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덫
도착한 곳은 준형의 집이었다. 이걸 집이라고 불러도 되나. 저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건물이었다. 준형은 산호처럼 좁은 자취방에 살지 않았다. 아무리 학교가 남산에 있다고 해도 한남동에 그렇게 으리으리한 자취방을 가지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저택은 준형의 본가였다. 산호는 불현듯 준형에 대한 소문이 떠올랐다. 준형의 부모님이 사채업자라는 말을 하던 선배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목소리는 뚜렷했다.
준형은 익숙하게 집안으로 산호를 끌고 들어갔다. 이 와중에도 산호는 준형의 방이 궁금해지는 자신이 한심했다. 어릴 때는 사랑이라는 게 아주 아름답고 고귀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사랑은 사람을 병신으로 만든다. 그게 산호가 요즘 깨달은 사실이다.
준형은 산호를 제 방으로 안내했다.
“아 목말라. 너 뭐 마실래?”
“아니….”
“그럼 물 갖다 줄게.”
준형은 작은 동그라미 무늬가 빼곡히 박힌 유리컵에 얼음물을 담아 산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산호가 몇 모금 마시기도 전에 준형의 손이 음습한 의도를 가지고 산호의 티셔츠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거부해봤자 시간만 길어질 뿐이라는 것을 알아서 산호는 그 손을 가만히 두었다. 준형은 애초부터 이럴 작정으로 산호를 집에 데려온 것 같았다. 티셔츠를 벗겨내며 유두를 빠는 준형 때문에 산호는 손에 든 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 컵이….”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부러 쩝쩝 소리를 내며 유두를 빨던 준형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바닥에 나뒹구는 컵은 곧 잊혀졌다. 침대에 걸터앉은 준형의 다리 사이에 서서 산호는 그의 손에 다시 발기했다. 내내 시달려 놓고도 이럴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준형이 산호의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벗겼다.
“네 자지에 내 정액 범벅이다. 아까 싼 거 다 흘러나왔나 봐.”
“…….”
“왜, 부끄러워? 그럼 내 자지 조일 때처럼 구멍 꽉 물고 있지 그랬어.”
산호는 이런 말들에 면역이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존나 야해. 나 또 섰어.”
휙휙 제 옷을 벗어 던진 준형은 침대에 앉아 산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러던 준형은 뭔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일어서서 방을 나갔다. 금방 다시 돌아온 준형의 손에는 다홍색의 튜브형 용기가 쥐어져 있었다. 산호가 그것을 바라보자 준형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이거 우리 엄마가 운동할 때 쓰는 핫 젤인데 바르면 열이 나서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대.”
산호는 뒷목이 서늘했다. 그걸 왜 가져왔냐고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산호가 몸을 뒤로 젖혔지만 반항은 그게 끝이었다. 제 성기에 핫 젤을 쭉 짜낸 다음 대충 손으로 비벼 바른 준형이 산호의 팔을 잡아챘다. 버둥거리는 산호를 깔아뭉갠 뒤에 그대로 좆을 박았다. 몇 번 피스톤 질을 하자 젤의 효과가 느껴졌다. 산호는 엉덩이 사이가 화끈거려서 미칠 것 같았다. 박혀 들어오는 살 기둥의 감촉이 핫 젤 때문에 지독히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 후…. 죽인다 이거. 그치?”
“아흐윽…!”
산호는 자극이 너무 강해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밑에 누운 준형이 산호의 엉덩이를 다시 잡아당겼다. 산호가 애써 엉덩이를 들면 준형이 다시 당겨서 안쪽이 깊게 쑤셔졌다. 몇 번 그렇게 의도적이지 않은 왕복운동을 하자 산호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어졌다.
“아 왜 멈춰. 좋은데.”
“흣…! 잠깐, 아!”
답답한 표정을 짓던 준형이 산호의 발목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위아래가 바뀌었다. 준형은 편한 자세로 박을 수 있게 된 것이 마음에 드는 듯 슬쩍 웃었다. 핫 젤 덕분에 자지와 내벽이 화끈거려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도 자극이 강했다. 느리게 뿌리 끝까지 박아 넣었다가 빼내기를 반복하면서 유산호가 달아올라 몸을 비비 꼬는 것을 보고 있으니 만족스러웠다.
“으, 아…! 아앗…! 흐….”
움찔거리는 구멍이 제 좆을 뻐끔뻐끔 삼키는 것이 훤히 보였다. 유산호의 몸은 예민해서 건드리는 맛이 있었다. 준형은 이불 위에 던져놨던 젤을 다시 들어 제 손에 쭈욱 짜냈다. 긴장으로 뻣뻣하게 힘이 들어간 유산호의 배를 손가락으로 타고 내려가 짙은 분홍색으로 물든 유산호의 좆을 쥐었다.
“하으읏! 거기, 안, 그만…!”
유산호는 몸을 파들파들 떨며 느끼는 주제에 그만하라고 했다.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준형은 젤이 묻은 손으로 유산호의 귀두 끝을 문지르며 구멍 안에 제 좆을 박아 넣었다. 젤을 바른 손은 금방 뜨거워졌고 퍽퍽 쳐올릴 때마다 손에 쥔 유산호의 좆에서 투명한 액체가 물총 쏘듯 지익, 지익 쏟아졌다. 그게 너무 야해서 준형은 하마터면 그대로 쌀 뻔 했다. 풀린 눈으로 신음만 내지르는 유산호의 몸은 흥분으로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으, 아…. 아…. 준형, 아…! 그만….”
“앉아서 할까, 아까처럼?”
