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 나이란 (6/12)

외전 1. 나이란

나이란 캠벨은 특별히 수재 소리를 듣고 자란 편은 아니었다.

대학교에 오기까지 나이란은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학교 성적은 대체로 상위권이었지만 에세이에서는 자주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나이란은 모범생이었지만 성적에 크게 구애받는 편은 아니었다. 집안이 꽤 넉넉한 덕이었다.

나이란은 무난한 환경에서, 정말 평범하게 자랐다. 형제자매는 없었고 큰 정비소 몇 개를 운영하는 부모님은 늘 바빴지만 나이란은 특별히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대단한 사회적 지위를 갖진 못했지만 부모님은 달마다 꽤 큰 수입을 벌어들여 딸을 지원했다.

큰 굴곡 없이 살다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이란의 전공은 정치학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이란은, 아마 저가 기자나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귀엽죠? 너무 세게 쥐지는 말아요.”

해부학 교양 강의, 나이란은 흰쥐를 해부할 기회를 얻었다. 소형 강의라 수강생들이 쥐를 한 마리씩 해부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교수는 쥐를 마취시키기 전에 수강생들이 잠시 쥐와 함께 놀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흰쥐는 상상만큼 징그럽지 않았고 꽤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자, 이걸 먹이면 마취가 됩니다. 그러면 아까 보여 준 것처럼 앞다리 뒷다리를 다 벌려서 핀으로 고정하는 거예요.”

몇몇 마음 약한 수강생들은 방금까지 데리고 놀던 쥐의 사지를 벌려 해부한다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나이란은 어쩐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쥐에게 마취제를 먹인 후 네 발을 핀으로 고정했을 때는, 날카로운 것이 살아 있는 것의 살을 뚫고 들어가는 감촉에 잠시 몸서리치기도 했다.

“처음에는 가죽부터 벗기는 겁니다.”

나이란은 배를 보인 채 고정된 쥐를 차근차근 해부해 나갔다. 작은 칼로 가죽을 벗기고 얇은 점막까지 잘랐다. 오밀조밀 모인 내장이 보였다. 그 좁은 곳에 어떻게 이게 다 들어 있을까 싶었다.

나이란은 마치 작은 비밀의 배 속을 파헤치듯 내장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아, 잘했네요. 학생들이 보통 간을 터뜨리거든요.”

곁에 다가왔던 교수가 말했다. 나이란은 뱃가죽이 열린 채로도 팔딱팔딱 뛰는 조그만 심장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느낌. 이제 교수는 앞에서, 해부 전문가는 배를 열어 봤다가도 다시 꿰매 살릴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교수가 모든 학생들의 쥐를 살릴 수는 없었다. 상당수는 간이나 다른 장기를 터뜨려서 쥐를 완전히 죽여 버렸다. 나이란의 쥐는 멀쩡해서, 교수는 특별히 자기가 배를 다시 꿰매겠다며 쥐를 가져갔다.

나이란은 그 쥐가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싶었다. 따뜻한 흰쥐의 체온이 여전히 장갑 낀 손에 남아 있는 듯싶었다.

다음 수업시간에 교수는 지난번에 캠벨이 해부했던 쥐라며, 살아 있는 쥐를 보여 주었다. 배에 꿰맨 자국이 있긴 했지만 쥐는 멀쩡해 보였다. 교수는 선물이라며 그 쥐를 나이란에게 주었다.

한 번 제 손에서 배를 열어 보였던 것이었다. 한 손에 뿌듯이 들어차는 뜨거운 생물. 가슴이 거세게 울렁였다.

나이란은 실험용에 불과한 그 쥐를 집으로 데려와 잘 길렀다.

다음 해, 나이란은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 * *

나이란은 다윈 관련 세미나에 나갔다가 카이얀 로스터드를 만났다.

카이얀의 첫인상은 특별했다. 꽤 순순한 얼굴로 교수와 함께 있었는데, 복도에서 봤을 땐 지겨워 죽겠다는 듯 하품을 하고 있었다. 수려한 얼굴. 그때까지만 해도 카이얀은 학계에서 어설픈 이름은 있을지언정 대단한 유명세는 없는 대학생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이란은 카이얀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살아난 흰쥐를 보았을 때 느낀 그 울렁임이 다시 가슴을 덮쳤다. 이성적인 호감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홀튼 교수님이랑 같이 오셨죠?”

