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25)화 (25/60)

차가 조금 밀린 탓에 도착하니 8시 50분이었다. GATE 1번으로 향하자, 그 앞에 임도영이 쭈그려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조 팀장, 이거 차 좀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뒤따라오던 차에서 경호 1팀과 2팀이 따라 내렸다. 경호 2팀은 권 대표의 것으로 보이는 짐을 들고 GATE 1번 앞으로 가 주르륵 각을 맞춰 섰다.

“어! 오셨어요!”

그제야 임도영이 눈치를 채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래 기다리느라 지쳤는지 벌써 피곤해 보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도영 씨.”

“네, 안녕하세요! 대표님, 이 비서님!”

꾸벅, 90도 각도로 상체를 숙인 탓에 주변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곧이어 권 대표의 빨간 스포츠카와 경호 1팀 차가 주차장으로 출발했다. 경호 2팀의 차가 천천히 앞으로 이동해 교원의 앞에 섰다.

교원은 시계를 힐끔거리며 경호 1팀에서 한 명, 경호 2팀에서 한 명을 뽑았다. 나머지는 항공사의 비행기를 탈 예정이고, 권 대표를 포함한 두 비서와 두 경호팀장은 개인 전용기를 타러 가야 했다.

“대표님, 아침은 드셨습니까?”

“아니. 이 비서는?”

“먹었습니다. 늘 드시던 샌드위치로 준비해 드릴까요?”

“응응.”

교원은 슬쩍 임도영에게 눈짓을 했다. 눈치 빠른 임도영이 후다닥 제 캐리어를 끌고 다가왔다.

“여기 2층에 서빙웨이에서 에그마요 샌드위치 15cm로 구매해 오시면 됩니다.”

“아, 넵.”

“전용기 타는 곳은…… 아, 좀 먼데…… 길 잘 찾으십니까?”

임도영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별명이 인간 내비게이션입니다!”

“도보로 15분 정도 걸립니다. 우선 샌드위치 세팅 말씀해 드릴 테니 메모하세요.”

“넵.”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낸 임도영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눈가 아래가 피로로 거멓게 물들어 있음에도 어떻게든 괜찮은 체를 하려는 게 좀 안쓰러웠다.

“서빙웨이에서 에그마요 샌드위치 15cm. 야채는 피망, 양파, 할라피뇨, 피클, 올리브는 빼고.”

“네, 넵.”

“빵은 플랫 브레드, 치즈는 슈레드 치즈, 소스는 스위트 어니언과 스위트 칠리.”

핸드폰에 적는 게 편할 텐데. 교원은 그리 생각하며 줄줄 읊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에그마요와 베이컨을 추가하시면 됩니다. 음료는 오렌지맛 환타가 있으면 그걸로, 없으면 제로 말고 오리지널 콜라로 가져오시면 되고, 쿠키는 더블 초코칩으로 하나.”

권 대표는 워낙 어린애 입맛인지라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

“포장으로 가져오실 때에는 음료와 샌드위치가 닿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줄줄 암기라도 한 듯 뱉는 것에 권 대표가 신기한 얼굴로 교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교원은 애써 무시하며 임도영에게 비즈니스 항공 센터의 주소를 일러 주었다.

“전용 터미널에 도착하면, 직원분께 NM리서치에서 왔다고 말씀드리면 안내해 주실 겁니다. SGBAC 입구로 들어서면 왼편에 라운지가 있으니 그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영 씨.”

저도 모르게 임도영이 퍽 안쓰러워 어깨를 도닥여 주자, 메모를 마친 임도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눈썹을 축 늘어트렸다.

“이 비서님…….”

“피곤해 보여서요. 앞으로도 일찍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9시에 오란 건, 9시에 오라는 뜻이에요.”

“가, 감사합니다.”

눈을 내리깐 임도영이 입술을 안쪽으로 꾹 말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는 길에 푹 잘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교원은 후딱 내부로 들어서는 임도영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뭐야, 둘이 왜 그렇게 친해?”

“……예?”

“나는 한 번도 토닥여 주지 않았잖아.”

뜬금없는 말에 교원이 눈썹 한쪽을 들어 올리며 권 대표를 쳐다보았다. 권 대표는 금방이라도 ‘흥!’ 하며 고개를 돌릴 듯한 심술 난 얼굴이었다.

“나도 맨날 힘들다고 하는데.”

“……대표님은 하실 일도 안 하시고 힘들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아냐, 힘들어. 출근만 해도 막,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럽다고.”

굵직한 팔이 교원의 팔에 쏙 들어와 끌어안았다. 교원은 몸을 뒤로 물리며 권 대표의 팔을 슥, 밀어냈다. 입술을 비죽이는 걸 보니 뜬금없이 이틀 전 꿈이 떠올라 몹시 불쾌해졌다.

“내일 건강 검진에서 빈혈이 있으신지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차갑다, 이 비서…….”

“그럼, 경호팀 두 분은 이쪽으로 오시고, 나머지 분들은 출국 수속을 받으시면 됩니다.”

권 대표를 밀어내며 경호팀에게 말을 전하자, 그들은 아무런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나이가 어린 교원의 말을 따르는 것이 불만일 법도 한데, 신기하게 경호팀 사람들은 위계질서가 잘 잡혀 있었다.

네 사람은 준비돼 있던 경호 2팀의 차에 올라탔다. 8인 탑승 차인 만큼, 덩치 큰 남자들이 타도 좁지 않았다.

운전석에는 경호 2팀의 팀장이 넷을 기다리고 있었고, 조수석에는 경호 2팀 팀원이 앉았다.

