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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 (192)화 (191/234)
  • 192화

    절로 입이 벌어졌다. 내가 얼마나 놀랐냐면, 방금까지 서러워서 울고 있던 것도 쏙 들어가 버릴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시간 전에 전화했을 때 여수라고 했던 녀석이 장례식장에 온 것부터가 놀라운데, 빈소를 패스하고 걸어들어오면서 당당하게 욕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방명록이 있는 쪽에 계시던 비서님은 물론이고, 아빠 사진만 보면서 넋을 놓고 있던 엄마와 아버지마저 정새빈의 뒷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렇게 정작 상복을 입은 사람들은 벙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민선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서까지 또라이처럼 굴 생각하지 말고 먼저 인사부터 드리고 와. 그거 먼저 한다고 이 병신들이 어디 가지는 않으니까.”

    언뜻 들으면 비속어가 정상적인 호칭처럼 들릴 만큼 아주 조곤조곤하고 나긋한 어조였다. 그 언밸런스함에 순간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인상을 찌푸리며 옆을 힐끔 확인했다. 민선우는 정새빈을 향해 누가 봐도 만들어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새빈은 민선우의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 우뚝 서더니 고개를 돌려 빈소를 확인했다. 그리고 고개를 바로 해 나를 보더니 눈동자를 굴리며 한숨을 쉬었다. 녀석은 이내 몸을 돌려 빈소로 갔다. 우리는 왠지 모르게 녀석의 뒷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꽃을 제단에 올리고 절을 두 번 한 뒤 묵례를 한 녀석은 형식상으로나마 나란히 서서 인사를 기다리던 엄마와 아버지를 한번 힐긋 보고 그대로 지나쳐 걸어왔다. 황당해하는 엄마와 아버지의 표정을 뒤로하고 성큼성큼 걸어온 녀석은 앉아 있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새빈은 고개 숙인 자세 그대로 눈만 조금 들어 올려 나와 눈을 맞췄다. 뭔가 분석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 눈을 마주한 채 나는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눈이 나를 지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녀석들을 훑고 민선우를 향하더니, 맞닿아 있는 민선우와 내 무릎으로 향했다. 녀석은 쯧, 하는 소리를 내고 나서 나와 민선우의 뒤에 털썩 주저앉았다. 덕분에 뒤의 테이블이 좀 밀려서 소리를 냈지만, 이상해진 분위기에 눌려 아무도 그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이없어하든 테이블이 밀리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한 정새빈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빠졌잖아.”

    “...네?”

    “찌운다며.”

    되물은 것은 나였음에도 정새빈의 시선은 쌍둥이에게로 향해있었다. 남궁호와 후는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다시 이를 깍 깨물더니 거칠게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똑같은 새끼.”

    이번엔 최태혁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쌍둥이를 보고 있느라 앞을 보고 있어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정새빈이 최태혁을 보면서 말한 모양이었다. 나는 아직도 남은 얼떨떨함으로 인해 눈만 깜박이고 있었는데, 어째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하게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입을 다물고 녀석이 무언가를 더 말해주길 기다렸다. 이런 내 마음이 통했는지 정새빈은 바로 민선우에게 물었다.

    “너 알지?”

    정새빈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묻는 말에 민선우가 앞의 세 명을 보던 자세 그대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으음-.”

    “너도 병신이야?”

    “아니. 너도 알다시피 내가 그렇게 정에 연연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말이야.”

    이게 도대체 무슨 대화일까. 뭔가 어렴풋이 알 것 같으면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들이 오가는 것을 듣고 있자니 절로 미간이 모였다. 그러나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이라도 있는 건지, 머뭇거림도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정?”

    “응. 예령이가 교통사고 당했거든.”

    “...교통사고?”

    예령이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자리에 앉은 후 내내 무표정했던 얼굴이 금이 갔다. 그걸 힐긋 확인한 민선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응, 이 병원에 입원해있어 지금. 진호가 병문안도 다녀왔는걸. 그 병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갈 필요는 없었던 것 같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정새빈의 표정이 더 험악해졌다. 아무래도 채예령은 녀석에게도 아끼는 후배였으니 교통사고 소리에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나는 순간 그렇게 다쳐 보이지 않았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겉보기에 괜찮아 보였다고 해도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본인이 괜찮다고 한 것도 원래 채예령은 습관적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놈이었으므로 그렇게 신뢰할 말은 아니었다. 나도 작금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놈이 그렇게 말하든 말든 옆에 붙어 앉아 온갖 잔소리를 하고 있을 터였다.

    거기다 하필이면 내가 힘들 때 연락을 받지 않았던 녀석들이 거기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열등감과 질투를 느꼈다는 추한 사실을 막 인정한 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그저 녀석을 붙들어 놓기 위한 것 같아 뭔가 말하기 꺼려졌다. 그래서 나는 하려던 말 대신 다른 말을 꺼내 들었다.

