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교원은 꼼꼼히 메모해 둔 페로몬 조절법을 세 번 정도 읽었다. 설명하는 내내 메모하는 모습을 보고 간호사가 놀란 얼굴로 쳐다본 게 생각났다.
〈설명서 드렸는데…….〉
〈그래도, 말씀하신 걸 적어 두는 편이 좋을 거 같아서요.〉
열성 오메가라던 간호사는 “꼼꼼하시네요.”라고 한마디하곤 히트 싸이클에 대한 것도 설명해 주었다.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히트 싸이클이란 건 꽤 위험했다.
간호사는 아직 주기가 언제인지 모르니 아주 조금, 감기 정도의 증상만 느껴져도 곧바로 조퇴하라고 몇 번이나 경고했다.
하지만 주말에도 출근하기 바쁜 제가 어떻게 그러겠는가. 교원은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영 난감했다. 약을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 히트 싸이클이 왔을 때 먹는 약도 있으니 괜찮을지도.
“교원 씨, 오셨어요?”
1층 로비로 들어서자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던 두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교원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인사했다.
“오늘 좀 피곤해 보이시네요. 주말 잘 보내셨어요?”
“아…… 밀린 일을 좀 하느라 출근했었습니다.”
“어머, 주말에요?”
“일요일만.”
살짝 눈가를 휘자 직원의 뺨이 발그레해졌다. 교원은 그럼, 하고 다시 고개를 숙이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뒤로 두 직원이 꺄르륵, 웃으며 무어라 속닥이는 게 들렸다.
‘진짜 잘생겼다. 베타인 게 아쉬워.’
‘아니지, 알파였으면 말도 못 걸었을걸?’
이럴 때는 귀가 밝은 게 도움이 되질 않았다. 제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면 불편해지니까.
교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향했다. 저를 오메가로 만들고도 까맣게 잊고 있는 상사 새끼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한 대 치고 싶다.
교원은 속으로 짓씹으며 대표실 문 앞으로 걸어갔다.
“대표님, 이 비서입니다.”
정중히 문을 두드렸지만 안쪽은 조용하다. 교원은 익숙하게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대표실은 당연하다는 듯 텅 비어 있었다.
또, 지각이구나. 이 새끼 진짜…….
“이 대리님, 대표님…… 아직 안 오셨어요.”
“알겠습니다. 연락은, 안 하셨죠?”
“네에…… 죄송해요.”
주에 3일은 지각하는 권 대표는 교원의 말이 아니면 듣는 법이 없었다. 그건 교원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이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교원은 비서실로 걸음을 옮기며 업무용 핸드폰으로 권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에 받을 거라는 기대는 없다. 제 번호만 우렁찬 벨 소리로 바꾸어 두었지만, 대여섯 번은 걸어야 받는 남자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이 대리님.”
“오전 10시 신 사장님 스케줄, 한 시간만 늦춰 주실 수 있습니까?”
비서실 끝자리에 앉아 있던 막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출근하자마자 연락드렸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대표님 오시자마자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 부탁드립니다.”
“넵.”
스물일곱에 대리라는 직급을 단 것은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권 대표가 오로지 능력만을 보고 사람을 뽑는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어린 직원들은 교원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나 있곤 했다. 방금 손을 들었던 막내도 그런 녀석들 중 하나였다.
교원은 오전 업무를 적당히 분배한 뒤, 핸드폰과 지갑, 수첩을 챙겨 빠른 걸음으로 비서실을 나왔다.
“다녀오세요오…….”
“네, 다녀오겠습니다.”
오전 10시 약속을 11시로 미뤘으니 시간은 넉넉했지만 권 대표를 깨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원은 곧바로 건물을 나서, 주차해 둔 차에 올라탔다.
다행인 건 권 대표의 집이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대표였으면 해고했을 텐데.”
권 대표를.
아쉽게도 그는 NM 그룹 회장의 아들이고, 회장이 사회 경험 좀 하라며 넘겨준 이 계열사의 대표다. 즉, 그가 대표 자리에서 내려올 일은 죽어도 없다는 뜻이다.
교원은 교통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속도를 내 권 대표의 집에 도착했다. 아담한 집에 살고 싶다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교원이 계약했던 오피스텔은 4명의 가족이 살기에도 큰 곳이었다.
띵동.
“대표님, 이 비서입니다.”
띵동.
“대표님, 이 비서입니다. 문 여세요.”
띵동.
“대표님, 문 엽니다.”
참아 주는 건 딱 세 번이다. 교원은 무심한 얼굴로 도어 록 커버를 열어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비밀번호는 그의 본가에 있는 강아지 뽀삐의 생일. 12251225.
경쾌한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교원은 구두를 벗고, 가방을 현관에 내려놓은 후 안방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를 깨우기 위해 아침마다 자주 들렀던 집이건만 이젠 낯설고 불쾌한 곳이 되어 버렸다. 우성 알파의 페로몬이 진하게 물들어 있는 집안 공기나, 러트로 인해 ‘실수로’ 잠자리를 한 곳이라는 점까지 교원에게는 피하고 싶은 공간이었다.
