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Oviposition (16/25)

Oviposition

[여왕개미는 개미 군락에서 알을 낳는 암컷을 이르는 말이다. 대부분의 군락에서는 여왕개미가 개미 군락 내 모든 개미들의 어머니이다.

즉, 벌목 개미과의 곤충들이 영위하는 사회생활에서 중심이 되는 개체인 것이다.]

더듬더듬 설명을 읽어 내리던 나는 뚱한 표정으로 입술을 쫑긋 내밀었다. 고의는 아닌데, 반은 장난이었단 말이야. 자꾸 못되게 구니까 조금 심통 부린 건데. 손에 쥔 리플릿을 만지작거렸다. 눈을 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족과 커플 단위의 관람객들로 실내가 북적였다.

터벅터벅 체험관을 빠져나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상황에서 관람을 더 이어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까지 화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차가운 표정도, 냉랭한 말투도 전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그를 보며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호연이 날 혼자 두고 가진 않았을 거야.

주차장에 있을 것 같은데….

**

처서가 지난 뒤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여느 때와 같이 나를 데려다준 이호연이 오피스텔 앞에서 차를 세웠다. 안전벨트를 끄르고 그의 입술에 가볍게 뽀뽀하는 내 손목을 붙잡으며 그가 입을 열었다.

‘예준 씨 생일 이후로 교외로 안 나갔으니까, 이번에 2박 3일이라도 다녀올까요?’

그렇게 시작된 여행이었다. 강원도나 인천 부근은 자주 다녔기에, 아래로 내려가자는 제안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일은 서로 업무로 바쁘고, 주말은 막바지에 다다른 RTF 버그 개선 배포 작업으로 이호연이 바빴다. 결국 세부 일정 없이 그냥 가는 동안 몇 군데 찾기로 했다.

퇴근 후 출발한 차는 자정이 넘어서야 거제에 닿았다. 평소였다면 새 숙소에 도착했으니 한번 구르고 시작하자 했겠지만, 이호연도 며칠 묵은 피로로 눈가에 졸음이 가득했다. 잠들기 전 속살거리다 서로의 숨결을 자장가 삼아 까무룩 잠들었다.

매미성 구경 후 해안도로에 차를 세우고 맑게 갠 하늘을 내다보는데, 운전석에 앉은 이호연이 손을 잡아 왔다.

“오늘은 느긋하게 쉬죠.”

“좋아요.”

다시 고개를 돌려 밖을 보려던 내 허벅다리 위로 이호연의 손길이 닿았다.

“여기, 많이 자랐나.”

음험하게 웃은 그가 면바지 위를 슬슬 문질렀다.

“…두 번은 안 할 거예요.”

이호연을 노려보며 엄한 의도가 분명한 손을 단호히 붙잡아 치웠다. 까슬하게 올라온 털과 그 주변이 너무나 가려웠다. 면도 후 일을 하는 내내 신경이 쏠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씻고 나오면 몸이 완전히 마르면서 극심한 가려움에 몸이 배배 꼬였다. 긁자니 긁은 부위가 새빨개져 중심부만 불그스름 달아올랐고, 가려움이 엉덩이 전체로 퍼졌다. 항문 주변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극렬한 소양감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끙끙대던 며칠이었다.

아직 이사를 하지 않아 다행이랄까. 이호연 집에서 뒤로 자위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는 이유를 캐물었을 것이다. 집요하게 묻는 그에게 그곳이 가려워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말했다간 분명 솜털처럼 돋은 털이 채 자라기 전에 또 밀렸을 것이다.

이게 다 그놈의 망사 팬티, 망사 스타킹 때문이다. 그것들만 아니었어도 이호연이 이렇게 덤비지는 않았을 텐데. 아닌가? 물론…, 평소보다 더 뜨겁게 달려드는 그가 좋긴 했다. 쾌락에 중독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젠 주에 두세 번 정도 하는 게 부족하다 느낄 정도니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분대는 이호연의 손등을 꼬집으며 눈을 흘겼다. 그런데 정말, 인간과 본능만 남은 짐승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 괴리를 새삼 느끼고 있단 말이야. 자제해야 할 것 같은걸. 나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점심 먹고 숙소로 갈까.”

나지막이 말한 이호연이 빙긋 웃었다.

“테라스 가까이에서 해 보고 싶다. 우리 예준 씨, 비친 모습도 예쁜데.”

한낮, 오션 뷰를 배경으로 창가에서 해 보고 싶다는 이호연을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미, 미쳤어요?”

“왜요. 집에서는 잘만 했는데.”

그, 그건, 아파트는 층수가 높으니까…, 밖에서 안 보일 것 같으니까 그렇죠! 그리고 번번이 거기로 데려가는 사람이 누군데!

