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내 질문을 들은 녀석들은 처음엔 인상을 찌푸렸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한숨을 쉬는 모습에 덜컥 걱정이 앞섰다. 내가 너무 이상한 걸 물었나? 저 한숨은 무슨 의미지? 왜 이제 와서 새삼스레 묻느냐는 뜻인가? 아니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의미일까. 멋대로 뒤엉키는 생각들에 점점 심장이 빨리 뛰었다.
빨리 답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세 명 다 뭘 그렇게 망설이는 건지 모르겠다. 최태혁은 착잡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고, 남궁후는 거칠게 마른세수를, 남궁호는 두 손을 포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뒤에서 정새빈이 잔뜩 비꼬는 말투로 한마디 했다.
“꼴좋다.”
옆에 있던 민선우도 말을 보탰다.
“자업자득이야.”
저번에도 느낀 건데, 저 다섯 명이 모여 대화하는 걸 듣고 있자면 한국말을 하는데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민선우와 정새빈이 세 명을 비웃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뭐가 꼴좋고 자업자득인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세 명은 나와 달리 그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세 명의 몸이 동시에 움찔거리더니 최태혁은 쓴 물을 삼킨 표정으로 눈을 떴고, 남궁후와 호는 각자 손을 내리고 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중 남궁호가 내게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호야. 그걸 왜 물어. 당연히, 당연히 되지. 되는 거야.”
당연히 우리가 잘못한 거잖아, 진호야. 녀석은 끝의 말을 중얼거리면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얼굴의 반을 가린 손 덕분에 어떤 표정인지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입술을 하얗게 되도록 깨문 것을 보면 뭔가를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녀석의 뒤를 이어 말한 사람은 최태혁이었다.
“왜 이제 왔냐고 울고 소리쳐도 돼.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때려도 된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깨문 채 날 보고 있던 남궁후가 입을 열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를.... 섭섭함을 느끼는데 확인을 받는 게 어딨어, 진호야. 우리 그래도 되는, 너는 우리한테 충분히 그래도 되는 사람이야.”
내 질문이 마치 칼이라도 되어 찌른 것처럼 녀석들은 퍽 괴로운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뭔가가 또 울컥 치솟아 올라 눈을 내리깔았다. 녀석들의 답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명확했다. 이젠 내가 말을 할 차례였다.
나는 테이블을 감싸고 있는 비닐을 보면서 복잡한 머릿속과 그것보다 더 복잡한 감정을 정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리를 끝내고 고개를 들었다.
“사실요. 저 사실 형들이랑 친해지려고 일부러 엄청 노력한 거였어요. 우연도 이용하고, 성격도 죽이고, 눈치 없는 척, 모르는 척하면서 진짜 열심히 했어요. 예령이가 형들이랑 친한 거 좀 부러웠거든요. 형들 되게 슈퍼맨 같은 사람들인 거 알아서, 나도 그런 형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그런 슈퍼맨들이 나도 그들의 보호 범위에 넣어주기를 바랐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나 녀석들에게 정이 들수록, 녀석들이 내게 잘해줄수록 조금씩 욕심을 키워갔다.
“보시다시피 제 인생이 좀 많이 고달파서요. 적어도 제가 무너질 것 같을 때나 죽을 것 같을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형들이랑 점점 더 가까워지고, 시간을 보내면서 말은 안 했지만 내심 좋았어요. 안심도 되고요. 아, 나도 이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저 또 혼자 죽지 않을 정도만 도와줘도 좋겠다는 마음은, 곧 나도 다치지 않도록 신경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거기서 또 그 자리에 달려오는 이유에 나 또한 포함되어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서운 일을 겪기 전에 안전하게 보호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들이 나와 진한 스킨십을 하고 나서부터는,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그 기대는 내가 생각해도 염치가 없었기에 애써 외면하며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그들에게 특별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래서 그들이라면 반드시 나의 절박한 연락을 받아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고통을 알면 달려와 주리라 감히 확신했다. 바보 같은 일이었다.
“처음 전화를 안 받은 건 그래도 이해했어요. 근데 예령이 병실에서 형들을 봤을 땐. 솔직히 배신감이 들더라고요. 아끼는 후배 교통사고에 관계됐으니까, 다쳤을까 봐 놀라서 달려간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거 확인하고 나서 핸드폰 확인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참을 수가 없었어요.”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머리를 강타하던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 나는 뭘 해도 저 사람들에게 특별해질 수 없구나. 이미 그들에겐 너무도 특별한 사람이 있구나. 심지어 그 특별한 사람은 내가 보기에도 항상 빛나고 사랑스러운 채예령, 내 친구였다. 내가 뭘 해도 절대 이길 수 없고, 이기고 싶지도 않으나, 너무 부럽고 부러워서 가끔은 밉기까지 한 내 친구. 교통사고 당한 친구를 대상으로 시샘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을 옥죄는 거대한 설움이 섞여 내 속은 엉망진창이 되었었다.
