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2)
“그렇죠.”
도형은 하품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직히 딴생각하느라 이야기를 따라잡지 못했지만, 무조건 맞아요, 그렇죠,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소개팅 상대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묻기에 종종 강수현과 함께 보는 영화 생각이 나서 고전 영화를 주로 본다고 대답했다. 사실 도형은 영화를 잘 알지도 못하고, 자주 보는 편도 아니었다. 수현과 첫 데이트, 아니, 시간 채납을 통한 손해 배상의 날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고, 그 뒤로는 수현의 집에서 수현이 고른 영화를 함께 볼 뿐이었다.
“도형 씨는 그런 거 좋아하시는구나.”
“네?”
도형이 반쯤 졸면서도 지루한 고전 영화를 끝까지 보는 건 영화 배경이나 재미있는 사연, 배우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는 수현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좋아서였다. 그러니 영화에서 출발한 도형의 무의식은 자연스럽게 강수현으로 흘렀고, 배경 음악을 작게 따라 부르는 수현의 울림 좋은 목소리를 생각하다가 높고 낭랑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자세를 바로 했다.
“저는 액션 영화 좋아해요.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라.”
“그렇죠. 시원시원하니 기분 전환에 좋죠.”
“근데 도형 씨는 디저트 별로 안 좋아하시나 봐요. 조금이라도 드셔 보세요.”
디저트로 유명하다고 해서 일부러 소개팅 장소를 이곳으로 잡았다. 인터넷으로 후기를 꼼꼼하게 찾아 읽고 먹고 싶은 디저트를 미리 골라 왔는데, 막상 윤현지라는 이름의 소개팅 상대방은 자신은 단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커피만 마시겠다고 했다. 도형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제 몫으로 일단 두 개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상대가 화급히 도형을 말리며 자기는 정말 괜찮다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차마 두 개 다 자신이 먹을 거라는 말은 못 하고 이 집 대표 디저트 맛이라도 보자며 두 개 중에 조금 더 먹고 싶었던 것만 하나 시켰다.
“아, 전 괜찮아요. 현지 씨 더 드세요.”
그간 조금은 성장한 김도형은 남이 손댄 음식은 안 먹는다는 말이 얼마나 무례한 말인지 약간은 이해하게 되었으므로 이번에는 다행히 상대에게 부당한 모욕을 가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수현이었다면 분명 도형이 메뉴판을 끝까지 읽기도 전에 디저트를 한 종류씩 전부 다 주문했을 것이다. “고민하지 마세요. 전부 다 먹어 보면 되죠.”라며 천연덕스럽게 웃었을 것이고, 돈 자랑이 시도 때도 없다며 도형이 구박하면 “형사님의 즐거움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으니까요.”라며 뻔뻔스레 윙크했을 것이다.
아, 젠장. 또 강수현 생각했다.
윤현지가 끄트머리를 잘라 먹는 대신 몇 겹을 떼어 돌돌 말아 먹은 탓에 크레이프 케이크가 뭉개진 것처럼 납작해졌다. 케이크를 가만히 바라보던 도형은 자기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 작년의 도형 같았으면 누가 크레이프 케이크를 이렇게 먹냐며 훈수를 두다가 욕을 먹거나 따귀를 맞았겠지. 따지고 보면 싸가지 없게 굴다가 따귀 맞은 덕분에 강수현과 인연이 이어진 셈인데….
도형의 웃음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건너편 여성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윤현지는 포크를 내려놓고 그만 먹겠다는 표시인지 냅킨으로 입가를 톡톡 쳤다. 테이블 위로 침묵이 내렸다. 그 잠시간의 침묵도 도형에게는 버거웠다.
“저 잠깐 화장실 좀.”
윤현지가 살짝 웃으며 일어서자 도형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개팅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불편한 자리였던가. 준연이 1시간 뒤에 경찰서 비상 호출인 것처럼 전화를 걸어 주기로 했지만, 도형은 30분 만에 이른 구조 신호를 보냈다.
이준연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