“저, 저,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어디, 홍콩? 스위스나 더 먼 곳으로도 보내 줄 수 있는데.”

능글맞게 말하는 이호연의 어조에 농담이 서렸다.

“농담 아니라, 진짜 보고 싶은 곳 있어요.”

문득 찾아보았던 명소 리스트에 정글 돔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호연 입장에서만) 외관이 좀 꺼림칙하게 생겼을 뿐, 내부는 벌레나 곤충과 무관했다. 다양한 식물이 관리되고 있고, 볼거리 위주의 전시 공간에 가까웠다. 곤충 생태 체험관이 있지만, 거기까지는 들어갈 생각도 안 했다. 포토 존도 있고, 빛의 동굴도 있으니까, 사진이나 찍고 오면 좋을 것 같았다.

만약 벌레가 나온다면, 내가 잡아주면 되는 거 아니겠어?

정확한 명칭을 알려 주지 않고, 휴대폰 내비에서 알려 주는 방향대로 가자며 이호연을 보챘다. 기기 스피커를 최대로 키워 그에게 들려주며 틈틈이 맵을 켜 잘 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30분 남짓 달렸을까, 거제남서로에 진입한 차량이 서행하였다. 이호연이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표정을 구겼다.

“저런 건물도 있네요.”

둥근 돔 형태의 건물을 보며 그가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저런 디자인으로 건물을 올릴 수 있냐며 미간을 좁혔다. 설계자가 곤충에 성애가 있지 않고서야, 꿈에서 볼까 두렵다는 그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의 다 온 거죠?”

내 장단에 맞춰 준 그가 시선을 내려 나를 보았다.

“그, 그게….”

“예준 씨?”

“그게…, 저기예요….”

우리가 갈 곳.

급정거한 차가 대로에 멈춰 섰다. 후들대는 손으로 비상등을 켠 이호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벌레 없어요! 알아보기로는 그래요. 건물 외관이 좀 그래서 그렇지….”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벌레를 싫어하고, 트라우마까지 있는 자신을 이런 곳에 데려온 나를 책망하는 어조였다.

“벌레 없을 거예요. 진짜예요.”

이호연은 잠시 고민하다 비상등을 끄고 식물원 주차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상을 쓴 그는 언짢은 듯 불편한 기색을 얼굴에 덕지덕지 두르고 있었다. 나는 빛의 동굴만 가서 사진 찍고 나오자, 설치된 조명이 별처럼 예쁘다더라, 거기서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찍어도 잘 나올 거다, 갖은 감언이설로 그를 꼬드겨 겨우 티켓을 구매했다. 입구에 들어서기까지 다시없을 애교로 그를 보챈 건 두말할 것 없었다.

식물원 한 번 오기가 이렇게 힘들어도 되는 거야? 예전에 간 식물원은 나를 대접하기 위한 코스의 일부였다지만 너무하네, 정말.

이호연이 아파트로 이사한 후 벌레나 곤충에 관한 문제는 없었다고 쳐도, 아예 벌레를 안 보고 살 수는 없다. 간간이 출몰하는 자그마한 생명체들은 시시각각 그 주변을 맴돌았고, 나는 그를 지키는 호위 무사처럼 벌레를 쫓아내거나 잘 잡아 명복을 빌어 주곤 했다.

“호옥시나 벌레 나오면 잡아줄게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밝게 말하는 내 옆에 이호연이 섰다.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

진짜 벌레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글 돔 본관과 곤충 생태 체험관은 거리가 제법 되는데, 벌레가 나온다면 생태 체험관에서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니야? 조경뿐인 본관에 나올 게 아니라.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나는 하자는 거 다 해 줬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항문에 기구도 넣고, (평범한 남자라면 상상도 못 할) 오줌 싸듯 사정하고, 망사 팬티에 스타킹까지. 생일에는 내 거기에, 이상한 거까지 넣으려고 했잖아. 화를 내도 내가 내야 하는 거 아니야?

다 큰 성인이 말이야, 벌레에 트라우마가 있다고 해도 애인한테 화를…. 그래, 트라우마 있는 거 알아,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 내가 생각해도 장난이 과했어. 해도 될 장난과 하지 말아야 할 장난을 구분 못 한 건 사실이야. 근데 날 버리고 갔잖아. 데이트 온 곳에 애인을 버리고 가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거야?

나야말로 어떻게 이럴 수 있냐다!

타협하지 않을 거야. 세 번 미안하다고 해야 들어줄 거라구.

주먹을 꾹 움켜쥔 나는 타박타박 걸음을 옮겼다.

예상대로 이호연은 주차장에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부루퉁하게 볼을 부풀린 나는 조수석이 아닌 뒷좌석에 올랐다. 쿵,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고 고개를 팩 돌렸다.

“하, 예준 씨. 뭐 하는 거예요.”

