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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 (211)화 (210/234)

211화

그러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대화냐고. 내가 바보도 아니고, 얘가 정말 걸레와 수건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란 것쯤은 파악했다. 2절도 모자라 3절까지 하는 중인데 얘는 정말 걸레랑 수건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는구나, 생각하는 쪽이 더 이상하지.

그러나 내가 아무리 인상을 찌푸리고 설명을 요구하는 제스처를 해 봐도 정새빈은 그저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숨겨진 의미를 설명해 줄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결국 나는 고구마를 목구멍에 욱여넣은 듯한 답답함을 느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제부터 말이 안 되잖아요. 닳을 정도로 쓴 걸레가 어떻게 수건으로 보여요. 어-마어마할 정도로 쓴 거면 아무리 빨아도 쓴 흔적이 없어지지 않았을 텐데. 처음부터 걸레로 보였겠죠.”

정새빈은 본인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는지 입술을 비죽였고, 나는 의도보다 더 짜증이 섞여 나온 목소리가 당황스러워 입 안쪽을 깨물었다.

“아니, 아니. 닳아 빠질 정도로 쓰긴 썼는데 진짜 닳아 보이진 않아. 닳거나 더러워지는 게 싫어서 매번 얼마나 세탁하고 수선해 대는데 닳겠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새것 같아 보일 정도로 잘 관리한다니까? 근데 일단 걸레는 걸레야. 수건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이 쓴 걸레.”

정새빈은 본인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이 이야기를 끝내지 않을 심산인 것 같았다.

아, 피곤해. 급격히 몰려오는 피로함과 졸음에 나는 어깨를 늘어트리며 터덜터덜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솔직히 그 정도로 깨끗하면 수건으로 썼다고 문제가 생길 것 같진 않은데, 일단 걸레인 걸 안 이상 기분은 찝찝해지겠죠, 뭐. 준 사람한테 따질 것도 같고. 알려 준 사람한텐 고맙긴 한데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도 할 거 같고요.”

“그래? 모르는 게 나을 거 같아?”

정새빈은 꾸물꾸물 침대에 올라가는 내게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뒤쪽의 민선우를 밀며 물었다.

굳은 얼굴로 정새빈을 보던 민선우는 밀리는 대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힘을 주어 밀어 대던 것이 비켜나자 정새빈의 몸은 자연히 뒤로 풀썩 쓰러졌다.

“네. 아니까 괜히 찝찝하게 느껴지는 거지, 세탁 잘 된 깨끗한 천이니까 수건으로 써도 되는 거잖아요. 몰랐으면 그냥 편하게 썼을 테니까, 차라리 모르는 편이 저한테 준 사람도 저도 좋지 않을까요.”

“아아, 그렇구나. 모르는 게 좋은 거구나. 응.”

정새빈은 내 뒤쪽을 보며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려 웃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 고개를 돌리니 무표정한 민선우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쟤는 뭐 때문에 저렇게 화가 났대.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뚜렷하게 가닥이 잡히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는데, 뒤에서 정새빈이 명랑하게 말했다.

“나는 쫑쫑이가 내 오른쪽에서 자고 쫑쫑이 오른쪽엔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 말소리를 따라 고개를 바로 하려던 나는 미처 다 돌리기도 전에 입을 연 민선우의 말에 다시 뒤로 고개를 돌렸다.

“선은 지켜야지, 아무것도 상관없어지기 전에.”

어느새 민선우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 미소가 아까 무표정보다 더 서늘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내 뒤, 그러니까 정새빈이 있는 곳을 가만히 보던 민선우의 눈동자가 침대 위에서 어정쩡하게 무릎으로 서 있는 내게 옮겨 왔다. 나를 한번 훑은 녀석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많이 늦었다, 진호야. 거슬리고 불편하겠지만, 천박하고 나약한 미친 새끼는 무시하고 오늘은 일단 이만 잘까?”

한국말을 몰랐다면 이런 막말일 거라곤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나긋한 어조였다. 나는 뭐라고 할까 하다가 말았다.

정새빈이 뒤로 물러나 생긴 자리에 천장을 보고 누웠다. 곧 민선우가 내 오른쪽으로 와 옆으로 누웠다. 정새빈도 질세라 나를 향해 상체를 세우고 손에 머리를 괴었다. 시야에 다른 유형으로 잘생긴 얼굴 두 개가 꽉 들어찼다. 되게 부담스러웠다.

“둘 다 그냥 눕죠?”

“응.”

“진호 자면.”

그래, 순순히 내 말을 들으면 그게 정새빈이고, 민선우겠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전혀 자세를 바꾸지 않는 정새빈과 생긋 웃으며 거절하는 민선우를 한 번씩 보고 눈을 감아 버렸다.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집요한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는데, 눈꺼풀 위로 미미하게 비치던 빛도 완전히 사라졌다 침대맡의 무드 등까지 꺼 버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머리와 어깨에 온기가 느껴졌다. 머리칼을 쓸어 올리거나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익숙한 손길과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머리카락, 어깨에 비벼지는 온기.

오늘 하루도 바쁘게 보낸 데다가 취침 시각까지 넘겨 버려 매우 졸린 상태였던 나는, 띄엄띄엄 끊어지는 생각을 붙잡고 있다가 아직도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게 분명한 두 사람을 향해 웅얼거렸다.

