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화
감방 벽에 걸린 횃불에 윤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무흔은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뭐가 그리 우스운데!”
“식은 음식을 이 꼬치에 끼워 화롯불에 데워 먹으라 이거요.”
“아하… 그렇게! 주 국공은 어찌 그런 생각을 다 했나?”
“흑성부대와 마물 토벌을 오랜 기간 나가기도 하고, 마물의 출구에 쳐 둔 회룬석 결계가 잘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태고산맥 일대를 순찰하거든.”
윤이 쇠꼬챙이에 고기류를 골라 꽂으며 답을 건넸다. 이어 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데우는 데 열중하며 말을 이었다.
“매번 사냥하여 먹을 것을 구하고 야영을 하니 이 정도는 기본이지.”
간수가 새로 숯불을 가득 채운 화로를 들고 나타났다. 무흔은 반색을 하며 화력이 좋은 새 불 앞에 들러붙어 앉아 막 완성한 꼬치를 데우기 시작했다.
“주 국공, 방심하지 말고 쥐가 오는지 살펴주오.”
“나오면 그때 처리해.”
“시커먼 쥐새끼가 나오면, 내 식욕은?”
무흔은 얼굴을 찡그렸다. 손에 든 것이 따뜻하게 데워지길 기다리는데, 눈앞으로 불쑥 긴 꼬치가 디밀어졌다.
“이거부터 먹어.”
“내 몫이었나?”
“당연한 것을.”
“그럼, 사양않겠소.”
화롯불에 끄트머리가 살짝 그슬린 고기는 확실히 처음보다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무흔은 윤이 주는 것을 받아 맨 끝에 있는 고기찜부터 한 입 베어 물었다.
단단하게 굳어 있던 고기가 데워져 육질이 촉촉하게 혀끝에서 흩어지고 육즙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아아… 주 국공이 좀 좋아졌어.”
“실없는 소리.”
무흔은 화로에 코를 박다시피 하며 꼬치를 데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입 또한 부지런히 음식을 씹어 삼키던 중이었다.
“켁! 콜록, 콜록, 으… 켁!”
“여기, 물. 아니, 그러게 아까도 한 번 목에 걸렸으면 조심을 해야지. 이 무슨 미련한 짓거리야?”
“그런 것이 아니… 콜록, 콜록, 컥… 연기가….”
음식물을 다 넘겼는데도 무흔의 기침이 계속되었다. 윤이 그 반응을 이상하게 여기던 순간, 몇 발짝 떨어져 있던 윤의 코에도 무흔이 말하는 그 연기가 닿았다.
“괴연향이 아닌가!”
윤은 무흔이 착 달라붙어 있던 화로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음식이 꽂혀 있는 쇠꼬챙이로 벌겋게 불이 오른 숯을 헤집었다.
“켁! 콜록! 그… 음식에, 켁! 재가 묻잖아! 콜록, 콜록!”
무흔은 기침을 연발하면서도 꼬챙이의 귀중한 음식을 망가뜨리는 윤을 저지하려 들었다.
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쇠꼬챙이를 휘저었고, 숯 아래에 깔린 암녹색의 돌멩이를 찾아냈다. 달궈진 그 돌에서는 초록색의 연기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은증왕! 이리!”
윤이 무흔을 확 끌어당겼다. 무흔이 두르고 있는 시커먼 두봉 자락을 다급히 집어 올려서는 무흔의 손에 쥐여주고 코와 입을 막게 했다.
“연기를 들이켜지 마, 독이다.”
윤이 뒤쪽으로 손을 대충 휘두르자 단번에 철창이 열렸다. 그가 무흔을 끌어안다시피 하여 다급히 감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감히 어떤 놈이 내 성에서….”
윤의 눈에 분노가 한가득 어렸다. 그가 철창 안으로 팔을 뻗어 무언가를 끄집어 올리는 듯이 손을 움직이자, 문제의 화로에서 암녹색 돌멩이 두 개가 솟구쳐 올랐다. 윤이 그것을 바닥에 내던졌다.
“흐읍.”
호흡을 참고 들어간 그가 무흔이 마시던 수통에 든 물을 돌멩이 위에 부어 버렸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녹색 연기가 사라졌다.