“숙소로 가요.”

“지금 싸우자는 겁니까?”

“싸우자고 안 했어요. 숙소로 가자고 했지.”

토라진 나를 백미러로 들여다보던 이호연이 짜증스레 머리를 쓸어 넘기며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를 타고 리조트로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간간이 창을 내려 바람을 쐬며 들으란 듯 틱틱거렸다.

이호연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나가 버렸다. 처음엔 기가 막혀 하는 양을 노려보았다. 같은 공간에도 있기 싫다 이거지? 날 보기 위해 콩벌레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했잖아. 겨우 콩벌레였는데…….

괜히 서러움이 차올라 코를 훌쩍였다.

값비싼 리조트에 홀로 남겨진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테라스로 다가섰다. 해가 뉘엿뉘엿 지며 보랏빛으로, 다홍빛으로 번진 해수면이 아름답게 빛났다. 지는 노을을 바라보니 눈시울이 뜨끈뜨끈했다.

‘테라스 가까이에서 해 보고 싶다. 우리 예준 씨, 비친 모습도 예쁜데.’

안 싸웠으면 지금쯤, 끌어안고 있었을 거야. 싫다 말하는 나를 어르는 그에게 이끌려 새시에 손을 짚고 섰을 것이다. 허리춤을 더듬어 오는 이호연의 손길을 느끼며 그의 발등을 밟고 미끄러지지 않으려 뒤챘을 터다. 적당한 무게감으로 등 뒤에서 내리누르다, 못 견뎌 하는 나를 쑥 들어 올렸겠지. 전창에 등을 대고 덜컹대는 소리에 고개를 푹 숙이면, 부끄러워하는 모습조차 예쁘다고 귓불을 깨물어 줄 사람인데.

해 지는 거라도 보고 올까. 이호연도 혼자 나갔는데, 나라고 여기 남아 있는 것도 그렇고.

입속말을 중얼거리며 카디건을 챙겨 리조트 앞, 바닷가로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노을이 빠르게 바다 너머로 주저앉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멍하니 바다를 내다봤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괜히 정글 돔에 가자고 했나. 침울한 표정으로 입매를 비죽였다. 지금까지 다툰 적이야 더러 있지만, 이렇게 서로 아무 말 않았던 적은 없었는데. 그냥 조수석에 올랐어야 했나? 이호연은 너그러운 편이니까, 내가 옆에 앉았으면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하다고 뽀뽀하며 풀어 주려 했을 텐데.

징-, 주머니에서 울린 진동에 후다닥 휴대폰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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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소프트에서 새로 오픈한 게임을 하다 그만두었는데, 신규 에피소드가 열렸다는 광고 문자였다.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 눈가에 열이 올랐다.

이호연 나쁜 새끼. 나쁜 놈아.

다시 진동이 울렸다.

[금방 들어가요. 저녁 같이 먹어요. - 내사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액정을 내려다봤다. 눈물이 주룩 뺨을 타고 흘렀다. 답장을 무어라 적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이호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놀라 황급히 통화 버튼을 누르자 화난 기색이 역력한 이호연의 거친 숨소리가 목소리보다 먼저 귓바퀴를 돌았다.

「나갔어?!」

“아니, 그냥, 바다 보려고….”

울먹이는 내 목소리에 이호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방에 들어왔는데 내가 없어 참았던 화가 폭발한 것 같았다.

「하, 바로 앞이에요?」

“응……. 해 지는 거 보려고….”

「기다려. 바로 내려갈 테니까.」

짓씹는 그의 음성에 결국 눈물이 줄줄 흘렀다. 소매로 얼굴을 닦으며 이호연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 섰다. 나는 울먹이며 오물오물 말을 이었다.

“미, 미안해요….”

“나도 미안해요. 혼자 두고 나가서.”

“아니에요.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벌레로 그러면 안 되는데. 화났죠.”

더듬더듬 사과하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벌레나 다른 건 괜찮았고, 숙소 왔는데 없어서 화났지,”

이호연은 벌레 때문에 놀란 건 사실이지만, 내가 바로 뒤따라 나올 줄 알았다고 했다. 입구에서 기다리는데 나오지 않아 순간 화가 나 주차장으로 간 것이라 설명했다. 차에 올라서는 자존심이 상해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고. 내가 차로 돌아오면 사과하려 했는데, 뒷좌석에 오르는 것을 보자 그 또한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내 눈가를 닦아 준 그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평소의 이호연이다. 화난 이호연이 아니라.

“어디 갔다 왔어요?”

“저녁으로 회에 소주나 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포장해 오고, 겸사겸사.”

회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겸사겸사 뭐?

고개를 갸웃하는 내 어깨에 그가 팔을 두르며 숙소로 돌아가자 속삭였다.

