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11)화 (11/60)

다음 날, 집에서 나온 교원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이도 저도 못했다.

권 대표가 빨간 스포츠카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던 탓이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그를 힐끔거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권 대표는 스포츠카에 몸을 기대고 모델처럼 기다란 다리를 쭉 펴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이 비서!”

그러나 교원이 도망치기도 전에 권 대표가 먼저 교원을 발견했다. 잘생겨서 다행이지, 아니면 진짜 꼴값 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나마 외모가 되는 탓에 잡지의 한 장면처럼 보이긴 했다. 여기가 원룸촌이 아니라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데리러 왔어, 자기.”

왜 저러지, 진짜. 진짜 미친 건 아닐까?

교원은 저를 대놓고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걸음을 빨리했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때, 해맑은 얼굴로 치명적인 미소를 머금고 있는 권 대표가 제 차를 탁탁, 쳤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

휙, 권 대표가 손에 쥔 것을 던졌다. 저도 모르게 잡아챘더니 권 대표가 후후, 하고 웃음을 흘렸다.

“우리 자기 차야. 선물이야.”

“……차 키?”

자세히 보니 심지어 포르쉐다.

“911 타르가. 어때.”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올린 권 대표가 손을 내밀었다. 교원은 다시 돌려 달라는 건가, 싶어 차 키를 내미는데, 내민 손이 붙잡혔다.

“무슨…….”

일반 남성의 손보다 커다란 아귀가 교원의 손을 붙잡아 당겼다. 아차 하는 사이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황당한 눈으로 올려다보자,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권 대표가 교원의 허리를 감싸 왔다.

“타시죠, 우리 비서님.”

“……진짜 왜 이러십니까?”

“어서.”

교원은 권 대표의 품에 안겨 끌려가다시피 조수석 앞에 서게 됐다. 권 대표는 유려한 손짓으로 차 문을 열어 에스코트했다.

“자, 타.”

건강 검진은 일주일 뒤다.

스케줄 하나를 날려서라도 앞당기는 게 좋을까?

교원은 우선 앉았다. 권 대표는 조수석 문을 닫고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석에 착석했다. 지금 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회사원 같은 꼴로 오셨다.

매일 대충 정장을 걸치다시피 하고 나타나던 권 대표였다. 그래서 스케줄 전에 제대로 옷을 입히고, 넥타이까지 꼼꼼히 매 주고는 했고.

“갈까, 자기?”

“…….”

“왜? 차 맘에 안 들어?”

교원은 제게는 벅찬 포르쉐 차 키를 내려다보다가, 말없이 조수석과 운전석 사이에 내려놓았다. 지금 심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표님, 혹시…… 지금도 애인 대행을 해 드려야 하는 겁니까?”

“응? 애인 대행?”

“저번의 그 베타가 미행이라도 합니까? 그래서 지금 이렇게…….”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새 차다. 진짜 새로 뽑아 온 차였다.

“……차는 또 왜 사셨습니까?”

“……싫어?”

“아니, 그, 제 차가 아닌데 싫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 비서 주는 건데, 이 차.”

교원은 입을 다물었다. 환자와 더 대화해 봤자 이득이 될 건 없다.

말없이 안전벨트를 매는데, 그제야 중앙 미러에 비치는 조 팀장이 보였다. 그는 교원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세단이 좋은가, 이 비서는?”

“전…… 지금 제 차로 만족합니다만.”

“갖고 싶은 차 있을 거 아니야.”

“없습니다.”

딱 잘라 말하자 권 대표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진짜? ……왜?”

“됐고, 출발해 주세요. 이러다 늦겠습니다.”

잔뜩 들떠 있던 권 대표가 시무룩해졌다. 곧 시동이 걸리고,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교원은 차 키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그야 비싼 차니까 주면 좋다. 바로 팔아 치워 빚을 갚겠지만, 공짜로 주는데 누가 좋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엔 공짜란 없다. 시식 코너에서도 음식 한 점 먹을 때마다 점원의 영업 멘트를 1분 이상 들어줘야 하는데 2억은 넘을 차가 공짜겠는가.

어쩌면 권 대표가 지금 신이 나서, 주변에 돈을 펑펑 쓰고 싶어진 걸 수도 있다. 그의 비서로 일한 지 1년째, 단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러다 기분이 나빠지면 차를 훔쳤다는 명목으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여하튼 교원은 이유 없이 주는 것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이 비서. 진짜 싫어?”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습니다. 대표님 차인데 제가 뭐라 왈가왈부하겠습니까.”

도로에 진입한 권 대표가 잠시 빨간불을 틈타 물어 왔다. 그러나 교원의 차가운 대답에 살짝 뾰로통해졌다. 꼭 쥐를 잡아다 줬더니 먹질 않아 심술 난 고양이 같았다.

“너 주는 거라니까?”

“빚지는 거 싫어합니다.”

“빚 아니고 그냥 주는 건데.”

“안 믿습니다.”

오히려 무섭다. 대체 뭘 원해서 이러는지 가늠이 되질 않아서 더 그랬다.

권 대표가 그간 이렇게 행동한 적이 있었다면 고민이라도 해 보겠다. 하지만 그는 애인에게도 차를 선물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짧게 사귀고 금방 헤어졌으니, 소소하게 명품 백을 선물한 게 다였다.

만약 그가 차로 사람을 꼬신 적이 있었다면, 그가 저를 꼬시는 건가 의심이라도 하겠는데 이건 뭐…….

[어제 뽑으신 거예요?]

교원은 조 팀장에게 톡을 날렸다. 곧장 답장이 왔다.

