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24/25)

D+23

채용 과정은 서류 접수부터 합격까지 최소 한 달에서 길게는 두 달 정도 소요된다. 서류 전형에서 합격하게 되면 기술 직군은 필수로 테스트나 과제 단계를 밟는다.

모아게임즈는 이례적으로 아트 직군도 과제 전형이 채용 절차에 포함돼 있었다. 예준은 서류 합격 후 과제와 1차 면접에서 합격해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모아게임즈 입사 자체가 업계에서는 깐깐하기로 정평이 나 있어 전형을 치르면서도 예준은 꼭 꿈을 꾸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도 그럴 것이, 서류 심사 과정에서 프로듀서와 디렉터가 참여해 공정하게 면접 후보에 올리기 때문이었다.

예준이 1층 사내 카페에서 일하며 직원들과 안면을 텄다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애초 대표와 인연이 있음을 아는 사람도 없었고, 예준 또한 혹시나 이호연이 손을 쓸까 부러 지원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VR 총괄 디렉터인 전송이도 서류 심사에 참여했는데, 일전에 장난으로 저는 사심 담아 합격이라 했던 그녀 역시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녀는 지원자가 정예준이기 때문에 더욱 서류를 꼼꼼하게 보았고, 역량을 파악하는 데 무려 이틀을 할애했다.

예준이 1차 면접 합격 후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한 건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아닌 바로 이호연이었다. 그는 최종을 앞둔 예준을 축하하기 위해 자주 가는 한정식집을 예약했다며 데이트를 신청했다.

“너무 좋아요.”

“최종 합격까지 할 수 있을 겁니다.”

이호연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한 달 전, 서류를 검토한 전송이와 우연히 예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업데이트 콘텐츠 미팅 자리였는데, 발표를 마친 그녀가 회의를 마무리하며 아트팀 TO에 대해 말을 꺼냈다.

‘레오, 1층 알바 기억하죠? 저번에 봤던.’

‘…예준이라고.’

‘응, 동그리.’

이름도 동글동글, 성격도 동글동글 순하다며 제멋대로 동그리라는 애칭을 붙인 그녀가 고운 눈매를 접었다.

‘그 친구 이번에 지원했더라고요.’

예준이 모아게임즈에 지원했다는 사실은 그날 알게 되었다. 직접 말해 주기 전까진 모른 체하는 게 맞을 것 같았고, 그 또한 전송이에게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예준이라면 어렵지 않게 합격하리라 믿었다.

대시보드 너머를 바라보며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리던 이호연의 차가 매끄럽게 한산한 교차로를 가로질렀다.

교외로 빠져나온 차량이 도착한 곳은 높다란 토담이 둘러진 고택 앞이었다. 조수석에서 먼저 내린 예준이 뉘엿뉘엿 지는 노을을 등진 고택의 풍경을 시야에 담았다. 고풍스러운 기와와 처마가 가지런히 놓여 아름다운 선을 그리고 있었다.

주차를 한 이호연이 예준 옆에 다가서며 싱그레 웃음 지었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 종종 오는 곳입니다. 부모님이 이곳 음식을 좋아하셔서.”

그가 예준의 손을 맞잡으며 안으로 이끌었다.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정원 한편에서 들려왔다. 맑고 청아한 물소리에 예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꼭 대표님 집 같아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이호연이 픽 웃음을 머금었다. 사람 기억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는 부모님과 자주 찾았던 한정식집의 인테리어를 떠올려 RTF의 저택을 꾸몄다. 게임 속 그의 집은 잘 관리된 고택을 닮아 있다. 저택을 기준으로 오른편에 사슴 농장이 있고, 정원의 녹음은 마치 마을 안 또 다른 마을처럼 보이는 견고한 성이었다.

“들어가죠.”

마당을 넘어 문 앞에 다다르자 생활 한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종업원이 예약 내역을 확인하고 별실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전채를 앞두고 향긋한 뽕잎 차가 두 사람의 앞에 각각 놓였다. 예준은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따스한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호연과 만나기 시작한 후 저녁마다, 혹은 주말마다 데이트하며 분당과 수도권 일대를 돌아다녔다.

여기서 더 찌면 곤란한데. 찻물을 들이켠 예준이 눈을 데굴 굴렸다.

아뮤즈 부쉬로 준비된 다랑어 구이와 캐비어가 듬뿍 들어간 계란찜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건 아닌 모양이다.

한 숟갈 떠 올린 예준이 맛을 가늠해 보았다. 역시 비싼 값을 하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건가 봐. 비싸고 맛있는 걸로 찌면 억울하진 않겠네.

“최종 합격하면 뭐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봐요.”

호연은 합격은 당연하다며 예준을 비행기 태웠다.

