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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 (234)화 (233/234)

234화

“형? 집에 있었어요?”

예상하지 못한 남궁후의 등장에 눈을 크게 뜨고 묻자 남궁호를 잡고 끌어내던 남궁후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응. 이따 다시 들어가 봐야 하긴 하지만.”

오늘 한창 일하는 시간대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 의아하게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무슨 일인지 일하는 중 틈을 내 온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 느슨해진 남궁호의 품에서 벗어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러자 남궁후가 남궁호의 머리채를 놓고 손을 두어 번 툭툭 털었다. 어지간히 세게도 잡아당겼는지 손을 털 때마다 머리카락이 풀풀 휘날렸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새삼 내 두피까지 아파져 무심코 머리를 문지르는데, 옆에서 남궁호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아 씨, 내 머리카락!”

잔뜩 쥐어뜯긴 머리를 손으로 문지르면서 다른 손으로는 허공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잡으려 고군분투했다.

입원했을 때 뵀던 병원장님, 그러니까 쌍둥이 형들의 아버지를 봤을 때 탈모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는데.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조금 늦었지만 남궁호에게 한 발짝 다가가며 염려를 건넸다.

“형, 괜찮아요?”

“흐엉, 진호야-악!”

“응, 꺼져, 남궁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팔을 벌리고 내게 다가오던 남궁호는 뒤에서 불쑥 나온 남궁후의 손에 막혀 뒤로 밀려났다. 내가 놀라서 남궁후를 돌아보자, 남궁후는 태연하게 내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부드럽게 등을 밀었다. 떠밀려 걷는 와중에 남궁호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그런 내 시선을 남궁후가 커다란 손으로 차단하면서 말했다.

“저거엔 신경 끄고 밥 먹으러 가자. 오늘 시험 보느라 고생했으니까 얼른 맛있는 거 먹어서 에너지 충전해야지.”

“밥이요? 아, 근데 잠깐. 형, 무슨 일 있어요? 바쁘다면서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남궁호는 걱정 말라는 남궁후의 단호한 태도에 고개를 앞으로 했다가 다시 뒤로 돌렸다. 갑작스레 찾아와 밥 먹자는 거야, 요즘 다섯 명이 유독 나 밥 먹이기에 집착하고 있는 걸 알기에 대충 넘어간다 쳐도, 한창 일해야 할 시간에 굳이 여기에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자 녀석은 날 내려보고 씩 웃으며 얼굴을 내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얼굴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은 내 콧잔등 위로 촉촉한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바빠도 와야지. 오늘 같은 날 빠지고 싶지 않으니까.”

오늘 같은 날? 오늘 무슨 날이었나? 순간 시험에 집중한 나머지 뭔가 놓친 게 있나 곰곰이 머리를 굴려 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누군가의 생일도 아니고, 공휴일이나 특별한 기념일도 아닌데 뭘 빠지고 싶지 않다는 말일까.

내 의아함이 표정에도 드러났는지, 남궁후가 피식 웃더니 다시 부드럽게 내 몸을 밀어 거실을 가로질렀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응, 진호 시험 본 날.”

“예? 아, 장난하지 마시고요.”

남궁후의 실없는 대답에 인상을 찌푸리며 나무랐다. 수능을 본 것도 아닌데 일하던 사람이 일부러 밥 하나 먹자고 빠져나올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남궁후는 오히려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더니 어딘가를 턱으로 가리켰다.

“나도 저건 장난이었으면 좋겠다.”

녀석의 턱 끝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 나는 그만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다양한 음식들이 가득 차려진 커다란 테이블 앞에는 익숙한 사람 셋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최태혁과 민선우, 정새빈을 보고 말문이 막힌 내게 남궁후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진짜야. 오늘은 진호가 열심히 준비한 시험 잘 보고 온 걸 기념하고, 얼마 전에 목표하던 토익 점수를 받은 걸 기념하고, 흉터 하나 없이 무사히 퇴원한 걸 기념하고, 네가 가길 희망하는 곳에 취직하길 응원하기 위한 날이라 온 거 맞아.”

저렇게 죽 늘어놓으니 뭔가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하나하나 뜯어 보자면 솔직히 그다지 중요해 보이진 않았다. 물론 나한테야 충분히 의미 있는 일들이지만, 그게 이 다섯 명이 다 모일 이유는 아니지 않나.

“진호, 너 그게 우리가 다 모일 이유가 되나, 하는 생각 하고 있지?”

“에? 네? 예?”

내 마음을 읽은 것 같은 질문에 화들짝 놀라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참 뒤에서 불만을 중얼거리며 걸어오던 남궁호가 어느새 옆에서 날 내려보고 있었다.

“아주 충분해. 진호, 너는 내게, 그리고 못마땅하지만, 얘랑 저 녀석들한테도 그런 존재거든. 아주 사소한 일도 같이 축하해 주고 싶고, 혼자 두고 싶지 않고, 기분 좋은 일을 나누고 싶고 슬픈 일은 덜어 주고 싶은 사람.”