준형은 몸을 일으키며 산호를 제 위에 앉혔다. 침대에 걸터앉자 맞은편에 걸린 전신 거울에 둘의 모습이 비쳤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 그 위에 유산호를 앉히고, 다리를 오므리지 못하도록 유산호의 다리를 제 다리 뒤로 넘겨 쫙 벌렸다. 허옇고 말랑한 허벅지 살과 흥건하게 젖은 분홍색 성기가 그대로 보였다. 젖은 채로 뻐끔거리는 구멍에 귀두를 맞추고 단번에 쳐올리자 유산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울 봐. 너 존나 걸레 같이 박히고 있어.”
“으응! 아! 응! 아힉…!”
“씹…. 구멍 벌렁대는 거 보라고.”
준형이 산호의 얼굴을 잡고 억지로 거울을 보게 했다.
“눈 떠. 네가 얼마나 걸레 같은지 보라니까.”
“흐으…. 아…니, 야….”
“구라 치지 마. 자지로 구멍 쑤셔주는 거 좋아하잖아.”
“아응! 흐, 아! 아!”
“좋아서 질질 싸는 주제에.”
내벽은 빠듯했지만 젤 덕분에 쑥쑥 박히는 구멍이 거울에 적나라하게 비쳤다. 산호는 수치심마저도 쾌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허릿짓이 다시금 빨라짐과 동시에 준형은 한 손으로 산호의 성기 뿌리 쪽을 꽉 쥐고, 한 손은 산호의 귀두 끝을 막았다. 사정을 막은 채로 빠르게 아래를 쳐올리자 산호의 손이 준형의 손가락을 벅벅 할퀴어댔다. 쾌감에 눈이 돌아가면 사람은 누구나 체면을 버리게 된다. 유산호도 그랬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유산호의 안에 싼 후에야 준형은 손에 힘을 풀었다. 유산호의 좆은 힘없이 묽은 정액을 분출했고 유산호는 몸을 덜덜 떨었다.
그렇게 한바탕 날뛴 뒤의 준형은 나름대로 친절했다. 산호는 준형이 건네준 티셔츠와 반바지를 들고 화장실로 밀어 넣어졌다. 산호는 오랫동안 꼼꼼히 샤워를 했지만 화끈거리는 핫 젤의 효과는 씻어내도 가시질 않았다. 더군다나 내벽에 닿은 양이 많아서 그건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이 젤은 얼마나 오래 지나야 효과가 다하는 걸까. 마치 낙인이라도 찍힌 것처럼 화끈거리는 뒤를 부여잡고 화장실을 나오자 준형이 말했다.
“밥 먹어.”
준형을 따라 방 밖으로 나가 복도를 걸었다. 코너를 돌자 나타난 식탁에는 배달시킨 것이 분명한 보쌈이 먹기 좋게 펼쳐져 있었다. 음식을 보자 허기가 몰려왔다. 산호는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도준형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계속해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산호는 그게 거슬렸지만 토를 달 용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 먹었어?”
“어. 아, 배불러.”
“잘 먹었어. 치우는 건 내가 할게.”
“됐어. 나중에 일하는 분 오실 거야.”
성욕과 식욕을 전부 채운 준형은 하품을 하며 다시 제 방으로 향했고 산호도 어정쩡하게 그 뒤를 따랐다. 넓은 준형의 침대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자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너 진짜 잘 잔다. 업어 가도 모르겠네.”
“몇 시야?”
“여섯 시 반.”
산호는 잠이 덜 깬 채 눈만 깜빡였다. 도준형의 침대는 너무 푹신하고 편했다. 배불리 먹고 낮잠도 푹 자고 나니 몸도 마음도 노곤해졌다. 준형을 밀어내지 못했을 때 이미 그의 일방적인 사과를 받아들인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렇게 누워있으니 이젠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바보 같은 단순함이나 낙천성은 겁이 많은 점과 함께 산호의 기본적인 성격이었다. 산호처럼 힘없는 인간이 미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그런 일종의 방어 기제가 필요했다. 산호 스스로는 모르고 있었지만.
산호가 눈만 깜박거리고 있을 때, 준형의 손이 산호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또 하게?”
“그냥 만지는 건데. 밀가루 반죽 같아서 기분 좋아.”
제 몸을 만지듯 당당한 어조였다. 산호는 그 손길에 흥분하지 않기 위해 애써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산호야.”
“…….”
“유산호, 산호야.”
준형의 말끝이 늘어졌다. 부탁의 탈을 쓴 명령을 내릴 때 자주 저랬다.
“나 펠라 해줘.”
“…어?”
“펠라 몰라? 입으로 좆 빨아달라고. 너 입안도 좁아서 기분 좋을 것 같아.”
“…….”
“싫어?”
“…해본 적 없는데….”
“그럼 오늘 도전해봐.”
산호는 왜 제가 남의 좆을 빠는 도전 따위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준형의 얼굴에는 산호가 거절할 거라는 생각 따위는 한 톨도 없어 보였다. 준형의 성기는 그 크기는 거대했지만 모양 자체는 곧고 예쁜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호가 그걸 빨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잘난 얼굴처럼 반질반질한 귀두를 산호의 배에 문지르며 준형이 기어코 한 마디를 더 했다.
“네가 입으로 해서 나 싸게 만들면 걔랑 헤어질게.”
뺨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얼마나 못된 짓인지 알면서도 산호는 손을 뻗어 준형의 성기를 쥐었다. 진심일까? 진짜 헤어질까? 얼굴도 모르는 준형의 여자 친구에게는 미안했다. 하지만 남 걱정을 해줄 처지가 아니었다. 자신은 준형이 좋았다. 준형이 갖고 싶었다. 산호의 손이 제 성기를 쥐자 준형이 산호의 엉덩이를 다시 주물렀다.
“잘 좀 해봐.”