하고 싶은 게 뭐가 있을까. 최근 예준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운명의 상대도 만났고, 의외로 장난기가 다분한 그와의 연애는 생각보다 더 재밌고 좋았다. 둥근 이름을 가진 그는 무르지 않고 단단했다.

“같이 살자고 해도 되고.”

“으응?”

“부담이면 말해요.”

이 양반은 허구한 날 부담이면 말을 하래. 거절 못 하는 거 다 알고 말하는 거 아냐? 그리고 그게 무슨 내 소원이냐, 네 소원이지. 눈매를 가느스름하게 치뜬 예준이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생각해 볼게요.”

이미 현실에서뿐 아니라 게임 세상에서도 지겹도록 붙어 있지 않은가. 만나지 못했던 지난날들에 대해 보상받고 싶은 건 예준도 마찬가지였다. 보고 있어도 매일 보고 싶고, 입을 맞추고, 실재함을 느끼고 싶었다.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살아가던 일상이었다. 버리와 버그맨으로 만나고, 예준과 호연으로 만나며 내일을 내디딜 맹목적 이유가 생긴 것이다.

“긍정적이면 좋겠네.”

질척대는 호연을 보며 결국 예준이 못 이기겠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서로의 각인을 확인한 후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 근 한 달여를 말 그대로 꼭 붙어 지냈다. 이호연은 틈이 날 적마다 예준을 불러냈다. 6시 퇴근인 예준을 기다렸다가 함께 나서기도 하고, 밥을 직접 해 주겠다며 제 아파트로 들여 배불리 먹인 후 해가 뜰 때까지 쉼 없이 서로를 물고 핥으며 격렬하게 섹스했다. 이호연은 예준의 좁은 구멍에 제 성기를 파묻은 채 잠들고, 의식이 들면 허리를 추어올려 흐느끼는 신음을 즐겼다.

“예준아, 소곡주 마셔 볼래?”

“소곡주요?”

이호연은 이럴 때만 말을 놓는 버릇이 있었다. 예준이 웃음을 흘렸다. 예준의 긍정에 이호연은 테이블 끝에 설치된 터치스크린을 조작하여 주문을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종업원의 손에는 소곡주 병과 잔이 들려 있었다.

이호연이 영롱한 빛을 띠는 소곡주를 예준에게 따라 주었다. 홀짝홀짝 술을 마시는 예준을 보며 호연이 짙게 웃음을 머금었다. 자율 주행 차량에 몸을 싣고 집으로 가는 동안, 뒷좌석에서 예준을 괴롭힐 생각에 호연의 눈가에 열기가 넘실거렸다. 차에서 한 번 빼 주고, 집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히고 이것저것 해 봐야지.

“어때요.”

“오, 맛있어요. 향도 좋고요.”

향긋한 술 내음이 꼭 게임 속 벌꿀 술을 닮은 것 같았다. 실제로 술도 판매된다면 좋을 텐데. 정해진 기간 동안 운영하는 RTF 브루어리 같은 걸로. 키득 웃음 지은 예준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호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표님, 아니, 호연 씨, 술 같은 것도 제작이 될까요?”

호연의 표정을 보고 바로 호칭을 바꾼 예준이 살긋 눈매를 휘었다.

“글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왜요? 직접 담가 보게?”

“아뇨, 음, 벌꿀 술도 같이 팔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게임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좋아할 것 같고….”

예준이 허둥대며 제 생각을 말했다. 게임에서 즐기던 벌꿀 술을 현실에서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기적으로 안 되더라도 이벤트성으로 팝업 스토어를 열어 전국 각 거점에서 판매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좋은 것 같은데?”

호연이 긍정했다. 실제 게임 IP를 활용해 이것저것 준비해 보려던 참이었다. 기존 RTF의 꿀벌 이모티콘이 있지만, 모바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RTF를 접할 수 있도록 부가 가치를 높일 생각이었다.

“지, 진짜요?”

순한 눈망울을 깜박이는 예준을 이호연이 사랑을 가득 담아 바라보았다.

“진짜로.”

모아게임즈 관계사인 모아스페이스 주주 회의에서 꺼내 보아도 좋을 만큼 꽤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호연이 빠르게 셈을 마쳤다. 예준은 모바일 RTF부터 꾸준히 모아게임즈의 게임을 접해 온 유저이고, CBT까지 경험하여 누구보다 게임 이해도가 높은 편이었다. 그는 예준이 합격 후 모아스페이스에 짧게라도 파견을 나가 벌꿀 술 패키지 디자인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했다. 순수 미술 지향이었던 데다, 작업의 스펙트럼이 넓은 예준이 여러 가지 도전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겸사 예준이 해당 프로젝트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면 더 좋고.

이호연의 머릿속에서 예준의 짧은 의견이 한 차례 시뮬레이션으로 돌았다.

“빨리 가서 벌꿀 술 마시면서 논의해 볼까요?”

