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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4. 당신을 선택한 이유 (9/12)

외전 4. 당신을 선택한 이유

카이얀이 홀튼 교수의 연락을 받은 건 저녁 무렵이었다.

그때 카이얀은 루크와 영화를 보고 있었다. 얼마 전 카이얀은 거실을 치우고 홈시어터를 설치했다. 영화에 대해 여러모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루크는 처음에 카이얀과 영화 보는 걸 꺼렸다.

그러나 루크도 시간이 지나며 함께 영화 보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는 특히 영화를 보던 소파에서 카이얀과 관계하는 걸 즐겼다.

루크가 좋아하는 건 또 있었다. 카이얀은 루크에게 뭐든 많이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식사 외에 따로 군것질거리라도 챙기려고 하는 편이었다.

루크는 이제 뭔가 먹는 행위에 완전히 익숙해졌지만, 다른 일을 하면서 먹는 것에는 서툴렀다. 식사하면서 대화할 수는 있지만 간식을 먹으면서 영화를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카이얀은 직접 루크에게 간식을 먹였다. 카이얀이 팝콘을 루크 입가에 대면 루크가 입을 벌려 받아먹는 식이었다.

“아, 잠시.”

휴대폰이 진동하자 발신자를 확인한 카이얀이 루크에게 말했다. 루크는 잠깐 영화를 멈춰 두었다. 카이얀은 이제 뭐든 혼자 해내는 루크를 보고 흐뭇해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네. 네……. 그런데 그건 좀, 네, 아무래도. 물론 시간이야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보단,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강의는 좀…….”

루크는 가만히 카이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듣기 좋은 목소리다.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카이얀이 난처한 얼굴로 휴대폰을 내려놓자 루크가 물었다. 카이얀은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학교에 좀 오라시네요. 특강 때문이라는데, 딱히 거절하기도 그렇고. 나간다곤 했습니다만… 난 가르치는 데 별로 소질이 없거든요.”

“카이얀은 좋은 선생님입니다.”

루크는 망설임 없이 말했고 카이얀은 웃었다. 자기가 선생으로서 적합하지 못한 건 자기도 안다. 생각한 걸 말로 풀어 이야기할 수는 있는데, 질문이 들어오면 바로 당황한다. 이걸 왜 모르나, 이 당연한 걸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나, 이런 생각부터 드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내심의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카이얀은 루크를 보았다. 주저하지 않고 자기가 좋은 선생님이라 말하는 그는, 카이얀의 연인이면서 최초의 학생이기도 했다.

“내일모레쯤 오라는데, 같이 갈래요? 학교를 구경시켜 주겠습니다.”

“네.”

루크는 즐겁게 대답했다. 카이얀은 루크의 기분이 나쁠 때가 언제일까 궁금했다. 모든 일이 루크를 기쁘게 하는 것 같아서 신기하고 놀라웠다.

이틀 후 카이얀은 차를 몰고 학교로 갔다. 중간에 루크는 홀튼 교수와 한번 대화하기도 했다.

“아, 루크 씨가 좀 받아요. 운전 때문에.”

카이얀이 그렇게 말하며 루크에게 휴대폰을 건넨 것이다. 루크는 조금 긴장해서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이 건물 이름과 호수를 말하는 게 들렸다. 카이얀에게 말해 주니 그는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얀도 꽤 들떠 있었다. 즐기지 않는 특강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루크에게 제대로 학교 구경을 시켜 주리라 생각했는데 좋은 기회였다. 일단 강의를 끝낸 다음, 루크와 근처를 돌아보며 학생 때 가던 음식점에도 가야겠다는 계획까지 다 세운 후였다.

그는 도서관으로 루크를 데려갔다. 안내 데스크에 자기 신분증을 맡기고 루크를 들여보냈다.

“여기서 한… 두 시간 정도만 기다려요. 이거, 목마르면 음료수 사 먹고, 답답하면 5층에 식당 있는데 외부 정원 있으니까 거기 나가도 되고요.”

“네.”

루크는 또 착하고 얌전하게 대답했다. 카이얀은 매번 그를 혼자 남겨 두고 가야 하는 상황이 미안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카이얀은 도서관 밖으로 나와 홀튼 교수가 알려 준 건물로 향했다.