산호는 한참 동안 손에 준형의 성기를 쥔 채로 망설였다. 준형은 산호가 환장할 미끼를 걸면서도 절대 다 주지 않았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다고는 했지만 그게 산호와 연인이 된다는 말은 아니었다. 차라리 좋아한다고 말해줬더라면. 산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표정을 보던 준형은 흥미가 식었는지 산호의 손을 쳐냈다.
“안 할 거면 됐어. 비켜.”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투에 산호는 초조해졌다.
“…할게. 나 잘 할 수 있어. 할래.”
준형은 하하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야.”
“…….”
“너 내가 그렇게 좋아?”
예고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말에 산호의 얼굴이 빨개졌다.
“근데 이제 시간 없어. 좀 이따가 애들 술 마시러 오기로 해서.”
“…그럼 나도, 나도 같이 마시면 안 돼?”
“너 술 잘 마셔?”
“어, 응.”
“그럼 더 있다 가든가.”
준형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크고 따뜻한 손이 엉덩이에서 떨어져 나가자 서늘한 공기가 와 닿았다. 산호는 조바심이 났다. 침대 밖에서의 준형은 무심하기 짝이 없어서 늘 산호를 지치게 했다. 그렇게 지친 산호를 물고 빨 때는 다시는 없을 것처럼 다정해서, 산호는 섹스 자체보다 그 시간에 매달리게 되었다. 준형은 그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산호가 매달리는 것을 즐거워했지만, 산호는 아직 그 둘을 구분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제 마음이 준형의 성욕과 같은 취급을 받을 테니까. 그 쓸데없는 아집은 산호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산호는 준형을 따라 거실로 나갔다. 거실 한쪽에 진열되어 있던 술병 몇 개가 준형의 손에 의해 테이블 위로 나왔다. 산호가 우두커니 서 있는 걸 본 준형이 말했다.
“서 있지 말고 소파에 앉아있어.”
“근데 누구, 누구 와?”
“윤석준이랑 김동진이지 뭐.”
“…박성경은?”
“걘 술 잘 안 마셔.”
그렇구나. 산호는 소파에 앉아 거실을 둘러보았다. 흰 대리석이 깔린 바닥은 차가워서 산호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보석처럼 빛나는 술병들이 가득 채워진 진열장 옆에는 커다란 골프 가방들이 있었다. 산호는 별생각 없이 물었다.
“저건 네 거야?”
“뭐?”
“저거.”
“아. 그게 내 거겠냐? 아빠 거지.”
“아….”
“저걸로 맞으면 존나 아파.”
“…골프채로 때리셔?”
“어. 갈비뼈 나간 적도 있어.”
“그…. 많이 엄하신가 봐.”
“그냥, 뭐.”
“아팠겠다….”
“우리 아빠 지론이 그거야. 동물이나 사람이나 때려야 말을 듣는다.”
“…….”
“말 안 들으면 들을 때까지 때려.”
산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준형의 손에 끌려 저택에 들어온 후부터 내심 그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잘생긴 얼굴이나 제멋대로인 성질도 그랬지만 가장 부러운 것은 아무도 도준형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후배들을 괴롭히는 것이 취미인 선배도 도준형한테는 그러지 못했다. 그건 기골이 장대한 도준형의 체격이나 싸움으로 유명했던 양아치라는 소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건 고등학생 때나 먹히는 건데….
도준형은 돈까지 많았다. 누가 도준형을 이길 수 있을까. 막연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산호에게는 준형의 대수롭지 않은 저 말이 큰 충격이었다. 갑자기 준형이 애처럼 작아 보였다. 산호는 흠칫 고개를 떨었다. 내가 미쳤지. 어떻게 도준형을 안쓰럽다고 생각할 수 있나. 그러나 마음은 애석하게도 계속해서 기울어지고 있었다.
* * *
“저 새끼가 웬일이냐.”
“몰라. 오늘은 마시고 싶다던데?”
“어, 산호. 있었네.”
요란스럽게 등장한 석준과 동진의 뒤를 따라 들어온 성경은 제집처럼 편한 자세로 소파에 앉았다. 산호는 유독 성경이 불편했다. 네 사람 모두 산호가 끼어들 수 없는 오래된 우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불편하게 느낀 적은 없다. 그러나 성경이 저를 빤히 쳐다볼 때면 속을 다 들킨 것처럼 불안하고 거북했다.
산호의 기분이 어떻건 간에 술판은 벌어졌다. 성경은 살짝 뒤로 빠져 앉은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잔을 비웠다. 준형은 기분이 좋은지 석준이 말아놓은 폭탄주를 연신 비웠다. 덕분에 산호도 반강제로 술잔을 잡았고, 정신은 금방 흐릿해졌다. 준형에게는 잘 마신다고 허세를 부려놨지만 힘들었다. TV 소리와 석준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거실을 울렸다. 다들 잔뜩 취해서 술잔을 놓칠 때쯤 산호의 기억이 끊겼다.
* * *
암전. 그리고 눈앞에 보인 것은 젖고 발기한 성기였다. 낮은 목소리가 뱀처럼 산호의 귓가를 적셨다. 산호야. 내 좆 빨아줄 거야? 응?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산호는 기둥을 손에 쥐고 귀두부터 입에 물었다.
입안 가득 들어차는 성기는 폭발이라도 할 것처럼 뜨겁고 단단했다. 산호는 쿠퍼액에서 눈물 같은 맛이 난다고 느꼈다. 요령 없이 그저 입에 물고 살짝 씩 움직이기만 하는 산호의 서툰 펠라치오는 금방 끝나지 않았다. 우악스러운 손이 산호의 뒤통수를 잡고 스스로 움직이며 성기를 깊게 쑤셔 넣었기 때문이다. 양손으로 산호의 머리통을 잡아당기며 허리를 쳐올리는 탓에 거대한 성기가 산호의 목젖을 텅텅 찔렀다. 물컹거리는 고환이 산호의 턱에 짝짝 달라붙었다. 숨이 막히고 헛구역질이 나는데도 멈추지 않아서 산호는 눈물을 흘리며 눅진한 정액을 모조리 받아내야 했다.
