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24)화 (24/60)

주말 내내 차의겸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했으나 먼저 연락할 생각은 없었다. 더불어 회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으로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권 대표가 NM 그룹의 힘으로 유와이 엔터테인먼트에 압력을 넣었을 거라는 것.

교원의 예상이 맞다면 이제 몸으로 돈을 갚으라느니 따위의 개 같은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악질적인 불법 채권 추심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전에도 여러 번 차의겸이 농담조로 말을 하기에, 어린 마음에 경찰을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경찰에게서 온 연락은 ‘죄송합니다.’뿐이었다.

차의겸과 그의 아버지, 차원주가 운영하는 불법 사금융은 교원이 스물을 넘기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유와이 엔터테인먼트가 급성장을 하던 시기였다.

아마 교원의 신고가 제대로 접수되지 않은 것도 유와이 엔터테인먼트가 엮여 있던 탓이리라.

교원은 찝찝한 마음으로 이전에 권 대표가 사 준 정장 여러 벌과 편한 옷, 세면도구 등을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페로몬 조절제 약 봉투도 꼼꼼히 챙겨 넣었다. 그리고 혹시 몰라 시중에 판매하는 것도 준비했다.

출장 기간은 3일. 3일간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권 대표 옆에 붙어 있어야 했으니, 이전과 같은 일은 없어야 했다.

당시 일을 떠올리자 아찔했다. 천천히 몸을 감돌던 열감과 온몸을 주체할 수 없을 만치 괴로웠던 페로몬의 부작용.

그때 임도영이 없었더라면, 임도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교원은 분명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도영 씨, 9시까지 김포 공항 1번 GATE로 오는 거 안 잊으셨죠?]

생각난 김에 임도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출장은 권 대표와 교원, 경호 1팀과 2팀, 운전기사님과 비서 1팀에서 임도영이 함께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업무를 도울 이사는 도착해서 합류하기로 했다.

본래라면 비서는 자신뿐이면 되었지만, 교원은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비서 한 명을 더 데려갈 것을 권유했다.

권 대표가 그를 거절할 리는 없었다.

그리고 교원은 임도영을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혹여 일이 늘어나는 걸 싫어할까 싶어 미리 물어보았는데, 임도영은 꽤나 열정적인 학생처럼 고개를 마구 끄덕였었다.

어찌나 신나 보이던지, 저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을 뻔했다.

교원은 계단을 내려가며 한숨을 푹 쉬었다. 저번 출장, 권 대표가 관광이라도 온 것처럼 신나 하더니 유명 맛집을 가야 한다며 고집을 부리는 통에 스케줄에 늦을 뻔했었는데.

그때 핸드폰이 징, 울렸다. 잠시 캐리어를 내려놓고 핸드폰 화면을 보자, 임도영에게서 답장이 와 있었다.

[비서1팀임도영: 네!!! 저 도착했어요!! (윙크)(하트)]

“……음?”

교원은 눈이 잘못됐나 싶어 시간을 확인했다.

7시 21분. 교원이 사는 남현동에서 김포 공항까지는 대략 1시간이 걸린다. 대치동에 사는 권 대표도 그 정도 걸릴 것이다.

그러니 두 사람이 도착하기까지 1시간이 남아 있는데…….

[도영 씨. 9시까지예요. 지금은 7시 반이고.]

교원은 차분히 메시지를 보냈다. 무언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첫 출장에 너무 설레서 시간을 잘못 본 건 아닐까, 하고.

[비서1팀임도영: 네! (행복) 두 분 오시기 전에 미리 도착했습니다!]

교원이 알기로 그는 이곳이 첫 회사였다. 그러니, 막내라고 10분 더, 20분 더, 30분 더 빨리 오라는 이상한 중소기업의 체제를 임도영이 배웠을 리가 없는데.

[아침이라도 먹고 있어요.]

너무 부담되는 자리였을까, 싶어 한마디를 덧붙이자 바로 답장이 왔다.

[비서1팀임도영: 네!!! 후딱 먹겠습니다!! 천천히 오세요!!!]

그리고 하트를 날리는 귀여운 이모티콘이 따라붙었다. 교원은 턱을 살짝 긁으며 그걸 내려다보다가, 핸드폰을 코트에 쑤셔 박았다.

다시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내려온 교원은 익숙하게 제 차 키를 꺼내다가, 또 그것을 발견했다.

새빨간 오픈카.

“이 비서어!”

마치 휴양지로 여행을 가는 듯한, 화려한 옷차림의 권 대표가 헤벌쭉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화려한 금발 위로 계절감을 잊은 듯한 까만 선글라스까지 걸쳐져 있었다.

교원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제 차 키를 내려다보았다.

차, 팔까?

“이 비서, 이 비서! 잘 잤어? 좋은 아침이지, 그치? 날씨도 좋고!”

이 추운 날씨에 왜 천장은 활짝 열어 놓고 있는지. 추위를 많이 타는 권 대표의 입술이 파랗게 물들어 있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그리고 뒷자리에는 조 팀장이 어설프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차는 그렇다 치고, 왜 매번 대표라는 사람이 지가 운전대를 잡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조 팀장 또한 마찬가지인 듯, 울상을 지으며 ‘제가 운전하려고 했어요.’를 손짓으로 어떻게든 표현하려 들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 조 팀장님.”