나이란은 붙임성 좋게 말을 걸었다. 카이얀과 함께 있던 교수가 누군지 아는 게 도움이 됐다. 카이얀은 흘끗 나이란을 보더니 네, 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홀튼 교수님, 이쪽은 아니신 걸로 아는데… 다윈 세미나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연구에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야 왜 필요하다고 하시는지는 잘 모릅니다. 아까 안에 계셨죠? 카이얀입니다.”

카이얀은 자연스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세련된 태도였다. 나이란은 흡족하게 그 손을 맞잡았다. 카이얀의 손은 당연히 제 것보다 컸지만 처음 그 작고 흰 생물체를 쥐었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듯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란은 카이얀과 비교 문학 학회에서 다시 만났다. 카이얀은 나이란을 알아보았다.

“전공이 이쪽이셨던가요?”

“아, 생물학 맞는데 그냥 보러 왔어요.”

지도 교수 한 명과 대학원생 몇이 스터디 식으로 주도하는 학회라 꽤 개방적인 분위기긴 해도, 나이란을 거기서 만난 건 의외였다. 하지만 카이얀은 그 만남에 크게 의미를 두진 않았다.

“옆에 앉아도 될까요?”

나이란은 가볍게 물었고 카이얀도 선뜻 곁을 허락했다. 나이란은 카이얀의 성향을 살피며 적당히 그에게 가까워져 갔다. 과학자인 나이란과 인문학자인 카이얀은 여러 가지로 생각이 달랐지만 둘 다 그런 점을 흥미롭게 여겼다.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 * *

나이란은 해부학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그 외 다른 생물학적 분야에서도 수재 소리를 들으며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지도 교수의 추천을 받아 사바튼 연구소로 들어가게 되었다. 정식 연구원은 아니었지만, 대학원생 신분으로 실제 연구에 조금이나마 참가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특혜였다.

처음에는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유력 정권의 후원을 받는 연구소라고 들었는데 특별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이란은 서서히 샘플 관리 같은 의례적인 일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의 실험체를 본 건 그 무렵이었다.

“잊어버려.”

그게 나이란이 루크를 처음 봤을 때 정식 연구원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원래 연구원들은 루크를 나이란에게 보여 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나이란은 좀 더 일찍 연구소로 나간 날 루크와 마주쳤다. 나이란은 알몸의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작 그 남자는 무감한 얼굴로 나이란을 스쳐 갔을 뿐이지만.

“저 사람은 누구죠? 임상 실험 때문에 온 건가요?”

“글쎄, 비슷한 거지.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 없어. 별거 아니니까.”

그때 루크를 담당했던 박사는 나이란에게 그렇게만 말하고 급히 사라졌다. 그러나 나이란은 본능처럼 깨달았다. 저 남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부끄러움도 슬픔도 모르던 그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년 만에 박사 학위까지 따내자 교수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나이란은 사바튼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처음 루크 실험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나이란은 숨이 가쁠 정도로 흥분했다. 약물에 대한 뇌 반응과 근육 반응을 살피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어떻든 좋았다. 나이란은 가장 열정적인 연구원이었고 금세 성과를 내 책임자 자리를 얻었으며, 그 이후로 계속 루크에게 집중했다.

“이번 건 어때?”

고통에 대한 반응을 측정하는 중이었다. 루크는 움찔했으나 곧 대답했다.

“7입니다.”

루크의 대답은 언제나 딱딱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고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군대에 있는 것이 아닌데도 군인처럼 훈련받은 그는 항상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려 했다. 루크는 가르쳐 주는 것을 그대로 흡수했으며 반항하는 법도, 질문하는 법도 없었다. 그는 훌륭한 실험체였다.

알기 쉽다는 점에서, 그는 카이얀과 비슷했다. 카이얀은 타인에게 방어적이었지만 나이란은 어느 정도 그를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사실, 그녀가 보기에 카이얀은 꽤 귀여웠다. 방패를 세우고 있다가도 친구들이 찾아오면 냉큼 치우는 게 보기 좋았다.

“부모님이 술 취한 군인한테. 뭐, 운이 나빴던 거지.”