“프하…!”
마침내 사정을 마친 성기가 입안을 빠져나갔다. 두꺼운 성기는 산호의 입을 빠져나가는 중에도 남은 정액을 질질 흘리고 있어서 산호는 씁쓸한 정액의 맛을 느껴야 했다. 산호는 물에 빠졌던 사람처럼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도 거칠게 비벼진 탓에 입안부터 목젖까지 모조리 살갗이 벗겨진 것처럼 아렸다. 목구멍으로 강간을 당한 기분이다. 산호는 고개를 들어 준형의 얼굴을 보려 했으나 다시 암전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푹신한 침대에 엎드려서 베개를 배 아래에 깔고 엉덩이만 쳐든 부끄러운 자세로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엎드린 채 헐떡이는 산호의 엉덩이 사이로 굵고 뜨거운 살덩이가 철퍽거리는 소리와 함께 밀려왔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까 보았던 준형의 방 벽이었다. 넓고 넓은 침대 구석에서 벽으로 한껏 밀어 붙여진 채 엉덩이를 그대로 내주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산호는 준형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흐윽…. 흐, 응…!”
그만.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쉴 틈도 없이 밑을 쳐올리는 탓에 산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죄다 비음 섞인 신음뿐이었다. 산호가 등 뒤로 손을 뻗어 버둥거렸다. 그러나 산호의 두 손은 손쉽게 잡혀서 오히려 박는 사람이 좀 더 안정적으로 박을 수 있게 해주는 지지대 정도로 전락했다.
팔이 묶인 산호는 그대로 매트리스에 이마를 박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새카만 뒤통수가 보였다. 등줄기가 싸늘해졌다. 누구지? 윤석준? 김동진? 아니면…. 박성경? 심장이 쿵쿵거렸다. 미쳤다. 옆에 사람이 있는 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것이 퍽 준형다웠으나 산호는 이를 앙다물었다. 소리 때문에 깨면 어쩌지? 아득해지는 정신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산호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환한 아침이었다. 밤의 기억은 드문드문 남아 산호를 혼란스럽게 했다. 벌떡 일어난 산호는 제 옆에 누운 준형과, 그 옆에 누운 성경이 아직 잠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살짝 한숨을 쉬었다. 준형은 팬티만 걸친 채로 산호의 배 위에 다리를 올리고 있었고 성경은 준형과 등을 맞댄 채로 반대편을 보고 있었다. 어젯밤에 본 새카만 뒤통수였다. 심장 소리가 밖으로 들릴 것 같았다. 산호는 제 기억을 믿을 수 없어서 불안했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듯 집은 조용했고 산호는 일으킨 몸을 다시 침대에 뉘였다.
누군가 머리를 망치로 두드리는 것처럼 아팠다. 간신히 다시 잠에 들 무렵, 준형의 손이 거침없이 산호의 팬티 속으로 들어왔다. 산호는 화들짝 놀라 준형의 손을 잡았으나 엉덩이를 꾹꾹 누르던 준형의 손가락은 구멍으로 향했다. 손가락은 지렁이처럼 꾸물거리며 산호의 구멍을 파고들었다.
“왜 그래….”
“…….”
“옆에 성경이 자잖아….”
산호가 거의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간곡하게 말했다.
“새벽에 좆 같은 꿈을 꿨어.”
네가 나 말고 다른 새끼랑 붙어먹는 꿈. 잠이 덜 깬 얼굴로 그렇게 말한 준형의 손가락이 파고든 구멍에서 내벽에 남아있던 누군가의 정액이 흘러나왔다. 제 손가락이 젖어 드는 것을 느낀 준형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단숨에 산호의 위로 올라탄 준형이 손가락으로 내벽을 긁어내듯 쑤시며 산호를 추궁했다.
“뭐냐, 이거?”
“하으…! 하지, 마…!”
“씨발, 뭐냐고.”
찌걱, 찌걱, 찌걱. 술김에 격하게 한 탓인지 안쪽이 부어서 산호는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뱉었다. 네가 그랬다고, 나는 잘못이 없다고. 말해야 하는데 준형의 무자비한 손가락은 화풀이처럼 내벽을 쑤셨다. 쿨쩍거리는 소리와 함께 흘러내린 정액이 팬티를 적셨다. 그때 미동도 없이 자는 것 같던 성경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 또 뭐 하냐, 너네…. 밤에 그렇게 씹질을 쳐 했으면 좀 자라…. 어?”
준형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어제 얘랑 했다고? 네 앞에서?”
“그래, 새끼야…. 술을 그렇게 섞어 먹으니까 기억이 날아가지.”
당황한 것은 산호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는 닮는다고 했나. 그래서 성경은 제 친구가 남자와 섹스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도 저렇게 태평한 걸까? 산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씨…. 기억이 아예 없는데?”
“그리고 석준이랑 동진이는 클럽으로 튀었다. 전해달래.”
“와, 나. 손해 본 기분 쩌네.”
“아무튼 너네 또 할 거면 다른 방 가서 해라. 난 좀 더 잘 거니까….”
산호가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성경이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다행인 걸까? 차라리 석준이나 동진에게 들킨 것보단 나은 게 아닐까. 그러나 산호의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준형이 산호를 데리고 방을 나섰기 때문에 산호는 그 찜찜함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없었다.