“대표님.”
“우으응…….”
볼록한 이불 끝에 밝은 금발을 가진 형체가 튀어나와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교원은 세차게 이불을 들어 던졌다.
“대표님, 일어나시죠.”
“우…… 이 비서…… 나, 쫌만, 웅?”
“오전 9시 32분입니다. 오늘 10시에 신 사장님과 스케줄이 잡혀 있습니다.”
“……미뤘으면서어…….”
매번 미루지 않은 척 급히 깨웠는데, 이젠 그마저도 통하질 않았다. 권 대표는 핑크색 잠옷을 입고 이불 속으로 꿈틀거리며 들어갔다.
교원은 그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이불을 들어 이번엔 바닥에 내팽개쳤다.
“츄워용…… 자기…….”
“늘 말씀드리지만, ‘자기’라는 애칭은 애인 사이에 쓰이는 것입니다.”
“참나, 매정해…….”
끝까지 지랄이지.
교원은 머리맡으로 다가가 권 대표의 굵은 팔을 잡아당겼다. 꽤 덩치가 크고 무거운 남자를 들어 올리는 건 쉽지 않았지만, 이 짓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이젠 요령이 생겼다.
“미뤘다고 해도 준비 시간이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대표님 치장하시는 데 오래 걸리시니까요.”
“5분만…… 웅? 자기야, 5분만.”
“권 대표님, 부디 대표로서의 체통을 지켜 주세요.”
“하아아아…….”
팔을 더욱 세게 잡아당기자 꼭 감겨 있던 눈이 천천히 뜨였다. 연한 갈색 눈동자가 눈꺼풀 아래로 수줍게 드러나자마자, 교원은 그의 반대쪽 팔도 잡아당겼다.
“어서 씻고 나오세요.”
“우리 교원 씨는…… 안 졸릴까?”
“안 졸립니다.”
“어제두, 출근했짜나?”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기에 대한 건 내가 다 알지.”
능구렁이 같은 대답에도 교원은 무시무시한 얼굴로 권 대표의 어깨를 찰싹, 내리쳤다.
“그만하시고 일어나시죠.”
“아아…… 진짜, 일하기 싫다니까.”
“저도 대표님께서 때려치우셨으면 좋겠습……!”
진지하게 비수를 꽂는데, 권 대표가 잡힌 팔목을 비틀어 반대로 교원의 팔을 잡아당겼다. 방심하고 있던 상체가 휘청이며 권 대표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
“뭐, 하시는…… 겁니까!”
“우리 이러고 5분만 자자. 조금 늦어도 이 비서가 있으면 다들 사정이 있겠거니 할 거야.”
“제가 이러려고, 으, 온 줄…… 아십니까?”
“따악 5분만요, 비서님.”
칭얼대는 목소리가 꿀처럼 달콤하다. 동시에 확 풍겨 오는 페로몬에 열기가 홧홧하게 올라왔다. 교원은 어깨를 비틀며 권 대표를 밀어 내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이를 악물었다.
“뭐야, 가만히 있네? 이 비서도 역시…… 흐악! 아! 아파!”
“정신. 차리세요.”
몸을 후딱 일으킨 교원은 방금 권 대표의 배에 꽂아 넣었던 주먹을 들어 올렸다.
“지, 직장 내 폭력…….”
“직장 내 성추행에 맞대응한 겁니다.”
침대에서 내려와 탁탁, 소리 내어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교원은 권 대표에게 등을 보인 채로 안방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씻고…… 나오세요. 딱 10분 드립니다.”
“……매정한 인간…….”
“받는 만큼 일하는 겁니다.”
매몰차게 문을 쾅, 닫자 안쪽에서 “네네, 알겠어요.” 하는 힘없는 대답이 들렸다.
“하, 이거 진짜…….”
얼마 안 가 안쪽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교원은 사색이 된 얼굴을 양손에 묻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팔을 잡아당기던 손은 무척 크고 단단했다. 매일 운동하는 몸답게 넓은 가슴과 어깨가 따뜻하고 포근했다.
또 그의 페로몬은 어떠했는가. 사람을 홀릴 만큼 달큼했었다. 찡얼거리며 쏟아 낸 페로몬이 교원, 제 몸에 흠뻑 묻고 말았다. 꼭 그와 잠자리를 한 사람처럼.
그래, 이러니 오메가가 마르질 않지.
“……진짜 빡치네.”
아무리 애국가를 외고, 심호흡을 뱉어도 살짝 흥분된 몸은 가라앉질 않았다. 아마 권 대표도 제가 오메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이렇게 하지 않았겠지.
당연한 일이고, 의심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권 대표의 직속 비서는 ‘베타’만이 가능했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