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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 (205)화 (204/234)

205화

“지금부터 20대 때릴 거야. 다만 그냥 무작정 때리다 보면 더 때리게 될 수도 있어서 횟수를 세면서 했으면 좋겠는데.”

“내, 내가! 제가 셀게요!”

때리는 놈을 뭘 믿고 그걸 맡겨. 반응 재밌다고 몰래 한두 대 더 때릴 수도 있잖아. 양심이 있으면 그러진 않겠지만.... 아니, 민선우라면 뭔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럴래? 그럼 나는 진호가 세는 숫자만 믿으면 되는 건가?”

“응, 아니, 네. 나만 믿어요. 내가 말한 숫자만.”

“대신 숫자를 건너뛴다거나, 한 대 맞고 20대라고 우긴다거나 하면 더 혼나는 거다?”

내가 그렇게까지 양심 없는 놈일까 봐?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녀석의 옆구리 부근을 보면서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녀석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내가 어렸을 때 배구를 꽤 오래 했었거든. 잘못 맞으면 큰일 날 수 있으니까 자세는 이대로 유지하는 거야. 알겠지?”

“네, 네. 힘 딱 주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나는 어느새 조금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으며 답했다. 근데 이 자세 은근히 코어에 힘이 엄청 들어가네. 발끝으로 지탱하고 있어서 그런가. 이대로 가다간 20대 맞는 게 문제가 아니라 코어가 지쳐 항복을 선언할 것 같았다. 근데 쟨 얼른 안 때리고 뭘 이렇게 뜸을 들이는,

짝!

“헉!”

눈이 부릅떠졌다. 엉덩이에 작렬한 상상 이상의 따가움과 둔통에 절로 허리가 휘었다. 이, 이게 뭐야. 미쳤, 죽, 죽어. 이걸로 20대 맞으면 죽어! 본능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바둥거리는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또다시 작렬하는 아픔.

짝!

“움직이면,”

짝!

“안 된다고,”

짝!

“했을 텐데. 김진호.”

아파. 너무 아파. 머릿속에 그 말만 가득 들어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망? 그게 뭐야. 둔통 뒤에 오는 아찔할 정도로 저릿하고 짜릿한 아픔에 덜덜 떨면서도 자세를 추슬렀다. 눈을 깜박이자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숫자도 안 세는 거 보니까 이건 그냥 연습으로 치는 건가 보네.”

어? 저게 무슨 소리야. 나는 눈을 더 크게 뜨고 몸을 돌릴 기세로 고개를 돌렸다.

“숫자는 나비가 세기로 했잖아. 나는 그것만 믿으면 된다고, 누가 그랬더라?”

나다. 내가 그랬다. 내가 그러긴 했는데 그땐 이럴 줄 몰랐잖아.

“아프, 흐윽, 아파서. 너무 아파서 못 센 건데.”

복받치는 억울함에 눈물이 났다. 그러나 내가 눈물을 흘리고 목소리를 떨어도 민선우는 냉정했다.

“내가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같이 한 약속인데 지켜야지. 계획도 아무것도 안 지키고 하루를 엉망진창으로 보내서 이렇게 벌 받으면서도 또 안 지키려고? 응?”

“그, 그건....”

하지만 너무 아픈 걸 어떻게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작게 울음을 터트리자 위에서 나직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후우.... 지금 몇 대야.”

“몇, 몇 대… 잠깐. 어, 셋, 아니, 넷. 훌쩍, 네 대요.”

“나비가 처음이니까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야. 이제부턴 안 센 건 그냥 연습으로 칠 거니까 똑바로 세.”

“네. 네에.”

대답하면서 몸에 힘을 줬다. 민선우가 긴장을 풀라는 듯 등허리를 쓸어왔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손 역시 엉덩이를 문질러주고 있었다. 그 손길에 코를 훌쩍이며 몸에 힘을 뺐다. 그리고 그 순간 녀석의 손이 커다란 마찰음을 내며 내 엉덩이를 내려쳤다.

짝!

“김-”

“허억, 다, 다섯. 다섯!”

익숙해지기엔 너무 거대한 통증에 또 숨을 들이켠 채 아무 말 못하고 있다가, 짜증 섞인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숫자를 외쳤다. 그 후에 잔뜩 긴장한 채 잡고 있던 녀석의 바지를 더욱 힘주어 말아 쥐는데, 또 벼락같은 통증이 날아들었다.

짝!

“여, 흐윽,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숫자가 커질수록 울음소리도 커졌다. 아프고 뜨겁고 힘들었다. 연속으로 내려쳐진 엉덩이에서 피어오른 열기에 얼굴도 터질 것처럼 피가 몰렸다. 줄줄 흐르는 눈물 콧물을 닦을 새도 없이 내 입에서 터져 나가는 숫자는 어느새 두 자릿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새하얗게 만드는 아픔에 발을 동동 구르며 녀석에게 빌기 시작했다.

“형, 혀엉, 아프, 아파요. 잘못했, 흐윽, 잘못했어요. 네?”

“자세 똑바로 안 하지. 다친다고 벌써 세 번 말했어. 자세.”

몸을 모로 돌리고 녀석의 옆구리 옷을 잡고 늘어지는 내게 녀석은 자비 없이 질책했다. 바늘이 들어갈 틈조차도 없이 딱딱한 얼굴을 보니 너무 무섭고 서러워서 절로 울음이 터졌다.

매일 밤 가슴 토닥이며 재워준 다정한 민선우 어디 갔어. 나 좋아한다고 귀하게 여겨준다고 했던 민선우 데리고 와. 이런, 이런 무서운 민선우 데려가고 다정한 민선우 데려오란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몸은 착실히 자세를 잡고 있었다. 그러자 민선우는 내가 울어 젖히든 말든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짝!