* * *
곧 옆방에서 울리는 산호의 신음과 질척하게 몸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성경은 천천히 눈을 떴다. 곧 바지 속으로 들어간 성경의 손이 제 성기를 감싸 쥐고 움직였다. 점점 빨라지는 손과 숨소리가 성경의 흥분을 증명했다. 어젯밤 유산호의 내벽이 제 성기를 빠듯하게 받아들이던 감각을 떠올리자 사정감이 몰려왔다. 내 좆을 도준형의 좆인 줄 알고 허겁지겁 빨던 유산호. 싫다는 말도 없이 자지러지며 박히던 유산호. 도준형이 먼저 따먹은 유산호. 젖꼭지와 똑같은 분홍색 구멍을 가진 유산호. 성경의 손에 뭉클하고 따뜻한 점액이 쏟아졌다.
단정한 외모나 결벽적인 성격과 달리 성경의 취향은 좀 음습했다. 남이 길들여둔 구멍을 억지로 뺏는 것이 몹시 좋았다. 그래서 준형이 유산호를 따먹었다고 자랑한 순간부터 유산호를 볼 때면 성경은 발기했다. 성경은 산호를 조금 더 가지고 놀고 싶었다.
* * *
시간이 흐르고 산호의 찜찜함도 점차 희석되어갔다. 조별 과제도 끝났고, 기말고사도 지나갔다. 종강을 했는데도 산호는 여전히 준형의 무리와 밥을 먹고, 게임을 하고, 토익 준비를 하고, 술을 마셨다. 몇 번은 준형의 집이 아니라 석준이나 산호의 자취방에서도 어울려 과제를 하고 짜장면을 시켜 먹기도 했다. 처음엔 불편하기도 했지만 금방 괜찮아졌다.
그리고 준형과의 관계를 비밀로 지켜준 성경과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성경은 첫인상과 달리 어른스럽고 이해심이 많아서 산호도 왜 성경에게 나머지 세 사람이 의지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산호는 준형과의 섹스에도 익숙해졌고 준형의 비위를 맞추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어느덧 짝사랑은 준형이 충족시켜주는 성욕에 밀려 고장 난 가로등처럼 깜박거렸고, 아주 가끔씩만 제 존재를 주장했다. 그마저도 준형의 난폭한 섹스가 가끔 다정해질 때뿐이었다.
“아…. 유산호 진짜 존나 섹시하다. 언제 이렇게 야해졌어.”
“하으, 응…! 아!”
“아 예쁘다. 키스해줘.”
산호는 이제 머뭇거리지도 않고 입을 맞췄다. 가끔 이럴 때면 산호는 기대를 했다. 도준형은 헷갈리는 행동을 너무나 잘 했다. 왜 나한테 예쁘다고 하지? 손은 왜 깍지 껴서 잡는 거지? 왜 이렇게 다정하게 키스를 하지? 왜 어제는 섹스가 끝난 뒤에도 나를 안아줬지? 그러나 사실은 산호도 안다. 도준형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준형이 산호를 손 위에 놓고 가지고 노는 것은 단순한 재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산호에게 원하는 것은 섹스밖에 없다고 본인이 말했는데도, 혹시 몸을 섞다 보면 정이라도 들지 않을까. 산호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끔찍할 정도로 멍청한 마음은 계속 산호를 도준형에게 매달리게 만들었다.
산호는 몰랐다. 섹스라는 건 만화나 영화와는 다르다. 인간의 욕망은 깊고 음험해서 번식 행위를 할 때는 얼마든지 상대를 사랑하는 것처럼 굴 수 있다. 페티쉬는 다양해서, 사정 직전에 꼭 손깍지를 끼는 남자도 있고, 키스를 하는 남자도 있고, 사랑한다고 외치는 남자도 있다. 하지만 그 취향이 포르노에 등장하는 가장 흔하고 평균적인 것이 아니라 해서, 그걸 애정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아니다. 그러나 산호는 불쌍하게도 그걸 몰랐다.
이제는 준형의 손이 허벅지에 닿기만 해도 성기에 피가 몰렸다. 사정감이 몰려오면 혀를 섞었다. 산호가 먼저 키스를 하면 준형은 짐승처럼 큰 소리를 내며 산호를 몰아붙였다. 산호는 준형을 다루는 법을 알았다고 착각했다. 도준형은 점점 산호와 섹스를 할 때면 다급해졌다. 산호가 밀어내면 흥분했고, 흥분하면 목소리가 녹을 것처럼 다정해졌다. 그게 좋아서 일부러 싫은 척을 하면 산호를 번쩍 안아 들고 침대로 가는 일도 자주 있었다.
비참하게도 산호는 그 짧은 순간들을 즐겼다. 자신이 도준형에게 매달리는 게 아니라, 도준형이 제게 매달리는 것 같아서. 아무리 일방적인 사이여도 침대에서만큼은 도준형을 이길 수 있었다. 그때만큼은…. 산호는 도준형과 몸을 섞는 것 자체보다도 저에게 발정하는 도준형이 더 안심되고 좋았다. 도준형이 안을 파고들며 숨이 가빠지도록 입을 맞춰오는 순간만이 산호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산호는 다시 조금씩 우쭐함에 젖어 들었다.
그러나 그 우쭐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산호는 이제 자연스럽게 준형의 집까지 택시를 타고 간다. 계산은 늘 준형이 했다. 처음엔 껄끄러웠으나 인간은 적응이 빠른 동물이었다. 언제나처럼 택시가 저택의 골목으로 들어설 때쯤 준형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받지 않았다. 씻고 있나? 제 지갑에도 택시비 정도는 있어서 그 정도는 괜찮았다. 그러나 택시에서 내린 산호가 본 것은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와 웃으며 대화하는 도준형이었다. 심장이 발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끝낼 때까지 산호는 택시에서 내릴 수 없었다. 기사의 재촉에도 잠깐만요 하는 말만 되풀이하며 산호는 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나름대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 전해졌는지 혀를 차던 택시 기사도 산호에게 뜻 모를 연민의 시선을 보냈다.
