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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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흔이 탄 가마가 화려한 외양의 전각 앞에서 멈추었다.
“내리십시오. 도착하였습니다.”
무흔은 땅을 딛고 서자마자 고개를 들어 입구의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운우정?”
구름 운(雲). 비 우(雨). 운우지락(雲雨之樂), 구름과 비처럼 뒤엉켜 육체의 쾌락을 나누는 곳이라는 적나라한 이름의 전각이라니!
충격에 휩싸인 무흔은 다급히 내관을 향해 돌아섰다.
“내가 앞으로 지낼 처소가 여기인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깨끗하게 씻고 여독을 푸시면 됩니다.”
무흔을 데려온 장 내관이 편안해 보이는 미소를 보이며 일정을 설명하였다. 뭔가 찝찝한 느낌이라, 무흔은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그럼, 내일은 다른 곳으로 옮기는가?”
“거처는 모레, 폐하께서 정해주실 것입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다섯 명의 궁녀들이 나란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살짝 접었다 펴며 무흔에게 인사를 올렸다.
“은증왕을 뵈옵니다.”
제일 앞에 있던 궁녀가 무흔을 자리에 앉도록 권했고, 두 번째 궁녀는 그 앞에 놓인 잔에 차를 따랐으며, 세 번째 궁녀는 무흔이 품고 있는 나무함을 탁자에 소리 나지 않게 놓아 주었다.
네 번째 궁녀는 무흔의 신발을, 마지막 궁녀가 장갑을 벗기려 하였다.
무흔은 주먹을 꽉 쥐며 움찔했다.
“곧 식사가 나옵니다. 손을 씻겨 드리겠습니다.”
“아….”
그녀의 뒤로는 시동들이 면포와 대야를 들고 서 있었다.
“나로부터 저주가 옮을 수도 있는데 괜찮겠는가?”
“이미 효명성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시고 만지시고 하는 동안 액땜이 되었으니 괜찮다고 하십니다.”
“누가?”
“예부상서 어른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예부상서 주한모?
이 궁인들은 모두 그쪽 사람인 건가 싶어 무흔의 마음에 불안함이 엄습했다. 윤이 금을 잔뜩 마련해준 것과 같은 이치로, 이들 또한 예부상서에게 뭔가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포섭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시장하시지요? 바로 드실 수 있도록 오시는 때에 맞추어 식사를 준비하였답니다.”
무흔을 자리에 앉힌 첫 번째 궁녀가 어느새 뒤로 와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오래 마차에 앉아 있다 보니 온몸이 찌뿌둥하긴 했다. 불안함은 불안함이고, 시원한 건 시원한 거니까. 무흔은 일단 몸의 힘을 뺐다.
식사도 맛있게 하고, 그런 후에는 꺄르륵 호호 무흔의 말마다 그리 장단을 맞추어 웃어주는 궁녀들과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하며 가까워질 기회를 노렸다.
“내가 앞으로 어찌 되는지 누구 들은 바가 있느냐?”
무흔의 질문에 궁녀 넷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중 하나는 고개를 끄덕, 했지만, 다른 하나가 가로로 도리질을 쳤다.
“여기, 운우정은 무엇을 하는 곳이냐?”
이번에는 모두가 놀라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란히 서서 고개를 숙였다.
무흔은 대충 짐작을 하고 있었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을 듯한 아름답고 황홀한 정원인데. 신기하게도 한쪽 구석에 침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평범한 정자가 있을 법한 자리인데, 난데없이 침대라?
돌을 깎아 만든 침대 위에는 놀랍도록 푹신한 두께의 요가 깔려 있었다. 요의 겉은 새카만 비단이요 테두리에는 황금의 용이 수놓아져 있었으니, 황제가 쓰는 물건임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먹은 식사에도 거북이니 해구신이니, 심지어 복분자 열매에 이르기까지 정력에 좋기로 유명한 재료들이 제법 포함되어 있었다.
저쪽에서 다섯 번째 궁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목욕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난처하게 가만히 서 있던 네 궁녀들은 냉큼 무흔을 데리고 욕실로 향했다.
“탈의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목걸이를 편히 풀으세요.”
“아, 이건 풀리지 않는 목걸이야. 저주와 재앙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나면서부터 지금껏 차고 있는 회룬석 목걸이지.”
