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13)화 (13/60)

교원은 권 대표가 앉아 있던 의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제 엉덩이를 은근슬쩍 매만지는 박 전무의 손길은 애써 무시하면서.

“이 비서, 권 대표가 얼마나 쳐 주나? 응?”

“연봉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넉넉하게 주십니다.”

“그런 거 말고 말이야, 이 비서 정도 되는 사람이면 무슨 말인지 알 텐데.”

알지만 일부러 무시한다는 걸, 박 전무쯤 되는 사람이 모를 리가 없었다.

간혹 이런 경우가 꽤 있다. 포지션을 막론하고, 교원은 제법 인기 있는 편이었다. 대학생 시절에도 밤거리에서 이상한 남자들에게 붙잡힌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죄송하지만, 권 대표님과는 비즈니스 관계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업무가 바빠 그 외의 일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거 서운한데. 일적으로 말고, 사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얘기거든.”

큼지막한 손이 탱탱하게 올려 붙은 엉덩이를 콱, 쥐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서서히 노골적인 움직임에 불쾌감이 들었으나 단박에 내칠 자리는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박 전무님. 전무님께서 좋은 분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사적인 시간도 부족한지라…….”

“그러지 말고, 이 비서. 아니, 이교원 씨. 베타라고 했나? 난 사실 말이야. 예쁘장한 오메가들보다 탄탄한 놈들이 끌리거든…… 교원 씨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들었어.”

아무래도 이번엔 아래 포지션으로 제안을 받은 듯싶다.

키 178cm, 적당히 근육이 잡힌 몸과 냉정하고 금욕적인 분위기의 교원은 대체로 바텀―혹은 오메가―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나 가끔 박 전무처럼 비틀린 취향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그래, 박 전무는 분명 교원이 알파였다 하더라도 제안했을 것이다. 바텀으로.

“좋게 봐 주시는 마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외람된 말씀이지만, 조금 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권 대표님의 수행 비서이자 직속 비서로 일을 하는 만큼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다시 한번 좋게 봐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미팅 룸에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박 전무처럼 독특한 취향을 가진 이들은 좀, 집착이 심했다.

두세 번 거절하는 것으로 처리될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로 그는 아직도 교원의 엉덩이에서 손을 떼어 놓질 않고 있었다.

“고집이 세네, 이 비서.”

“……죄송합니다.”

뚜벅뚜벅, 권 대표의 걸음 소리가 들렸다. 박 전무는 그제야 교원의 엉덩이에서 손을 떼고 뒤로 가 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교원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뒤쪽으로 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박 전무는 권 대표가 자리에 앉는 순간까지 교원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가 별 볼 일 없는 작은 중소의 전무였다면 교원도 딱 잘라 거절했을 것이다. 그걸로 마음이 상해 미팅에서 틱틱댄다고 하더라도 NM리서치와의 일을 끊어 낼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박 전무는 3대 엔터 중 하나인 승화 소속으로, 이번에 진행하려는 프로젝트도 꽤 큰 편이었다. 그런 이들에게는 불쾌한 티를 내지 않고, 말로 밀어내는 것이 좋았다.

그것이 1년간 비서를 하며 깨달은 방식이었다. 교원이 애초부터 오메가였다면 질 나쁜 일에 휘말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 죄송합니다. 사람이 좀 많더군요.”

“워낙 유명한 곳이지 않습니까.”

화장실을 다녀온 권 대표는 방 안에 감도는 묘한 분위기에 박 전무를 살피는 듯했다. 이 자리가 끝나면 권 대표는 교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것이다.

그리고 교원은 늘 그랬듯 말해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가 그런 일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알고 있는 바였으니.

기밀 사항이 오가는 대화는 지속되었다. 교원은 여느 때와 같이 조금의 표정도 드러내지 않고 권 대표의 옆에서 그를 보좌했다.

권 대표가 습관처럼 입술을 닦은 냅킨을 테이블에 올려 두면 그것을 소리 없이 손을 내밀어 치우고, 권 대표가 헛기침을 하면 목이 마른다는 뜻이므로, 물 잔에 물을 채웠다.

권 대표와 달리, 비서들은 화장실에 가는 일조차도 녹록지 않다. 언제 어디서 상사가 저를 필요로 할지 모르기 때문에,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불쾌해하는 상사들이 꽤 있는 탓이다.

물론 권 대표는 그런 편은 아니었지만, 이전 비서팀에서 일을 하면서 권 대표가 아닌 다른 상사를 임시로 맡으며 생긴 버릇이었다. 교원은 드디어 끝나나 싶어서, 화장실 타이밍을 기다렸다.

“좋습니다. 그럼 9월 7일까지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9월 10일에 각 임원들과 화상회의를 진행하도록 하죠.”

두 사람이 탁상 하나를 가운데 두고 악수를 했다. 교원은 권 대표 앞에 놓았던 태블릿과 자료를 챙겨 정리했다. 박 전무의 비서도 깔끔하게 정리를 마친 후에야 두 사람은 방을 나섰다.

“권 대표님 요즘 무척 잘나가시던데, 바쁘시겠습니다?”