    “병실 알려드릴게요. 한 번 가보-”

    그러나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새빈은 내가 아니라 정면을 향해 이번에도 알 수 없는,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다.

    “아니라고 해라.”

    본인들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하는 말에 세 명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렸다. 그걸 본 정새빈이 한껏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코웃음 쳤다.

    “하. 그래, 그렇단 거지.”

    그 중얼거림을 끝으로 내내 세 명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정새빈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손가락으로 무릎을 톡톡 치는 모습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잠시 보고 있다가 문득 느껴지는 허기에 밥그릇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눈물이 떨어져 있을 밥그릇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앞에 앉은 세 명이 시야에 같이 들어왔다. 이대로 밥을 다시 먹을지, 아니면 뚫어져라 나를 보고 있는 세 명에게 하던 말을 마저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앞에서 손 하나가 쑥 나오더니 내 밥그릇을 가져갔다. 대신 새로운 밥을 놔준 그 손의 주인은 최태혁이었다.

    “먹고… 얘기하자.”

    물끄러미 자신을 올려다보는 내 눈을 피하면서 녀석이 내 앞쪽으로 반찬을 밀어주었다. 내가 먹던 밥이 최태혁의 앞에 놓인 것을 보아, 이 밥은 녀석의 몫으로 나온 밥인 것 같았다. 싫다고 거절하고 싶다가도 말하는 것조차 귀찮아 멀뚱히 눈만 깜박이고 있으려니, 이번엔 옆에서 손이 뻗어져 나와 내 숟가락을 쥐었다.

    “상주가 원래 더 잘 챙겨 먹어야 해, 진호야. 자. 아 하자.”

    적당량의 밥을 퍼서 반찬까지 야무지게 올린 민선우가 내 입가에 숟가락을 가져다 댔다. 내가 직접 먹을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까 최태혁이 말했을 때처럼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얌전히 입을 벌려 밥을 받아먹었다. 그러자 민선우가 눈을 휘며 말했다.

    “착하다, 진호.”

    그리고 옆을 힐긋 보면서 상황 때문에 체 할 수 있으니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면서 앞머리를 쓸어 올려주었다. 그런 민선우를 쳐다보며 입을 가득 채운 음식을 씹던 나는 별 의미 없이 앞의 세 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세 명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죄책감이 어린 것 같기도, 슬픈 것 같기도 한 복잡한 얼굴이었다. 뭔가 할 말도 많아 보였지만 먹고 얘기하자는, 상주가 더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두 사람의 말에 동의하는 건지 내가 밥 한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눈치를 보는 세 명과 어미 새처럼 밥을 먹여주는 민선우와 무릎에 턱을 괴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는 정새빈 사이에서 나는 기어코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참으로 어색한 침묵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음식에만 집중해서 배를 채웠다. 배가 불러서 그런지 손끝이 저리는 느낌이 없어지고 머리도 더 잘 굴러갔다. 민선우가 건네는 물컵을 받으면서 먹는 내내 의도적으로 보지 않았던 세 명을 쳐다보았다. 시원한 물이 넘어가면서 여러 감정으로 불이 났던 내 속을 가라앉혀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깔끔하게 비운 물컵을 상에 올려놓고 차분해진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거에 따라서 지금부터 제가 취할 행동이, 할 말이 정해질 거라서요. 그거부터 확실히 짚고 넘어가요, 우리.”

    말을 시작함과 내게 와 꽂히는 세 명의 눈을 차례로 마주쳤다. 녀석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착각인지는 몰라도 긴장을 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묻기도 전에 대답을 알 것만 같아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냥 묻지 말까. 아까 이미 화를 낸 상태였으므로 새삼스레 묻는 것도 우스운 질문이긴 했다.

    아냐. 아니다. 우스운 게 아니라 물었다가 혹시라도 아니라고 그럴까 봐 무서운 거다. 도망가지 말자. 나는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냈다. 어설픈 추측은 위험했다. 알 것 같은 것과 아는 건 다르다. 당사자의 입으로 명확히 들어야 훗날 혼자가 되었을 때, 그때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는 후회를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묻자. 물어보는 게 맞아. 나는 테이블 밑에서 주먹을 꽉 쥐고 녀석들을 향해 또박또박 질문했다.

    “제가, 요. 제가 오늘 일에 대해 섭섭해해도 되는 거예요?”

    “...응?”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들이요. 제 연락을 받지 못한 거랑 제가 힘들 때 바로 달려와 주지 않았다는 거. 내 차림이 평소랑 다르다는 걸 눈치채놓고서 바로 묻지 않은 거랑, 그래서 내가 상처받았다는 거에 대해서요. 제가 함부로 섭섭해하고 화내도 되는, 그래도 되는 존재인가요?”

    형들에게? 그렇게 물으며 아까처럼 최태혁, 남궁후, 호와 차례대로 눈을 맞췄다. 혹여라도 인상을 찌푸리며 아니라고 할까 봐 무서워 보고 싶지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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