“막 병실에 들어갔을 땐, 그래요. 형 말처럼 예령이에게 아직은 얘기하기 싫었기 때문에 혹시나 내 차림을, 내 불안정한 모습을 알아본 형들이 무슨 말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어요. 만약 그러면 뭐라고 둘러대야 할까 잠깐 고민도 하고요.”
그리고 다행히도 형들은 절 보면서 인상은 썼을지언정 뭘 물어보진 않았어요.
그 말을 하면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얼굴 근육이 뻣뻣한 것을 보아 제대로 된 미소는 아니었겠다 싶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웃음보다는 자조에 가까운 심정이었으므로.
“근데 이상하죠? 걱정하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마음이 놓여야 하는데 점점 좀 화가 나는 거예요. 왜 아무것도 안 물어보지. 나 지금 되게 안 괜찮아 보일 텐데 왜 아무 말도 없지.”
문득 눈을 굴려 남궁호를 봤다. 녀석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실 나와서 얼마간 그 앞에서 문고리에서 손도 못 떼고 기다렸어요. 한 명쯤은 날 따라 나와서 무슨 일이냐, 괜찮냐 물어봐 주지 않을까 해서. 근데 그러긴커녕 웃음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때 제가 얼마나, 얼마나 울고 싶었는지 형들은 모를 거예요.”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의 남궁호에게 이번엔 정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정말 재밌어서 웃었던 게 아닐 수 있죠. 그냥 흐름에 맞춰 낸 웃음소리였을 수도 있어요. 상대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지만 당장 묻기 그런 상황이라 판단해서 다음으로 미룰 수 있는 거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핸드폰을 미처 확인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심지어 마침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연락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요. 이해해요. 세상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 진짜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저.”
정말이었다. 이런 일 따위 예전의 나 같으면 그냥 이해하고 넘겼을 일이었다. 내 감정보단 그냥 직면한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내가 따진다고 누가 들어줄까. 내가 아프고 슬픈 건 내가 해결하면 되지 뭐 하러 남한테 말해. 한다고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거고, 오히려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어. 그럴 바엔 그냥 내가 이해하고 치우자.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나는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나를 신경 쓰는 사람들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나를 사랑해야 인생이 그나마 괜찮아진다는 걸 배웠다. 살기에만 급급하던 김진호는 한 번의 죽음 이후 그거 하나만은 제대로 배웠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내 기분이, 감정이 상한 것에 대한 책임을 나 자신이 아닌 내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한 사람에게 지울 것이다. 적어도 오늘은. 저들에겐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근데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어요. 왜 하필이면 어떻게 제가 너무 간절하게 필요할 때 없었어요. 제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아는 형들이 왜, 왜 저를 우선시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게 너무 섭섭했고, 서러웠고, 화가 났어요. 형들이 생각하기에도 제가 형들에게 제법 가치 있는 존재였다는 말을 듣고 나서 더 원망스러웠어요.”
계속 이어지는 내 말에 나와 마주 보던 남궁호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나는 사락, 하고 흘러내리는 녀석의 머리카락을 보고 고개를 돌려 남궁후와 최태혁을 향해 눈동자를 움직였다.
“제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오늘만큼은, 딱 그때만큼은 절 우선시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으로 망설이지 말고 당장이라도 붙잡고 물어봐 주지. 그랬으면 곤란하긴 했어도 그렇게 비참하고 외롭진 않았을 텐데. 이렇게 보기 싫을 정도로 미워지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테이블 밑의 손을 펼쳐 손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초콜릿의 맛을 모르는 아이에게 억지로 그 맛을 알게 한 뒤에 뺏어가면 아무리 순하고 멍청한 아이여도 앙심을 품기 마련이었다. 나에게는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생각 자체가 더없이 달콤한 초콜릿이었다. 평생 한 번 먹지 못해도 손에 쥐어보기라도 하고 싶었던 초콜릿. 녀석들은 그저 껍데기만으로도 만족하려던 내게 각자의 방식대로 그들의 초콜릿을 들이댔고 나는 못 이기는 척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초콜릿은 내가 먹기도 전에 손에서 녹아버렸다. 녹아서 내 마음에 진한 얼룩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