오랜만에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기분이 새로웠다. 졸업하고 나선 자주 올 일이 없었다. 먼저 교수 연구실에 찾아가는 살가운 성격도 아니었고.

강의실에는 이미 학생들이 몇 앉아 있었다. 홀튼 교수도 안에 있었다. 학생들은 카이얀이 홀튼 교수와 대화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아까 전화 받은 걸 보니 같이 온 것 같던데.”

“아, 이런 자리엔 익숙하지 않아서요. 도서관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래?”

홀튼 교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같이 들어오는 걸로 생각했을 것 같은데. 관여할 일은 아니라 그는 그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하고 자기 강의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정시가 되었다. 카이얀은 강의를 시작했다.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인지라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카이얀은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신화의 상징과 전파 가설에 대한 개론이었다.

“동양을 보면 이런 점이 더 잘 나타나죠. 예를 들자면, 좀 더 모계 사회에 가까웠던 북방에서는 곰과 남자 사이에서 난 자식이 하나입니다. 나중에 남자가 배를 타고 달아날 때 곰은 이 아이의 몸을 찢어서 반을 남자에게 던져 주는데…….”

그때 강의실 문이 열렸다. 계단식 강의실이었는데, 학생들의 시선이 순간 앞쪽에 있는 문으로 집중되었다. 카이얀도 아무 생각 없이 흘끗 시선을 주었다. 그가 말을 뚝 멈추었다.

카이얀은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루크는 조금 어색한 얼굴로 카이얀을 보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계속 앞에 서 있을 것 같았다. 학생들의 시선이 루크에게 몰린 게 느껴졌다.

“아, 아무데나 앉으면 됩니다.”

카이얀은 최대한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루크는 성실하게도 “네, 카이얀.”하고 대답했다. 분명한 목소리라, 학생들의 시선이 더욱 집요해졌다.

카이얀은 루크가 앞쪽 빈자리에 앉는 걸 보고 강의록을 내려다보았다. 어디까지 했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 그래서, 그런데, 남방으로 내려갈수록 변형이 됩니다. 여기선 자식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죠. 그리고 남자가 떠날 때 둘을 죽이는 게 아니라, 같이 물에 빠져서 죽게 되는데…….”

루크가 자기를 너무 열렬히 보고 있어서 카이얀은 자꾸 말문이 막혔다. 도서관에 있으라니까, 강의실은 또 어떻게 알고……. 그러다 뒤늦게 홀튼 교수와 통화한 게 루크였다는 걸 기억해 냈다.

카이얀은 자기가 루크를 의식하고 있는 걸 알고 더 긴장했다. 커다란 계단식 강의실에 학생들이 꽉 차 있는 걸 봤을 때도 크게 긴장은 되지 않았는데.

강의에는 능숙하지 못하다. 하지만 루크가 보고 있으니 왠지 더 잘 해내고 싶었다. 이상한 자존심. 내게도 이런 게 있었던가. 카이얀은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카이얀은 설명하는 중간 중간 루크와 계속 눈이 마주쳤다. 그때마다 루크가 너무 진지한 얼굴이어서 카이얀은 긴장되는 한편으론 웃음이 났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어떻게 강의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칠 무렵에는 긴장이 조금 풀렸지만, 그 전까진 계속 어쩔 줄 몰랐던 것 같다.

강의는 끝났지만 나가지 않은 학생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카이얀의 메일 주소를 물었다. 카이얀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여기서 거절하면 이상한 모양새가 될 걸 모르지 않았다.

알려 줘도 문제없겠지, 오래 연락하지도 않을 테고…….

카이얀은 앞으로 나온 학생들에게 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다.

루크는 학생들의 질문과 요구가 다 끝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카이얀에게 오고 싶은 것 같았지만, 사람들 때문에 주저하는 모양이었다. 카이얀도 루크가 계속 신경 쓰여서 학생들이 제발 빨리 나가 주길 바랐다.

마침내 강의실이 비었다. 주말 특강이라 다음 강의가 없는지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없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루크가 일어나서 카이얀에게 다가왔다.

“카이얀.”