궁녀 둘이 무흔의 목덜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말로만 듣던 회룬석이 이것이군요? 이렇게나 아름다운 보석이라니! 역시 놀라운 힘을 가질 법해요.”
“하하, 그러한가.”
무흔의 목덜미를 응시하던 궁녀 하나가 가슴팍의 옷고름을 살며시 잡아당겼다. 무흔은 깜짝 놀라 냉큼 옷깃을 여몄다.
“자… 잠깐, 그대들은 여인이 아닌가? 내 몸을 보겠다는 거야?”
“혹 불편하십니까? 허면 내관들을 불러 목욕 시중을 들라 할까요?”
“목욕 정도야 혼자 하면 되지.”
“오호호호. 별말씀을.”
또. 뭐가 그리 재미난지 저들끼리 웃었다. 은증왕이 너무나도 귀엽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러지 말고 편히 계세요. 황궁에서 목욕 시중은 모두 궁녀들의 몫입니다. 희로국에서는 그렇지 아니한가요?”
“난 혼자 했어.”
희로국에서는 무흔에게서 저주가 옮을까 두려워 시중드는 이들이 모두 욕조 밖에서 줄을 맞춰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희로국 황궁의 비빈과 공주는 여인이 시중을 들고 황제와 황자는 사내가 시중을 들지.”
무흔은 옷깃을 꽉 움켜쥔 채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내관들을 불러 목욕 시중을 들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괜찮으시지요?”
무흔의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곱게 웃은 궁녀는 살랑살랑 옷자락을 날리며 사라지더니만, 금세 내관들을 불러왔다.
“황제 폐하의 침전 및 운우정에 배속된 내관들입니다. 이들 모두 손이 부드럽고 기교에 능하니 불편함 없이 시중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안에 들어선 내관은 다섯이었다. 열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소년에서부터 윤과 동년배로 보이는 청년까지, 하나같이 젊고 또 놀라울 정도로 야릇한 미색이 넘치는 이들이었다.
“은증왕을 뵙습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들 역시 궁녀와 마찬가지로 무흔의 외모를 보고 흠칫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중 가장 어려 보이는 이가 아주 찰나였지만 눈을 휘둥그레 뜨긴 했었다.
“이제 저희가 시중을 들겠습니다. 몸에 긴장을 푸십시오.”
궁녀들이 전부 물러가자 내관들이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 허리띠에 단 노리개와 은장도는 잃어버리면 아니되네.”
“예, 고이 보관하겠습니다.”
무흔의 옷을 얌전히 접어 선반에 놓은 이가 허리 장식들을 그 위에 잘 보이게 얹어두었다. 품에 넣어두었던 묵직한 주머니 두 개도 나란히.
그제야 무흔은 마음이 좀 놓였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우와….”
효명성의 욕조 규모도 엄청나다 생각했는데. 운우정의 탕은 고작 규모 따위를 논할 바가 아니었다.
뜨끈한 물이 찰랑이는 탕의 바닥에는 홍옥이 납작하게 세공되어 깔려 있었고 그 사이사이 녹옥과 백옥으로 신묘한 무늬가 장식되어 있었다. 점점이 박힌 황금 조각들이 찬란한 빛을 물결 속에서 뿜어댔다.
“물의 온도는 괜찮으십니까?”
앳된 얼굴의 내관이 무흔이 손끝을 물에 대어 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발판을 무흔의 앞에 놓았다.
“들어가시겠습니다.”
키가 큰 내관이 다가와 무흔의 손을 받쳐주어 탕에 편히 들어가게 도와주었다. 그들의 손길은 하나같이 나긋나긋하고 몸놀림은 기이할 정도로 요염했다.
물에는 꽃잎이 듬뿍 떠 있었다. 고혹적인 향과 희뿌연 증기가 가득 차, 여긴 대체 무슨 세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와중에도 무흔은 정신을 바짝 차리려 애썼다.
‘주 국공이 황궁에서 도망가는 건 안 된다고 했지만,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대충 알겠는데 이대로 있을 수는 없잖아.’
씻는 동안은 일단 그들에게 몸을 맡겼다. 어차피 다 벗은 상태로 다섯이나 되는 이들에게 대항하기도 무리였다.
