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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 (189)화 (188/234)
  • 189화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비서님이었다. 나를 향해 돌아서는 비서님을 따라 아버지와 엄마도 뒤를 돌았다. 넋이 나가 있던 두 얼굴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나는 일단 그때까지도 잡혀있던 손을 뒤로 빼냈다. 다행히 민선우도 순순히 놔주었다. 나를 향해 싱긋 웃어주는 녀석과 눈을 한 번 맞추고 먼저 비서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순간, 누군가가 강하게 어깨를 잡고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너! 네가 어떻게, 어떻게 우리한테 그래!”

    “사모님!”

    “연락했어야지! 그 영감이 뭐라고 하든, 민영이가 어떤 고집을 부렸든 간에 우리한테 알렸어야지!”

    엄마는 나를 향해 붉어진 눈을 치켜뜨며 절규했다. 멀거니 선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붉어진 눈을 하고 이를 악문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과묵한 성정답게 말로 하진 않았지만,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이럴 줄 알았잖아.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입안이 썼다. 나는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 마른 몸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싶을 정도로 힘차게 나를 흔들고 있는 엄마의 얼굴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민영이가 얼마나 외로운 애였는데. 얼마나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앤데 가는 길까지 기어코 그렇게 보냈어. 그 애가, 그 애가 나한테는 어떤 의미였는데. 이 세상 유일한 가족이었단 말이야!”

    이 세상 유일한 가족. 엄마가 그렇게 절규하더니 날 흔드는 것을 멈췄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였다. 나는 쑥 들어온 손이 엄마를 잡고 밀쳐내는 것을 보다가 사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처럼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민선우의 얼굴이 어쩐지 매우 싸늘하게 느껴졌다.

    “놔! 너는 뭐야? 놓으라고!”

    “진정하세요, 진호 어머님.”

    갑작스러운 개입에 놀라 아무 말 못 하던 엄마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민선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녀석은 격한 몸부림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는 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들어가서 대화하시죠.”

    민선우의 조곤조곤한 말투 덕분인지 금방이라도 다시 소리 지를 것 같이 숨을 들이켠 엄마가 그대로 멈췄다. 그러더니 민선우를 밀쳐대던 것을 그만두고 주변을 슬쩍 살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민선우는 얌전해진 엄마의 양팔을 잡은 채 걸음을 옮겼다. 상냥하게 웃고 있는 얼굴과는 달리 힘을 많이 준 건지, 그 틈을 타 나를 노려보고 있던 엄마의 몸이 종잇장처럼 끌려갔다.

    녀석은 엄마를 단 위에 주저앉게 만들고 나를 향해 돌아섰다. 나와 마주치자마자 깜박이는 눈이 마치 이제 어떻게 해줄까, 하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내팽개쳐지다시피 단에 걸터앉아 얼떨떨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엄마를 힐긋 확인했다. 여전히 멀거니 서 있기만 하는 아버지도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녀석을 보면서 주머니를 뒤적여 아까부터 계속 진동하고 있던 핸드폰을 꺼냈다. 슬쩍 확인한 액정에 떠 있는 이름은 예상대로였다. 나는 그 핸드폰을 민선우에게 내밀며 차분하게 말했다.

    “여기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것만 좀 해결해주시겠어요?”

    녀석은 일부러 액정이 보이도록 내민 핸드폰을 쳐다보더니 짙게 웃었다.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핸드폰을 받아든 민선우가 내게 팔을 뻗었다.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딱히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온 커다란 손은 잔뜩 구겨진 셔츠를 펴주었다. 그리고 녀석은 내 볼을 두 번 톡톡 치더니 다녀올게, 하고 작게 속삭였다.

    나는 녀석이 완전히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 단 앞으로 걸어갔다. 내게 꽂히는 시선들이 퍽 따가웠지만, 신발을 벗고 올라서면서도 일부러 그쪽을 보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 것은 사진 속 아빠와 눈을 맞추고 난 후였다.

    “들어와서 앉으세요. 해드릴 말이 있어요. 전해드릴 것도요.”

    중간에 저지당해서 맥이 풀린 건지, 뭐라고 소리칠 줄 알았던 엄마가 조용히 걸어왔다. 힐긋 아빠의 사진을 확인한 아버지도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나를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은 앉을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이런저런 일로 힘이 다 빠진 내 몸은 이제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므로 그냥 털썩 앉아 버렸다. 얼마 뒤 두 사람도 마지못해 앉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셋 중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버지였다.