“어떻게 찾아왔어요?”

대학교 강의실은, 익숙해지면 찾기 쉽지만 처음에는 허둥지둥 헤매게 된다. 그걸 알고 물은 건데 루크는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물어봤습니다.”

“아.”

이 사람이 이렇게 일상에 익숙해졌다는 걸, 자주 잊곤 한다. 어떻든 카이얀에게 있어 루크는 어설프고 서툰 학생이었으니까.

“도서관에 있으라니까.”

“카이얀이 강의하는 게 보고 싶어서……. 제가 실수했습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같이 오고 싶다고 말했으면 될 걸.”

루크는 대답 없이 웃었다. 더없이 귀한 것을 보는 표정. 종종 루크가 저런 얼굴로 자길 볼 때면, 몸 안쪽이 간지러웠다. 루크는 좋아한다는 말을 할 때 주저함이 없었다. 보통은 저런 얼굴로 카이얀이 좋다고 했다. 루크와 지내면서 카이얀은 자기가 감정 표현에 인색한 편이란 걸 깨달았다.

왠지 얼굴로 열이 몰리는 것 같았다. 카이얀은 말을 돌렸다.

“어, 오늘 이상했죠? 강의는 많이 안 해 봐서.”

루크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렇게 별로였나? 카이얀이 당혹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다 카이얀만 쳐다봤습니다.”

“아아.”

그야 내가 앞에서 강의하고 있으니까요, 라고 말하려는데 루크가 선수를 쳤다.

“그래서 조금, 기분이.”

루크는 말을 맺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루크는 계속 카이얀만 보고 있었다. 그랬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다 그만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카이얀은 반짝거렸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를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 그게 맞는 행동이라는 건 알지만…….

“잘 표현을 못 하겠습니다.”

자기한테서 멀리 떨어진 채,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카이얀은……. 자기가 없어도 카이얀은 잘 살 것이다. 저 사람들과 함께.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전 카이얀이 없으면 죽을 겁니다.”

“네?”

너무 뜬금없는 말이라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카이얀이 자기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루크는 말했다.

“카이얀은 제가 없어도… 괜찮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카이얀을 좋아하고, 그렇지만 전 카이얀이 없으면 죽을 것 같습니다.”

카이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루크는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을 하려고 한 건 아니다. 카이얀은 멋졌다. 모두가 그를 사랑하는 건 당연하다.

당연히 루크가 보기에 카이얀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자길 좋아한다고 하니 기뻐야 하는데,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다.

내가 없어도 이 사람은 행복하게 살 것이다. 다른 좋은 사람들과 함께. 다시 한번, 그 생각이 들었다.

“왜 절 선택하셨습니까?”

수많은 학생들 중 하나. 수많은 사람 중 하나. 자신은 아마, 카이얀에게 구애하는 무수한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저는… 이런 강의도 들어 본 적 없고, 똑똑하지도 않고…….”

자신은 카이얀의 말을 반 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모두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루크는 자기가 뛰어난 학생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직접 느끼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카이얀이 루크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그는 아주 오랜만에, 루크와 심각할 정도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무슨 소릴 하는진 알겠는데 대체 지금 왜 저런 말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루크 씨를 선택했냐고요?”

“전 카이얀만큼 특별하지 않습니다.”

루크가 어렵게 꺼내 놓은 대답에 카이얀은 맥이 탁 풀렸다. 종종 느끼는 건데, 루크는 자기와 카이얀 사이에 어마어마한 장벽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카이얀은 특별하고, 자신은 특별하지 못하며, 카이얀은 가치 있는 사람이지만, 자기에겐 큰 가치가 없다는 식의.

“사람은 원래 다 별로 특별하진 않습니다.”

카이얀은 가볍게 말하려 애썼다. 뭐라 더 말하려는 루크를 막고, 그가 강단 아래로 내려갔다.

“자. 거기 서 있어 봐요.”

카이얀은 루크를 강단에 세웠다. 루크는 영문을 모르고 카이얀을 보았다. 카이얀은 그대로 걸음을 옮겨, 아까 루크가 앉았던 곳에 앉았다.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고, 루크만 바라보았다.