두런두런 대화가 이어졌다.

회 부족하면 룸서비스 시켜요.

충분하지 않을까요?

화이트 와인도 챙겨 왔는데, 그것도 따고.

회 센터에서 포장해 온 회는 무척이나 싱싱했다. 모둠회와 사이드로 제공된 초고추장 샐러드, 비빔 소면 전부 입에 맞았다. 이호연이 회와 같이 사 온 소주는 다섯 병이었는데, 그중 두 병은 내가 다 마신 것 같았다. 술기운이 머리로 몰리며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올랐다.

“괜찮아요?”

“네에, 와인, 가져온 거 마셔야죠.”

분당에서 챙겨 온 화이트는 워싱턴에서 생산된 와인이라 했다. 흔치 않은 와인이라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 골랐다고.

“아.”

남은 회와 함께 맛보려 병을 들어 잔을 채우려는데, 손에 힘이 풀려 그대로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병이 깨지진 않았지만 입고 있던 티셔츠와 바지가 흠뻑 젖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황한 내가 이호연을 바라보자 그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해 왔다.

“괜찮아?”

“괜찮긴 한데, 씻어야겠어요.”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오늘 일진이 좀 사납네. 이호연이랑 다투고, 와인도 쏟고.

“…미안.”

“자꾸 미안하다고 하네. 나도 미안한데.”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이호연이 피식 웃었다. 바닷가에서 숙소로 올라오기까지, 그리고 숙소에서 저녁 준비를 하기까지, 나는 계속해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아기 앵무가 처음 배운 말을 반복하듯 사과했다. 이것도 미안하고, 저것도 미안하고, 아무튼 다 미안하다고.

“같이 씻을까.”

내 뺨에 입을 맞춘 그가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젖은 티셔츠를 벗어 소파에 걸쳐 두었다. 술을 마셔 겁이 없어진 걸까. 불룩 솟은 배가 창피할 법도 한데, 그의 몸에 상체를 부볐다. 내 허리에 팔을 두른 그가 목덜미에 입술을 지그시 눌러 왔다. 매달리듯 이호연의 목을 감싸 당기며 체취를 코로 깊게 흡입하였다.

안기다시피 하여 거실을 지나쳐 침실로, 침실에서 욕실로 넘어왔다. 할딱이는 거친 호흡 사이로 술 내음이 만연했다. 붉어진 얼굴과 목덜미가 유독 환한 욕실 조명에 도드라졌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창피해 고개를 숙였다. 동그란 배를 팔로 감싸 감추었다. 늘 보이는 모습이라도, 나신을 드러내는 순간은 항상 부끄러웠다.

“허리 펴요.”

바지도 벗어야지. 낮게 명령한 그가 나를 품에 가두며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단추가 끌러지며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에 귓불 솜털이 쭈뼛 솟았다. 드로즈와 함께 바지가 딸려 내려가고, 발가벗겨지며 두 눈을 꾹 감았다.

“풀어 줄까.”

이호연의 어깨에 이마를 묻고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다른 것은 몰라도 뒤를 씻는 일만큼은 언제나 제 손으로 해 왔다. 이호연의 손을 빌리는 건 아직 허용 가능 범위가 아니었다.

“다, 다음에요.”

분위기에 취해 욕실까지 온 건 좋았지만, 씻는 모습을 그에게 보이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글리세린 성분이 함유된 젤로 씻어 내거나 튜브로 관장약 주입 후 완전히 비워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어찔한 정신을 바로 잡고 이호연을 밀어 냈다.

“같이 씻는 건.”

“그건 다 하고…….”

“난 괜찮은데.”

“제가 조금. 씻고 정신 좀 차리고 나갈게요.”

웅얼대듯 말하는 나를 두고 이호연이 잠시 고민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동성 간의 연애가 처음인 내가 어떤 부분을 망설이는지 알고 있었다. 내 모든 걸 원하는 그에게 나는 아직 전부를 보일 자신이 없었다. 그는 내 뺨을 감싸 쥐고 입술을 내렸다. 이마, 콧대, 눈가, 도도록하게 올라온 뺨까지 고루 입을 맞춘 후 다 되면 나오라며 다독여 주었다.

씻는 동안 취기가 조금 가셨다. 욕실 밖으로 나오자 이호연은 부스가 있는 다른 욕실에서 씻고 나왔는지 수건으로 사타구니를 가린 채 앉아 있었다.

“다 씻었어요?”

“네, 괜히 창피하다.”

“따끈따끈해졌네.”

“호연 씨도요.”

“이리 와.”

우물쭈물 그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나를 꼭 끌어안은 이호연은 내 엉덩이를 주물 대며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그의 어깨를 짚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등을 굽혀 굳게 다물린 입가에 뽀뽀했다. 숨결이 느리게 오갔다. 이호연은 침대맡에 둔 자신의 셔츠를 집어 내 어깨에 둘러 주었다. 코끝에 이호연의 체취가 스치며 그에게 파묻힌 것 같은 아찔함에 눈앞이 흐려졌다.

