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3)화 (3/60)

“죄송합니다.”

“네? 아, 저기요……!”

교원은 애절하게 달라붙는 여성에게서 도망치듯 걸음을 빨리했다. 도로 한쪽에 세워 둔 검은 세단의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 씰룩씰룩 웃고 있다.

“오늘 미세먼지 위험 단계입니다. 창문 내리시죠.”

“자기, 방금 번호 따인 거 맞지?”

“안 드렸으니, 아닙니다.”

“기다려 줄 테니까 다녀오지? 응?”

“됐습니다. 이거나 받으세요.”

대표의 체통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인간 같으니.

교원은 권 대표에게 샌드위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쥐여 주고 운전석에 앉았다.

“사람 울리고 다니면 못써, 이 비서어.”

“…….”

능구렁이처럼 낄낄대기는.

일주일 전, 러트 때 밤을 보낸 것도 잊어버린 남자가 할 말은 아니다.

“아까 대표님 준비하실 때 김세영 씨한테 전화가 다섯 번은 왔습니다. 보셨습니까?”

“어? 뭐야, 왜 말 안 해 줬어?”

“대표님의 사생활은 제가 개입할 업무가 아닙니다.”

“쫌 해 주면 안 돼?”

“네, 안 됩니다.”

아마 저놈은 아무나와 하룻밤을 보냈거니, 하고 머릿속에서 잊어버렸을 것이다. 밥 먹듯이 오메가를 만나는 알파니까 저 때문에 누군가 베타에서 오메가가 됐다는 걸 알 리가 없다.

지금 전화가 오는 김세영 씨는, 한 달 전 권 대표와 애인이 되기 직전까지 갔던 여성 오메가였다. 당연히 교원은 빠르게 알아챘고, ‘사내 연애는 안 됩니다.’라며 그녀를 전근 보냈다. 이전에도 몇 번의 사례가 있었던 탓이다.

물론, 그녀의 집 근처에 있는 계열사로 보내 주었으니 결론적으로 김세영 씨에겐 좋은 일이다.

“조금 빠르게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엉.”

슬쩍 거울을 쳐다보자 어깨로 핸드폰을 고정한 채로 샌드위치를 먹는 권 대표가 보였다. 추하다. 게다가 저 때문에 전근 간 사람을 걱정하는 태도라기엔 너무 가볍다.

“여보세, 아, 어어, 세영아.”

전화기 너머로 화를 내는 목소리가 들렸다. 교원은 무심한 얼굴로 속도를 내 달렸다. 화가 난 여성을 달래 주던 권 대표는 결국 건성건성 사과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교원이 이 회사에 들어와 그를 짝사랑하는 동안, 권 대표는 양손으로 세기도 벅찰 만큼 많은 여성들, 정확히는 여성 오메가들을 만났다.

최근에야 좀 이상하게 잠잠했지만.

“하아…….”

“곧 회사에 도착합니다. 다 못 드셨다면 한쪽에 치워 두세요.”

“네, 네.”

주차장에 차를 대자마자 비서 1팀 팀장이 나와 뒷좌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교원은 가방과 서류들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둘은 비서 1팀이 준비해 둔 차로 옮겨 탔다. 앞좌석에는 운전기사와 교원, 뒷좌석에는 권 대표와 경호원이 자리를 잡았다.

교원은 태블릿을 꺼내 예약해 둔 식당의 시간을 체크하고, 신 사장과 권 대표의 입맛에 맞게 준비한 간단한 다과와 음료 리스트를 한번 훑었다.

“대표님, 오늘 신 사장님과 어떤 계약 건 얘기하시는지 알고 계시죠?”

“어어어…… 뭐더라?”

“그러실 줄 알고 방금 메시지로 자료 보내 드렸습니다. 한번 체크해 두세요.”

솔직히, 이 회사의 대표는 권 대표가 아니라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권 대표도 한다면 하는 인간이라 급할 때는 도움이 되곤 하지만 평상시에는 얼굴만 반지르르한 놈팡이에 지나지 않았다.

신 사장과의 약속을 잡은 것도 자신, 이득이 될 쪽으로 계약 건을 짜 둔 것도 자신.

“자기, 근데 오늘 뭐 먹어?”

“……디저트입니다. 보통 사람은 이 시간에 식사하지 않습니다.”

“나 아까 샌드위치 얼마 못 먹었는데…….”

“스케줄 끝나고 들르실 식당 예약해 두었습니다.”

다 큰 인간이 치, 하고 작게 투덜거렸다.

권 대표가 이렇게 어리광을 피워 대는 걸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 해 봐야 직속 비서 둘과 경호원, 운전기사 정도.

그 외의 사람들 앞에서는 ‘프로페셔널한 나’를 연기하는 데에 능한 인간이다. 교원은 그래서 더 억울했다. 사실은 회사에서 제멋대로 오메가를 꾀어내고, 러트가 온 날 밤을 보낸 상대도 모르는 쓰레기인데.

생각하다 보니 조금 분했다. 술에 취해, 또 러트에 취했다곤 하지만 그날 일을 어떻게 모조리 잊느냔 말이다.

그날 이후 연락 한 번 없는 권 대표 때문에 마음을 졸이다 출근했을 때는 얼마나 허무했던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활짝 웃으며 인사했을 땐 저도 모르게 뺨을 칠 뻔했다.

물론, 퇴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심하긴 했지만.

“도착했습니다, 대표님.”

