 네!”

여기저기서 얼빠진 대답이 나왔다. 하긴, 당연한 반응이겠지.

이들이 그간 어떤 사람들을 경호해 왔는지 몰라도, 권 대표같이 구는 사람은 처음 봤을 것이다. 그것도 그 큰 NM 그룹 총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하는 짓이니 충격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원은 민망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권 대표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VIP 룸을 나오자, 바로 건너편에 출입국 수속을 하는 곳이 있었다. 전용기 고객들이 이용하는 만큼, 출입국 수속은 일반 비행기를 이용할 때보다 금세 끝이 나는 편이었다. 교원은 콜라를 쪼옥 빨아 마시는 권 대표 옆에 붙어 걷다가, 수속장이 가까워지자 앞장서서 걸었다.

권 대표의 짐은 모두 경호원들이 챙겼기에 교원과 임도영만 제 것들을 챙기면 되었다.

“이 비서님, 제가 짐 들어 드릴게요.”

“아, 네? 아뇨, 괜찮아요.”

“저 힘세요! 이 비서님은 계속 이것저것 확인하셔야 하니까 제가 들어 드릴게요.”

그래 봤자 수속 절차를 걸칠 때까지,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도영은 이 비서의 캐리어를 제가 들어 올렸다.

“그죠? 저 힘세죠?”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고마워요.”

“헤헤, 제가 더 감사하죠.”

힐끔 권 대표가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바로 수속 절차가 이뤄졌기에 교원은 의중을 묻지도 못하고 바로 신분증과 여권을 챙겼다.

전용기에 탑승하자, 내부가 적당한 온기로 차 있었다. 두 명의 승무원이 말갛게 웃으며 안내했고, 앞쪽 좌석 자리에는 경호원들과 임도영이 착석했다.

그리고 그 사이 여닫이문이 있는 안쪽에는 권 대표와 교원만이 들어설 수 있었다. 권 대표의 지시 사항이었다.

“이 비서님…… 저랑 따로 타시는 거예요?”

자동문 너머로 들어서려는데, 임도영이 무척 안쓰러운 소리를 냈다. 비즈니스석보다 넓고 편안한 자리인데 불편한 걸까. 교원은 고개를 저었다.

“따로는 아니고, 저는 뒤쪽 권 대표님께서 사용하시는 공간으로 갑니다.”

“……그렇군요…….”

“가는 길이 꽤 걸리니, 좀 자 둬요. 이번에 도영 씨가 맡은 일은 없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요.”

“넵…….”

임도영의 목소리가 꽤나 시무룩했다. 꼭 출근하는 주인 앞에 쪼그려 앉은 강아지 같았다. 교원은 어깨라도 토닥여 줄까, 하다가 안쪽에서 권 대표가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걸음을 옮겼다.

개인 전용기는 비행기와는 무척 다른 구조였다. 기다란 소파부터 시작해 침실과 거실, 샤워실, 개인 집무실 등까지 갖춰져 있었다.

테이블을 둘러싼 6개의 의자가 놓인 공간부터 커다란 TV, 부엌 또한 마련돼 있었다.

이래저래 자리를 다시 조정하고, 짐을 풀고 또 승무원들의 안내에 따라 기다리니 곧 전용기가 천천히 이륙했다.

교원은 멍하니 기다리다, 자유롭게 행동해도 된다는 소리에 몸을 일으켜 제 짐을 놓아둔 테이블 구석으로 향했다.

직항으로도 11시간 반은 넘게 걸릴 거리니, 벌써부터 좀 피곤해졌다. 그래도 베이징을 경유해서 오는 경호팀보단 낫겠지만.

“이 비서야, 안 졸려?”

교원은 가방에서 회사에서 사 준 최신 노트북을 꺼내다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소파로 자리를 이동한 권 대표가 소파 팔걸이를 끌어안고 앙큼하게 윙크를 해 보였다.

“충분히 자고 와서 졸리진 않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진짜 안 졸려? 저쪽 침대 안 갈랭?”

“피곤하시면 대표님 혼자 주무시고 오세요. 저는 일이 있습니다.”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누르자,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그거 다 비서팀 팀장들한테 넘기랬잖아.”

“다 넘겼습니다만, 제가 한 번 확인은 해야 해서요.”

“아이이…… 그거, 나중에 하고 지금 나랑 코하면 안 돼?”

권 대표가 성큼, 테이블에 앉은 교원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뒤에서 와락, 목을 끌어안았다.

“무겁습니다, 대표님.”

“나 오늘 이 비서 데리러 오려고 밤샌 거 알지?”

“데리러 와 달라고도 말씀드리지 않았고, 밤새라고 말씀드리지도 않았습니다.”

목에 둘러진 두툼한 팔을 억지로 치워 내자 권 대표가 치, 하며 옆자리에 앉았다.

“이 비서는 내가 피곤한데 걱정도 안 돼?”

“뭐, 업무에 지장만 안 간다면…….”

“진짜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다.”

투덜대던 권 대표는 털썩, 테이블에 한 팔을 길게 늘어뜨리고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눈동자만 돌려 교원을 빤히 쳐다보았다.