무흔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고 씻기면서도 낯빛 하나 붉히지 않는 뻔뻔함이랄까 익숙함이랄까. 무흔은 이들이 하는 일이 무엇일지 짐작이 갔다.
“어혈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올라오십시오.”
탕에서 나오자 그들이 몸의 물기를 닦아주고는 무흔을 식탁만큼이나 높은 침대로 인도했다.
“올라가 엎드리십시오.”
“뭘 하려고?”
경계심 그득한 무흔의 모습에 다들 생글생글 웃으며 답을 하였다.
“몸에 향유를 바르고 뭉치고 단단한 부분은 지압으로 풀어드리려 함입니다.”
“아, 지압! 진작 그리 말을 하지.”
무흔은 반색을 하며 냉큼 높은 침대 위에 올라가 엎드렸다.
머리와 목덜미, 어깨를 담당하는 이가 하나, 양 손과 팔에 각각 하나씩, 그리고 발과 종아리를 담당하는 이가 하나였다.
“아아… 좋다. 너희들은 보기에는 손가락도 가늘고 상당히 여려 보이는데, 손끝이 단단하구나?”
“예. 저희는 서로 해 주면서 늘 실력을 갈고닦습니다. 폐하께서도 저희가 만져드리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몸이 노곤노곤하니 잠이 쏟아졌다. 깜빡 졸음이 오는 차에, 지금껏 수고하던 넷이 빠지고 나머지 하나가 나타났다.
“둔부와 등허리는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향유를 몸에 바르고 지압을 하는 손놀림이 남달랐다. 앞의 넷이 오오, 였다면 이 내관은 우와, 랄까. 효명성의 남이를 생각나게 하는 손가락이었다.
무흔은 엎드린 채 눈을 부릅뜨고 윤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눈을 감으면 지금 제 등허리를 주무르는 손길이 윤이라는 상상을 펼치게 되어 버려, 여러모로 곤란했다.
내관의 원숙한 손길이 등허리를 쭉 따라 내려와 엉덩이로 갈라지는 윗부분을 꾸욱 눌렀다.
“헉!”
“여길 풀어두셔야 고생을 안 하십니다.”
“무슨 고생?”
무흔은 설마 하며 물었다. 설마. 또 설마. 숨 쉴 때마다 설마 하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내일 분명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기교 좋은 자를 불러두셨으니까요.”
내관은 손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무흔의 엉덩이를 구석구석 주물러댔다.
무흔은 참았다. 일단 지금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말고 버티면서 방도를 찾아야 했다. 탈출을 하든 윤에게 연락을 할 방도를 찾든. 그게 급선무였다.
‘금구슬을 가득 가지고 있으니까, 이자들에게 일단 하나씩 나눠줘? 아니야, 통할 놈만 하나 골라서 몇 개 몰아주는 게 낫겠지. 아까 궁녀들이 말하길 난 여기서 못 나간다고 했어. 주 국공을 이리로 불러 달라 할까.’
머리를 굴리느라 엉덩이를 잠깐 잊었건만, 난데없는 자극이 들어오는 순간 무흔은 비명을 질렀다.
“악! 이게 지금 무슨 짓인가!”
내관의 손이 엉덩이의 꼬리뼈 안쪽을 양 엄지로 꾸욱 누른 것이었다.
“후음 주변을 말랑하게 풀어주고 혈행을 좋게 하려 함이니 긴장하실 필요 없사옵니다.”
내관이 다른 내관들에게 눈짓을 하자, 그들이 달려와 무흔의 팔다리를 붙들었다.
“뭐, 뭐야!”
“낯선 감촉이라 당황하신 것뿐입니다. 힘을 빼고 잠시만 계십시오.”
“싫어! 놔!”
“미리 좀 개발을 해 두셔야 내일 편하십니다.”
“내일? 뭘 개발하는데? 싫다고!”
“이리 싫어하시니 그럼 안쪽은 풀어드리지 않겠습니다.”
“아니, 무슨 당연한 소리를! 이거 못 놔!”
꾹꾹꾹꾹. 내관은 거침없이 그리 손을 움직여 쫀쫀한 부위 바깥쪽 언저리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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