“정 기사님, 땡큐!”

……입만 열면 경박스러운 저 남자와 도대체 왜 밤을 보내게 된 거지?

평소의 교원이라면 결코 그러지 않았을 터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 하더라도, 공과 사는 구분하곤 했으니까. 그날 밤 저는 미쳐 있던 게 분명했다.

교원은 주머니 속 페로몬 억제제를 떠올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이렇게 된 걸 어쩌겠어.

“음, 여기 맛있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권 대표는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공들여 넘긴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정돈하며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권 대표는 교원의 발 빠른 대처 덕분에 지각하지 않은 주제에, 본래부터 꼼꼼히 준비한 사람처럼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걷는 모습부터가 다르다. 저 남자는, 일을 할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곤 했다.

식당에는 신 사장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신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아! 권 대표님. 오랜만에 봅니다? 오늘도 아주 근사하셔요.”

교원은 권 대표의 뒤에 서서 태블릿을 켜 화면을 빠르게 돌렸다. 옆에 선 경호원이 힐끔거렸다. 둘은 약속한 것처럼 태블릿 속 귀여운 강아지 사진을 한 장 한 장 둘러보았다.

물론, 교원은 그러는 사이에도 신 사장과 권 대표의 대화를 귀담아들어야 했다.

“실례합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들어서자, 근황을 묻던 권 대표가 대화를 멈췄다. 직원은 찻잔과 다과 세트를 담은 트레이를 끌고 와 차분히 상을 채웠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교원의 핸드폰이 울렸다. 고개를 드니 권 대표가 그 짧은 사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권새끼: 이ㅣ바서아매리카너머야]

‘이 비서 아메리카노 뭐야.’ 오타 가득한 메시지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교원은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포커페이스는 그의 전문이다. 속으로는 큭큭대며 웃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회사원의 얼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끔은 어른답게 아메리카노도 드시라고.]

서른셋, 젊다면 젊고 나이 들었다면 들은 나이.

권 대표는 어릴 적부터 세계 각지의 홍차와 커피 등을 마시는 훈련을 해 왔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한 어린애 입맛이었다. 그걸 알고 매번 달달한 차를 준비하곤 했었다.

[권새끼: 쓰다거ㅓㅜ고ㅓ자도먹울거업잔러]

쓰다고. 과자도 먹을 거 없잖아.

툴툴대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긴, 과자는 신 사장이 좋아한다는 쌉싸름하고 시큼한 일본 다과로 주문했으니 권 대표의 입에 맞을 만한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권 대표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오메가들이 왜 그에게 자꾸만 대시를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애처럼 달콤한 것만 먹는 것이나, 의외로 성격은 다정한 것. 교원은 피식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이런 식으로 사소한 복수를 하는 것이 교원의 낙이었다.

“역시, 이 비서가 안목이 참 좋아. 매번 다른 곳으로 예약하는데 항상 만족스럽단 말이야?”

“감사합니다.”

교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상대방의 취향을 파악해 그들에 그에 맞춰 준비하는 것은 매번 칭찬을 받는 일 중 하나였다.

“권 대표님은 좋겠어요.”

“하하, 그럼요. 이 비서는 평생 제 옆에 둘 생각입니다.”

“이거, 이 비서가 오메가였으면 설렜겠어요? 권 대표는 우성 알파니까 말이지.”

메시지로 칭얼대던 것과 다르게 권 대표는 여유로운 얼굴로 턱을 괴었다. 그는 비서 이야기에서 알파, 오메가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자연스럽게 사업 이야기로 넘겼다.

교원은 대화 내용을 듣고 있다가, 권 대표의 말에 맞춰 자료를 탁자에 놓았다. 소리 없는 영상을 보는 경비원과는 다르게 교원은 꽤 바빴다.

권 대표는 아메리카노로 입술만 축이고, 한 모금도 마시질 않았다. 마찬가지로 다과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교원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꼬우면 비서 바꾸든가.

2시간가량의 만남은 신 사장이 흡족한 얼굴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며 끝이 났다.

신 사장의 회사는 규모는 작았지만, 능력만은 출중한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그들과 협력해 두면 앞으로도 좋은 결과를 낼 터다.

이건 게으른 권 대표가 회사를 꾸준히 성장시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고객이든, 협력자이든 사람을 급으로 나누지 않고 대하는 것.

“이 비서어…….”

차에 올라타자마자 유들유들하던 권 대표의 얼굴이 싹 바뀌었다. 교원은 부름을 모른 체 하며 다음 스케줄을 체크했다. 우선 식사를 하고, 저녁에 있을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회사로 갈 것.

“내가 뭐 또 잘못했어?”

“글쎄요. 대표님은 늘 잘못하시지 않습니까.”

“나 아침 못 먹었잖아. 굶은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걸 내줄 수 있어?”

그럼 직원을 시켜 다른 음료로 주문해도 될 터인데, 권 대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교원의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함인지, 아니면 ‘달달한 걸로 바꿔 주세요.’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것인지.

“언제까지 애 같은 것만 드시려고요.”

“오늘 까칠한데…… 뭔 일 있어?”

“아뇨. 아, 기사님. 저쪽 ‘가든’이에요.”

“네.”

너무해, 이젠 상사 말을 아예 무시하기까지?

권 대표가 뒷좌석에서 애처럼 찡찡거렸다. 우습지도 않다. 한두 번인가, 저러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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