“내 옷, 좋아하잖아.”

“…읏.”

알고 있었던 거다. 이호연이 입던 옷이나 그가 내어 준 트레이닝복 같은 것에 내가 반응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발기하기 시작한 자지에 다리가 움츠러들었다.

“알고 있었어요?”

“나도 네 냄새 좋아해.”

이호연이 가슴팍에 코를 비비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으,”

“오늘 나한테 미안했죠.”

“응….”

“그럼, 오늘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

두 눈을 끄먹거렸다. 언제는 마음대로 안 했나?

이호연의 웃음기 서린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응?”

“아, 알겠어요. 근데, 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호연이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눈 깜짝할 새에 침대에 눕혀지고, 침실 천장이 시야에 담겼다. 내 다리 사이를 파고든 그가 어깨로 강하게 내리누르며 거칠게 입을 맞춰 왔다. 우악스레 벌어진 입 속으로 뜨거운 살덩이가 파고들었다. 이호연이 내 턱을 고정해 벌린 탓에 입가가 넘쳐흐른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하, 하아.”

가쁜 숨에 늑골이 들썩였다. 허리가 자연히 들렸다. 이호연의 두터운 넓적다리에 중심부를 뭉개듯 비비며 앓는 신음을 토해 냈다.

순간, 이호연이 내게서 상체를 떨어뜨렸다. 멀어진 체온에 감았던 눈을 떴다. 그는 팔을 뻗어 침대 옆 서랍에서 무언가 꺼내 들었다.

“미안하니까, 한 번만 해 보자.”

“그, 그게.”

둘둘 말린 밧줄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질린 눈으로 바라보자 아프지 않다고 나를 어르기 시작했다. 아프지 않고, 좀 부자유스러울 순 있지만, 정 힘들면 풀어 주겠다고 말했다.

“이런 건 너무….”

AV에서나 나올 법한 거잖아요. 웅얼대는 내게 이호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가학적인 것과 다르다고 나를 재차 달랬다.

“내 셔츠 입은 게 너무 예뻐서.”

“으응….”

“항상 좋았잖아. 응?”

“…으음…….”

“괜찮아. 안 아프게 할게요.”

피부를 자극하는 소재가 아닌 특수 소재라고 했다. 상처가 날 일도 없다며 밧줄을 직접 만져 볼 수 있게 손에 대어 주었다. 보이는 것과 다르게 손끝에 닿는 감촉은 반질반질하기도 했다. 이호연이 가끔 짓궂긴 해도 나를 다치게 할 린 없었다. 주저하던 나는 겁먹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프면 풀어 주기예요.”

“당연히 풀어 주죠. 우리 풀어 주는 단어 정할까요.”

“단어…?”

“진짜 못 견디겠으면 우리끼리 암호 같은 걸 정해서, 그걸 말하면 끝내는 걸로.”

우리끼리 암호라고 해도 나만 말하게 될 것 같은데. 입매를 비죽거렸다. 이미 이호연은 밧줄을 내 다리에 휘감고 있었다. 다리가 접혀 자유롭지 못할 뿐, 그의 말대로 아프지는 않았다.

“레오?”

이호연의 닉네임을 말하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레오라고 부르면 회사에서 꼴릴 것 같은데.”

“음…, 사자?”

생각이 뻗어 나가지 못하고 한 점을 머물렀다.

“어흥, 어때요. 어흥 하면 풀어 줄게.”

“그게 뭐야. 읏.”

이호연과 짧게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몸이 완전히 묶여 팔도, 다리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내게 어흥보다 야옹이 더 어울릴 것 같다고 했지만, 어흥도 나쁘지 않다며 희소했다.

“잠깐 있어요.”

결박되어 묶인 나를 두고 그가 침실을 벗어났다. 멀어지는 이호연의 뒷모습에 버둥거리다 곧 느껴지는 기척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손에는 내가 쏟아 반쯤 남은 와인이 들려 있었다.

“술도 조금 깼고. 다시 취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이호연이 병째 입으로 가져가며 한 모금 들이켰다. 가벼운 탄산감에 그의 단정한 미간에 빗금이 새겨졌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다시 병을 기울여 입에 머금었다. 멍하니 쳐다보는 내 입가에 그가 머금었던 술을 흘려 넣었다. 꿀꺽, 삼킨 달큰한 술은 미지근해졌어도 상큼한 과일 향이 났다.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

협탁에 병을 올려 둔 그가 묶인 다리 사이에 앉았다.

