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RTF(Return To the Farm) (11/25)
  • RTF(Return To the Farm)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커튼을 걷어 낸 거실에는 채광이 굽이쳤다. 창을 넘어온 햇살이 구름의 동선을 따라 러그에 그림을 그렸다.

    나는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망부석처럼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호연이 내려 준 캡슐 커피를 홀짝이다 그대로 우뚝 멈추었다. 어둑어둑한 연출로 까맣게 번진 화면을 주시했다. “끄아아-” 괴성을 지른 좀비가 불쑥 튀어나오며 수풀을 덮쳤다. 흰자위가 구분되지 않는 잿빛 눈동자와 말라붙은 핏자국이 선연한 좀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커다란 화면 가까이 다가온 좀비가 수풀에 숨어 있던 어린아이를 덮쳤다. 자그마한 체구의 아이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좀비에게 제 살을 내어 주고 만다.

    근처에 숨어 있던 주인공이 두 눈을 부릅뜬 채 입을 틀어막고 바들바들 떨었다. 살고 싶다는 주인공의 방백이 흘러나오며 일촉즉발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건조한 눈으로 훑었다. 그 순간이었다. 퍼억, 하는 둔탁한 소리가 거실에 크게 울렸다. 커피를 마시는 것도 잊은 채 화면만 바라보았다. 카메라가 빠르게 워킹하며 둔기를 든 남자를 짧게 비추었다. 주인공에게 닥친 위기의 순간이 두 번 정도 나왔을 때는 죽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세 번에 다다르니 어차피 주인공 버프로 살겠구나 싶어 흥미가 점점 떨어졌다.

    옆에 앉은 이호연은 제 허벅지에 노트북을 올려 두고 화면만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고개를 숙인 그의 얼굴에 이마를 덮은 앞머리로 그늘이 반쯤 드리웠다. 이렇게 보고 있자니 왁스로 올렸을 때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것 같았다. 추격전으로 넘어간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갔다. 달리는 발소리, 내지르는 비명, 흥분을 고조시키는 박동보다 조금 더 빠른 비트의 음악이 10초가량 이어졌다. 거친 숨소리와 스산함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한데 섞인 와중에도 흐트러짐 없이 집중하는 그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지루함을 이겨 내고 진득하게 자리에 앉아 한 시간 반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견뎌 냈지만, 결말 앞에서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옆에 둔 리모컨으로 볼륨을 낮추며 이호연에게 몸을 기울였다.

    “많이 바빠요? 회사 일?”

    “…저번에 이야기했던 게임 시나리오를 지난주에 받았는데, 바빠서 못 보다가 이제 보는 중입니다.”

    게임 시나리오? 아아, 아는 후배가 게임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했었지. 노트북 화면에 목차 페이지가 보였다. ‘RTF Contents’라는 글씨 아래로 구성 리스트가 적혀 있다. 기획 의도와 세계관, 캐릭터 시트, 챕터 소개, 챕터 내 하위 에피소드, 그리고 에피소드별 메인 스트림과 서브 미션…. 내 시선이 화면에 못 박힌 듯 고정된 것을 본 이호연이 내게 노트북을 넘겨주며 살펴보라 권했다. 그에게서 받은 노트북을 허벅지에 올리며 우측 화살표 버튼을 눌러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RTF(Return To the Farm)(Working title) Game Scenario]

    알 티 에프. 가칭으로 적어 둔 게임 타이틀은 게임을 구동해 보지 않은 사람이 보아도 농장 관리 게임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명료했다. 그가 만드는 게임이라면 FPSFirst-Person-Shooter 게임이나 디테일한 스토리 라인과 성취감을 주는 MMORPG 게임을 생각했었는데. 모순적이게도 전원생활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니. 생뚱맞은 느낌에 고개가 절로 갸우뚱 기울어졌다.

    “모바일이에요? PC? 아니면 콘솔?”

    “모바일을 고려해서 쓴 것 같습니다.”

    실제 배포 이전,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 100% 이상 달성하게 되면 서버 비용은 버는 셈이다. 개발비야 어디까지나 취미로 시작한 것이니 참여한 데에 의의를 두었다 치고. 데모가 나오게 되면 투자도 받을 수 있으려나. 이호연이 만드는 게임이 투자를 받게 된다면 좋겠는데.

    나는 기획 의도 페이지로 넘어가며 콧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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