여자는 예뻤다. 도준형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추악한 질투가 산호의 마음을 쥐고 흔들었다. 도준형의 핸드폰에서 봤던 이름이 떠올랐다. 저 여자가 윤서영일까. 산호가 손톱을 물어뜯었다. 저를 만나면서 여자 친구를 만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치워두었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비참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걸 슬퍼할 새도 없이 기사의 목소리가 산호를 재촉했다.
“거 좀 내립시다! 콜 들어와서 바빠 죽겠는데….”
“…죄송합니다.”
산호는 비틀거리며 계산을 마치고 택시에서 내렸다. 준형은 그제야 택시를 발견했는지 산호를 불렀다.
“어, 벌써 왔어?”
“…….”
준형의 목소리가 산호를 찌른다. 벌써 왔냐는 말마저도 산호는 꼬아서 듣게 된다. 만나기로 했던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들뜬 목소리도 거슬렸다. 준형 앞에 서 있던 여자의 시선도 산호를 향했다. 산호는 숨고 싶었다.
“누구야?”
“친구.”
“흐음…. 너한테 저런 친구도 있어?”
여자의 목소리는 적대감 하나 없이 순수한 의문을 담고 있어서 산호는 자괴감이 들었다. 준형의 여자 친구는 자신과 준형의 관계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준형은 여자의 머리칼을 쭉 당기며 대꾸했다.
“왜 또 뭐.”
“아니, 네 친구치고는 너무 순하게 생겨서.”
“동진이 섭섭해한다.”
“하든 말든. 걔 못생겨서 싫어.”
“박성경도 생긴 건 순하지 않냐?”
“웩. 걔는 속에 구렁이 열 마리는 들어앉은 것 같아서 싫어.”
“싫은 것도 많다. 아무튼 잘 가.”
“주말에 약속 까먹지 말고. 또 어기면 죽어 진짜.”
“아, 알았다고.”
여자는 금방 사라졌다. 그러나 산호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산산이 부서진 자존감과 그걸 짓밟는 자괴감. 준형은 산호의 손을 끌고 제 방으로 향했다. 익숙하게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 사이에 산호를 세워놓고 유두를 빠는 준형을 산호가 슬쩍 밀어냈다. 그 손을 잡아챈 준형이 조금 난폭해졌다. 평소에도 준형은 일부러 쩝쩝 소리를 내며 빨아서 산호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 그…. 그만…!”
“오늘은 급하니까 앙탈 그만 떨어.”
“으읏…! 싫다니까!”
산호가 준형을 거세게 밀어내자 준형의 표정에 짜증이 실렸다.
“빡치게 하지 말고 이리 와.”
“…….”
“오라고 했다.”
“윤서영이지?”
“뭐?”
“아까 그 여자. 맞지?”
“…너 지금 그거 때문에 이래?”
준형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야. 네가 내 애인이야?”
“…뭐?”
“걔가 윤서영이면 뭐.”
“…….”
“그게 너랑 무슨 관계가 있어, 산호야.”
“…….”
“건방 떨지 말고 벗어.”
“…….”
“산호야. 예쁘게 봐줄 때 적당히 하자. 어?”
준형의 태도가 너무 당당해서 산호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리고 이어진 섹스는 평소처럼 다정해서 더 끔찍했다. 준형이 샤워를 하러 간 사이에 산호는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내내 심장이 뛰었다.
준형은 질펀하게 섹스를 한 후에 씻고 나온 산호의 몸을 주무르며 잠드는 것을 좋아했다. 요즘은 특히 거의 매일 그랬다. 그러니까 제가 없어지면 저를 찾을 줄 알았다. 그러나 산호가 집에 도착해서 제 침대 위에 쓰러질 때까지 산호의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산호는 손에 핸드폰을 쥐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 * *
지이이잉. 지이이잉. 잠깐 잠들었던 사이에 핸드폰이 울렸다. 산호는 후다닥 몸을 일으켜 화면을 확인했지만 준형의 연락은 아니었다.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성경이었다. 산호는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산호?”
“응, 나야.”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자다 일어나서 그런가 봐.”
“나 지금 너희 집 앞인데, 맥주 마실래?”
“지금?”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산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급하게 문을 열자 편의점 비닐봉지를 손에 든 성경이 서 있었다.
“갑자기 웬 맥주야?”
“아, 중요하게 할 얘기도 있고 그래서.”
“무슨 얘긴데?”
산호는 접이식 테이블을 펴고 싱크대 위 찬장에서 컵을 두 개 꺼냈다. 매일 보다시피 하는 차분한 얼굴이 산호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음…. 일단 좀 마시고 얘기해도 될까.”
“심각한 거야?”
“심각한 건 아니고…. 아닌가, 심각한 건가.”
“뭐야….”
성경은 말수가 많지 않은 대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성격이었다. 산호는 진지해 보이는 성경의 얼굴에 더 재촉하지 못하고 컵을 쥐었다. 성경이 대충 섞은 소맥의 비율은 엉망이었다. 소주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산호는 얼굴을 찡그렸다.
“별로야?”
“으…. 맥주 좀 더 넣자.”
“내가 비율을 좀 못 맞춰.”
성경은 픽 웃으며 산호의 컵에 맥주를 더 부었다. 그렇게 넘칠 정도로 가득 채워진 컵이 몇 번 비워졌다. 그러나 성경은 일상적인 물음만 던질 뿐 좀처럼 말을 꺼내지 않았다.