“다음부턴 걸레고 수건이고 나발이고, 기 싸움은 저 없는 데서 하시고요. 저한텐 누가 이겼는지만 좀 알려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덜미를 간지럽히던 머리칼이 멀어지는가 싶더니, 잔뜩 신이 난 정새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내가 이겼-”

“됐고요.”

좀 있으면 잠들 것 같아 여유가 없던 나는 쓸데없는 자랑을 냉정히 끊고 말을 이었다.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저는 예쁘고 비싸서 받는다고 한 거지, 걸레 좋아한다고는 안 했어요. 그리고 저는 수건이 걸레였던 사정 별로 안 궁금하니까 누가 됐든 입단속 좀 하라고 해 주시고요.”

“…받는다는 게 좋다는 거지, 뭐.”

응, 아니야. 나는 잔뜩 풀이 죽은 정새빈의 말을 속으로 부정하면서 손을 들어 다시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머리칼을 밀어냈다. 힘껏 민 보람도 없이 정새빈의 머리는 손을 치우자마자 다시 내 어깨에 딱 달라붙었다.

다시 밀어낼까 했지만 이젠 정말 한계였다. 너무 졸렸다. 나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몸에 힘을 뺐다.

“저 이제 진짜 잘래요. 형들도 저 그만 보고 얼른 누워요.”

“…잘 자, 쫑쫑아.”

“잘 자, 나비야.”

민선우의 손이 다시금 내 머리를 쓸어 넘겨 주기 시작하고, 나에게 찰싹 붙은 정새빈의 손이 내 가슴께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자장가를 불러 줄까 묻는 정새빈과 듣기 싫다고 일갈하는 민선우. 둘은 조용히 있다가도 한 번씩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투덕거렸는데, 그 소리가 점점 더 멀어지는 걸 보니 정말 곧 잠들 것 같았다.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중얼거렸다.

“잘 자요, 예쁘고 비싸고 새것 같은데 닳고 닳은 형들.”

잠기운을 핑계로 심술과 장난기를 잔뜩 담은 인사를 끝으로 까무룩 의식이 끊겼다.

* * *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자기 시작했다.

당연히 민선우의 반대와 정새빈의 투정에 부딪혔지만, 나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언제까지고 민선우와 잘 수는 없는 일이었으므로, 이제 정말 혼자 자 버릇할 필요가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 익숙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계속 이래선 문제가 많았다. 이미 나는 민선우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

민선우는 단호한 내 태도에 잠시 침묵하다가 한숨을 쉬며 조건을 제시했다. 일주일에 하루는 그와 잘 것.

‘사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정말 네가 잠을 못 잘까 봐 걱정돼서 그래.’

그렇게 말하는 민선우의 옆에서 입술을 비죽이던 정새빈이 턱을 괴면서 똑같은 조건을 걸었다.

‘참고로 나는 사심뿐이야.’

덧붙이는 말은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다른 데를 보며 구시렁거리던 정새빈은 내가 그런 이유라면 거절한다고 말하려는 순간, 테이블 위로 철푸덕 엎드리며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쫑쫑인 이미 잘하고 있는데 걱정은 해서 뭐 해. 걱정 안 해. 그리고, 그리고 너도. 쫑쫑이도 안 해도 돼. 안 해. 쫑쫑이가 준비될 때까진 참을게. 훌쩍, 내가 참는다고.’

녀석은 참는다는 말을 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렇게 울기까지 할 일인가 싶었지만, 평소 입만 열면 섹스, 섹스 거리던 녀석이라는 걸 감안하면 아주 조금 이해가 됐다.

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후, 뱉으며 두 사람을 향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호기로운 태도였으나 남몰래 걱정했던 것과 달리, 혼자 자려는 시도는 전보다 결과가 좋았다. 일주일에 5일, 그중에 많이는 4일, 적게는 2일 정도는 잠들려는 노력 없이도 쉽게 잠이 들었다.

민선우와 정새빈이 옆에서 온기를 나눠 줄 때보단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밤을 꼬박 새우거나 새벽에 몇 번이고 깨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름대로 순조로운 수면 패턴을 지켜 왔었는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지독한 악몽으로 괴로워하다 오밤중에 눈을 뜨고 말았다.

아직 혼자 잘 땐 불을 끄지 않아서 그런지 벌떡 일어났을 땐 가장 먼저 환한 방이 보였다.

다행이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 주제에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웠던 악몽이었다. 눈을 떴는데도 사방이 어두웠다면 시간에 개의치 않고 난동을 부렸을 터였다.

나는 눈물과 땀으로 축축한 얼굴을 이불로 대충 닦아 내고 아직도 떨리는 손을 마주 잡았다. 괜찮아. 꿈이야. 괜찮아. 심호흡과 함께 괜찮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으니 약간이나마 진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떨림이 잦아든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대로 바로 눈을 감으면 애써 도망쳤던 악몽에 다시 끌려들어 갈 것 같아 뭔가 재밌는 영상이라도 찾아서 보고 잘 심산이었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메시지 알림을 확인하고 답장을 한 건 순전히 변덕이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걸려 온 전화를 받은 건, 그 시간에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오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나머지 너무 당황해서 허둥거리다 통화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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