루크는 카이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빈 강의실, 가장 앞줄에 카이얀이 앉아 있었다. 오직 자기만 보면서. 루크는 주춤 뒤로 물러날 뻔했다. 그는 여기 서 있으라는 카이얀의 말을 상기하고 억지로 발을 붙들었다.

“어떤 기분이 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전, 여기서…….”

루크는 말할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강단은 조금 높았다. 카이얀이 몸을 이쪽으로 기울인 채, 자기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주목받는 게 느껴져요?”

카이얀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아까 루크가 자기 강의를 들을 때 그랬듯.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전…….”

“난 그랬는데.”

카이얀이 가볍게 말하며, 일어났다. 강단 아래까지 저벅저벅 걸었다. 단 위에 서 있는 루크를 올려다보았다. 루크는 조금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카이얀이 팔을 뻗자, 반사적으로 그 손을 쥐어 온다. 카이얀은 웃었다.

“루크 씨가 날 보니까.”

낯 뜨거운 말은 잘 못한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루크를 안심시키는 게 먼저였다. 왜 자길 선택했느냐는 말 같은 건 두 번 다시 듣기 싫었다.

“내가 특별해진 것 같아서. 의식이 됐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카이얀을 보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만 보고 있어도 그렇게 의식되진 않았을 겁니다.”

자신은 루크를 선택한 게 아니다. 무수한 후보들 중 루크를 고른 것이 아니다. 카이얀은 루크가 그걸 알길 바랐다. 루크는 무채색이던 카이얀의 세계로 걸어 들어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가 카이얀의 유일한 일상이었다.

“루크 씨가 날 보고 있으니까. 특별해진 겁니다.”

무수한 별 중 의미 있는 별은 단 하나.

“이리, 숙여 봐요.”

루크가 몸을 숙였다. 카이얀이 한 손으론 그의 어깨를 잡고, 다른 손은 그의 목에 걸쳐 가까이 당겼다. 루크는 선선히 입을 벌렸다. 카이얀은 긴 시간을 들여, 부드럽게 키스했다. 교단을 사이에 두고 루크가 안달하는 게 느껴졌다. 카이얀은 서두르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쫓아가다 달아나기를 반복하면서.

“이젠 어때요?”

루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키스라기보단 거의 애무 같았다. 카이얀이 이런 식으로 먼저 접촉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루크는 황홀해서, 그를 당기려고 팔을 뻗었다.

“루크 씨한테만 하는 겁니다.”

카이얀이 눈매를 접어 웃었다. 루크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아니면 터지든가.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니까.”

내 하늘의 유일한 별,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사랑.

카이얀이 단으로 올라갔다.

“왜 날 골랐어요?”

그가 웃으며 물었다. 루크는 안달을 냈다. 그가 카이얀을 안았다. 카이얀은 그의 입술에 가볍게 닿았다가, 물러났다. 루크가 어쩔 줄을 모르고 카이얀을 붙들었다. 그는 거의 본능에 기대 애원했다.

“안 그러겠습니다.”

“뭘?”

“그런 거… 안 물어보겠습니다.”

“내가 그거 물어봤어요?”

안 되겠네, 하며 카이얀이 그를 가볍게 밀었다. 카이얀이 정말 이대로 그만둘 리 없다는 걸 루크도 알고 있었다. 아는데도 애가 탔다.

늘 카이얀은 자길 쥐락펴락했다. 그 감각은 대체적으로 달콤했지만 이럴 땐 초조해진다. 그래서 루크는 카이얀이 좋아하는 말을,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말을 했다.

“좋아합니다.”

그러니 이쯤 하고, 어서.

“그게 대답이에요?”

“네. 좋아합니다.”

좋은 대답이네. 마음에 들어. 질문보다 대답이 좋네.

카이얀은 생각했다. 카이얀이 루크의 목을 안았다. 그가 카이얀을 바짝 당겼다. 그의 숨이 카이얀의 목에 닿았다. 여기 강의실인데. 문도 안 잠겨 있는데. 카이얀은 흘끗 문을 바라보았다. 주말이니까 괜찮겠지.

카이얀은 입을 벌리고 루크를 받아들였다. 그의 유일한 사람을,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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