“어, 어어?”

RTF의 벌꿀 술도 마시고, 예준의 단내 나는 체액도 빠짐없이 마실 생각이라고 속삭이며 호연이 얄궂게 웃었다. 예준은 호연의 부드러운 눈웃음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D+54

최종 면접인 임원진 면접이 있던 날, 예준은 호연과 사훈 앞에서 긴장해 떨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앞이 까마득하게 번지는 기분이었다. 최종 면접 직후 호연은 잘 보았다며 데이트를 권했지만, 예준은 집에서 쉬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예준은 이 갑갑한 심정을 달리 토로할 곳이 없어 게임 속 꿀벌들이 놀고 있는 뒤뜰에 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아 푸념을 늘어놓았다.

“들어 봐, 어떨 것 같냐니까? 합격할 거 같아?”

[하아암-]

꽃술에 침을 꽂은 채 꿀에 취한 꿀벌이 늘어지게 하품했다. 머리를 만지니 스타일을 구긴다고 했던 바로 그 벌이었다. 데이터 이관 전과 다르지 않은 일관된 모습에 혀가 내둘러졌다.

[일하기도 싫구, 안 아픈 곳이 없네.]

그간 꿀 채집만 하느라 어깨가 결린다며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예준은 속으로 ‘네가 한 거냐, 다 어린 벌들이 했지’하고 한마디 하려다 한숨을 푹 몰아쉬었다. 말이 조금 통하나 싶어 구시렁거린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친밀도 20에 뭘 더 바라랴. 버그맨이 접속하기 전까지 마을 의뢰나 진행할까 싶어 무릎을 짚고 일어서려던 때였다.

[시스템] 야생의 좀말벌이 출몰하였습니다!

“…벌?!”

깜짝 놀란 예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말벌 한 마리가 느닷없이 출몰해 빠른 속도로 꿀벌을 향해 날아들었다. 두꺼비 선생을 소환하기도 전에 바로 앞 꿀벌이 낚아채졌다.

[으아앙! 구, 구해 줘어!]

울먹이는 꿀벌이 처절하게 소리 질렀다.

아무리 꿀벌들이 저를 하찮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어딜 감히 남의 집 귀한 꿀벌을! 예준이 허둥지둥 두꺼비 선생 소환권을 사용했다. 눈앞에 그려진 소환진에서 두꺼비 선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장 좀말벌을 향해 공격을 퍼부어 댔다.

[나, 나나, 머머먹힌다!]

혓바닥이 길게 뻗어 오는 광경을 보고 꿀벌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꼬리 침을 바르르 떨었다. 두꺼비 선생 입장에서는 말벌과 꿀벌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같이 먹으면 안 돼!”

말벌만 혀로 때리든 해서 무조건 잡혀 있는 꿀벌을 구해야 한다 당부하자 두꺼비 선생이 한숨 쉬듯 눈매를 가늘게 치떴다. 마을 이장 소똥을 치우고 받았던 소환권을 쓸 때와 달리 예준의 레벨도 상승하고, 두꺼비 선생의 능력치도 올랐지만, 까다로운 조건에 두꺼비 선생의 혀 놀림이 다소 경직되었다.

한참 두꺼비와 실랑이하던 말벌은 체력이 깎였는지 옭아맨 꿀벌을 놓아주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준이 후다닥 걸음을 옮겨 너절해진 꿀벌을 품에 안았다. 한쪽 날개가 약간 찢겨 있었다. 벌의 상태를 확인한 예준은 두꺼비 선생이 말벌을 잡기 쉽도록 거리를 벌렸다. 공격이 수월해진 두꺼비가 힘없이 나는 말벌을 한입에 삼켰다.

조용해진 필드에 꿀벌의 훌쩍임만 얕게 울렸다. 벌이 끙끙대며 부들부들 전신을 떨었다. 예준은 꿀벌을 말끄러미 내려다보다 힐을 써 찢긴 날개 부위를 정화하고 치유했다.

[아이고, 아이고, 죽는다, 나 죽어!]

“…어휴.”

HP도 회복되었고, 충분히 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벌은 예준의 품에 안겨 빼액빼액 소리를 쳐 댔다. ‘병가 내야 해’, ‘이건 산재야’ 따위를 중얼거린 벌은 아이처럼 예준에게 매달렸다.

“그래, 쉬어라, 쉬어.”

[시스템] 호감도가 10% 상승하였습니다!

[시스템] ‘양봉업자의 길’ 직업-히든 퀘스트가 열렸습니다. 꿀벌의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습니다.

“어…, 호감도!”

예준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용을 써도 오르지 않던 호감도가 순식간에 10%나 올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환심을 사려 채집을 좀 쉬게 해도 절대 오르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 무슨. 황당하다는 표정을 한 예준의 팔에 포근히 안긴 꿀벌의 몸체가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꿀벌의 자그마한 머리통 위에 상태 창이 둥실 풍선처럼 떠올랐다.