“설마 내가 독살당할 뻔한 건가?”
무흔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웅얼웅얼 물었다. 윤에게서는 대답 대신 분노에 찬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당장 배후를 찾아 사지를 찢어 죽여 버릴 것이야.”
윤은 이불 위에 내팽개쳐 있던 검은색 장갑을 챙겼다. 그것을 무흔에게 던져주고, 찬합 뚜껑을 쟁반처럼 들어 두 개의 돌멩이를 그 위에 붕 띄워 얹었다.
“주 국공, 토양계 이능력도 쓸 수 있는 거요?”
“이 돌은 절반 이상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가능해. 광물이니까.”
“아….”
“불에 달궈지면 독을 연기로 내뿜는 돌이야.”
“처음 들어보는데. 괴연향?”
“괴연석에서 나오는 독 연기를 그리 부르지. 태고산맥 최북단 분화구에서만 나는 암석이라 이 지역 출신이 아니고서는 잘 몰라. 따라오시오.”
윤이 무흔의 어깨에 팔을 둘러 꽉 감싸고는 같이 걸어나갔다.
무흔은 제 심장이 발걸음과 함께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옥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는 것인가 하여 한껏 기대에 부풀었는데. 걸음을 옮긴 지 다섯 보 만에 실망했다.
철컹.
윤이 발을 멈추기 무섭게 손짓 한 번으로 오른쪽 빈 감방의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들어가.”
“주 국공, 죽을 뻔한 사람을 계속 이리 감방에 남겨둘 거야? 새 화로를 들였는데 그 돌이 또 있으면 어쩌려고.”
무흔이 볼멘소리를 했으나 윤은 그를 밀어 넣고는 매정할 정도로 손을 휙 내저어 문을 잠가 버렸다.
“내 성에서 같은 일이 두 번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 것 같은가.”
서늘한 목소리만 남겨 놓고 윤이 무흔의 눈앞에서 멀어져갔다. 화가 잔뜩 묻어나는 거친 발소리만 복도에 남았다.
“내 이불, 내 고기… 내 꽃.”
가느다란 초록 넝쿨과 하얀 꽃이 사라진 삭막한 창살부터 눈에 들어왔다. 무흔은 무릎을 그러모아 차가운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독 연기가 닿았던 목구멍은 여전히 쓰렸다. 괜히 어설프게 음식 몇 점이 위장에 들어간 탓에 이전보다도 배가 더 고파졌다. 추웠고, 쥐와 벌레도 여전했다.
한 층 아래 4실에서 조금은 멀어졌는지 귀곡성이 이전보다 희미해졌다.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이 이전보다 끔찍했다. 서러워졌다.
*
효명성에 비상이 걸렸다. 노장군 계원은 간밤의 화로와 관련된 모든 이들을 조사하고 문책했고, 사평은 오통통한 몸집으로 바닥을 쿵쿵 울리며 윤의 집무실로 뛰어왔다. 그는 저보다 먼저 와 있는 이환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아니, 이환 자네 벌써….”
이환은 군인이었다. 호출 명령을 받자마자 군장을 갖추고 성주의 집무실로 도착하는 데는 숫자 100을 세는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으니. 사평은 그 신속함에 감탄했다.
“주군, 몸은 좀 어떠하십니까? 연기를 들이마시지는 아니하셨습니까?”
“난 괜찮네. 연기에 노출된 것도, 목표가 된 것도 은증왕이야.”
“옥사로 의원을 보내겠습니다.”
의원이라면 응당 환자의 맥을 짚을 것이었다. 윤은 사평을 급히 붙들었다.
수련이 부족한 의원이라면 치유자의 맥을 감지하지 못할 것이나, 효명성의 의원들은 전부 명의 도학 선생의 엄격한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었다. 견습 의원의 딱지를 막 뗀 막내 의원이라 하여도 치유자를 판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괴연향이 원인임을 뻔히 아는데 기침 몇 번 한 것 가지고 의원씩이나. 해독약을 보내라 일렀으니 신경 쓰지 말게.”
“그것으로 되겠습니까? 그는 백자라 보통 사람보다 몸이 더 연약할 수도 있을 터인데.”
“아니, 연약은 무슨.”