[경호조팀장: 네 어제 퇴근길에…….]

[갑자기요?]

[경호조팀장: 진짜 말씀 없으시다가 갑자기;;]

[오늘 오후 스케줄 취소하고 건강 검진 하러 가겠습니다.]

[경호조팀장: 네ㅠㅠ]

어쩔 수 없었다. 오후 스케줄을 싹 뒤로 날리고 검진을 받아야겠다. 스케줄을 미루는 건 교원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긴 했지만, 대표가 아프면 스케줄이고 뭐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교원은 진지한 눈으로 화면에 주치의의 번호를 띄워 두고,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오전 스케줄을 끝내고, 잠시 회사에 온 교원은 빠르게 자료를 정리했다. 이전에 대성 물류에서 컨택해 온 것을 권 대표가 관심을 보인 탓이다.

당시에 권 대표가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혹시 몰라 자료를 정리해 한쪽에 미뤄 두길 잘했다. 자료를 인쇄한 뒤 AI 센터 쪽으로 넘길 것만 따로 정리했다.

“이 비서님.”

그리고 오후에 있을 건강 검진을 위해 짐을 챙기는데, 비서 2팀 팀장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아, 네. 왜 그러십니까?”

“할 말 있어서.”

말을 툭툭 끊는 걸 보니 좋은 이야기는 아닐 듯싶다. 그가 교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적대심을 표현할 정도는 아니었다. 교원은 짐을 내려놓고 휙 돌아선 여 팀장을 뒤따랐다.

비서 1팀의 김 팀장에 비하면 비서 2팀의 여 팀장은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떻게 팀장 자리를 꿰찼는가 싶을 정도로 업무 능률이 좋지 않았다.

그거야 뭐, 이전에 이야기를 듣고 사정을 알게 되어 처리를 해 두긴 했지만.

“커피 드시겠습니까?”

“아뇨.”

휴게실에 들어서자마자 여 팀장은 팔짱을 끼고 교원을 노려보았다.

여상우, 나이는 서른다섯에 우성 오메가 남성. 몇 년 전에는 평이 좋았던 사람이었다. 그때 교원은 비서 1팀의 직원이었다.

“말씀 하…….”

“하, 내가 진짜…… 이봐요. 이교원 씨.”

“네, 말씀하세요.”

“김 팀장하고 좀 친해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업무를 분배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교원은 슬쩍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권 대표가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겠어, 자기. 빨리 와.’라고 했으니 빨리 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모르는 척해? 수행 업무가 늘었잖아. 1팀은 내근이 늘었고, 내가 그거 모를 거 같아?”

아.

교원은 무슨 얘긴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여러 번 고심 끝에 결정한 일이었다. 우선 김 팀장의 말을 듣고, 소문의 진위를 확인했다. 여 팀장의 직원 카드 사용 내역을 살펴 비서실을 오가는 시간을 모두 체크했다.

그는 대체로 출근 시간보다 30분 늦게 회사에 도착했고, 점심시간이 되면 나갔다가 들어오는 텀이 꽤 길었다. 12시에 점심을 먹으러 간 사람이 4시, 5시에 다시 직원 카드를 찍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이 말이나 되나.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 CCTV도 체크해 두었다. 한쪽 말만 듣고 일을 처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업무 능률을 올리기 위해 결정한 사안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업무를 분배해 드린 이후로 직원들의 야근 시간이 줄었습니다.”

“……뭐, 뭐?”

슬그머니 시간을 뺄 수 있는 내근을 줄이고 수행 업무를 2팀에 넘긴 건 사실이었다. 물론 수행 업무도 시간을 질질 끌 수는 있겠지만 이전처럼 서너 시간씩 빼먹기는 힘들 테니까.

“인사팀에서 확인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비서 2팀의 야근이 줄고, 비서 1팀은 2팀의 업무를 받아 처리하는 속도가 증가했습니다. 또한, 비서 2팀 직원들을 상대로 익명 간이 설문지를 받아 보았는데 바뀐 업무에 만족하는 분들이 다수입니다. 원하신다면 설문지를 보여 드릴 순 있습니다만, 오늘은 나가 봐야 해서요.”

수행 업무를 2팀에 조금 더 줬다곤 하지만,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본래의 양보다 두세 건이 늘었을 뿐이다.

“야, 너 직급 좀 높다고 사람 그렇게 무시해도 돼?”

말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지 여 팀장이 괜한 꼬투리를 잡았다. 교원은 무심한 얼굴로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권 대표에게서 톡이 와 있었다.

[권새끼: 빨리와심심해]

이거야 원, 애를 돌보는 건지 보좌를 하는 건지.

“내 말 무시해? 어디서 어른이 말하는데 다른 데를 봐? 야, 너 권 대표가 예뻐하니까 뭐라도 된 줄 알지? 직급 올라간 것도 네가……!”

쨍알쨍알 시끄러운 목소리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교원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여 팀장의 말을 가로채어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대표님께서 부르셔서 이만 가 봐야 합니다.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메시지 남겨 주시고, 조금 전 말씀에 답을 드리자면 무시한 적은 없습니다. 직급이야 제 업무 능력이 좋아 올라온 것이니, 여 팀장님께서 자존심 상해하실 건 아닙니다. 충분히 잘하고 계십니다.”

“……허.”

여 팀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숨을 뱉었다. 교원은 그것도 본체만체하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가 보겠습니다.”

여 팀장이 다시 저를 부르는 듯했으나 더 들어 줄 가치는 없었다. 그저 불만을 토로하려는 목적이라면 애인에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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