나는 양쪽에서 미소 띤 얼굴로 날 내려보는 남궁후와 남궁호의 시선을 피해 눈을 굴렸다. 낯간지러운 말을 들어서 그런지 간지러운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민망함에 괜히 목 부근을 긁으며, 언젠가부터 이쪽을 보고 있는 세 사람을 향해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근데 전화는 왜 안 받았대.”

먼저 걸어 나가느라 보이진 않았지만, 순간 굳어 버린 두 사람의 기척이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빠른 걸음으로 날 따라오며 각자 조급한 어조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 그러니까 앞으로는 더더욱 진호, 너에 관한 일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겠다는 마음으로…!”

“그건 형이 정말 미안해. 그래서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제일 우선으로 두려고…!”

목소리에 답답함과 초조함이 느껴져 장난기가 돋은 나는 일부러 건성으로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두 사람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앞으로 걸었다.

다이닝 룸에 있던 세 사람은 그런 우리들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두 사람은 일어나고 한 사람은 식탁에 턱을 괴고 구경하듯 보고 있다 입을 열었다.

“애쓰네, 병신들.”

물론 그 한 명은 정새빈이었다.

“수고했다, 강아지.”

“나비야, 고생했어. 이번 시험은 좀 어려웠다는데, 괜찮았어?”

내가 다가오는 것에 맞춰 최태혁과 민선우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건 아니겠고, 딱 보니 자기 손을 잡고 옆으로 와 앉으라는 뜻이었다. 하필이면 맞은편에 앉은 둘이 그러고 있으니 양손을 다 잡았다간 내 몸이 반으로 갈라질 판이었다.

짝!

“…김진호?”

“…진호야?”

그래서 나는 비스듬히 있는 녀석들의 손바닥에 내 손바닥을 마주쳐 하이파이브를 하고 중앙에 자리한 의자를 뺐다.

“오늘 저 축하해 주는 자리라면서요? 그럼 저 주인공석에 앉아도 되죠?”

“귀엽네, 쫑쫑이.”

녀석들과 지내면서 는 것이 있다면, 단연코 얼굴에 철판 까는 능력을 꼽을 수 있었다. 평소엔 뭐에 쓰나 싶은 이 능력은 이런 순간 빛을 발했다.

나는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나를 보고 선 민선우와 최태혁에게 녀석들이 했던 것처럼 손을 내밀어 자리를 권했다.

“앉아요, 형들. 밥 먹어야죠. 저 엄청 배고파요.”

입술을 비죽이며 자리에 앉는 남궁후와 남궁호를 눈짓하며 재촉하자 두 사람도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민선우가 내게 다시 한번 물었다.

“시험 잘 본 거 같아? 피곤하지는 않고?”

나는 내 앞에 놓이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보면서 대답했다.

“잘 본 거 같아요. 뒷사람이 계속 신경 거슬리게 해서 좀 그렇긴 했는데, 시험 자체는 하나도 안 어려웠어요.”

그래도 헷갈리는 문제가 몇 개 있어서 나중에 가채점을 해 보려고 한다고 말하는 중에 내 앞접시에 정갈하게 음식이 담겼다. 접시를 밀어 주는 최태혁과 음식을 덜어 주는 민선우, 물을 따라 가져다주는 남궁호와 먹기 전 손을 닦으라고 물티슈를 꺼내 주는 남궁후까지. 나랑 정새빈만 빼고 식탁 위가 분주했다.

나는 남궁후에게 건네받은 물티슈로 손을 닦고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저녁 풍경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자꾸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냥 솔직히 좋은 티를 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못내 부끄러워 웃음을 꾹 참고 고기반찬을 하나 집어 들어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한입 가득 베어 무는 찰나 턱을 괸 채 나를 보고 있던 정새빈이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그냥 너 다 해, 쫑쫑아. 그래야 할 것 같다.”

정새빈 또 저러네. 저번에 그렇게 오랜 시간 붙잡고 사람이 말을 할 땐 육하원칙에 입거한 내용을 다 담아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건만. 내 수고가 전혀 소용이 없었다는 걸 직접 마주하면서도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쟤한테 기대가 없다는 거겠지?

나는 양념이 잘 배었다고 생각하며 고기에 붙어있는 뼈를 발라냈다. 그러면서 물끄러미 정새빈을 바라보자, 또라이지만 똑똑한 정새빈은 내가 어떤 의미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눈치채고 설명을 덧붙였다.

“누구 선택하지 말고 그냥 우리 다 가지란 소리야. 괜히 다치거나 힘들 일 만들지 말고, 그냥 이렇게 적당히 균형을 지키면서 사랑받고 또 사랑받으라고.”

“…그런 말을 무슨 갈비 뜯고 있을 때 해요.”

“여긴 널 축하하는 자리고, 오늘의 주인공은 진호, 너잖아. 선물이야. 부담 갖지 말고 아까 남궁후가 말한 그 온갖 기념할 일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받아 줘.”

그러니까 누가 갈비 뜯는 와중에 건장한 남성 다섯 명을 선물로 주냐고, 이 또라이야.

…라고 말할 뻔했으나, 입 안에 남아 있는 갈비가 나를 막아 주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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