“넌 겨울에 어디 안 가?”
“글쎄…. 알바 구할지도 몰라. 토익 점수도 더 올려야 되고…. 넌?”
“난 뭐….”
성경이 답을 얼버무렸다. 산호는 제가 멍청한 질문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경의 아버지가 대학 이사장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산호가 볼 때는 준형이나 성경이나 부럽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성경은 성적이 좋아서 장학금을 받고 있기도 했다. 산호는 그 앞에서 토익 점수를 운운한 스스로가 조금 멋쩍어졌다.
“아, 나 취했나 봐. 너 공부 잘하는 거 알면서.”
“벌써 취했어?”
“아니, 아니. 그냥 좀 알딸딸한 정도?”
“난 좀 더 마시고 싶은데.”
성경이 그렇게 말하며 제 컵과 산호의 컵에 다시 소주를 따르고 그 위에 맥주를 따랐다. 아빠 다리를 하고 앉은 성경의 무릎은 작은 접이식 테이블 바깥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길고 곧은 손가락이 무릎을 톡톡 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산호는 성경이 초조해 보인다고 느꼈다. 산호의 눈이 풀릴 때쯤에야 성경은 입을 열었다.
“할 얘기가 뭐냐면 말이야.”
“…응, 듣고 있어.”
“괜찮아? 어지러워?”
“괜찮아.”
“사실 그날은 도준형이 지랄 할까 봐 그냥 넘어갔는데….”
“…어?”
말끝을 흐린 성경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산호는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뒤로 뺐다. 엉덩이에 매트리스가 닿았다. 기울어진 몸 때문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성경의 얼굴이 점점 더 다가와 산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귓가에 닿은 성경의 입술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날 네가 나 따먹었잖아.”
“…뭐?”
“내 좆도 빨아주고.”
“…….”
“안에 싸달라고 조르고.”
“…….”
“근데 계속 생각나더라.”
그러니까 한 번만 더 하자. 뜨거운 숨이 산호의 귓불을 데웠다. 앗 하는 사이에 산호의 몸이 완전히 뒤로 넘어갔다. 성경이 그 위에 올라타 산호의 티셔츠를 벗기고 게걸스럽게 유두를 깨물었다. 눈앞이 빙빙 돌았다. 산호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산호의 입술을 핥던 성경이 고개를 뗐다. 늘 단정하던 얼굴이 정욕으로 일그러진 채 웃고 있었다.
“키스 좀 했다고 발딱 세우면 어떡해, 산호야.”
“너, 뭐, 무슨….”
“뭐긴. 한 번만 더 하자니까.”
“내가 언제…!”
“섭섭하네. 왜 기억 못 하지?”
“…힉! 아! 만지지, 마…!”
“자지를 박아줘야 생각나려나.”
산호는 성경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술에 절여진 머릿속은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힘이 빠진 몸은 환영이라도 하듯 다리를 활짝 벌린 채 성경을 받아들였다. 바지가 언제 벗겨졌는지도 몰랐다. 성경이 언제 옷을 벗었는지도 몰랐다.
산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성경의 갈라진 복근과 성기였다. 위로 살짝 휘어진 성기는 단정한 얼굴과 달리 흉폭하게 생겨 산호를 놀라게 했다. 준형의 것보다 좀 더 검붉은 색의 성기는 우둘투둘한 핏줄이 선 채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으, 아으으…!”
“오늘도 도준형한테 박히고 왔어?”
“응…! 으, 아응!”
“또 도준형이 안에 싸줬냐고, 산호야.”
성경의 손에 소주병이 들려있었다. 산호가 그걸 인지함과 동시에 차가운 소주가 몸 위로 뚝뚝 떨어졌다. 성경의 성기를 거쳐 뿌려진 것이었다. 두껍고 통통한 귀두가 소주로 흠뻑 젖어서 구멍 안을 손쉽게 파고들었다. 안에 남아있던 도준형의 정액도 아마 윤활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성경의 성기는 길이가 길어서 쑤우욱 하고 뱃속이 가득 찬 기분이었다. 숨을 쉬면 쉴 때마다 배 안쪽에서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내벽에 뜨겁고 뻑뻑한 게 들어차자 산호는 저절로 성경에게 매달리게 되었다. 산호는 쾌락에 약한 자신의 몸이 원망스러웠다. 빌어먹을 생존 본능.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당하는 와중에도 착실하게 흥분하고 풀어져 좆을 삼킨다.
“…하윽! 흐, 아…. 하….”
“아으…. 좋다.”
“아…! 너무, 후…, 아…, 너무 커….”
“네가 좁은 거야.”
박성경은 좀 미친 것 같았다. 비열하고 뻔뻔한 작태에 분노가 치솟았다. 산호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러나 산호의 비명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성경이 산호의 발목을 잡아 제 어깨에 휙 걸치고는 바로 허리를 퍽 쳐올렸다. 구멍을 빠듯하게 채운 성기가 뿌리 끝까지 파고들어 박혔다. 내리누르는 성경의 몸 때문에 산호의 무릎이 배와 맞닿으며 안쪽이 더 좁아들었다. 산호는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것 말고는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학…! 하…!”
찌걱거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도준형이 너 따먹은 거 자랑할 때부터 이러고 싶었어. 네가 그렇게 잘 젖는다며. 믿을 수 없는 말들이 계속해서 성경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찌걱. 제멋대로 내벽 여기저기를 찔러대는 파렴치한 허릿짓은 도준형보다 더 하면 더 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았다. 내벽의 점막으로 흡수된 알코올이 산호의 정신을 무너뜨린다. 산호의 귀두 끝에서도 질척한 액체가 흐르기 시작했다.