카이얀이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렇게 말하고 잠시 입을 꾹 다물었을 땐, 나이란도 좀 마음이 아팠다. 카이얀을 ‘친구’라고 생각했던 나이란은 그가 안타깝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연구소 일시 폐쇄 결정이 떨어진 상황. 루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하는 자리에서 카이얀의 이름을 꺼낸 것도 그래서였다.

“카이얀 로스터드라고,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쪽 학계에서는 지금 좀 유명한 사람인데 아마 루크를 잘 맡아 줄 겁니다.”

루크는 군인이다. 카이얀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그는 쉽게 루크를 마음에 들이지 않을 것이다. 입이 무거운 사람이고 믿을 만한 친구니 나중에 크게 문제 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이 약하니 부탁은 거절하지 못할 테지. 아마 카이얀은 어쩔 수 없이 루크에게 방을 하나 내주고 데면데면 지내리라.

“그 연구자가 다른 마음을 먹으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이란은 전혀 염려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증명된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이란은 자기의 제안이 꽤 도덕적이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루크를 어설픈 사람에게 맡기면 서로에게 고통만 될 게 뻔했다. 적당히 거리를 둘 사람에게 맡기는 게, 루크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또 연구소에게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나이란은 루크를 카이얀에게로 보냈다. 길들여진 실험체 루크는 카이얀에게 가는 차 안에서도 새 상관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루크.”

운전하다 말고 나이란이 루크를 불렀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루크는 짧게 대답하며 나이란을 보았다.

“적당한 곳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저 기분이 좋아서 건넨 말이었다.

루크는 ‘다행’이라는 말을 몰랐다. 하지만 루크는 묻지 않았다. 작전에 관련된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루크는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하는 자기 처지에 대해 의문을 품지도 않았다. 루크에게는 자기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나이란은 이런 면에서 이 실험이 상당히 윤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불행은 주관적인 것이다. 부유하고 평화롭게 살며 스스로 불행하다 여기는 사람보다, 죽어 가며 행복하다 여기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 나이란의 지론이었다. 그러니 행복과 불행의 개념에 대해 전혀 모르는 루크는 어떤 실험을 당해도 불행해지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신체의 고통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만… 감수해야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나이란은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보고 싶었다.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밖에 알려진 것보다 100년은 앞서 나가 있다고 해도 좋았다.

“그럼 잘 부탁해, 안녕!”

루크를 카이얀의 집에 밀어 넣고 도망치듯 차에 올랐을 때, 나이란은 이후 일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연구소로 돌아온 루크가 카이얀에 대해 물었을 때. 그가 ‘카이얀은 가짜야.’라는 말을 듣고 얼굴을 허물어뜨렸을 때.

나이란은 카이얀을 떠올렸다. 루크에게 행복을 가르친 카이얀을. 루크에게 일상이 뭔지, 삶이 뭔지 열어 보여 준 카이얀을.

‘루크에게 고통을 가르친 건 너야.’

루크는 스스로 거의 치사 수준에 이를 때까지 각성제를 주사했다. 두 개를 주사한 그가 손을 벌벌 떨며 세 번째 병을 쥐었을 때, 나이란은 두려웠다. 불행을 아는 루크, 잃어버린 행복을 향해 전력으로 달음박질하는 루크가 두려웠다.

카이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받지 않았다. 다시 걸자,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루크를 불행하게 만든 건 너야.’

그 말이 입에서 맴돌았다. 계속, 행복도 불행도 모르는 실험체로 살았다면 좋았을걸. 일생 즐거울 일도 없었겠지만 또 한평생 슬퍼하거나 조바심칠 일도 없지 않았을까. 처음 해부해 봤던 흰쥐는 차라리 마취 상태에서 죽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확실한 건 일이 다 꼬여 버렸다는 것뿐이어서 나이란은 숨어 지낼 준비를 서둘렀다. 급히 짐을 챙기는 내내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 버렸던 흰쥐가 떠올라 성가셨다.

수색대가 달아났던 연구소장을 찾아낸 후 사바튼 연구소는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후원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위축되었다.

연구소장의 재판 도중, 나이란 캠벨 박사 역시 비공식적으로 기소되었다. 그녀는 구체적인 자백을 거부했으며 ‘실험체는 불운하고 불행한 인생에 대해 몰랐으므로 불운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고 진술했다.

다른 연구소 관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이후 일생, 나이란 캠벨 박사는 카이얀과 루크를 보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