윤은 벽제성 냉궁 마당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무흔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리 거대한 나무에 기어 올라갈 정도면 일단 팔다리 힘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된 것이리라.
“이환, 보료와 이불을 새것으로 잘 가져다주었는지 확인해. 그리고… 다과, 아니 제대로 된 탕과 식사를 당장 준비해서 들여주도록 하고. 먹는 것까지 보고 와라.”
“예, 헌데… 은증왕이 이 새벽부터 과연 식사를 할까요? 게다가 죽을 뻔했는데.”
이환이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하며 어깨까지 으쓱했다.
모르는 소리, 라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려던 윤은 아까 쇠꼬챙이에 꽂힌 음식에 대한 무흔의 그 집착을 떠올리며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좌우의 둘이 그러한 저를 의심스런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흠흠, 가 봐. 얼른.”
“예, 주군. 잘 살피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감방에 넣어준 그 털가죽은 결이 별로더군. 내 침대에 놓인 것을 갖다 줘.”
“호랑이 모피를요?”
재차 묻는 질문에 대답하기 귀찮다는 듯 윤은 이환을 째려보았다. 이환이 몸을 움찔 떨었다.
“아… 예. 그리하겠습니다.”
이환이 눈짓을 하자 사평 또한 알아들었다는 식으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이미 이환은 벽제성에서 효명성으로 오던 중 자기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윤의 책사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은 상태였다.
“사평, 어찌 생각하는가.”
“우리 성주께서 어찌 찾은 인연인데, 놓쳐서는 아니 되지요. 이환에게 얘기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과연 그럴까 싶었….”
“무슨 헛소리야. 괴연석 건에 대해 물었거늘.”
“그야 은증왕이 죽기를 바라는 자겠지요. 희로국이 배후는 아닐 겁니다. 그쪽에서는 은증왕이 제 명을 채우지 못하고 사고로 죽으면 남은 저주가 되돌아온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
사평의 가느다란 눈에서 통찰의 빛이 번뜩였다.
“은증왕에게 사적으로 원한을 가진 이는 없을 겁니다. 포로의 교환이 성사되기를 원치 않는 자라…”
“짚이는 이가 있는가.”
“괴연석을 쓴 것을 보면 북부 출신이거나, 북부 출신을 곁에 둔 자겠지요.”
“응.”
“효명군 회군 시 외부인이 섞여 들어왔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워낙 큰 인원이 이동하였으니 그 안에 묻혀 숨어들어 오기도 쉬웠겠지요.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사평이 운을 떼기 무섭게 윤의 얼굴에 편치 않은 기색이 스쳤다.
“성주께서 짐작하시는 대로, 저는 그분에 대한 의심 또한 품고 있습니다.”
그분. 예부상서 주한모.
윤은 사평의 의심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다만 마음에서 숙부에 대한 정을 놓을 수 없는 것뿐. 야트막한 한숨을 내뱉었다.
“시기가 참으로 공교롭기는 하지. 숙부가 효명성에 오자마자 이런 일이 터졌으니. 허나 숙부께서는 계략에 능하신 분이야. 쓸데없는 오해를 받을 짓을 하시겠는가? 배나무 아래에서 관을 고쳐 쓰는 분이 아닐세.”
“무슨 짓을 하여도 오해받지 않을 것을 그분이 확신하고 계시지요. 숙부에 대한 조카의 신뢰를 너무도 잘 아시니.”
“숙부께서 은증왕을 제거한다 하여 얻는 이득이 무엇이겠는가? 포로의 교환을 막을 이유가 없지 않….”
열띠게 항변을 늘어놓던 윤은 말을 멈추었다. 지금, 찰나의 순간 깨닫게 된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가락을 움직이려 한다면 파르르 떨릴 것이 분명했다.
사평이 윤 대신 말을 이었다.
“그분께선 포로 교환을 막을 이유가 있으십니다. 예부상서 주한모는 태자의 사람이니. 염록왕께서는 측비의 소생임을 이유로 1황자 경왕께서 태자의 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셨었지요. 염록왕의 귀환을 태자께서 싫어하실 겁니다.”
윤이 얼어붙은 것은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흔에게서 나온 정보, 그것이 자신의 숙부와 소름 끼치도록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지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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