“박 전무님만 할까요. 전무님 능력이 원체 탁월하시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복도를 나서는 와중에도 두 사람의 빈말 섞인 칭찬이 오갔다. 교원은 침착하게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가게를 나가기 직전, 교원은 대화가 끊기자마자 권 대표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 화장실 좀 들렀다가 가겠습니다.”

“응, 그래.”

교원은 박 전무의 비서가 법인 카드로 결제하는 것을 본 뒤, 화장실을 찾았다. 참고 있던 것을 해결한 후에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느긋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빠르게 손을 씻고 있는데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 박 전무님.”

“이런, 우연이네. 나도 화장실이 급했거든.”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일회용 타월을 꺼내 손의 물기를 닦고 있자, 박 전무가 볼일은 보지 않고 교원에게 슬그머니 다가왔다. 교원은 고개를 숙이고 그를 피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팔이 붙잡혔다.

“박 전무님.”

잔뜩 굴곡진 손이 교원의 팔뚝을 빈틈없이 붙잡았다. 제법 근육이 잡힌 몸이었으나, 뼈대 자체가 얇아 교원은 정장을 입지 않을 때면 제법 늘씬하게 보이곤 했다.

“무시하지 말고.”

“분명 저는…… 윽!”

목덜미가 잡혀 벽으로 몰렸다. 단단한 벽에 머리를 부딪치자 눈앞이 핑글 돌았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놈을 엎어뜨리고 이가 나갈 때까지 두들겨 팰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교원은 일이 어그러지는 것이 싫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놈은 많지 않았는데……!

“그냥 좀 만나 보자는 건데, 뭘 그렇게까지 튕겨?”

“말씀, 드렸잖습니까. 저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 니다.”

“하하… …그니까, 내가 뭐라 했냐고. 교원 씨는 왜 자꾸 사람을 건드릴까.”

“큭, 헉!”

박 전무의 악력이 생각보다 강했다. 교원은 두 손으로 놈의 팔을 잡아 힘을 줘 밀어냈다. 힘이 비등비등했던 탓에 박 전무는 밀려났다가도, 다시 교원의 손목을 붙잡아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럴 때마다 속에서 구역질이 치솟았다. 박 전무는 교원에게 밀려날 때마다 인상을 찌푸렸다가, 재밌다는 듯 눈을 휘기도 했다.

그에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박 전무가 알파 페로몬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말 안 듣는 개를 교육시키는 건 제법 재밌지. 이제 대답 좀 해 보지 그래.”

교원은 이를 꾹 다문 채로 표정을 지웠다. 무심한 얼굴로 박 전무와 눈을 똑바로 맞췄다.

“잘 생각, 하셔야 할 겁니다. 박 전무님. 권 대표님은…… 흐, 이런 거, 싫어하시거든요.”

“뭐, 그럼 교원 씨가 교원 씨 입으로 말할 거야? 나한테 추행당했다고?”

“말 못 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게 부끄러워서 말 못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교원은 아니었다. 압력에 의해 패소한다고 하더라도 증거를 박박 긁어모아 소송을 걸 생각도 있었다.

박 전무는 재밌다는 듯 이를 드러내 웃었다.

참으로 이상하지. 사람들은 돈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다가도, 쾌락에 눈이 멀어 잘못된 행동까지 저지르기도 했다.

하는 수 없다. 박 전무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시말서를 쓰게 되더라도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 교원은 감정 없는 눈으로 그와 시선을 맞추고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정강이로 박 전무의 아랫도리를 힘차게 걷어찼다. 아예 뭉개져 아래가 터질 만큼 강하게.

“아악! 헉, 어윽!”

그리고 동시에, 화장실 문이 열렸다.

“이 비서, 왜 이렇게 안…….”

참 빨리도 오시지, 우리 주인공은.

교원은 억 소리를 내며 꺽꺽대는 박 전무를 등 뒤로 하고, 고개를 들어 권 대표와 눈을 맞췄다.

“잠시 소란이 있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이게 뭐야.”

권 대표의 얼빠진 말에 박 전무가 제 아랫도리를 붙잡고 끙끙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실핏줄이 터질 만큼 눈을 부릅뜨고는 소리쳤다.

“권 대표님! 저, 저, 비서가 먼저 유혹해 놓고, 대표님이 오시자 이런 짓을, 했습니다!”

“……이 비서, 무슨 일이 있었지?”

교원은 난감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표님은 어찌 보이십니까, 이 상황이.”

1년간, 양손으로도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있던 일이다. 그걸 권 대표가 이제야 알게 된 것뿐이고.

교원은 셔츠의 단추 두 개를 풀어 목덜미에 남은 불그스름한 자국을 드러냈다. 그리고 판판하게 정리돼 있던 정장이 이리저리 어그러진 것을 권 대표에게 보여 줬다.

탱글탱글한 바지에 잡힌 주름을 보여 주자 그 옆에 서 있던 조 팀장이 교원을 말렸다.

‘왜요.’

‘그, 이렇게까지는…….’

두 사람이 작게 속삭이는 사이, 권 대표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는 박 전무에게로 다가갔다.

권 대표는 교원이 굳이 증거를 내놓기 전부터 누가 원인인지 아주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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