하려는 걸까. 이 자세로 하면, 몸부림치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무릎이 가슴 가까이로 붙으며 항문이 그에게 여과 없이 보여졌다. 민낯이 까발려진 기분에 턱부터 얼굴까지 열이 올랐다.

“또 밀고 싶다.”

털이 주름 주변과 고환, 자지 주변으로 새순처럼 돋기 시작한 걸 관찰하는 듯했다. 구멍 부근에서 숨을 내쉰 그가 혀를 내밀어 촘촘히 핥아 올렸다. 술기운과 분위기에 휘감겨 얕은 신음이 간헐적으로 터졌다.

“아, 흐으, 흑.”

마른 구멍이 벌름대며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뜨거운 살덩이가 내벽을 샅샅이 훑었다. 발가락이 곱아들며 아랫배가 경련했다. 혓바닥이 지분거렸다 빠져나가고, 쭙쭙 빨아들이기를 반복하는 동안 추켜 올라간 엉덩이 사이로 침이 주룩 흘러내렸다. 엉치뼈와 등골까지 타고 흐른 침에 소름이 오소소 끼쳤다.

“잘 먹네요.”

혀 끊어지겠어. 키득대며 이호연이 웃었다.

“술도 잘 받아 마실 것 같은데.”

음험하게 웃은 그가 손을 뻗어 술병을 쥐었다. 열이 오른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호연이 접힌 허리와 묶여 바동대는 내 다리 사이에 술을 부었다.

“흐, 아앗…!”

줄줄 흐르는 술이 엉덩이를 적셨다. 구멍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둔부가 흠뻑 젖어 축축했다.

“아으, 흣, 호연, 씨, 이거, 시, 싫어…!”

도리질 치는 나를 내려다본 이호연이 얼굴을 엉덩이로 가져갔다. 쭉쭉 빨며 혀를 농밀하게 놀렸다. 직접적으로 술이 들이부어진 탓에 어질어질 혼미해졌다.

“예뻐요. 다 빨개져서.”

“흐응, 으으.”

“하지 말까?”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술을 넣는 건 무서웠지만, 빨아 주는 건 좋았다.

“나, 흣, 빨아 줘요.”

“빨기만?”

“…넣는 것도, 좋아요…….”

“재밌는 거 또 해 볼까요.”

“무서어….”

울먹이는 내 뒤로 무언가 이물감이 느껴졌다. 처음엔 이호연이 넣어 주는 건가 싶었다. 이미 한계였다. 혀로 뭉개어 놓은 내벽과 흘러든 술로 소양감이 일었다. 털이 나기 시작한 주변은 말할 것도 없었다. 빨리 끝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끙끙거리며 이호연을 불렀다. 호연 씨, 아파요. 어떻게 좀. 술에 얼근해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 둥글둥글한 것이 구멍을 파고들었다.

“아, 으, 아아, 드, 들어, 와아.”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들어온다는 감각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기이하고 묘한 쾌감에 전신이 들썩거렸다.

“으, 읏, 드러, 아아아….”

둥근 물체가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다. 이 울퉁불퉁한 것은 이호연의 자지가 아니었다.

“그만, 안 들어, 가.”

“다 들어갔어요.”

흥분한 이호연의 숨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차오른 눈물로 어룽진 시야에 그의 얼굴이 흐릿하게 담겼다.

“잘 먹었네.”

묶인 것과는 별개로 아랫배에 팽만감이 들었다. 이마에 맺힌 땀이 눈물과 섞여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우리 예준 씨, 기구도 잘 먹고, 다 잘 먹네.”

“호연, 씨 것만, 좋아요…….”

“오늘 미안한 짓 뭐 했지.”

“…나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억울해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미친놈아, 나만 잘못했냐고. 너도 나 버리고 그냥 갔잖아요. 긴장감에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 구멍이 움찔움찔 머금은 구슬 하나를 툭, 하고 뱉어 냈다.

“혼자 뭐 봤어요.”

“으,”

“나 나가고 혼자 있었잖아, 안에.”

“개미….”

하필 마지막에 본 게 여왕개미일 건 뭐람. 울먹울먹 대답하자 이호연이 하하 소리를 냈다. 곱게 접힌 눈매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가 짝-, 골반 부근을 가볍게 쳤다. 반응한 다리가 부르르 떨렸다. 구슬 두 개가 동시에 투둑, 침대 위로 떨어졌다.

“여덟 개 들어갔는데, 아직 세 개밖에 안 나왔어요.”

“힘들,”

“예준 씨가 여왕개미인데.”

“미, 미친, 소리 하지 말고, 빨리이-,”

“다섯 개 낳아야 끝나죠.”

이호연은 내가 낳는 구슬들이 정말 제 핏줄이 되어 우리를 묶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속삭였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생각이 스쳤다. 구슬을 보며 알을 낳는 걸 연상한 것도 충격인데, 내가 애를 낳을 수 있다면 좋겠다니.