    “전할 것이 뭐냐.”

    참, 아버지다운 질문이었다. 전할 물건이란 소리에 아빠를 떠올린 것이 분명했다. 무슨 기대를 하는 건지는 몰라도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꽤 절박해 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했던 생각, 아빠가 생기고 나서 했던 고민, 할아버지와 아빠의 약속을 무시하고 전화하게 만든 결심.

    사실상 늘어놓으면 한없이 길어질 이야기들이었지만, 지지부진한 이야기는 요점이 잘 전해지지 않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속으로 계속 말을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보다 효과적으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고 싶었다. 아빠가 만들어준 이 기회를, 헛되고 쓸데없는 실랑이를 하며 흘려보내긴 싫었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며 눈을 떴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엄마와 아버지의 눈을 한 번씩 맞췄다. 둘은 원망이 선연했던 처음과 달리 많은 감정이 섞인 복잡한 눈을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말씀드릴 건 그동안 두 분께 따로 연락하지 않았던 이유예요. 비서님에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와 아빠가 어떤 약속을 하셨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분께 절대 연락하지 않기로. 근데 사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아빠가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어요.”

    “그럴, 그럴 리가 없어. 민영이가 나한테. 아니, 적어도 태훈이한테만은...!”

    내 말을 듣고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애처롭게 고개를 저었다. 굳이 따지자면 표독스러운 쪽에 가까운 엄마가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건 지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라는 뜻이었다. 그런 엄마를 눈에 담으면서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고 생각했다. 전이었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어쩔 줄 몰라 했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저 약간의 안타까움을 느낄 뿐이었다.

    나는 나의 변화에 대해 다시 한번 명확하게 깨달으며 엄마를 향해 단호히 말했다.

    “아버지한테는 더 연락하고 싶어 하지 않으셨어요.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대요. 이젠 정말 그만하고 싶으셨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근데 두 분 곁에 있으면 그게 안 될 것 같아서 염치 불고하고 할아버지께 연락드린 거라고요.”

    무엇을 그만하고 싶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게 없어도 두 사람은 알아들을 것이다. 역시나 두 사람은 알아들은 듯 미간을 좁혔다. 아버지는 주먹을 쥐었고 엄마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잠시간의 침묵 후, 얼굴을 묻은 손가락 사이로 아주 가느다란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뭘 그만해, 뭘. 우리가 뭘 했다고. 그냥 같이 오래 있으려고 한 건데.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해서, 필요해서 했던 일들인데. 뭐가 그렇게 걸려서...!”

    흐느낌과 함께 쓴웃음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말도 같이 흘러나왔다. 원래 알고 있었지만, 본인의 감정 외엔 참 무신경한 사람이었다. 아빠가 철이 없다고 표현한 엄마의 성격은 어린아이같이 순수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참 잔인하게 다가왔다. 지금처럼 조심하지 않고 내뱉는 말들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피식 새어 나오는 헛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었는지 엄마가 손을 내리고 대뜸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웃어? 너 지금 웃었니? 지금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와?”

    악에 받쳐 지르는 소리를 정면으로 맞으면서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차서 더 웃음이 났다. 항상 간절하게 바랐던 애정을 포기하고 마주한 엄마는 웃음이 나는 사람이었다. 천 겹이고 만 겹이고 셀 수 없이 두껍게 씌워졌던 콩깍지가 없어진 상태에서 보는 엄마는 참, 철없고 못난 사람이어서, 내 유년 시절이 통째로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웃음이 나오면서 동시에 눈이 뜨거워졌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아주 가느다란 실이 뚝 끊긴 기분이 영 좋지만은 않았다. 목이 울렁거렸다. 나는 그 울렁거림을 진정시키고 나서 엄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웃은 게 아니라 허탈해하는 거예요. 이 상황이 아니라, 엄마의 말 때문에요.”

    “뭐?”

    “다 들었어요. 아빠가 다 말해줬어요. 그래서 저 알거든요. 아빠가 그만두고 싶어 했던 게 뭔지, 엄마가 말한 ‘오래 같이하기 위해 필요했던 일’이 뭔지. 그래서 헛웃음이 났어요. 그 필요했다는 일들로 인해 너무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제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가 뭘 했길래 그러냐, 뭐가 그렇게 걸리냐 따지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너무....”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또 소리 내 웃었다. 하하, 하는 소리가 허공에서 힘없이 흩어졌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흥분했던 엄마는 이번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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