교원은 노골적으로 괴상한 것 보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캐리어를 싣기 위해 뒷문을 여는데, 권 대표가 “어!” 하고 짧게 소리를 내더니 팔을 뒤로 뻗었다. 그 덕에 캐리어를 싣던 교원의 팔목이 그의 손에 붙잡혔다.

“왜 그러십니까?”

“이 비서는 앞에 타야지!”

“……네?”

“이 비서 맨날 앞에 탔잖아!”

삐쳤다는 듯 퉁명스러운 말투에 얼이 빠졌다. 권 대표는 입술까지 댓 발 내밀고는 새침하게 씩씩거렸다. 서른이 넘은 남자가 지을 표정이 아니었다. 그니까, 오히려 이걸 보고 역해야 정상인데…….

“……저, 캐리어만 두려고.”

“웅?”

“캐리어만 뒤에 실을 생각이었습니다.”

교원은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믿고 싶지 않다. 이 현실을 무진장 외면하고 싶었다. 권 대표가 귀여워 보인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 진짜? 뭐야아. 내가 오해했네.”

“……제가 예의 없이 뒤에 타겠습니까.”

“그치, 맞지. 조 팀장은 예의 없어서 뒤에 앉았지만 말이야.”

권 대표가 싱글벙글 웃으며 몸을 앞으로 돌렸다. 그러자 조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조 팀장은 절대 아니라는 듯, 억울한 표정으로 제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검지로 조수석을 가리키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신은 저기에 앉으려고 했다, 라는 뜻인 듯싶었다. 우락부락한 덩치에 험악한 인상의 조 팀장은 순식간에 대표를 기사처럼 앞에 앉히고 뒤에서 떵떵거리는 몰염치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교원은 위로 차원으로 조 팀장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 뒷좌석에서 몸을 빼 조수석에 앉았다.

“안 피곤하십니까?”

“응? 왜?”

“이 시간에 잘 못 일어나시잖아요.”

오전 10시까지 처자던 사람이 이 시간에 어떻게 나왔나 싶어 눈을 가늘게 뜨자, 권 대표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밤샜지!”

“……예?”

“하암, 그래야 이 시간에 나올 수 있단 말야.”

권 대표는 보통 사람과 생각 자체가 다르구나. 대부분 일찍 자서 일찍 일어날 생각을 할 텐데.

“밤새 뭘 하셨습니까.”

“나? 큼큼, 흠…….”

권 대표의 오픈 스포츠카가 천천히 이동했다. 새벽바람이 시리도록 찼다. 거리에 몇 없는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좀 부끄러운데.”

“네?”

툭 던진 물음이었는데, 권 대표가 볼을 핑크색으로 붉히며 큼큼, 헛기침을 뱉었다. 그는 유려하게 운전하며 입술을 씰룩씰룩, 움직이다가 쭈욱 동그랗게 내밀고는 쭙쭙, 소리를 냈다. 그 유치한 짓거리에 교원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왜 이러십니까?”

“흥흥, 이 비서, 궁금해? 나 뭐 했는지 많이 궁금해?”

생각해 보니 내일이 권 대표의 건강 검진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교원은 환자를 보는 눈으로 권 대표를 힐끔거렸다.

“아뇨. 궁금하지 않습니다.”

“뭐야, 왜? 방금 물어봤잖아?”

“진짜 궁금해서 여쭤본 건 아닙니다.”

예의상 하는 질문이라는 것도 모르나, 이 사람이.

교원은 미간을 구기며 차창을 두드렸다.

“천장이나 닫으세요. 춥습니다.”

“그, 그래? 멋있지 않아?”

“이 날씨에 오픈카를 타면 보통은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완연히 가을에 물든 날이거늘, 권 대표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천장을 닫았다. 지이잉, 하고 기계 소리를 내며 뚜껑이 닫혔다. 꼭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의 합체 장면 같았다.

“……그래서, 이 비서는 진짜 안 궁금해?”

“네.”

그 표정을 봤는데 뭘 더 궁금해할까. 수줍어하는 얼굴을 봐서는 분명 들어 봤자 좋을 게 없을 듯했다.

“난 이 비서 뭐 하고 사는지 궁금한데…… 주말에 말야, 응? 이제 주말에 출근 안 해도 괜찮지 않아? 내가 주말에 일 안 하는 멋진 상사기도 하고.”

멋진 상사가 아니라, 지가 일을 하기 싫은 거겠지. 교원으로서는 권 대표가 주말에 있을 스케줄도 모두 소화했으면 하는 생각이 컸다. 회사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주말 수당도 받고 싶었다.

“주말엔…… 공부합니다.”

“공부? 무슨 공부?”

좁은 골목에선 속력을 높여 달리던 차는 큰 도로에 와서는 현저히 느려졌다. 도로는 출근을 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디자인 강습입니다. ui디자인과 ux디자인 공부 중에 있습니다.”

“와…… 재미없겠다.”

“생각보다 적성에는 맞는 편이라 재밌습니다. 좀 골치는 아프지만.”

권 대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주말 내내 부어라 마셔라 술 파티를 하고, 누구 꼬실 생각에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던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비서는 이상한 사람이야, 진짜.”

교원은 아무 말 없이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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