“흑, 읏. 미쳤, 어….”

아무리 힘을 주려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풀어질 대로 풀어진 탓인지. 그도 아니면 너무 깊숙히 파고들어 나오지 않는 건지. 무섬증과 두려움이 아득하게 밀려들었다.

“어, 어흐으.”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가까스로 생각해 낸 단어가 울음처럼 내뱉어졌다. 약속했던 단어를 반복하며 흐느끼자 이호연이 멈칫 어깨를 굳혔다.

“미친놈, 나쁜 놈, 흐윽…, 니 걸 넣어 줘야지…….”

힘없이 축 늘어진 손으로 배를 문지르며 우는 나를 보고 이호연의 손이 분주해졌다. 엉덩이 사이를 지분거리던 손이 무언갈 쭉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다물린 구멍에 연결된 실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도리질 치며 울먹이는 내 입가에 그는 입술을 내려 주며 연결된 구슬을 힘주어 끄집어냈다.

투두둑, 젖은 구슬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삽입과는 전혀 다른 감각에 작살에 꾄 물고기처럼 전신이 바들바들 떨렸다. 허우적거리는 내 가랑이 사이에 자리를 잡은 그가 귀두 끝을 붉게 달아오른 구멍에 조준해 다급하게 삽입을 시도해 왔다. 바로 뿌리까지 쳐올린 깊은 삽입에 숨을 할딱였다.

“…하으으!”

“미안, 심했다. 미안해요.”

깊게 삽입한 좆이 극점 주변을 비빈 탓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숨 쉬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뻐끔거리는 내 입에 그가 인공호흡 하듯 숨을 불어 넣었다.

“음, 으, 흐부, 흡,”

“미안해, 미안.”

얕게 삽입을 거듭하던 그가 상체를 떨어뜨리며 결박된 매듭을 하나씩 풀어 주었다. 묶였던 몸이 풀어지며 나는 이호연을 와락 끌어안았다. 유일한 생존책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목에 매달려 눈물을 흘렸다.

“나빴어요. 나만, 잘못한 것도 아닌데.”

“미안, 이번엔 진짜 심했다. 그만하고 씻자.”

삽입한 좆을 느리게 빼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이호연의 목덜미에 이를 세워 자국을 남겼다. 잘근잘근 씹어 잇자국을 내고, 붉어진 피부 위를 혀로 핥았다.

여행 첫날이었다. 다투고 토라지고 잠자리에서의 괴롭힘이 극심하긴 했지만, 이호연이 싫어진 건 아니었다. 악취미다, 그 정도. 이 아저씨,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변태네, 딱 그 정도였다. 침대 위에서의 이호연이 가끔 나를 함부로 대하긴 해도, 나는 이호연과의 밤이 싫지 않았다. 나 또한 그와 엄한 장난을 주고받는 것이 좋았다.

이호연의 밑바닥을 훔쳐보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기분에 알 수 없는 묘한 우월감이 내 안에 자리했다.

트라우마, 섹스, 사소한 습관들 전부.

오히려 자제력을 잃을까 봐, 내가 더 하자고 보챌까 봐, 내가 두려운 것은 그뿐이었다.

구슬을 산란하듯 낳았던 조금 전 상황이 무서웠던 건, 그 때문이었다. 쾌락과 성욕에 지배되어 어느 날 이호연과의 섹스가 만족스럽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반대로, 닳고 닳은 나를 이호연이 더는 좋아하지 않을까 봐.

몸을 세운 나는 이호연의 위로 기어올라 그의 자지에 엉덩이를 맞추었다.

“내가 할게요.”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손을 내려 흉흉하게 선 살덩이를 쥐었다. 귀두 끝을 맞춘 후 허리를 천천히 내렸다.

“아아, 흐으응….”

들고 내리기를 거듭하며 원하는 만큼 깊게 삽입하였다. 숨이 막힐 정도로 묵직한 쾌감에 시야가 몇 번이고 점멸하며 턱이 덜덜 떨렸다.

“윽, 예준아.”

“아, 아앗, 흣. 움직여. 움직여요.”

찰박찰박 살끼리 맞부딪쳤다. 위에서 허리를 놀리는 것에 힘이 부쳤다. 내 부탁에 이호연이 다리를 벌려 자세를 잡고 퍽퍽 추어올리기 시작했다. 내려다본 그의 눈가가 감내하듯 찌푸려졌다. 엉덩이를 잡아 벌려 콱콱 쑤셔 올리는 그의 가슴 위로 상체를 무너뜨렸다.

“응, 으읏! 조, 좋아…!”

“예준아.”

“하, 으, 으응!”