[시스템] 꿀벌이 이름을 지어 주길 기다립니다.

평소엔 시큰둥하던 꿀벌의 눈동자가 유독 따스하게 느껴지는 건 제 기분 탓일까. 얼떨떨한 낯으로 꿀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예준이 입매를 달싹였다. 그간 비협조적이던 과거를 떠올리면 ‘양아치’로 명명해 줄까 싶었지만, 막상 호감도가 오르고 유순해진 꿀벌을 보니 마음이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비비.”

[시스템] 꿀벌의 이름을 ‘비비’로 정하였습니다. 그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응.”

예준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비비가 붕, 날아 빛 가루를 흩뿌렸다.

[시스템] 우두머리 격인 꿀벌과 친밀감을 다졌습니다. 채집 효율이 오릅니다.

시스템 창에 ‘축복받은 예비 양봉업자’라는 타이틀이 잠시 보였다 사라졌다. 멍한 눈을 깜박이는 예준의 닉네임 옆에 축복 캐릭터에게만 부여되는 금장이 생성돼 있었다.

“야, 진짜, 너는.”

[그, 그래도 오늘은 쉬어야 해. 날개두 다쳤구….]

진짜 산재야. 웅얼거린 비비가 벌집을 향해 날아갔다. 친밀도가 오르고 축복을 받으면 뭐 하나. 한숨을 푹 내쉰 예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벌집으로 쏙, 들어가려던 비비가 뒤를 돌아 예준을 흘긋 보았다.

[아마 될 거야.]

비비는 제 할 말만 하고 임시 휴업에 돌입해 버렸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흘린 예준은 한참 동안 벌집을 바라보았다.

예준이 지원한 디자인 채용 공고 합격자 발표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Web발신] 안녕하세요. 모아게임즈 채용 담당자입니다. RTF VR UI/UX 디자인 담당자 모집(신입/경력)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채용 홈페이지의 ‘내 지원서’ 메뉴에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문자 안내를 받은 예준이 의자에 무릎을 그러모으고 웅크려 앉아 차게 식은 손을 연신 쥐었다 폈다 했다.

지원 부문을 클릭한 예준의 딱딱하게 굳은 낯이 환하게 펴진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D+127

[제이, 오늘 퇴근하고 같이 들어갈까요? - 호연 대표님]

[어향가지에 칭다오 먹으러 가요. - 호연 대표님]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문자를 보며 예준은 싱그럽게 미소 지었다.

[Outro or Intro]

퇴근 후 나란히 앉아 스크린에 영사된 화면을 바라보았다. 최근 나와 이호연의 생활 패턴은 회사와 게임에 집중돼 있었다. 이전과 다른 점은 그와 나의 포지션에 있었다.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때와 달리 이호연은 실사용자의 시선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었고, 나는 다락방스튜디오에 다니며 업무적인 시선도 겸하여 게임을 즐겼다.

바쁜 일상이지만,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민가로 향하는 와중, 앞서 걷는 두 사람을 보고 멈칫했다. 장신의 남자와 그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키의 남자가 손을 맞잡고 갈대숲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NPC인가? NPC의 자유도는 특정 구역 내에서 허용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잠시 고민하던 나는 시야에서 멀어지는 그들을 물끄러미 보다 이호연의 손을 반사적으로 꾹 잡았다.

“왜요?”

비스듬히 고개를 내린 이호연이 물었다. 푸른빛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본다.

잘못 본 건가? 다시 시선을 돌리자 두 사람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벌꿀 술이나 먹으러 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미한 미소를 입가에 내비쳤다. 개발자들이 어련히 잘 만들었겠지. 이슈가 있다면 전송이가 진작 알아차렸을 거고.

게임 속 화려한 그의 저택이 보였다. 깊어진 밤이 내려앉으며 별빛이 찬란히 부서진다.

먼저 안으로 들어간 이호연이 뒤를 돌았다. 푸른빛으로 빛나는 눈동자에 내 모습이 거울처럼 비쳤다. 바다 같은, 그보다 더 짙은 푸른색의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다.

“형.”

“응?”

“해왕성 같아요.”

“갑자기 해왕성?”

“방금 형이 나 볼 때 눈이 꼭, 해왕성 같았어요.”

“왜 하필 해왕성?”

의아한 그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푸른색의 상징이 무척이나 많은데 왜 나는 해왕성을 떠올렸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짐작이 가는 이유는 있다.

“천왕성까지는 망원경이 없어도 관측할 수 있다고 해서요.”

꼭 지금 같다. 센서를 끼워야만 그의 푸른 눈을 볼 수 있어서.

나는 가장 멀고, 가장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주는 애틋함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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