“난 남의 손 좀 탄 거 좋아해. 가르치는 취미는 없거든.”
“무슨, 그만, 아흣…!”
“네가 그런 표정 짓는데 내가 어떻게 멈춰?”
성경은 즐거운 얼굴로 산호를 몰아붙였다. 퍽퍽퍽. 섹스에 익숙해진 유산호는 제 상상보다 훨씬 끝내줬다. 좆을 깊게 박을 때마다 몸을 떨며 투명한 전립선액을 질질 흘렸다. 좆을 깊게 박아 넣은 채로 허리를 느리게 돌리자 또 자지러진다. 반응이 확실해서 만족스러웠다. 유산호의 귀여운 좆을 손으로 꽉 움켜쥐자 끅끅대며 허리가 꺾인다. 산호의 눈앞에도, 성경의 음습한 취향에도 불꽃이 튄다.
“흐으, 살, 살려 응…!”
“씹물 나오는 거 봐, 걸레 같이.”
“아, 학…! 아…! 머, 멈추….”
“씨발, 자지 쥐어짜는 건 언제 배웠어, 어? 하….”
“흐…. 빨리…. 더, 더어…! 응?”
이미 쾌감에 점령당한 산호는 보채듯 성경의 허리를 제 다리로 감았다. 도준형이 착실히 길들인 몸은 이런 종류의 쾌감에 너무 약했다. 산호는 스스로를 저주했다. 성경의 허벅지에 발끝을 비비며 애살을 떨었다. 스스로 엉덩이를 들어 성경에게 문질렀다. 구멍 안쪽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딱딱한 살덩이가 내벽 안쪽을 비벼댈 때마다 너무 좋아서 눈앞이 하얘졌다. 발목을 잡아챈 성경이 픽 웃었다.
“와, 이거 진짜 썅년이네.”
“아흐으…! 더 깊…게…!”
“하…. 너 내가 누군지는 알아?”
“아, 알…앗! 성, 경…. 히윽…!”
산호를 놀리듯 천천히 움직이던 성경이 산호의 성기를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산호의 몸이 파들파들 떨린다. 짙은 쾌감에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아…. 역시, 남이 쑤시던 구멍에 싸는 게 최고다.”
“아! 아아, 읏! 흐, 앙!”
“근데 도준형이 가르친 거야 아님 타고난 거야? 몇 달 사이에 존나 늘었네.”
성경은 뻐꾸기 같은 새끼였다. 쾌감 때문에 고인 눈물이 산호의 눈앞을 흐렸다.
“너도 네 남친보다 나한테 박히는 게 더 좋지?”
눈물이 기어코 흘렀다. 도준형을 내 남친이라고 말해주는 게 박성경뿐이라니. 서러워서 눈물이 줄줄 나왔다. 성경이 그것을 모조리 핥으며 빠르게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산호가 그동안 도준형과 몸을 섞으며 발견한 재능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남자의 사정을 빠르게 유도해내는 능력이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재능이었다.
“하으응…! 아!”
“후…. 꽉꽉 씹어 무는 거 봐.”
“아응! 으! 아! 아, 흑…!”
“너 그냥 이대로 임신할래? 어?”
“으흐, 으, 앙…!”
“씨발. 임신해, 산호야. 어? 더 벌려봐. 잔뜩 싸줄게. 임신해, 젖도 나오게. 어?”
미친 새끼. 난 남자야! 임신 같은 건 못 해! 산호가 눈을 치켜떴다. 신음밖에 나오지 않는 제 목구멍이 원망스럽다. 미쳤다. 박성경은 미쳤다. 그러나 그가 주는 쾌감에 취한 자신도 미쳐가는 것 같았다. 산호의 다리가 성경의 허리를 꽉 감았고 성경은 산호의 귓불을 깨물며 길게 사정했다.
“허억…. 허억….”
“흐….”
지독하게 음탕하고 배덕한 섹스였다. 성경은 사정한 뒤에도 느리게 피스톤 질을 계속했다. 안에 싸지른 정액이 그 움직임에 딸려 나와 산호의 엉덩이를 적셨다. 성경은 산호가 움찔거릴 때마다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왜 계속…, 으….”
“골고루 발라야 임신이 잘 될 거 아냐.”
“미친, 새끼, 읏….”
“애는 분유 먹여. 젖은 내가 다 먹을 거니까.”
성경이 지껄이는 말들은 도준형보다 더 쓰레기 같았다. 미친 새끼. 미친 새끼…. 그리고 그게 산호의 흥분을 더 배가시켰다는 점이 산호를 괴롭게 했다. 산호의 입에서 다시 욕설이 튀어나오자 성경이 산호의 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산호는 준형에게 늘 그랬듯이 금방 반항을 멈췄다. 아픈 건 싫었다. 밤은 길었다.
* * *
산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쨍쨍하게 뜬 후였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길고 곧은 손가락이었다. 기억이 어제에 닿은 산호가 숨을 들이켰다. 산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지만 뒤를 돌아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단단한 팔이 다시 산호를 잡아 눕히고 품으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왜 벌써 일어났어.”
“…놔, 놔줘.”
“…….”
쪽. 성경은 대답 대신 산호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산호는 덜덜 떨며 성경의 손을 붙잡고 빌었다. 제발 비밀로 해달라고. 어째서인지 도준형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기분이 나빠지기도 했다. 내가 도준형이랑 사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야 하지. 그러나 그런 감정적인 생각보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 쪽이 산호의 미래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산호는 자신의 겁을 믿었다. 산호의 울음 섞인 애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성경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안심하라는 듯 미소까지 지었다. 그 작은 움직임이 산호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말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