배와 배 사이에 놓인 좆이 거칠게 비벼졌다. 사정감에 가까워져 이호연의 목덜미를 재차 깨물었다.

“좋, 흐으!”

너무나 오래 기다렸다. 기구나 구슬 같은 게 아니라 이호연을 품고 싶었다.

퍽, 짓쳐 올리는 허리 짓에 내벽이 수런거리는 것 같았다. 꿈질대며 엉덩이에 힘을 주자, 인상을 쓴 그가 퍽퍽 소리 나게 박아 올리기 시작했다.

“형, 혀엉…, 흑, 좋아, 좋아해요…….”

“나도. 나도 네가 좋아.”

퍽, 퍼억-, 쩍, 퍽.

눈앞에서 빛이 번쩍거렸다. 문질러진 귀두 끝에서 점액질이 새어 나왔다. 이호연은 흐느껴 울며 느리게 사정하는 나를 강하게 끌어안고 한 번 더 퍽, 하고 허리를 쳐올렸다. 상처 부위의 혈류가 증가하듯, 맥박 치는 그의 좆에서 정액이 사출되어 내벽에 뿌려졌다.

이호연은 사정을 하면서도 계속해 삽입하며 내 흥분을 부추겼다. 질금질금 사정하던 나는 요의를 느끼며 묽은 정액을 울컥울컥 토해 냈다.

스미는 햇살에 눈가가 찌르르 둔통을 호소했다.

그대로 정신을 잃은 거였나.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체액으로 번들거리던 몸이 보송보송했다. 이호연이 닦아 준 모양이었다.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를 씻긴 후 제 셔츠를 다시 입혀 놓은 게 우스웠다. 커플 잠옷도 가져왔는데, 차라리 그걸 입혀 주지.

침대 밖으로 다리를 빼냈다. 침실에서 벗어나 거실로 걸어 나와 두리번거리며 이호연을 찾았다.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아 테라스와 온돌방, 작은 방 욕실까지 모두 둘러보았다.

때마침, 문이 띠릭, 하고 열렸다. 고개를 돌려 문가를 바라보자 죽집 봉투를 든 이호연과 시선이 마주쳤다.

“형…?”

“일어났어요? 조식 못 먹을 것 같아서 죽 사 왔는데.”

속이 비었고, 전날 과음한 탓에 바로 무언갈 먹기엔 부담인 것을 알고 사 온 것이다.

“죽 먹고, 오늘은 인피니티 풀에서 놀까요?”

“좋아요.”

식탁으로 다가가 봉투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꺼냈다. 다 먹지 못할까 봐 소분 포장해 온 배려에 피식 웃음이 번졌다. 섬세하기는. 밑반찬 용기 뚜껑을 열어 정리하는데, 이호연이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어젠, 미안.”

“알긴 아는구만.”

콧소리를 내며 그를 흘겼다.

“내가 나빴어.”

“알면 됐어요.”

“근데, 어제 너무 예뻤어.”

“…….”

“예준,”

“호연 씨랑 하는 거, 재밌어요. 무섭긴 한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전복죽을 말끄러미 내려다보다,

“다 좋아요.”

솔직하게 답하였다.

“그냥, 내 몸이, 조금 무서워서 그래요. 자극이 조금.”

한계를 넘나드는 이 자극이 무감해질까 봐. 그렇지만 나는 지금이 좋았다. 이호연과 하는 모든 게. 연애도 좋고, 섹스도 만족스러웠다. 가끔 어디서 이런 걸 가져왔나 싶은 물건들도, 커다란 덩치로 가끔 보이는 엉뚱한 면모도. 나 또한 이호연을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의 연애를 결심하며 처음 입을 맞췄던 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며 그를 받아들였다. 내가 두려워하는 문제들도 결국 시간이 지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농도 짙은 농담으로 서로 회상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사랑해.”

이호연이 내 귓바퀴를 깨물며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물기가 서린 그의 음성에 가슴 한구석이 울렁거렸다. 아니, 이건 벅차오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정말 많이 사랑해.”

“저기, 죽은 먹고 싶은데.”

허리를 찔러 오는 살 몽둥이에 팔꿈치로 가볍게 이호연을 밀어 냈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부족해.”

“밥 먹을 거야.”

“사랑해, 정예준.”

“아니, 밥 좀.”

쪽쪽, 입을 맞추는 그를 뿌리치며 숟가락을 들었다.

“미안한 거 맞죠?”

“미안은 한데, 모닝 섹스 하고 싶다.”

까치집이 된 머리도 귀엽고, 자다 깬 내 모습도 귀엽고, 간밤 많이 울어 퉁퉁 부은 눈가도 귀엽다며 그가 애교를 부려 왔다.

“미안하면 저리 가요. 나 배고파요.”

훠이, 벌레 쫓듯 이호연을 쫓아내고 식탁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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