저절로 뒷좌석에는 권 대표와 교원이 앉았고, 맨 뒷좌석에는 경호 1팀 팀원이 자리했다.

“이 비서, 앞으로도 이렇게 뒤에 앉는 거 어떻게 생각해?”

“……왜요?”

“헤헤.”

권 대표는 교원의 어깨에 뺨을 기대며 묵직한 무게를 실어 왔다. 아마 여러 아르바이트를 통해 단련된 교원이 아닌 다른 이였다면 휘청거렸을 것이다.

“조수석엔 조 팀장 앉히자.”

“경호원은 대표님 옆에 있는 게 맞습니다만…….”

“아이, 그래도.”

“찡찡거리지 좀 마세요.”

평소 권 대표의 행태를 가까이서 보지 못했던 경호 2팀 팀원들이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교원은 애써 권 대표에게서 멀리 도망가며 노골적으로 한숨을 쉬었다.

“근데 이 비서, 있잖아.”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교원은 차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예.”

“나에 대한 거 그렇게 다 외우고 다녀? 난 메모해 놓고 하는 줄 알았는데.”

“언제 그걸 매일매일 봅니까. 그리고 1년이면 외우기 싫은 사람도 외울걸요.”

물론 교원은 직속 비서가 된 직후, 인수인계를 받자마자 모조리 외웠다. 비서는 상사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항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으로, 커피 취향부터 시작해서 상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꿰고 있어야 했다.

언제부터 비서가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비서, 내가 좋아서 외운 거지?”

“아닙니다.”

“나도 이 비서가 뭐 좋아하는지 외울래. 알려 줘.”

사람 말 쥐뿔도 안 듣는다. 교원은 부디 건강 검진에서 뇌에 이상이 있다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치료 후에는 이렇지 않을 것 아닌가.

“대표님이 입 닫아 주시는 걸 좋아합니다.”

냉정하게 말을 잘라 내듯 툭, 내뱉자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던 권 대표의 얼굴에 상심이 가득 찼다. 그는 커다란 덩치로 어깨를 안쪽으로 굽혀 구석에 몸을 구겨 넣었다. 그러고는 허공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비서는 왜 이렇게 차가울까…….”

“…….”

“김 이사님 비서는 엄청 다정하다고 했는데.”

질투 작전인지 비교 작전인지 모르겠으나, 교원은 그깟 것에 자존심을 상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비서가 일만 잘하면 되지, 싱글대야 할 이유가 있나.

그 후로도 권 대표는 이 비서 너무해, 조금만 다정하게 해 주지, 사람이 어떻게 저래, 등등 자조적으로 조잘거렸지만 교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마 안 가 차는 비즈니스 항공 센터에 도착했다. 네 사람이 우르르 내리자, 경호 2팀 팀장은 주차를 하겠다며 사라졌다.

교원은 늘 이용하던 VIP 1번 라운지로 걸음을 옮겼다.

VIP 라운지 룸은 적당히 넓은 공간에 푹신해 보이는 의자가 주르륵 나열돼 있었다. 그 앞에는 대리석으로 이뤄진 탁상과 다과, 음료, 신문 등이 놓여 있었다.

전체적으로 베이지와 갈색을 담은 인테리어는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풍겼다.

“우리 몇 시 출발이지?”

“10시 5분입니다.”

“하암…… 시간 많이 남았네.”

두 경호원은 자리에 앉지 않고 벽면에 등을 대고 섰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경호원들은 항상 사고에 대비할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교원은 의자에 늘어져 눈을 감은 권 대표를 힐끔거렸다. VIP 룸으로 향하며 보았던 멋들어진 정장을 입은 임원, 혹은 대표들과 무진장 비교되는 꼴이었다.

화려한 금발 머리 위에 얹어진 검은 선글라스, 검은 가죽 재킷에 검은 티와 바지. 누가 보면 로커(Rocker)라도 되는 줄 알겠다.

무료한 시간 사이, 교원은 오늘 스케줄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진행하게 될 업무들과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것을 꼼꼼히 살피고, 권 대표의 입맛에 맞는 점심과 저녁 식사, 그리고 숙소까지 세심하게 체크했다.

숙소에는 미리 전화를 해 두긴 했으나,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연락해 부탁드린 대로 준비가 되었는지를 체크했다.

그러는 사이 경호 2팀 팀장과 경호 1팀 팀장이 도착했다. 교원은 시간을 확인한 뒤 임도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도영 씨, 오고 계세요?]

[비서1팀임도영: 네! 지금 항공 센터 입구에요!]

[천천히 오세요. 고생했어요.]

[비서1팀임도영: 네! 알겠습니다! (행복)(무지개하트)]

마지막으로 비서 1팀의 김 팀장에게도 메시지를 넣었다.

[김 팀장님, 안녕하세요. 이 대리입니다. 현재 출국 전 라운지 룸에서 대기 중입니다. 부탁드린 한국대학교 컨펌 진행 사항 여쭤보려고 연락드렸어요.]

이 외에도 신경 쓸 게 산더미였다. 출장 3일간 제 일을 김 팀장과 여 팀장이 맡을 터인데, 김 팀장 쪽은 걱정할 게 없다지만 여 팀장 쪽은 심히 걱정이 되었다.

안 그래도 이전에 제게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위계 질서를 어기는 말까지 하지 않았던가. 교원은 새근새근 잠든 권 대표를 보며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때, 핸드폰이 징징 울리기 시작했다.

010-xxxx. 짜증스러울 만큼 익숙한 번호였다.

차의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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