“열, 흐어엉, 열두울!”

짝!

“아팟! 아프, 잠, 열, 열세엣!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 쉬었다 맞으니까 더 아픈 것 같은 느낌에 참지 못하고 손을 뒤로 보내려는 기색을 보이자마자 강도가 더 세져, 이제는 정말 엉덩이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래도 아까까진 무슨 말이라도 내뱉던 민선우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계처럼 때렸다. 내가 녀석의 옷자락이 늘어지도록 쥐어 잡으며 악을 질러도 침묵했다. 너무 큰 아픔에 발을 구르면 그제야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때렸다.

짝!

“스, 스물. 흐윽, 흑. 스무울.”

그렇게 녀석은 기어코 본인이 말한 숫자를 채웠다. 너무 아팠다. 아픔이 너무 커서 엉덩이가 아니라 온몸이 아픈 것 같았다. 몸에 힘이 빠져서 축 늘어지다 못해 스르르 옆으로 기울었다. 바닥에 떨어질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할 힘이 없어 그냥 눈만 질끈 감는데 턱, 뭔가가 내 몸을 잡았다. 코를 훌쩍이며 눈을 뜨니 민선우가 보였다.

“아파?”

당연한 소리를 하는 녀석에게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녀석이 엄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대답은 말로 해야지. 아팠어?”

“훌쩍. 네. 아팠, 아팠어요.”

숨이 거칠어 더듬더듬 답하는 걸 들은 민선우가 잡고 있던 내 몸을 들어 다시 자기 앞에 무릎을 꿇렸다. 그리고 내 턱을 잡고 말했다.

“오늘 혼이 난 가장 큰 이유는 늦잠이나 회식 같은 게 아니야. 내가 말했지. 가장 중요한 건 너, 네 건강이라고.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 이렇게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셔? 멋대로 약 먹는 것도 건너뛰면서?”

살벌한 얼굴을 한 민선우의 입에서 으득, 하는 소리가 났다. 내 턱을 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나는 머뭇머뭇 양손으로 녀석의 손목을 쥐고 빌었다.

“잘못했, 잘못했어요. 이젠 안 그럴게요. 크응, 진, 진짜로. 흐윽, 잘못했어요.”

이건 당장 눈앞의 무서운 녀석에게 겁이 나서 하는 소리기도 했지만, 정말 나 스스로에게 미안해서 하는 사과이기도 했다. 저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너무 잘못한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 다른 건 다 괜찮으니 술만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그걸 어겼어. 약도 마음대로 안 먹고. 그러고 보니까 오늘 밥도 제대로 안 먹었어. 취하진 않았기에 조금 억울한 마음이 올라오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건 내가 다 잘못한 게 맞으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잔뜩 풀이 죽어 아픈 엉덩이를 감쌀 생각도 못 하고 잘못했다고 비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민선우가 쐐기를 박듯이 물었다.

“김진호. 잘못했지.”

“네, 네. 잘못했어요.”

“또 그럴 거야?”

“아니, 아니요. 안 그래요. 이젠 안 그럴 거예요.”

녀석의 눈동자에 제법 결연해 보이는 내 얼굴이 비쳤다. 내가 진심인지 가늠하기 위해서인지 입을 닫고 나를 관찰하는 민선우 덕에 방안엔 정적이 찾아왔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괜히 마음이 조급해져 점점 숨이 가빠졌다. 거친 숨에 겁에 질린 흐느낌이 섞이기 직전, 별안간 민선우가 나를 들어 올려 자기 다리 사이에 앉혔다. 그리고 들리는 나긋한 목소리.

“진호야.”

“네, 네. 네.”

“이젠 앞으로 그러면 안 돼. 약속이야.”

민선우가 웃고 있었다. 아주 상냥하게.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눈을 깜박였다. 놀라서 어, 어하는 바보 같은 소리를 내는 내게 녀석의 손이 다가오더니,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려주며 속삭였다.

“벌 다 끝났어. 잘 견뎠어. 예쁘다, 내 나비.”

아. 돌아왔다. 드디어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귀하게 여겨준다고 말해주던 민선우로 돌아왔다. 그걸 깨닫자마자 놀라서 벌어졌던 입에서 허어엉, 하는 하나도 귀엽지 않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갔다.

“우리 진호, 많이 힘들었나 보네. 많이 아팠어?”

“네, 네. 엄청, 히끅, 엄청 아프, 아팠어요.”

그래, 그랬구나. 민선우가 꺽꺽거리며 서러움을 토로하는 나를 조곤조곤 달래주었다. 그렇게 횡설수설 아무 말이든 뱉으니 서서히 울음이 멎고 숨도 진정되었다. 나는 이마와 눈가에 입을 맞추며 홧홧한 엉덩이를 조심조심 문질러주는 손길에 안심하고 몸에 힘을 뺐다. 축 늘어지는 몸이 무겁지도 않은지 녀석은 힘든 기색 없이 조금 더 위로 추슬러 안았다. 그리고 코가 맞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훅 좁혀진 거리에 다소 멍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근데 진호야. 아프기만 했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정말 아프기만 한 거 같진 않아서.”

영문 모를 녀석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자 얼굴을 뗀 민선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프기만 했다면 여기가 이렇게 될 리가 없잖아, 진호야.”

여기. 녀석이 은근한 목소리로 지적한 ‘여기’는 왜인지 몰라도 꼿꼿이 서 있는 나의 ‘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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