방해라도 할 생각인가 본데, 교원은 조금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뺨이 뚫어질 듯한 시선을 무시한 채로 잠시 기다리자, 노트북이 켜졌다. 교원은 화면이 켜진 후에도 2분가량을 기다린 다음에 업무 프로그램을 켰다.

그리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몇 개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비서1팀김팀장: 안녕하세요, 이 대리님. 출장 잘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한국대학교 컨펌 자료는 한국대 폴더에 업로드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사님은 1시간 일찍 도착할 예정이라고 하십니다.]

[차의겸: 일? 지랄하지말고 짬내서 전화해]

교원은 김 팀장에게만 답장을 하고 핸드폰을 덮어 두었다.

한국대 폴더에 들어가 컨펌 자료를 확인하고, 업무용 메신저로 김 팀장에게 피드백을 보냈다. 여 팀장에게 맡겨 놓은 것은 아직 올라온 게 없어서 그에게도 메신저를 보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권 대표가 하품을 하더니 입맛을 다셨다.

“이 비서, 애들 일은 잘해?”

“비서팀 말씀이십니까?”

“어어. 1팀이나 2팀이나…… 팀장들 말이야. 직원들까지는 자세히 모르지?”

교원은 여 팀장에게 조금 더 자세한 지시를 적어 내려가며 대답했다.

“1팀 김 팀장님은 업무 처리를 하는 데 있어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이시지만, 그만큼 실수 없이 처리하십니다. 팀원들도 능률이 좋은 편으로 압니다. 김 팀장님께서 리더십도 있으신 편이어서 시일이 지체된 적은 없습니다.”

“그럼 2팀은?”

지시 사항을 모두 작성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자 여 팀장이 곧바로 확인했다. 교원은 답장을 기다리며 권 대표의 말에 대답했다.

“2팀은…… 팀원 분들이 야근을 많이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2팀 팀장님께서 업무 시간을 잘 활용하시지 못한 탓이었고, 2팀의 내근을 줄이고 수행 업무 위주로 배분한 뒤로는 야근이 줄었습니다.”

“으음…….”

어떤 회사든 구멍은 있다.

여 팀장처럼 저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 모욕적인 말을 뱉는 사람도 있고, 성추행을 일삼는 사람도 한가득이다. 어떤 상사들은 비서에게 자신의 자식들에 대한 일을 맡기기도 하고, 어떤 부하들은 상사에게 비꼬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회사는 그런 구멍을 최대한 없애고, 가능한 한 인재들로만 구성되어야 한다. 티가 나지 않게 숨어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 감시가 소홀해진 사이 대놓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

이번의 여 팀장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리고 교원은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그가 가진 능력을 최대치로 이용하고 싶었다.

그를 자르는 길도 있겠지만, 다른 방법을 사용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된다면 이용한다.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쪽을 택하는 편이었다.

우선 이 회사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능력은 갖춰져 있다는 뜻이니까. ……선을 넘는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그래…… 음, 알겠어. 2팀 팀장 좀 더 지켜봐 줘.”

“네, 알겠습니다.”

곧이어 여 팀장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면전에 대놓고 막말을 쏟아붓던 때와는 달리, 기록이 남는 채팅창에서는 무척 예의 바른 말투를 구사했다.

아직 처리 중에 있으니 12시까지만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였다. 교원은 긍정의 답을 보내고 한숨을 푹, 내뱉었다.

“역시 피곤하지, 이 비서.”

“……하, 피곤은 하죠. 누가 업무 중에 쌩쌩합니까?”

“아까 그놈은 쌩쌩하던데.”

“누구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업무 프로그램에 새로 업로드된 파일들 하나하나를 확인하고 있는데, 권 대표가 입술을 댓 발 내밀며 툭, 말을 뱉었다.

“이 비서가 조오오온나게 이뻐하는 애.”

“……그런 사람 없는데.”

“아주 그냥, 땀도 닦아 주고 토닥여 주고, 짐을 들어 주니 마니.”

아.

교원은 권 대표가 누굴 말하는지 눈치를 채고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그를 내려다봤다. 테이블에 볼을 딱 붙이고 누워 있는 권 대표의 볼이 살짝 눌려 있었다.

“그게 뭐가 예뻐하는 겁니까?”

“이 비서 원래 그래? 원래 막, 다른 사람들 땀도 닦아 주고 토닥토닥도 하고, 어?”

“무슨…….”

“조금 전에는 쟤가 찡찡대니까 고민했잖아. 내가 안 불렀으면 저쪽에서 둘이 시시덕댔을 거 아냐.”

이 인간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교원은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딸칵, 딸칵. 마우스 소리에 권 대표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그럼, 나한테만 이렇게 쌀쌀맞은 거야? 거짓말.”

“제 어디가 쌀쌀맞다는 겁니까.”

“언제! 한 번! 나한테! 토닥토닥 해 줬어? 내가 고민 상담 할 때두! 맨날! 듣기 싫은 표정 했잖아!”

“그거야 듣기 싫은 말씀을 하시니까.”

이게 무슨 대화지. 이게 정녕 상사와 부하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가. 교원은 턱을 기대고 마저 파일들을 체크했다. 권 대표가 씩씩대며 새침하게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이번엔 아주 따끔따끔한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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